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박경용 교수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근대 유럽문화의 모순을 견디지 못했던 최초의 청결한 유럽인이자 기독교와 결별하여 현세주의로 돌아간 최초의 사람이다. 신이라는 폭력, 국가라는 폭력에 의해 수천 년 동안 내면 깊숙이 유폐되어버린 자유의 본능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차라투스트라가 하산하여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면서 초인(超人)을 목 놓아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 존엄과 자유, 평등의 권리를 설파한 한 시대의 선지자였다.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원래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창시자의 이름으로 그 엄숙한 어감만 같을 뿐 다른 뜻은 없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예언자’ 혹은 ‘현자(賢者)’를 의미하는 하나의 가상인물로서 별칭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펼쳐나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오랜 방랑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부단히 추구한다. 그는 10년 동안이나 고독 속에서 생활함으로써 성숙한 자가 되어 세상에 나오려고 한다. 긍지가 있고 영리하기 때문에 조급히 자기의 사상을 남에게 피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새벽하늘에 호소하는 것은 옛 페르시아의 종교가 태양과 불을 경배하였다는 것과 관련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영원한 방랑자로서 이상적 인간상인 위버맨쉬(?bermensch), 즉 초인(超人)을 지향한다. ‘초인을 목 놓아 부른다’는 말처럼, 초인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우리네 현실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인간의 삶이란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날 속에 항시 불안으로 점철된다. 자연재해나 환경오염, 전쟁, 테러, 인종차별, 식민지배, 이념과 민족ㆍ종교 분쟁 등 전 지구적인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편안하지 못하다. 개인적으로도 오늘처럼 내일 그대로 온전하게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단언하기 어렵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하며 또 무엇에 의존해서 하루를 보람되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새끼줄’은 초인의 앞날을 암시한다. 광대가 스릴에 차서 아슬아슬하게 새끼줄을 타듯이, 초인은 위태로운 험로(險路)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란 하나의 징검다리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재의 불완전한 자기로부터 보다 완전한 자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기를 완전 탈피하고 새로운 자기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영원한 방랑자 차라투스트라는 절대 진리의 부재 속에 방황하고 부유하는 인간의 부정적 숙명론을 함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개선을 촉구한다. 삶의 부조리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갈망한다. 이런 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보편적 인간의 실존과 니체 자신의 절망적 삶에 맞닿아 있다. 니체는 초인의 길인 참다운 기쁨과 영원성을 추구하면서도 안정되지 못한 가정생활과 질병 등으로 항시 방랑한다.
니체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은 놀랍게도 그의 사상적 배경과는 반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점은 그의 철학을 유년시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당대 민족주의와 종교개혁가 루터라든지 또는 기독교와 마을의 도덕관 등은 그에게 심한 반작용을 낳았다. ‘신은 죽었다’고 소리치는 차라투스트라의 외침은 이를 반증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여러 저술 가운데 니체의 전반적인 사상을 상징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은유와 격언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본서를 ‘대서사시’라고 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로는 영감에 가득 찬 노래와 시이기도 하다가 때로는 밤하늘 새벽별처럼 허공에 부유하는 고독한 방랑자의 외침이기도 하다. 존재의 깊은 심연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직시함으로써 삶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길 주문한다. ‘너 자신을 넘어서라’면서 초인을 간절히 염원하고 갈망한다. 영원회귀의 삶을 긍정하는 가운데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자유자재한 주체이기를 강조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문별 주제도 제시되지 않으며 내용과 형식 또한 규칙성을 띠지 않는다. 신화적 상상력과 심오한 철학적 사유, 신랄한 풍자와 비판, 공상과 드라마틱한 메타포에 기초하여 니체의 철학사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상당 부분은 너무 난해하여 그리스의 신화적 맥락과 당대 시대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행간의 의미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렇지만 본서는 방랑자(放浪者), 신(神)의 죽음, 허무주의(虛無主義), 권력의지(權力意志), 초인, 영원회귀(永遠回歸), 세 가지 변신, 운명애(運命愛) 등 니체의 철학적 명제 전반을 담고 있어서 대표작으로 평가될 정도로 역작이자 세기의 고전으로 통한다.
니체는 서슴없이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철학자다. 니체의 분신 차라투스트라 또한 여행자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삶 자체가 본원적으로 방랑자의 신세다. 더불어 살아가지만 영혼의 길이란 궁극적으로는 차라투스트라처럼 홀로 삶의 대지를 밟아나가야 한다. 냉철함과 인내와 열린 가슴으로 쉼 없이 나아가야 가장 높은 산에 다다를 수 있다. 니체에게 이러한 방랑의 귀착점은 ‘신의 사망’에 이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있다. 인습과 지배적 가치라는 닫힌 공간을 헤치고 들어가 그것에 균열을 내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유정신의 확립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의 선악을 규정하는 절대 명령이었던 신의 율법이 인간을 노예로 만들어버린 세상에서 가치의 전환을 시도하며 여행을 나선다. 니체는 도덕이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조건 하에 주어진 하나의 결과일 뿐이므로 시대가 바뀐 상황에서는 이로 인한 억압과 폭력의 사슬을 과감히 끊어야 한다고 인식한다. 미래인간 초인은 자기 바깥에 가치의 기준을 두고 그것에 복종해 온 인간이 마침내 노예생활을 끝내고 자기 가치의 주인이 된 사람이다. 초인은 넘어 나아가며 끊임없이 한계와 제약을 돌파해 나가는 커다란 육체적 이성의 주체이다. 초인은 ‘영원회귀’의 진리를 체득하고 ‘힘의 의지’를 실현시킬 미래의 인간을 가리킨다.
차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다’고 천명함으로써 신 중심의 시대적 속박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아를 찾아 나서라고 명령한다. 그 대안으로 거듭 초인을 부르면서 ‘신이 돌보아주지 않는 은둔자의 용기와 독수리의 용기’를 가지라고 주문한다. 그리하여 기존의 억압 받던 왜소한 자들이 ‘차원 높은 인간’이 되어 인간다운 권리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길 강조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주인이 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삶의 예술가가 되길 강조한다. 이는 만인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외침이기도 하다. 주체적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것이 당위임을 의미한다. 니체에 있어서 생명 그 자체는 힘(권력)의 의지다. 힘의 의지는 시중드는 이나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긍정적인 힘의 의지는 먼저 시작하는 것, 창조하는 것, 자율적인 것, 베푸는 것이다. 부정적인 힘의 의지는 권리는 양도하는 것, 무리 짓는 것, 보편적인 것에 대한 추구다. 니체는 힘의 의지가 자유와 평등을 짓누르는 선과 악의 편견을 부수는 진리의 힘으로 쓰이길 고대한다.
우리네 삶은 개미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된다. 노력과 성찰의 시간 속에 내일은 좀 달라질 거라고 믿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 매일 반복된 일상이 이어진다. 인간의 숙명인 생로병사 자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영원히 반복되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될까?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만유만상(萬有萬象)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영원회귀 사상은 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사상이고 형식이다.
초인을 꿈꾸는 창조자의 길은 고독하다. ‘고독한 방랑자’처럼, 황량한 공간 속에, 얼음과 같은 고립의 숨결 속에 내던져진 하나의 별과 같다. 초인이 되기 위한 파괴와 창조는 영원히 지속된다. 영원회귀의 무상함을 담아낼 수 있는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비록 자신의 발 아래로 강제와 죄책감과 허무가 비처럼 자욱하게 펼쳐져 보일지라도, 밝은 눈으로 미소 지으며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과정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 세 단계의 변신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낙타는 신의 계율과 인간의 허위가 만들어낸 억압구조에 순응하는 자이다. 사자는 억압구조에 항거하는 자이고, 아이는 부조리

한 시대상과 암울하고 열악한 개인의 현실과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이다. 니체가 세 단계의 변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치열한 인식의 과정을 거쳐 참된 자신을 찾아가라는 주문이다. 보편적 진리이자 절대적 가치라고 믿어왔던 허위와 위선, 억압에 대항함으로써 자유로운 영혼을 되찾고, 삶의 허무에 맞서 운명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방편으로 권한다.
거친 세상이 부조리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끈기와 인내를 길러야 한다. 때로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커다란 파고의 시류에 순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불합리와 모순, 부정에 대해서는 이에 맞서 사자처럼 포효하고 투쟁하여 공공의 선(善)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자유의지를 굳게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 정신으로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가야 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