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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듣고 읽는 명저 이야기클라시카 자유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대구대신문 | 승인2017.09.04 13:00

박재영 교수

(기초교육대학 창조융합학부 조교수)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가이자 법률가, 그리고 산문작가로 알려져 있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헤로도토스(Herodotus)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키케로는 어떤 이유로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평가했으며, 그러한 평가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남긴 『역사(Historiae)』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가?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투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80년경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오늘날 터키의 보드룸 Bodrum)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라는 불후의 저작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친척인 서사시인 파니아시스가 참주 리그다미스 2세에게 피살되자 사모스섬으로 피신한 정치적 망명자였다. 그가 그리스세계 이외에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였다는 사실은 『역사』 9권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 있었던 일인지는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정치적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된 이후 오랫동안 지중해 세계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토스가 여행한 지역은 북으로는 스키타이, 동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바빌론까지, 남으로는 이집트의 엘레판티네, 서로는 이탈리아, 그리고 아프리카 키레네까지 매우 광범위했다. 그는 기원전 450년대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하여, 기원전 445년경에는 아테네에 체류하면서 페리클레스(Perikles), 소포클레스(Sophocles)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시를 낭독하여 크게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그 후 기원전 443년 아테네가 건설한 남이탈리아의 식민도시 무리오이로 가서 그곳의 시민이 되었으며, 거기에서 여생을 마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추방생활 초기부터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료를 수집하였고 탐구와 저술 작업을 거듭한 결과 기원전 420년대에 『역사』 저술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Greco-Persian Wars)을 기록한 책이지만, 지중해 세계 최초의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고대 여러 지역의 자연환경과 지리, 풍속, 일화와 전설, 민족지 등을 기술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역사』를 통하여 리비아인들이 사하라 사막을 넘어 아프리카 깊숙이 여행하다가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작은 소인의 무리를 만났다’는 기록에서 고대인들이 이미 ‘피그미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스키타이나 페니키아인들을 비롯한 고대 여러 민족의 풍습과 종교에 대한 기록은 매우 상세하고 객관적이어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2세기 초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로 펴낸 『역사』와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펴낸 『역사』

『역사』의 원문 자료는 서기 10-16세기경의 필사본과 서기 1-5세기경의 파피루스들이다. 현재의 텍스트들은 이들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되었으며, 모두 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에는 권과 장의 구분이 없었고 구두점도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러한 구분방식과 부호 사용은 책의 인용과 독자의 편의를 위해 후대에 도입되었다. 『역사』는 언뜻 보기에는 무계획적인 저술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일리아드(Illiad)』와 『오디세이아(Odysseia)』와 같은 서사시와 그리스의 비극작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연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그리스 산문 사상 최초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헤로도토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시가(詩歌)가 아닌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그리스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라고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페르시아전쟁:

그리스 병사와 페르시아 병사의 전투

첫째, 그것은 『역사』가 실제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아득한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탐구가 가능한 동시대 사건인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을 서사시가 아니라 산문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 서문에서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는 그의 탐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 또 헬라스인과 이방인들이 보여 준 위대하고 놀라운 행적들과 특히 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인 원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가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의 인과관계를 목격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구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역사』가 탄생한 것이다.

둘째, 신화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헤로도토스는 신을 배제하고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신화와 인간의 역사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역사』에서 “신들에 관해 내가 들었던 이야기는 신들의 이름 외에는 어떤 것도 전하고 싶지 않다. (......) 내가 신들에 대해 언급한다면 이야기의 진행상 부득이한 경우에 한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신화의 주인공이 신이라면 역사의 주인공은 인간이다. 헤로도토스는 사실여부를 조사하면서 판단할 수 없는 신화적 전설로 전쟁의 원인을 해명하기 보다는 현실적 과거로부터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했다.

셋째, 헤로도토스가 신화와 역사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머물지 않고 문학과 역사를 구분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들의 모음이 하나의 역사로 되기 위해서는 플롯구성이 요청된다. 이야기가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로 단순 배열하는 것이라면, 플롯은 이야기들을 인과관계에 따라 편집하여 재배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광범위한 자료의 수집과 분류, 사건의 원인에 대한 파악, 인과관계의 규명 등 역사가의 노력과 역량이 요구된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나열하고 시대 순으로 배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인과관계에 의해 사건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역사서술을 체계화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랑케 이후 근대 역사학은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Wie es eigentlich gewesen)’를 강조하며 역사학의 과학화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주관이 역사서술에 필연적으로 개입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역사가는 의식적으로 역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록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하지만, 그것은 역사가의 주관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역사는 ‘사건(Geschichte)’과 사건에 대한 ‘기록(history)’으로 구성된다. 역사는 사건의 총합이지만 역사기록은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추출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모든 역사서가 그렇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e)』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가 페르시아인이 아닌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 그리스인들이 이방인을 뜻하는 ‘바르바로이(barbaroi)’에 나타나는 우월의식과 이분법적 사고(자유와 예속)의 영향,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 중심적 방위(동서남북) 표시, 외국의 지명과 종족명에 대한 그리스식 표현, 그리스 신의 이름으로 외국 신들의 이름을 부른 점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헤로도토스가 불완전하고 편견에 가득한 역사기록을 남겼다고 단정해야 할까? 크로체의 언명처럼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입장에서 보면 시대착오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 것처럼 인간이 기록한 역사도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평가할 때 결과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것이 어떠한 탐구 여건에서 저술되었는가를 고려한다면 『역사』의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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