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김효림(대구경화여고2학년)

시내에서 조금 걸으면 보이는 보육원이 하나 있다. 그곳으로 들어서면 언제나 작은 정원이 나를 반겼다. 바닥에 깔려진 돌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문이 하나 나오는데, 나는 익숙하게 그 문을 열어 젖혔다. 회색의 트레이닝복 바지에 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를 보고도 한걸음에 뛰쳐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내보였다. 복도식으로 길게 늘어져있는 보육원 벽엔 거울이 걸려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거울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엔 로션 하나 바르지 않아 핏기가 없어보였다. 로션을 바르지 않은지 꽤 오래되어 이젠 별 감흥이 없었다. 그 흔한 립스틱하나 바르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나의 팔에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몰랐다. 긴 머리에 혹여 아이들의 눈을 찌를까, 나는 재빨리 머리를 올려 묶었다.

보육원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의 방으로 들어가면, 남자가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몇 개월 동안 이곳에서 나와 함께 봉사를 했다.

높게 아이를 안아들고, 입으로 붕붕 소리를 내며 비행기를 태워주는 남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날아라, 날아라! 더 높게 날아라! 아이는 신이나 크게 소리를 냈다. 아이는 정말 날고 싶은 걸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평일에 알바를 했던 스트레스가 전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나의 양팔을 붙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언니는 나랑 같이 그림 그리자.”

허공에다가 색연필 하나를 손에 쥐고 휘휘 내젓는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봉사한지 몇 달 되지 않은 나를 유난히 좋아하는 일곱 살짜리 아이가 거세게 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순순히 여자아이를 따라 책상 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매번 나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단어 하나를 말하곤 했다. 지난번엔 나에게 식탁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식탁을 함께 그리고 난 뒤, 그 식탁 그림에는 여자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마음껏 그려 넣었다. 고기부터 음료수, 샐러드. 전부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다. 레스토랑에 가면 아이가 그린 음식들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음식들이, 그저 멀리만, 멀게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오늘은 언니가 하고 싶은 거 그려. 나도 하고 싶은 걸 그릴게.”

“그래.”

아이는 말을 또박또박 잘했다. 나는 말없이 아이 옆에 있는 검정색 크레파스를 하나 들었다. 아이는 나를 거들어보지도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새하얀 스케치북을 앞에 두고 나는 로봇마냥 멍청히 서있었다. 막상 그리려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실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내가 결정하는 건가? 세상의 순리를 그대로 받아드리는 게 전부였던 나는 아이의 말이 낯설었다. 흰 스케치북 위에다가 검은색 크레파스를 가져다댔다. 시끌벅적한 교실 안에서 나는 아이가 그림을 전부 그릴 때까지 입을 열 수 없었다.

 

“언니는 왜 아무것도 안 그렸어?”

“언니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없거든.”

아이는 입을 비죽이며, 나에게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야. 수줍음을 잘 타지 않던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 내민 스케치북엔 책상과 사람이 두 명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어설프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아이의 그림을 보고 물었다.

“가을이는 이게 하고 싶어?”

“응. 이게 나고, 이게 다른 사람이야.”

작은 손을 꿈틀거리며 스케치북에 손을 올렸다. 핑크색으로 그린 건 자기 자신이고, 검정색으로 그린 건 타인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아이의 말에 나는 숨을 죽였다.

“가을이보다 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어.”

어딘지 모를 성숙한 아이의 진심에 나는 아이의 볼에 뽀뽀를 했다.

“착하네, 그런 생각도 하고.”

나에게 이 아이는 선물이었다.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을 머릿속에서 마구 끄집어내는 밤의 선물 같은 것 말이다. 부디 너는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같이 놀아주던 남자도 나를 보고 놀아주던 아이와 손을 놓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가자.”

남자는 단정하게 잘려진 검은 머리에,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쌍꺼풀이 있었으며, 속눈썹이 길었다. 놀란 눈을 할 때는 원래 컸던 눈이 더 커진다. 눈썹은 그의 성격만큼 정갈했다. 아이와 놀다 헝클어진 머리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남자가 날 보며 웃었다. 매번 검정 티셔츠에 검정색 오부바지를 입고 오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말마다 봉사를 오는 남자와 나는 꽤나 말을 많이 했다. 남자는 스물다섯이었다. 나는 남자보다 다섯 살이 어렸지만, 남자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남자는 보육원에서 처음 만난 날, 나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었다. 나는 출구를 찾고 있다고 답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더 이상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보육원을 나서자 창문 밖에서 남자와 나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쉬운지, 매번 우리가 가면 아쉬워 울기도 했다. 창문으로 그림을 그렸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시선에 나는 말없이 마른 침을 삼켰다. 아이는 날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이내 얼굴을 집어넣었다.

*

타닥타닥타닥. 집에 들어서자 컴퓨터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렸다. 더운 열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내가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축축하고 눅눅한 여름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정도면 아직 견딜만했다. 안방에서는 남동생이 이어폰을 끼고서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었다. 컴퓨터 본체에서는 위잉하고 소리가 났다. 온지도 모르고, 항상 뒤통수를 보인 남동생의 모습에 말없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야,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말이 없었다. 더워서 입고 있던 흰 티를 잡고 펄럭거렸다. 조용히 동생이 하고 있던 컴퓨터로 다가섰다.

“적어도 인사는 하고 살자.”

끼고 있던 동생의 이어폰 한쪽을 빼냈다. 그제야 신경질적으로 나를 쳐다보는 동생의 눈빛이 매서웠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어폰 한쪽을 자신에게 달라는 듯 이어폰 줄을 잡아당기는 동생의 행동에 허탈하게 웃음을 내뱉었다. 가셨던 더운 열기가 다시금 훅 끼쳐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말이 없자, 동생은 내가 들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들고 자신의 귀에 꼽았다. 물끄러미 동생을 바라봤다. 세상과, 가족과, 나를 차단한 듯싶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아 뒤를 돌았다. 괘씸한 동생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생의 학비를 대려고 힘들게 일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동생의 뒷모습에서 흐릿하게 나타났다가 지워졌다. 힘들게 학비를 대는데, 동생은 집에 대해 통 관심이 없었다. 다른 세계에서 캐릭터를 생성해 자신인 척, 가지고 노는 일이 전부였다. 동생 나름대로 자신만의 하나의 도피방법일지도 몰랐다. 내 방에 들어가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더 이상 열을 내고 싶지 않아서 방바닥에 누웠다. 그런데도 더운 물을 온몸에 끼얹은 것만 같았다.

*

평일이 되자마자, 주말과는 다른 일상과 마주했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편한 운동복차림으로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는 에어컨이 틀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찌는 더위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고 손님이 있는 테이블의 불판을 차례대로 갈아주었다. 빠듯하게 오전 타임을 끝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같이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따뜻한 된장찌개와 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들고 있던 숟가락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공기로 성에 차지 않았지만 눈치가 보여 한 공기로 만족해야만 했다. 집에서는 제대로 밥을 챙겨먹을 수가 없었다. 평일엔 아침 일찍 일어나 동생의 밥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알바를 하러 나와야했기 때문에 집에서 있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남자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오늘은 어때?

-늘 똑같아요

남자는 나에게 매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기분을 물어보는 건지, 아니면 나의 스케줄을 물어보는 건지 애매모호했지만, 분명 남자의 의도는 나의 스케줄을 물어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봉사활동에서 만난 남자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연락을 주고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남자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연락을 하는 거였지만 말이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곧바로 편의점으로 걸음을 급히 옮겼다. 남자의 문자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편의점은 고깃집보다 훨씬 일하기가 수월했다. 뜨거운 불판 앞에서 불판을 갈지 않아도 되었고, 가장 좋은 점은 그냥 가만히 서서 에어컨 바람을 맞아도 된단 거였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을 티셔츠도 에어컨에 의해 전부 말라가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편의점에서의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시간은 지하철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손을 쓸 수도 없이. 하루가 마무리 되고, 집으로 들어오자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 동생의 뒤통수가 눈에 띄었다. 어김없이 내가 들어온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가만히 뒤에서 노려보고 있어도, 밥을 먹어도 동생은 그저 게임에 푹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떤 곳이기에 저렇게 게임에 빠져있는 걸까. 보육원에서 만난 여자아이의 그림처럼,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걸까? 동생의 학비를 벌려고 하나만 하던 알바를 두 배로 늘렸다. 학비와 보충 교과서, 급식비 등 만만치 않게 드는 비용에 헉 소리가 났다. 나 말고, 동생이라도 대학을 보내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그저 동생이 대학을 갔으면 했다. 동생의 대학을 위해, 나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다음날에도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고깃집에 갔다가 편의점에 가는 일상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정해진 운명의 굴레처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져 휴대폰을 힐끗 바라보았다. 남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인가? 휴대폰 액정에는 모르는 사람의 번호가 떡하니 찍혀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걸까. 특별할 일 없이, 물 흐르듯 하루를 무탈하게 넘기고 싶었다. 나는 편의점 문을 닫고, 그대로 택시를 잡아탔다.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동생의 학교에서 온 전화였다. 동생이 반 아이와 싸웠다는 이야기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 부모님대신 내가 동생의 학교에 도착했다. 하교하는 아이를 붙잡아, 교무실을 물었다.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의 모습이 생소했다.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의 싸움을 담임선생님께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간 동생의 학교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동생의 학교생활이 좋지 못하다는 거였다. 수업시간엔 물론이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불필요하게 여겨 매번 숙면을 취한다는 이야기부터, 오늘 싸운 건 일방적으로 동생이 먼저 반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어색하게 웃던 낯이 금세 굳어버린 나의 모습에 담임선생님은 동생을 잘 타이르라며 연신 부탁했다.

“지금쯤, 상담실에서 앉아 있을 거예요.”

편의점에서 뛰쳐나와 엉망이 된 나의 머리를 정돈하며 조심스럽게 상담실로 향했다. 혼자 있다는 말에 나는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입술이 터졌는지 피가 굳은 채로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던 동생이 나를 보자 욕을 읊조렸다. 여긴 왜 왔어. 앙칼진 동생의 말에 나는 동생을 한 번 응시하다가 말고 시선을 책상으로 돌리고 중얼거렸다.

“왜 싸운 거야?”

나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옆에 있던 빈 의자를 툭툭 건들이다가 이내 발로 차버린다. 우당탕거리는 의자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폭력적인 동생의 모습을 본 나는 적잖이 놀랐다. 티내지 않으려고 무덤덤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작은 손으로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양 손엔 땀이 흥건하게 젖었다. 더운 숨이 동생에게로 뻗어나갔다.

“너 도대체 왜 그래?”

교복와이셔츠의 단추 두 개가 풀린 동생은 자신의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 내렸다. 말없이 동생을 훑었다. 신고 있던 삼선 슬리퍼에 시선이 닿자, 동생은 짜증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다 닳아서 너덜거리는 동생의 슬리퍼를 보자, 울음이 식도를 타고 자꾸만 올라오려고 했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고래가 성이 난 듯, 동생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동안 참았던 모든 응어리들이 뭉치고 뭉쳐 결국엔 터져버리고야 말았다. 동생은 나의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누나는 항상 누나만 생각해.”

그게 무슨......,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생은 상담실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다. 나를 바라보던 동생의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보았다. 폭풍이 한바탕 다녀온 듯 상담실 안은 다시금 고요해졌다. 나만 생각한다니. 나는, 늘 동생을 위했다. 내가 하려던 모든 취미와 학업을 포기하고 알바에 전념했던 이유도 전부 동생의 대학을 위해서였다. 한계에 다른 달뜬 숨을 내뱉었다. 긴장을 했던 모든 신경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거 같아 상담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참았던 울음이 자꾸만 나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마냥 괜찮다고 나를 달래며 달려왔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달려들어 나를 괴롭혔다.

동생과 한바탕 하고 난 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에 서 있게 되었다. 갈 곳이라곤 집이 전부였다. 편의점 문을 마음대로 닫고 나왔으니, 분명 잘릴 것이다. 빠르게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보며 마냥 자동차들이 부러웠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달릴 수 있어서. 횡단보도 앞에 가만히 서 있던 나는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어때?

어김없이 날라 온 남자의 문자 한통에 나는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매번 스케줄을 묻는 말인 줄로만 알았던 대사가 지금은 나의 기분을 묻고 있는 거 같았다. 그의 문자를 받고나서 깨달았다.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껏 끊임없이 하루를 버텨온 거라고. 내가 입고 있는 신발과 옷이 눈에 들어왔다. 혹여 닳을까 아껴서 신고 있는 낡은 운동화와 매번 입던 흰 티를 보았다. 나는 왜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덩달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뒤를 돌았다. 괜찮다며 다짐했던 삶이 뒤바뀐 건 남자의 문자 메시지 한 통이었다. 그 문자 메시지 하나에 나의 다짐이 모래성처럼 쓰러졌다.

 

시내에 혼자 와보았다. 오래간만이라서 하마터면 시내로 오는 길도 잊을 뻔하였다. 흰 티 말고, 예쁜 무늬가 있는 다른 티셔츠 여러 장을 구매했다. 신고 있는 낡은 신발과는 대조되는 검은색 새 운동화를 하나 구매했다. 보육원에 갈 때마다 창백한 얼굴을 꾸며보려 화장품도 몇 개 샀다. 체크카드를 내밀며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하여도 되는 걸까. 떨리는 손으로 계산한 카드를 돌려받았다. 성인이 되고나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머리를 관리받기 위해 미용실에 들어갔다. 사람의 인사가 낯설었다. 나를 향해 베푸는 친절이 이상했다. 나는 여태껏 길렀던 긴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잘라버렸다.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마음에서 확 김에 저지른 일이었다. 이제 동생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단 하루만 살아보고 싶었다.

꽤 비싸다는 음식점에 들렀다. 보육원에 있던 여자아이가 불현 듯 떠올랐다. 아이의 그림 식탁에 그려져 있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고기부터 샐러드, 음료수까지. 모조리 포장을 부탁했다. 주말에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음식들을 전부 가져갈 심산이었다.

저녁이 되어서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려고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옛날부터 말썽이던 이곳 가로등은 끔뻑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할 일을 잃은 듯 불이 꺼졌다. 수명을 다한 건지 가로등은 더 이상 환하게 거리를 밝혀주지 않았다.

*

주말이 되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주말이 되기 전까지, 하루에 한 번씩, 남자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었지만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주말에 볼 사람이었다. 보육원에 가기위해 새로 장만한 옷을 차려입었다. 제대로 발라보지 못한 로션과 화장품도 발라보았다. 동생과는 여전히 대치 중이었다. 서로 말을 전혀 섞지 않았다. 언젠가 사과하고 풀릴 일이었지만, 지금은 뻔뻔스럽게 사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서 고기와 샐러드, 그리고 음료수를 들고 보육원으로 길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현관문 앞에 새로 장만한 동생의 슬리퍼를 두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원 안에 있는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저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 곳에는 남자도 함께였다. 남자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가 보낸 문자 메시지 이후로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양손에 들린 음식들을 남자가 함께 들어주었다. 가져온 음식들을 보육원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중에는 일곱 살 여자아이, 가을이도 포함되었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식탁에 있는 많은 양의 음식들을 보며 자신의 그림이 밖으로 나온 거 같다고 나에게 신이 나서 조잘거렸다. 오늘따라 아이의 조잘거림이 듣기 좋았다. 여자 아이는 짧게 자른 나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저번에 그리지 못한 그림을 그려 달라 말했다. 같이 마주보고 앉아있던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가 그려보라는 듯 나에게 눈짓을 했다. 색연필 하나와 스케치북 하나를 쥐어주면서.

옆에서 스케치북 하나를 더 들고 와서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여자아이를 한 번 쳐다봤다. 아이는 지난번처럼 작은 손을 스케치북에 올려놓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엔 나의 무슨 선물이 되어 주려나. 손에 들고 있던 색연필을 연신 돌리다가 멈추었다. 아, 하나 있었다. 당장 하고 싶은 일. 어색하게 색연필을 들어 선을 스케치북에 하나 긋곤, 그에 맞춰 선을 따라 그려냈다. 서툰 그림이 스케치북에 하나 둘 심어졌다.

언니네 집이야? 아이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물었다. 검정색 선을 엮고 엮어서 만들어낸 작고 아담한 집 하나를 그려낸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여자아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옅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어느덧 보육원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누구보다도 공정한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아이와 눈인사를 했다. 남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말문을 열었다.

“집에 가자.”

매주 듣던 말인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말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으로 가자,

다시 돌아가자.

 

짙고 고요한 남자의 눈을 마주했다. 집으로 가면 아직 화해하지 못한 동생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잘려 다시 알바를 구해야하는데.

그곳으로 돌아가면 다시 잘 할 수 있을까요? 끝내 남자에게 내뱉지 못한 말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헤집어놓았다.

*

느린 보폭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버스 창가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던 나는 차도로 자전거를 타며 달리는 아저씨를 우연히 보았다. 페달을 빠르게 밟으며 가던 아저씨는 좀처럼 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사람처럼 차도를 빠르게 가로지르던 아저씨는 페달을 밟는 속도를 더 빨리했다. 내가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멈추었을 때도 아저씨는 달렸다. 검정 반바지를 입고, 검은 색 외투를 입은 아저씨는 어딜 급하게 가고 있었던 걸까. 나는 아저씨를 보며 문득, 나는 저렇게 쉬지 않고 달려본 적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순간순간마다 자신의 추억을 되짚어보듯, 빠르게 달려가던 아저씨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된 듯 잊혀 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어디에선가 나는 눅눅한 풀 냄새. 귀뚜라미 소리. 마지못해 푸른 녹슨 대문 앞에 섰다. 문을 열어젖히자 들리는 금속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동생은 언제나 나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안방에 들어서자 보이는 동생의 모습에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어두컴컴한 방안에 누웠다. 아까 전 보았던 아저씨가 자전거 페달을 밟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언젠가 아저씨처럼 간절한 무언가가 생길 수 있을까. 보육원의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 가을이처럼. 다른 이의 꿈을 위해서 아닌, 나의 다른 무언가가 가득 찰 수 있을 소중한 시간이 나타날까. 지금은 길게만 느껴지는 밤이 언젠가 어둡지만은 않은 과거라고 말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상처 입은 기억들을 나의 밤에 새겨 넣을 수 있다고. 지금의 계절은 시린 겨울일 뿐이라고. 곧 봄이 온다고.

이른 아침, 창가 틈새로 비치는 해가 눈이 부셨다.

-오늘은 어때?

내가 깨어난 시간에 맞춰 문자 한 통이 나에게 도착했다. 아, 나는 나의 계절이 느리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분명 어둡지 않을 거다.

 

<수상 소감>

 

제 문장에는 감정이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상을 받는 이유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흔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걸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거 같아요. 제 문장엔 감정이 없지만, 독자들은 문장 하나에 들어있는 감정들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문학이라는 길을 선택한 제 결정을 따르고 지켜봐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언제나 제 글에 대한 장점들을 이야기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글에 대해 발전이 없는 아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했던 거 같아요. 다른 아이들은 학업에 매진하는데, 글을 쓰는 게 사실은 힘들었거든요. 내가 선택한 길에 나는 지금 후회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많은 고민을 했는데, 이번에 수상을 하고나니 그런 고민들이 조금 해결된 거 같아요. 엉뚱한 길로 빠진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이 제겐 항상 필요했거든요.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대구대학교 언론출판문화원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겸손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제 계절을 봄으로 바꿔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대구대학교 언론출판문화원  shjh00@dae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