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과학과 근대세계』는 우리가 얼마나 획기적인 시대에 살아가

대구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김영진 교수

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오늘날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의미 역시 그 시대의 소산이라면, 오늘날의 과학에 진행되는 방향은 근대의 과학과는 다른 개념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혁명의 초창기에 자연과학 및 수학을 연구한 화이트헤드는 이런 변화의 물결이 얼마나 크며, 그 영향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상가이다. 그 영향을 과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과의 관계에서 짚어본 책이 바로 소개할 이 책이다. 허버트 리드(H. Reed)는 이 책의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나온 이후에 과학과 철학을 결합시키는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데카르트 이후의 지배적인 사고방법을 문제 삼는 최초의 시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는 우리의 삶과 존재의 개념 전반에 걸친 혁명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과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심지어 종교와 예술의 카테고리에 대해서까지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이 책을 하버드 대학에서 정상적인 강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매주 한 장씩 저술했다. 그런 작업이 어째서 가능했는지를 사람들이 묻자, 그는 “이 책에 쓰여진 내용은 모두 지난 40년 동안 줄곧 이야기한 것뿐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이 저서는 그가 평생 연구하고 사색한 결과이다.

우선 화이트헤드와 그 주변인물에 대해서 살펴보자.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대인지만, 저자와 책은 어쨌든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치 우리가 인기 연애인의 사생활을 궁금해 하는 것과 같다. 물론 화이트헤드의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있지는 않으나, 그의 삶의 여정은 관념의 모험으로 꽉 차 있다. 그건 화이트헤드의 개인의 선택도 있겠지만, 태어나서 활동한 시기가 학문적으로 역동적인 모험의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그의 모험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눈다. 첫 번째 시기는 케임브리지 대학이며, 두 번째 시기는 런던 대학이며, 세 번째 시기는 하버드 대학이다.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사상의 모험을 편력했다.

화이트헤드는 1861년 2월 15일에 몸이 약한 상태로 태어났다. 화이트헤드의 외모는 금발, 홍안, 벽안 등의 전형적인 용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의 혈통을 동앵글족(5세기경, 독일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지방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게르만족 일파) 계통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화이트헤드 역시 아버지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아버지는 당시에 교구의 목사였고 사립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런던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곤 했다. 미망인으로 사신 할머니는 군복을 납품하는 자산가였지만 자녀들을 열세 명이나 두는 실수로 인해 자녀들의 상속지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손자인 화이트헤드는 그녀에게 정을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녀의 가정부인 제인 휘치로에게 훨씬 호감을 가졌다. 휘치로는 그에게 찰스 디킨스의 소설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화이트헤드는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12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셔번중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의 커리큐럼은 화이트헤드의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쳤다. 이 학교의 역사 수업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진행되었고, 신약 성서 역시 그리스어로 읽었다. 당시 학교에서 영어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교양이 없는 종교적 심성의 소유자로 보았다. 종교적 심성을 갖춘 사람은 그리스어로 종교를 받아들였다. 화이트헤드는 영어문법을 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고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을 통해서만 배웠다고 한다.

이 학교의 공부시간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운동과 독서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화이트헤드는 축구부 주장도 했고, 모범생으로 규율을 담당하는 학생회장도 된다. 한번은 학생회장으로 어느 날 돈을 훔친 어떤 학생에게 매를 가하는 일로 호출을 받았다. “돈을 훔친 학생은 전교생 앞에서 매를 맞느냐 아니면 퇴학 처분을 받는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나는 잘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으나 어쨌든 그에게 매를 때렸다.”

1924년에는 런던 대학을 퇴임하고, 하버드 대학교에 철학교수로 초청받는다. 그는 남들이 은퇴할 63세의 나이에 철학 교수가 되고, 그 후 위대한 저서들을 쏟아낸다. 그의 첫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 『과정과 실재』(1929), 『관념의 모험』(1933) 등의 3부작을 포함해서 다양한 저서들을 출판했다. 이 3부작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구성원리가 들어 있는 핵심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지난 3세기, 즉 17, 18, 19세기 동안 이룩한 과학 사상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이룬 업적 및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20세기에 새롭게 전개된 과학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저서이다. 이 저서는 길지 않은 분량을 통해 근대 과학, 수학의 전개 양상을 촘촘하게 짚어주고 있고, 그것이 갖는 무의식적인 전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전제가 그 후의 과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삶과 행위 역시 그런 과학과 철학의 영향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런 변화의 조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그런 근대 과학과 철학의 영향은 그 뿌리가 아주 깊이 박혀 있어서 충분히 사유하지 않고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한편 근대 과학은 자연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자연은 물질로 되어 있으며, 그 물질의 근본 속성은 질량이라고 한다. 양이 물질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표현이다. 양은 측정을 통해 드러나며, 측정된 양은 이 순간의 시공간에서 드러난 물질의 속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물질을 설명하는 자연관을 기계론이라고 한다. 기계론은 물질, 질량, 이 순간의 시공간(단순정위)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였다.

이런 관점은 정말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근대 과학은 양의 학문이며, 그 양을 측정가능한 요소로 본다. 우리가 근대 과학의 위대한 성과라고 알고 있는 세 가지 운동법칙과 중력 법칙은 모두 양적인 법칙들로 표현된 것이다. 이것은 학교 수업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장과 전쟁에서 동일한 시간에 사업과 전투를 착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또한 노동을 양으로 환원할 수 있게 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바로 상품을 사기 위한 노동량과 일을 한 노동량 사이의 양적 차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17세기에 시작된 과학적 유물론이 거둔 성과를 인정 한다. 그것은 기존의 시대와는 다르게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 온 것이다. 우주, 물질, 생물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중세의 신학 중심의 세계관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보게 했다는 점에서 그 기여는 인류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과학적 유물론으로 대표되는 지난 3세기는 우리 인류의 역사를 짧은 시간에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유물론이 가져온 성과의 이면에는 그 그림자도 클 수밖에 없다. 양으로 설명될 수 없는 자연의 모습들, 장미꽃의 향기, 꾀꼬리의 노래, 저녁 황혼들은 설명할 수 없는,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서 과학의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갔다. 그런 반항은 문학과 철학을 통해 제기되었지만, 과학자들은 전혀 합리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한편 과학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를 배반하는 자식을 탄생시켰다. 수학에서는 사영기하학과 위상학, 물리학에서는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 등이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형성했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와 뉴턴 역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새로운 사건들과 정의를 보여주었다. 예컨대, 양자론에서 미시적인 존재인 전자의 운동방식은 순간적인 시공간(단순정위)이나 양으로 설명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가장 미시적인 물질의 운동 방정식은 일정한 주기를 통해 활동력의 수축과 팽창이라는 진동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양과 순간의 시공간이 아니라 일정한 체계와 주기를 통해 물질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물질의 존재 방식은 ‘조직화된 체계’로 일정한 주기를 필요로 한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유기체’라고 부른다. 화이트헤드는 유기체를 통해 현대 과학을 이해하듯이, 우리가 듣는 베토벤의 ‘월광’이라는 음악도 모네의 ‘루앙 대성당’의 그림도 유기체라는 관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 역시 체계와 주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범주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과학적 유물론’이 근대를 이해하는 그물이라면, ‘유기체론’은 현대를 이해하는 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과학의 그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과학과 철학 및 종교적 경험이 발생했으며, 이를 설명할 새로운 그물이 유기체론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런 과학 및 철학, 과학과 신학 등 다양한 영역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이분법적 사유를 지양하고 새로운 종합의 방식으로 사물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모험적 사유를 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