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기타

유재원(영남고 3학년)

 

 오른쪽 가슴에 이름표가 붙은 감홍 빛 작업복을 입고 있는 그의 앞에는 지금 기타 하나가 처연히 놓여있다. 기타를 내려다보는 최 팀장의 얼굴에는 알 수없는 그늘이 어둡게 드리워져있다. 그는 울다 지친 아이를 달래듯 아주 조심스럽게 기타를 쓰러 내린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기타의 몸통에서는 옅은 울림이 흐느낌처럼 들려온다. 이젠 제 주인이 영영 찾아올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는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손끝을 따라 움직이던 눈동자가 기타 몸통 언저리에 머문다. 그는 눈에 들어온 작게 빗겨 쓴 글귀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노래하지 않는 새는 죽은 것이다.]

그는 글자 위를 어루만지듯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을 문지르며 상념에 잠긴다. 그의 표정엔 담장에 뒤엉킨 마른 넝쿨처럼 복잡한 감정들이 그림자를 드리워 그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한주 전, 그가 팀장으로 있는 관할 지역 내에서 가스폭발로 인한 건물 붕괴사고가 있었다. 우리는 사고현장에 긴급 투입되었고 관할 소방서와 경찰서, 인근 종합 병원이 연계가 되어 구청 내에 임시 대책 본부가 세워졌다.
인명구조 팀의 책임자로써 브리핑에 참석했었던 그는 지금도 그 때의 상황이 떠올라 양쪽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로 사레를 저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후, 비상 인력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을 사고 현장으로 먼저 출동시킨 최 팀장이 구청 대책 본부에 들어섰을 때, 그 곳의 상황도 수습이 시급한 상태였다. 사고 경위와 상황에 대한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누가 책임 질것인가에 대한 추궁만이 오가고 있었다. 이 한심한 상황을 보고 있느니 직접 사고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여러 사람의 소리가 뒤섞여 오가는 중에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한 느릿하고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뭐, 이렇게 유난 떨 거 있습니까?
어차피 재개발계획 우선지역 내에 있는 건물에다 보상 문제도 다 끝난 걸로 아는데..."
"거, 부숴 트릴 용역비 줄였다 생각하면 그리 예민하게 반응할 일도 아닐 터..."
주위는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말이 들려 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에는 의자 팔걸이에 한쪽 팔을 걸치고 비스듬히 기댄 채 탁자 위로 뻗은 다른 한 손에 쥔 볼펜을 톡톡 쳐대는 거만스러운 모습의 중년 남자가 들어 왔다. 그 남자는 좌중을 한번 흘깃 좌우로 훑어보고는 주위의 반응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지, 꼭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지. 거 살던 사람들도 대충 다 이주한 상태 더만...뭐, 여론이 겁나서? 어차피 문제 제기할 만큼 내로라하는 사람도 없지 않나?"
"이 시점에서는 역으로 언론을 백분 활용해서 언론플레이를 잘해야지, 돈이 되게. 나 참! 사람들이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나?"
한참동안 정적이 흐르고 최 팀장을 포함한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 그 뻔뻔한 양반의 작태를 그저 멍하니 보고 서 있을 뿐 이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가 바쁜 걸음으로 구청 건물을 나서자 뒤따라 나오던 관할서의 윤 경위가 같이 가자며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몸을 돌려 윤 경위를 맞이한 최 팀장이 빠른 걸음으로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야~~! 그 양반 진짜 답 없네! 답 없어! 허허."
갑자기 헛웃음을 지으며 윤 경위가 입을 열자 최 팀장은 씩 입고리만 올리고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도 않았다.
"근데, 최 팀장 자네는 그 사람 누군지 아나?"
"몰라!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윤 경위의 물음에 별 관심 없이 대답한 그였지만 그리 눈에 익지는 않은 인물이라 왜 그 자리에 있었으며 왜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냈는지 궁금하기는 했었다. 그 때 윤 경위가 최 팀장의 머릿속이라도 들여다 본 것처럼 이죽이며 말을 이었다.
"시에서 나온 의원이래. 이게 어쨌든 시 차원의 도시개발계획하고 관계가 있잖아. 그래서 시에서도 사람이 나온 모양이야. 에이~! 어쨌거나 일이 좀 복잡하게 됐어."
툭 내뱉듯 던진 말을 마지막으로, 손을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네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윤 경위가 자신의 차에 올랐다. 최 팀장도 손을 들어 인사에 답하고 조금 전, 윤 경위가 건네 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사고현장 상황에 대한 브리핑 자료였다.
'쳇! 그래도 자네가 나한텐 제일 실속 있는 인사로세.'
최 팀장은 고마운 마음에 작은 호선을 입가에 그리고는 빠르게 내용을 스캔했다.

 

가스 폭발로 붕괴된 건물은 원창동 해신 빌라. 30년이 넘어 군데군데 갈라진 벽을 거미줄처럼 땜질해 놓은 5층짜리 다세대 건물. 그뿐인가? 원래부터 약한 지반 위에 지어진 터라 장마철이면 늘 집중관리를 해오던 곳이었다. 사실 최 팀장 자신도 이곳이 재개발지역에 포함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앓던 이가 빠진 듯 내심 얼마나 후련했던가! 시에서 골칫거리로 여기던 낙후지역의 개발 계획을 세우고 보상과 이주 등의 문제에 대한 오랜 협상을 얼마 전 끝냈다는 것은 그 역시도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그런데, 설마 사고가 일어날 줄이야 그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신문과 TV에서는 모두 노후 된 가스관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너무도 방만했었다고 자책하고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니, 분명 생존자가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저..."
"아, 잠깐만 더 들어보시고...여, 여보세..."
멀찍이서 바쁘게 움직이는 굴착기와 포크레인의 진동이 심하다. 그의 발밑으로 와 닿는 진동은 곧 온몸으로 퍼져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후 그는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 미간에 굵게 주름을 잡고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를 어쩐다? 일이 정말 복잡하게 돼버렸군"
이곳 건물 붕괴 사고의 수색작업에 투입되고 벌써 한주가 다 돼가고 있었다. 사실, 작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흔이 넘은 여성으로 추측되는 시신을 발견한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배관 노후에 의한 가스 누출이 아닌 고의 누출에 의한 폭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 측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경찰 측에 일임하라는 지시가 상부로부터 내려왔었고 그 지시사항을 무시한 채 임의로 수색 작업을 계속 진행하려 했던 그였다. 결국 오늘은 그의 해고까지 거론되고야 말았다. 그렇다. 누가 보아도 이런 삼복더위에 전체 지휘 체계도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하려는 그를 용납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그의 미련함을 탓할 지라도.... 하지만 최 팀장을 아직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 소리. 순간순간 그의 귀에 흐느끼듯 들려왔던 선율. 그러나 한 순간 연기처럼 아득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분명 또 다른 생존자가 살고 싶어 모질음) 쓰는 것 이었으리라.’

최 팀장은 확신했고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자 했다. 어제부터는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지만 아직 살아있으리라 믿어보는 그였다. 그러나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도 오늘은 그 줄을 놓아야 할 때라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포효하듯 열기를 뿜어내는 오후, 사고 현장은 마치 가시 돋친 선인장조차 볼 수 없는 삭막한 사막과 같았다. 그저 다른 것이라고는 모래가 있을 자리를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와 널브러진 철근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다를 바 없었다. 어딘지 모를 곳에 누군가가 묻혀 있을 수 도 있다는 것조차 사막과 닮아있었다. 그를 책망하는 듯 쏘아대는 태양의 따가운 시선을 오롯이 받으며 그는 작업이 한창인 현장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그의 입에서는 연거푸 한숨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한 낮 땡볕으로 오를 대로 오른 지열은 대원들의 옷을 땀으로 적시고 그들의 움직임을 무겁게 눌렀다.

“에이! 찾는 거는 안 나오고 땀하고 욕만 나오네. 젠장!”

대원 중 제일 고참)인 김 주임이 땅으로 뚝뚝 떨어지는 얼굴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투덜거렸다. 한편에는 최 팀장의 눈을 피해 그늘에 널브러져 있는 대원도 보인다. 삽질하는 대원들 역시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그도 이미 파악한지 오래였다.

원래라면 용납할 수 없는 최 팀장이었지만, 이 정신 나간 더위에 안 해도 될 일을 사서해야하는 대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모르는 채 넘어가 주리라 생각했다.

 

손목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2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대원들을 불러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본부에서 지시가 또 한 번 내려졌다. 내용은 똑같다. 사고의 진상이 파악될 때 까지 경찰서 수사과에 넘기고 이쯤에서 철거하라는 지시 그대로다. 근데, 내가 왜 너희들을 불렀느냐? 그건, 지금까지완 달리 나도 이젠 그 지시에 따를 것이란 걸 말하기 위해서다. 오늘 오후 6시를 기해 모든 작업을 종료한다."
“네? 이때까지 잘 버텨왔는데...음.. 조금 아쉬운데요.”

“팀장님이 분명히 들으셨다면서요? 그 소리.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만두셔도? 저희는 뭐! 딱히 상관없지만..."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오고 잠시 술렁이는 듯 했지만, 내심 좋은지 누구도 크게 반박하려 들지는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보기에 티가 날 정도로 좋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최 팀장이 결연히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이 있다. 남은 몇 시간 동안 너희는 최선을 다해서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야 한다. 이번에 찾지 못한다면, 차 후 니들이 겪게 될 일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그게 기대된다면 느긋해도 좋아. 자, 이제 알아들었으면 가서 일들 해"

이상하다. 그의 말에 대원들은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껏 해 온 일이 물거품이 된다고 할 때는 가만히 있던 한 녀석이 발끈하며 반박해 왔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상, 이때까지도 본부의 지시를 어기고 팀장님 때문에 개고생 한건데, 실제로 그게 있는지 확실치도 않은 거고... 정말! 이런 말까진 하기 싫었는데, 팀장님이 환청을 들었다던가, 으음, 다른 소리와 혼동을 했다던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아, 어쨌든 의리상으로라도 팀장님, 그러시면 안 되는...건...데...”

처음에는 호기롭게 반론을 제기하던 녀석이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버벅대나 싶더니, 끝내는 주눅이 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입 다물고 있는 게 본전이란 걸 늦게나마 눈치 챈 모양이었다. 반격할 때를 모르는 최 팀장이 아니었다. 이 때다 하고 틈을 간파한 그가 빠르게 몰아쳤다.

“그래, 혹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때까지 해온 것에 대한 끝은 봐야 할 것 아니냐? 넌 화장실 가서 뒤도 덜 닦고 나온 사람처럼 그렇게 찝찝하게 끝내자는 거야?”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뭐해? 내 말 아직도 못 알아들어? 미적거리지 말고 각자, 위치로 흩어져”
대원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놀리기 시작했다. 비록 협박에 가까운 명령이었지만, 남은 힘을 쥐어짜서 최선의 투지로 마지막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최 팀장의 채찍이 먹힌 것이다. 그 역시 무리한 일을 대원들에게 요구했음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설령 바라는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다만, 최선을 다해보지 않고서는 분명 후회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최선을 다 할 명분을 부여한 것뿐이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현장에는 서로간의 무전 교신음과 이리 저리 나뒹구는 잔해들의 소리만이 지루한 시간을 밀어내고 있었다. 대충 짐작해봤을 때 예정한 6시가 다 된 듯 했다. 여름이라 낮이 길어서인지 해는 여전히 높이 떠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벌겋게 익은 양 볼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한 낮의 떠죽을 것 같은 더위는 한풀 꺾인 것 같다. 결국 최 팀장이 헛것을 들은 것으로 종결되는 분위기였다. 이미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딱 한명, 최 팀장 자신만 빼고. 그 때였다. 정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로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팀장님. 여기 사람 손이... 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원 한명이 흥분에 찬, 그러나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말이야? 자! 모두 저기로. 빨리, 빨리!"

최 팀장은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저도 그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한 대원이 야구공 크기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최 팀장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그 작은 구멍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럴 수가!’

사실이었다. 손상은 좀 되었지만, 그것은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그 작은 구멍으로는 한 쪽 손등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더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상황에 맞는 대책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기계로 퍼내면, 혹시나 2차 붕괴가 일어날 수 있기에, 먼저 건물 잔해들을 하나 둘 씩 손으로 들어 옮기기로 했다. 다행히 커다란 파편들이 없어 대부분 대원 두세 명이 들어 나를 수는 있었다. 콘크리트 파편 몇 덩어리를 들어내니 사이에 성인 남성의 머리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만한 공간이 열렸다. 손전등으로 비춰보았다. 뿌연 먼지를 가로질러 작게 웅크린 모습이 보였다. 앙상하게 뻗어있는 팔에 마른 가지 같은 손가락이 제가 받은 빛을 힘겹게 반사해 내고 있었다. 신원미상의 인체는 생각보다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직 숨이 붙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몰려왔다. 희망적인 생각에 그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자, 빨리 빨리, 위에 장애물부터 걷어내자고!"
"팀장님! 여긴 철근이 깊게 박혀 있어서 그냥은 힘들겠는데요!"
"그럼, 절단기 가져와"
그는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건물의 잔해를 꼬박 하루 넘게 파내고 발견한 곳이라 제법 깊숙이 내려앉은 이곳은 어린 아이 하나 다리 뻗고 눕기 어려운 숨 막히게 좁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내부공간은 철근 조각들이 기둥을 세워 버티는 바람에 마치 라이프 트라이앵글과 같은 안전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절단기로 철근을 자른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판단이었다. 그는 즉시 그의 지시를 수정했다.

“아냐! 절단기 말고 휴대용 절곡기 가지고 와! 입구 공간만 확보하고 그냥 이대로 빼낸다.”
안에 있는 사람의 생존을 알고자 계속 말도 걸어보고 빛도 비추어 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리가 한발 늦은 것일까? 그러나 그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귀찮아하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있을 뿐. 그들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구조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 그들의 모습이다.
머리 크기정도의 구멍 양쪽 아래 부분을 절곡기로 깊게 접어 옆으로 조심스럽게 벌렸다. 콘크리트 가루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먼지를 일으켰다. 입구공간은 확보되고 내부는 붕괴되지 않았다. 이제 그는 마치 산모의 뱃속에서 아기를 꺼내듯 웅크린 사람을 끄집어냈다. 옷가지를 잡고 하나, 둘, 셋, 하는 구령과 동시에 옆으로 눕혀 끌어냈다. 웅크린 채 굳은 몸이 그대로 둥그렇게 넘어갔다. 동시에 무엇인가 ‘투둥’하고 울리는 소리가 바닥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에 귀 기우릴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웅크린 채 돌덩이가 된 몸을 꺼내느라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다.

밝은 빛에 드러난 모습은 모두를 그 모습처럼 굳게 만들었다. 잠시 동안 그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두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애도의 침묵이 이어졌다. 최 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웅크린 모습에서 얼굴을 찾았다. 소년이다. 아니, 청년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어리지는 않은. 올 해 고3이 된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우리 석이 또래쯤 되려나?'
최 팀장의 아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그의 눈앞에 창백하게 굳은 채 웅크리고 있다. 얼마나 저러고 있었을까? 소년의 몸을 편히 누이고자 몇몇 대원들이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날아오를 나이의 소년이, 날아올라야 할 소년이, 그 때 한 대원이 침묵을 깼다.

“아까 뭐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만 그게 이거였네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연갈색의 나무로 된 통기타였다. 회색의 먼지로 덮여, 제 주인처럼 죽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 팀장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고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 때 그 선율은 환청이 아니었다. 이 기타 선율이었던 것이다. 의문과 오해가 동시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허나, 그는 왠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어이구...여기 강아지도 있었네요...”

김 주임이 피로 얼룩져 축 늘어진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더운 날씨에 죽은 지 좀 된 듯한 강아지는 이미 부패가 되어 심한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다. 구석에 있었던지 안 보였던 것 같은데...

‘저 작은 공간에서 둘이 서로 힘이 되고 있었구나.’

웅크렸던 소년의 몸이 펴지자 그 속에서 사각의 물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구겨진 작은 수첩이었다.
소년과 그 옆에 누워 있는 강아지를 보았다. 그 순간 최 팀장의 눈에 일주동안 라이프 트라이앵글 속, 이들의 모습이 TV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소년은 기타를 치고 하얀 털의 강아지가 그 옆에 누워 소년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잠자고 있다. 나른한 오후,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소년도 달디 단 오수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째서? 처절한 사투 속에 엄청난 공포와 절망으로 몸부림쳤을 이 소년의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평온한 모습으로 그려질까?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소년의 일상이 이랬을까?’

차갑게 식은 소년의 몸이지만 최 팀장의 눈에는 그저 평온하게 오수를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애써 갈무리하며 마지막 작업을 정리했다.

“이로써, 사고 전 건물 내에 사람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시신도 수습한 바, 우리의 작업은 종료하기로 한다! 이제, 사고의 진위여부는 수사팀이 맡아서 하게 될 것이다. 모두들 수고 많았다.”

최 팀장의 한마디로 모든 상황은 끝이 났다. 미리 대기 중이던 구급차가 소년을 싣고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최 팀장의 손에는 주인 잃고 버려진 기타와 마지막까지 소년이 쓴 것으로 보이는 구겨진 수첩이 들려있었다. 이미 약속했던 6시는 훌쩍 지나고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최 팀장은 붉게 물든 지평선의 태양과 마주 섰다. 아들 석이 또래 소년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최 팀장은 본부로 들어가 간단하게 뒷정리를 하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집으로 향했다.
보름 만에 오는 집이다. 미리 연락을 해놓은 덕에 아내가 끓이는 김치찌개 냄새가 현관 밖에서부터 식욕을 자극한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집 밥으로 배를 채웠다. 모처럼 만의 여유를 즐기는 최 팀장이었다. 그는 리모컨으로 TV를 켜며 비스듬히 소파에 기대앉았다.
"석이는? 아직 인가?"

"이이는! 석이, 9시까지 야간자습하고 실용음악학원 갔다 오면 12시 다 되잖아요."
설거지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무심한 듯 묻는 말에 아내는 타박으로 답을 했다.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밴드동아리의 공연을 보고는 그 때부터 기타에 빠져 난리를 쳤더랬다. 기타를 배운다느니 밴드 동아리를 든다느니 난리법석을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다 돼가고 있다.

‘나, 참! 무심한 아빠로군.’
최 팀장은 잠시 그 때 일을 떠올리며 입가에 푸근한 아빠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도 잠시, 순간 희뿌연 시멘트 가루와 먼지로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 구겨진 수첩과 주인 잃은 기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는 이미 사라졌고 앙 다물린 입술과 턱 선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시신과 함께 수습된 물건들을 내일 경찰에 넘겨야하는데, 아무도 없는 그 건물에 혼자 있다가 변을 당한 소년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최 팀장은 무언지 모를 답답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혼자 돌아가는 TV를 끄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머리에 기대앉았다. 최 팀장의 손에는 소년의 수첩이 들려있었다. 주인 잃은 기타는 어느새 침대 옆에 턱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눈을 내려 소년의 수첩을 드려다 보았다.
삐뚤빼뚤, 들쭉날쭉,
도저히 고등학생이 썼다고는 볼 수 없는 글씨다. 어두운 곳에서 쓰다 보니 이리 되었나보다. 한참을 이리 맞춰보고 저리 돌려보며 무슨 퍼즐 끼워 맞추듯 보다보니 무언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무섭다. 너무 어둡다. 집이 무너졌나보다. 야광볼펜이 있어 글을 쓸 수 있다. 다행이다. 할머니는? 누가 찾았을까? 이러려던 게 아닌데... 너무 조용하고 어둡다. 꽁이 상태가 영 아니다. 옆에 있는 꽁이의 숨이 들쑥날쑥하다.-
그는 CD케이스만한 스프링 수첩 첫 장의 내용을 대충 끼워 맞춰보았다.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자 최 팀장은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복잡하고 착잡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땀 닦듯 얼굴을 쓸어내리는 버릇이 있었다. 이러면 가슴이 조금 안정 되어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이다. 첫 장의 내용으로 볼 때 경찰 측의 고의적 사고라는 생각이 옳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이 다시 착잡해져 나오게 된 습관적 행동인 것이다. 그는 어떤 단서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두 번째 장을 펼쳐 보았다.
-조용하다. 죽고자 했는데 아직 살았나보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염치도 없게 삶의 미련이란 게 남았나보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무섭다. 무섭고 슬프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내 손에 기타가 있어 다행이다.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삼촌이 사줬던 기타다. 삼촌도 보고 싶다. 삼촌 보러 갈려고 했는데, 아직 못 갔어. 곧 갈 거야. 기타를 연주하는 동안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정말웃기고 있다. 죽겠다던 놈이 꾸역꾸역 삶에 미련을 두고 기타 소리로 아직 살아있음에 스스로 안도하고 있다. 미친 놈-
최 팀장은 손가락을 놀려 또 한 장 넘겨본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들이 온 모양이다. 얼마나 쳤을까? 굳은살이 베여 더 이상 터질 것 같지 않던 손가락 끝이 터져서 피가 나는 모양이다. 찐득하고 비린내도 난다.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 그래도 계속 기타는 쳐야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죽고자했던 유일한 이유. -
"..."
벌써 몇 장 째 읽어가던 최 팀장은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소년과 기타는 이번 사고의 분명한 단서인 것 같았다. 최 팀장은 소년의 수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두 손에 들려있는 수첩을 또 한 장 넘겨본다.
-목이 마르다. 배도 고프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삼촌의 기일이 다 되가는데... 죄송해요 할머니,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 꽁아. 삼촌이 먼저 가고, 아픈 할머니 모시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게 음악이 유일한 행복이었는데 할머니 모시고 먹고살기 바쁜 내겐 그게 사치일 뿐이었다. 거기다 주인이 집까지 비우라고 한다.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어디를 가나?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데.... 할머니도 나도 이 세상이 고통스럽기만 하니까, 그래서, 그래서... -

-난 방금 내 생애 마지막 리듬을 만들었다. 할머니와 꽁이가 들어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 기타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삼촌이 자랑스러워하실 만큼 말이다. 미세한 진동이 이 좁은 공간을 뒤덮는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도 난 기타를 칠 것이다. 노래하지 않는 새는 죽은 것이다. 새는 죽는 그 순간까지 노래하다 죽는다. 나는 다음 생애에는 새가 되고 싶다. 마음껏 노래하고 싶다. 세상의 무게와 편견과 상관없이 마음껏 노래하고 싶다. 혹여나 내가 떠난 곳에서 그 누군가 이 기타를 발견한다면, 이 기타가 주인 없이 버려지지 않도록, 행복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영원한 친구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못난 친구 말고....

그리고 뒤엔 더 이상 내용이 없었다.
소년의 글을 읽던 최 팀장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흰자위가 붉게 선 핏발로 일렁인다. 힘없고 가난한 소년이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했던 삶의 사선에서의 두려움과 절망이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최 팀장의 손은 더 이상 수첩을 향해 있지 않았다. 침대 머리에 등을 깊이 기댄 채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일이면 신문과 뉴스에서 다들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이다. 원창동 가스폭발로 인한 건물붕괴 사고는 가스배관이 노후 되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 소년의 자살로 인한 것이었다고. 최 팀장은 이 중요한 단서들이 경찰 측에 넘겨진 후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요~! 아빠, 오랜만!”

아들 녀석이 돌아와 인사를 하는 머리에 생각을 멈춘 최 팀장이 반갑게 아들을 맞이한다.

“어, 아들. 허허. 잘 지냈어? 학교는 잘 다니고?”

“당근! 두말하면 입 아프지. 어?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지?”

최 팀장과 인사를 주고받던 아들 석이가 침대 곁에 세워 진 기타를 보자 대뜸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최 팀장은 순간 당황하면서 자신이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아! 우리 관할 지역이니 석이 녀석과 한 학교일 수도 있었겠구나!’

“왜? 석이 너, 이 기타 본적 있니?”

최 팀장의 목소리는 긴장한 듯 떨리고 있었다.

“응. 당연히 봤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동아리 형 기탄데. 여기 이거 봐! 노래하지 않는 새는 죽은 것이다! 그 옆에 형 이름 이니셜까지. 윤승민, Y, S, M.”

기타 몸통 아래 쓰여 있는 글귀를 가리키며 아들 녀석이 말을 이었다.

“이거, 이 형 삼촌이 사준 건데, 꼭 하고 싶은 노래하면서 살라고 선물로 주신 거랬지, 아마? 진짜 멋있죠? 입학식 날, 내가 완전 반한 형이잖아. 이 형 기타도 정말 잘 쳤는데. 작년에 갑자기 삼촌이 돌아가시고 학교 졸업도 못하고 자퇴했어요. 부모님이 어릴 때 돌아가시고 삼촌이랑 병든 할머니랑 어렵게 산다고 했었거든요. 갑자기 가장이 되니까 돈 버느라 학교도 못나오고... ”

“....”

마치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십대 소녀처럼 흥분한 아들 녀석을 바라보는 최 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 갑자기 형 보고 싶네. 요즘 뭐하고 지내려나? 그거 형 찾아줄 거죠? 그러면 내 안부나 전해줘요.”

흘리듯 한마디 던지고 나가는 아들 녀석의 뒷모습을 보던 최 팀장의 눈이 우두커니 침대 옆에 서 있는 기타에서 머물렀다.

밤새 복잡해진 머리로 뒤척이다 아침을 맞은 최 팀장은 출근하기 전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어제 찾은 기타와 수첩과 함께 제대로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서였다.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수첩을 쥔 다른 한 손에 힘을 주는 그의 앞으로 윤 경위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반가이 인사를 건낸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머리에서는 생각들이 정리 되지 않은 채이다. 윤 경위를 잠시 바라보던 최 팀장은 마지막 결심을 한 듯 입을 연다.

“이거, 어제 찾은 거야. 자네들한테는 중요한 단서가 될 걸세. 그런데, 내 한 가지만 부탁하지. 이 수첩 내용 끝까지 잘 읽고, 웬만하면 조용하게 해결해줬으면 하네. 내, 친구로서 부탁하네.”

최 팀장은 그의 손에서 건너가는 수첩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수첩에 적혀 있던 소년의 마지막 글을 떠올려본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도 난 기타를 칠 것이다. 노래하지 않는 새는 죽은 것이다. 새는 죽는 그 순간까지 노래하다 죽는다. 나는 다음 생애에는 새가 되고 싶다. 마음껏 노래하고 싶다. 세상의 무게와 편견과 상관없이 마음껏 노래하고 싶다.

 

<수상 소감>

 

수상 소감에 앞서, 먼저 귀한 상을 주신 대구대학교 언론출판문화원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로 수상 소감을 대신하려합니다. 어느 날, 군에 간 작은형의 방에서 찾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하얗게 세월의 흔적만 쌓여가는 기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 한 켠 형의 멋진 모습과 함께 했던 그 기타의 초라한 모습에서, 이 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꿈과 현실이 다른 길을 걸으며 수없이 버려진 젊은 꿈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과 또 세상과 타협해야하는 처지에 서고 보니, 현실에 대한 차가운 자각의 먼지로 뿌옇게 제 색을 잃고 버려질 제 꿈에 대한 연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글에 담아 소심하게 반항하듯 쓴 작품이 ‘버려진 기타’ 입니다. 지금 저는 수능을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주어진 상인지라, 글쟁이의 길로 가기엔 두꺼운 현실의 벽 앞에 서있는 저에게 너무 소중한 용기와 힘을 주는 동력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중한 동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제 꿈을 향해 용기를 내보려합니다. 더 이상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세상이 공감하는 따뜻한 글로 함께 마음을 나누는 글쟁이가 돼보려 합니다. 귀한 상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대구대학교 언론출판문화원  shjh00@dae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