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예감

황지원(고양예고 1학년)

 

교실은 마치 파도처럼, 불규칙하고 모호하게 술렁였다.

쟤 봐봐. 짝은 검지를 뻗어 쓰레기통 쪽을 가리켰다. 나는 짝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손가락 끝에 매달린 ‘쟤’는 기도하고 있었다. 작은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침마다 십자가를 만지작거리는 그 저 애에게 기도는 습관처럼 머물러 있는 듯했고, 학기가 시작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저 애가 뭐라고 기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반 아이들 역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라이 새끼. 짝은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 웃었다. 나는 그 애를 십자가라고 불렀다.

교실은 좁은 편이었으므로 삼 분단의 맨 뒷자리는 쓰레기통 앞에 위치해 있어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썩은 달걀 냄새와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 냄새가 나는 그 자리를 꺼려했고, 대신 십자가가 그 자리를 매웠다. 어떤 혼합물이든 아무리 섞어도 가라앉는 찌꺼기가 있기 마련이었는데 십자가는 그 찌꺼기에 해당됐다. 볼링핀처럼 교실에서 튕겨져 나온 십자가는 입을 꾹 닫고 먼지처럼 지냈다. 아이들이 십자가에게 친구처럼 굴었을 때도 있었으나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십자가는 교실 바닥에 서서히 잠식해갔다.

가방을 열었다. 마음대로 구겨진 필통 옆에는 엄마의 신이 웃고 있었다. 그를 촌스럽게 광고하고 있는 전단지에서 느끼한 냄새가 났다. 사이비 전단지가 가방에 들어 있던 것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매번 같은 양의 분노가 온도계처럼 차올랐다. 토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엄마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대체로 사이비라 불리는 종교가 그러하듯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수채화처럼 번져갔다. 작년. 친구의 권유로 그 ‘아지트’라 불리는 곳에 기웃거리다 사람이 이렇게 상해버린 것이었다. 완전한 엄마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작년의 우리 집은 거의 투우장이나 다름없었다. 아빠와 나의 신경전은 이미 삼 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엄마와 아빠의 신경전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던 참이었다. 결정적으로는 셋 다 넓은 운동장에 던져진 채 사춘기마냥 방황하고 있던 시기였다. 드물었지만 셋이 식탁에 모여 같이 밥을 먹는 시간도 이후로 더 이상 내지 않았다. 엄마는 하루 종일 잠만 잤고, 아빠는 운동에 미쳐 있었으며 나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방 안에서 썩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거실의 용도가 모호해졌다.

엄마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아빠가 날마다 골프를 치고, 내가 연예인 사진에 침을 질질 흘렸던 것처럼. 그 노인네를 숭배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엄마는 헌금봉투를 가져와 방안에 쌓아두기도 했고 성경책을 사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나나 아빠와의 상의는 없었다. 방을 지나쳐가다 우연히 본 것뿐이었다.

사이비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집안은 무교였으므로 엄마가 산 성경은 잠깐 읽다 선반 구석에 버려 둘 쓰레기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엄마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건 금요일 밤이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자 거실에는 의자나 액자가 쓰러져 있었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소리 질러댔다. 늘 그랬다. 나는 링 안에서 권투를 하는 선수를 심드렁하게 지켜보는 감독의 눈을 했다. 싸움은 매번 격렬했지만 지루했다. 방으로 들어가도 소리는 어느 틈이든 간에 애벌레처럼 기어 들어올 것이 뻔했으므로 대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최신가요였으나 전혀 신나지 않았다. ‘

간간히 들려오는 둘의 소리는 미세하게 내 귀를 후벼 팠다. 돈, 왜 몰래……, 헌금, 무슨 소리……, 퍼즐처럼 산산이 부서진 말의 조각들은 붙이는 게 불가능해 보였지만 엄마가 아빠의 돈을 몰래 가져갔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노래를 더 크게 틀었다. 일정한 높이까지 올라가자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말소리도 마음대로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자가를 벽지 취급 하면서 온 신경을 그녀에게로 쏟는 반 아이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재밌잖아. 짝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어떻게 웃긴지, 짝의 시선이 떨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녀의 말은 시청률이 저조한 개그 프로그램처럼 공감이 안 됐다. 십자가는 이제 막 기도를 마친 참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첫 만남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반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 사이에서는 으레 서로의 첫 만남을 끼워 맞추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나 십자가에게만은 달랐다. 십자가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처음 맞닥뜨렸다. 그것은 작년 일이었으며 나는 그해 무리 아이들과 멀리 떨어진 채였다. 실상 나는 그 무리에서 아무 역할도 맡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 애들은 나를 미련 없이 떠나보냈고,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생쥐처럼 바싹 말라갔다. 미성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인간관계임이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굳이 무리에 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반 아이들은 어쨌든 나를 제외한 채로 도넛처럼 둥글게 뭉쳤고, 고개를 들어보니 덩그러니 놓인 것은 나와 십자가 둘 뿐이었다.

처음 이 주는 괜찮았다. 아이들은 의심 없이 십자가에게 다가갔다. 십자가의 목에 주렁주렁 매달린 목걸이를 보곤 주춤거리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교실을 두 분류로 나누자면 십자가는 조용한 편에 속했다. 무리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걸러졌으므로 십자가는 자기와 비슷한 세 명의 다른 아이들과 가깝게 지냈다. 학기가 시작한 한 달간은 십자가의 뒷자리에 앉았다. 그 애는 나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십자가가 입을 다물게 된 것은 자리를 바꾸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개미 떼처럼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의 자리로 몰려들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자리일 때도 있었고, 혹 다른 아이들의 자리일 때도 있었다. 구레나룻까지 아이라인을 삐뚜름하게 뺀 아이들만큼 낯 뜨거운 단어들을 섞어가며 큰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으나 그 애들이 십자가의 자리에 몰려들 때면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나는 뒤에서 고개를 엎드려 자는 시늉만 했을 뿐 잠이 든 적은 거의 없었다. 그 애들은 만화나 영화, 게임 이야기를 주로 했다. 십자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주제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애들은 말수가 적어 공백이 자주 흘렀는데 대뜸 십자가가 말을 꺼냈다. 너네 교회 안 갈래? 공백은 다시 이어졌고 내가 느끼기엔, 아이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듯했다. 누군가가 교회? 하고 말을 꺼내자마자 쉬는 시간은 동강이 났다.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갔으나 십자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십자가가 십자가의 목에서 대롱거렸다.

나는 급식 대신 매점에서 산 빵이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웠지만 이후로 십자가와 그 애들이 몇 번 급식실로 같이 들락거렸다가 십자가를 제외한 이내 셋이서만 지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점심시간이 되면 십자가는 반 아이들 틈에 녹아 교실 밖을 나갔지만 급식실로 가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교실을 나갈 때도 그 애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나갔다. 이따금씩 십자가는 도시락을 꺼내는 나를 문 앞에서 슬쩍 쳐다보곤 나가기도 했다. 불쾌했다.

 

방안은 엉망이었다. 서랍의 물건들은 털실처럼 뒤엉켜 있었고, 옷장도 마찬가지였다. 책들은 바닥으로 반쯤 무너져 있었다. 청소를 자주 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태풍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는 방은 낯설었다. 도둑이 든 것은 아니었다. 방에 비해 거실은 깨끗했으며 아침에 본 것과 그대로였다. 나는 열린 첫 번째 서랍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돈을 묶어둔 봉투가 사라져 있었다. 서랍에는 아무런 자물쇠도 걸려 있지 않았으므로 무엇이든 가져가는 것은 간단할 것이었다. 그건 엄마를 닮은 성격이었다. 허기는 금세 상한 복숭아처럼 물러졌다. 엄마의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엄마는 더 이상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는 것마저도 잠을 자려고 들어온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등교하기 전 다시 집을 나갔다. 아빠 역시 엄마가 개처럼 집안으로 기어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사실을 식탁 밑에 버려두기로 했다. 그날 아침은 미역국이었다. 고기가 기름과 함께 둥둥 떠올랐고 누구의 생일도 아니었다.

아빠에겐 말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힘들었고, 말을 꺼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탈했다. 이십 만원 가까이 모인 돈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가 치밀었으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후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티내지 않았다. 엄마는 그 돈으로 헌금을 할 것이었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명의 고개가 나를 향하자 갑자기 대본이라도 짠 듯 아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나를 향해 돌려졌다. 선생님의 눈빛은 분명 나를 지나쳐갔으나 나에게 아무런 눈짓도 보내지 않았다. 반장 하고 싶은 사람 없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난 쟤가 잘할 것 같은데. 혼잣말인지 아닌지 모를 목소리가 정적인 교실을 메웠다. 어떤 애는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다물자마자 그녀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감각한 표정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사람 없는 거니?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낮은 한숨이 소금기처럼 베어있었다. 흥미가 떨어진 몇몇을 제외한 아이들의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고, 아프지 않았으나 아픈 기분이 들었다. 제가 할게요. 나는 팔목을 들었다. 겨드랑이가 땀에 젖어 축축했다. 담임이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개처럼 치대는 아이들을 좋아했으므로 당연한 결과였다. 누구도 원망스럽지는 않았으나 조금 억울했다. 그럼 새로운 반장에게 박수를 쳐주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곳을 보며 두 손을 두드렸다. 십자가도 박수를 쳤는지 알지 못했다. 복도에서는 반장이 되면 반에 피자를 사야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아이들이 교실에 한데 모여 내 목구멍에 피자를 억지로 우겨넣는 꿈을 꿨다.

 

나 너네 엄마 봤어.

십자가가 속삭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실내화를 던지거나 휴대폰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수업시간이었으나 그들은 교탁 앞에 선 선생님을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은 수업을 이어나갔으나 듣는 이는 거의 없었다. coma, 혼수상태. 중요하니까 밑줄 쳐 놔. 선생님의 목소리가 간신히 들릴 정도였으나 아무도 서로를 말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십자가는 내 자리로 다가왔는데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함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불쾌함이 썩은 내처럼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A역 근처에서 전단지 나눠주고 계시더라. 그…… 십자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카디건 주머니에서 꾸깃한 종이를 꺼냈다. 이거. 엄마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내 가방에 넣어놓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십자가가 종이를 내려놓자마자 책상 서랍이 이미 교과서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쑤셔 넣었다. 교실의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 있어 하지 않았지만 수치심이 낳은 행동이었다. 전단지는 오래된 가정통신문처럼 세 달 뒤에나 발견될 것이었다. 십자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한 번도 십자가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으나 그녀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서 있는 십자가를 향해 미간을 찡그렸다. 십자가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들은 대체로 친구의 기에 눌리는 편이었다. 외모가 사나운 것은 아니었으나 키가 컸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교실의 몇몇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해서 친구는 그 애들과도 곧잘 어울리기도 했다. 십자가는 자리로 돌아갔다. 냄새 나. 친구가 비린내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십자가의 목걸이를 보고 한 말이었다. 쟤가 뭐래? 몰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재미없어. 나는 미묘한 표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치가 빨랐고, 눈치가 빠르다고 내 사정을 알아챌 수는 없겠지만 내 표정을 살피는 친구가 성가셨다.

나 남자친구랑 잤어. 대낮의 교실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나뒹굴고 실내화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교실을 배경으로 웃는 친구의 모습은 흡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납작한 당황스러움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런 이야기에 흥미 있는 것도 아니었고, 친구와는 학기 초부터 적당한 거리만 유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대개 그렇듯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은 가장 친한 친구한테만 하는 짓이었다. 그러나 표정에 아무런 칠도 하지 않으면서 인위적인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뭐든지 처음 해본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세련돼 보인다고. 엄마가 그리 말했던 기억이 났다. 엄마는 자존심과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시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었다. 그래? 피임은 했니? 친구는 내 말을 끝으로 웃기만을 반복했다. 지루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지루한 것이었고. 종소리가 실처럼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소란 속에서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던 일을 멈추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선생님은 순식간에 비워진 교실을 바라보며 책을 챙기고 나갔다. 칠판도 제대로 닦이지 않은 채였고 선생님의 표정은 완전히 건조된 오징어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주름이 어제보다 더 깊게 패인 것 같았으나 착각일지도 몰랐다.

 

엄마가 교실에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서로 상의한 적도 없었으며 내가 반장이 됐다고 했을 때 좋아하지도 않았다. 피자를 사야한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때 엄마는 성경과 노트를 펼치고 있었고, 그 말은 내 단어를 듣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병은 이맘때 가장 심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독처럼 퍼진 건 사실이었으나 이맘때쯤에는 나까지 물들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겁을 했다. 대부분의 싸움이 그런 주제였다. 나는 피자를 언제까지 얼마나 사야하며 몇 시 까지 배달이 돼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엄마는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새우처럼 등이 말려 있었다. 꼭 아빠가 맞춤법을 틀릴 때와 같은. 연민이 느껴졌으나 그것은 채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졌다. 후로 피자를 시키기 전날 까지 끊임없이 엄마에게 귀띔을 했고 엄마는 내 주문을 제대로 들은 것 같았지만 엄마의 몸뚱아리도 같이 배달해달라는 이야기는 꺼낸 적이 없었다. 수치심에 죽을 것도 같았다. 볼이 익은 것이 느껴져 고개를 더욱 숙였다. 반장이 됐다고 교실에 찾아오는 부모는 여태껏 아무도 없었고, 피자만 주문해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엄마는 꼭 1900년대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주위를 둘러보진 않았으나 아이들은 모두 비웃음과 의아함이 섞인 눈을 했을 것이었다. 담임도 덩달아 당황한 듯했다. 엄마는 배달부가 피자를 옮기는 동안 교탁 앞에 섰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을 벌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피자를 향해 있었으나 교탁 앞에 선 엄마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애들아, 너희 혹시 교회 다니니? 다니는 사람 손 좀 들어봐. 교실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엄마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토막 난 단어 몇 조각을 주워들은 아이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교실은 피자 냄새만 가득했다. 뭐래? 내 앞에 앉은 아이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몰라. 나는 곧 까무러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쾌하게 싸한 기운이 목부터 나를 덮쳐왔다. 어질어질했다. 엄마는 말을 이어나갔다. 교회 안다니는 애들 있으면 이것 좀 봐. 같이 천국가야 되지 않겠니. 그러면서 앞 줄 아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었다. 천국 갑시다,라는 굵은 글씨와 노인의 사진이 촌스럽게 프린팅 되어 있는 전단지였다. 아이들 중 누구 하나가 웃음 터뜨렸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교실은 파도처럼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되시는데……. 남의 일처럼 물끄러미 구경만 하던 담임은 엄마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건 중요한 일이예요. 이런 게 바로 참된 교육인데, 학교에서는 교육이랍시고 이상한 걸 가르치니까 나라 이 꼴로 돌아가는 거야. 담임은 손가락질을 하는 엄마를 저지하며 교실 밖으로 밀어냈다. 담임의 힘에 밀리는 와중에도 엄마는 천국 타령을 했다. 나라가 이러니까 망하는 거야, 이러니까! 너희들은 다 마귀 들린 거야……. 교실이 닫혔다.

담임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행동했다. 먹어라. 딱히 나를 위한 행동 같지는 않아 보였고. 그는 단지 귀찮았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벌 떼처럼 몰려들어 피자 박스를 열었다. 피자는 살짝 식어 치즈가 굳어 있었다. 엄마의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배달되어 오는 도중에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 역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으나 떠드는 소리가 나에게는 험담과 욕설로 들려왔다. 앞자리 여자애들이 저들끼리 나를 슬쩍 보며 수근거렸다. 아까, 너네 엄마 맞니? 여자애들 중 수장격인 한 명이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이쪽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맞는데. 그렇구나. 그 애는 다시 저의 무리로 돌아가 까르르 거리기 시작했다. 수치심은 양파였다. 깊게 까면 깔수록 더 매워졌다. 너네 엄마 멋지더라! 누군가 그리 외쳤고 주변은 풍선처럼 웃음이 터졌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의 방에서 냄새가 진동했다. 시큼한 냄새와 땀 냄새가 섞인 탁한 공기가 방안을 메웠다. 엄마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냄새가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으나 외도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사실 엄마의 방 안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눈치를 챘다. 그 냄새는 엄마가 매번 내 가방 속에 넣어 두는 전단지의 냄새였다.

 

나 같이 가주면 안 돼? 친구의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휘어졌다. 산부인과에 같이 가달라고. 친구는 아침부터 내게 그렇게 부탁했다. 부탁은 관계가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정도 높게 쌓아올렸을 쯤에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우리의 관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정도나 깊어졌다니. 불쾌했다. 쌍방이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는 맺으나 마나였으나 친구는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분노와 약간의 연민을 느꼈다.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다. 임신이었다. 산부인과 한가운데에서 애처럼 울음을 터뜨렸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무섭고 이상했다. 우리는 일부러 외진 병원을 선택했으나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결국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한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진단을 받으러 진료실로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9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으며 표정은 없었다. 엄마와 닮은 얼굴이었고 나는 그 여자가 진료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엄마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차피 모두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었으므로 나도 그 생각에 나를 녹였다. 문득 카페인을 마셨을 때와 같은, 약간의 들뜸과 불안감으로 몸이 덜덜 떨려오는 기분을 느꼈다. 친구 때문이었는지 그 여자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병원은 이상할 정도로 울렁거렸다.

 

<수상 소감>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언젠가는 꼭 쓰리라 다짐했었고, 최선을 다해 토해낸 언어들이 소설 속 십자가를, 엄마를, ‘나’를 만들어냈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앓았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열일곱, 매순간이 위태롭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점점 미성년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게 두렵지만 무척이나 가슴 뛰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열일곱의 마지막 장을 근사하게 써내려 갈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많이 부족한 실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제 글을 뽑아 주신 것은 앞으로 더 발전된, 좋은 작품을 창작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대학교 언론출판문화원  shjh00@dae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