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 요즘이다. 삼월의 끝에서 옷깃을 여미는 추위를 경험한다. 남쪽 끝 제주에는 머들(제주 방언, 돌무더기로 쌓은 돌담)을 따라 벌써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다는 소식을 접한다. 대한민국의 요즘이 드러난 손과 코를 더 시리게 한다. 내가 속한 나라와 그 나라의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는 말이 좀처럼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을 잘 영위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하는 이 국가와 사회가 스스로 생각하지 말라고 종용하면서, 이 시대의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과학의 맹신과 무력을 동원한 식민주의가 한참 팽창하던 영국의 19세기에 탄생한 소설 속 괴물은 인간과 같이 생각을 하게 되면서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en Byron)과 당시 사랑의 도피를 하던 시인 셀리(Percy Bysshe Shelly), 그리고 그의 애인 메리(Mary Shelly)와 그의 주치의가 함께 제네바를 여행 하던 중 때 마침 내리는 비에 이들이 모여 이야기한 내용들이 동기가 되어 탄생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천재 여성 작가 메리 셀리의 소설이다. 이른바 괴물로 일컬어지면서 현대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프랑켄슈타인 증후” 정도로 치부되는 이 소설은 요즘 대한민국 안에서 곱씹어 볼 만하다.

소설 속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은 시체들의 조각을 모아 창조주의 피조물인 냥 괴물(the creature)을 만들어 낸다. 빅터의 포부는 "많은 것이 이미 이루어졌으나, 나는 그 이상을 이룰 것이다. 앞서 찍혀진 발자국을 따라 새 길을 개척하리라. 미지의 힘을 발굴하고, 창조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세상에 밝히리라!"는 말과 함께 신의 영역에 도전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탄생된 괴물은 "내가 이토록 잔인해진 것은 억지로 내게 정해진 이 진저리치도록 고독한 삶 때문이오“ 라는 저항과 함께 빅터의 가족들은 살해하게 된다. ‘괴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빅터는 마지막에는 자신이 직접 괴물을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빅터는 여러 힘든 일로 심히 병약해져 있었고, 북극으로 떠나는 뱃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죽게 된다.

이야기의 주제와는 다르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여러 가지 풍경들을 보면서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내 괴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가 경영에 대한 포부와는 다르게 국민들을 일종의 말을 잘 듣는 하인쯤으로 여기는 국가의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관료들은 개인의 생각들과 행동을 틀어막고, 국민들을 자신이 만들어내 피조물 정도로 여기고 있다. 온갖 사실과 거짓이 섞여 대립과 갈등이 만무 하는 지금의 사태는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나라를 제멋대로 말아먹겠다고 다짐하는 청와대의 태도도 문제이거니와, 얽히고설킨 모든 일들이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며 문을 굳게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그저 티브이에서 보는 코미디 같다. 그 코미디의 각본은 그저 “-뿐이다” 일 뿐이다;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상처와 피해 그리고 고통들은 이제 국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국가의 사태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그저 포부만이 있었을 뿐이고, 남이 써준 글을 국민들에게 읽었을 뿐이고, 인터넷 방송의 출연이 국민들 앞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일 보다 더욱 중요한 메시지가 될 뿐이고, 따뜻한 어느 날 여행길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서 떠도는 아이들과 가족들의 가슴 찢어지는 아픔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저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더 써야 될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청와대의 관료들은 그저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일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 위에서 군림하고자 했던 한 사람은 지금의 모든 일들이 그저 억울할 뿐이다.’ 이들의 모습들은 소설 속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이 시대의 국민들을 괴물의 대사처럼 “나는 당신의 피조물 이고，나에게 생명을 준 주인에게 온순하게 복종할 수 있었습니다”처럼 피조물 정도로 여기고 있었고, 국가의 주체가 아닌 소설 끝까지 이름이 부여되지 않는 괴물처럼 무명(無名)씨일 뿐이었다. 이제 탄핵이 가결되고, 세월호가 떠올랐으며, 무명씨들이 당연한 주권과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위에 서 있다.

“나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대대로 저주가 될 행위를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소설 속 대사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권리와 책임이 상식으로 여겨지는 공간, 그 공간이 지금 대한민국 거리위에서 각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