선선한 바람이 개강을 재촉하고 있다. 가을은 학업의 과실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인류의 지혜가 농축된 ‘배움의 즐거움’을 한껏 공유할 것이다. 그러나 강단의 현실은 흥미로운 지식여행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든다. 교직원들은 취업사업의 운영에 분주하고, 학생들은 취업스펙 쌓기에 숱한 시간을 할애한다. 실업이라는 유령이 교정을 배회하고 있다.

2015년 한국 사회에 가장 비중 있는 화두는 ‘청년실업’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청의 발표(8월 12일,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자가 41만명에 육박한다. 공식적인 청년실업률 9.4%에는 취업포기자나 졸업을 유예한 구직활동자의 수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른바 삼포세대라고 불리는 청년들은 젊음이라는 빛나는 한 시절을 취업 전선에 소진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의 불안과 자조감을 다그친다. 자존감을 높이라고, ‘노오력’해서 성공하라고 훈계한다. 그러나 현실 사회가 개인의 노력에 얼마나 공정한 대가를 지불했는지 반문해 본다. 열정페이를 운운하며 오히려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았는지. 청년실업은 개인의 노력 여하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교육기관에 책임을 전가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청년 문제의 이면에는 비정규직, 저임금, 저출산, 주거불안, 대출부담 등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 내포 또는 결연되어 있다. 시장의 책임과 국가의 의무가 교집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졸속적 시혜적 대책만을 내어 놓고 있다. 가령 정부가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의 도입은 청년일자리 창출을 직접적으로 유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세대갈등을 조장할 공산이 크다. 반면 노동시간피크제나 청년의무고용부담금의 징수, 청년지원수당의 도입에는 소극적이다.

청년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진부하고 궁색한 답변일 수 있겠지만, 시장질서와 국가권력에 맞설 수 있는 깨어 있고 조직화된 시민의 연대가 필요하다. 사회적 연대성의 복원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제시될 수 있다. 하나는 청년 사이의 연대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과 기성세대들 간의 연대이다. 우선 경쟁사회논리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청년들에게 현재의 문제 상황은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참여를 통해 변화의 주체로서 거듭나야 한다. 사용주의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고, 청년시민사회조직을 결성하거나 참여하며, 청년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적극적인 입법을 추진하여 사회적 발언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자산은 부동산, 예금, 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영원한 청년은 없다. 청년의 위기가 곧 기성세대 자신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 불안이라는 악순환의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다. 몰락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공생을 추구할 것인가.

전후 독일의 보르헤르트는 ‘우리는 만남이 없기에 이별도 없는 세대이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사랑은 비정하고, 청춘은 젊지 않다’고 발언했다. 그의 스산한 고백이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삼포세대? 가진 것이 없기에 포기할 것도 없다. 희망이 없기에 절망조차 없는 세대이다. 청년이 꿈을 꾸는 사회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