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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듣는 명저 이야기역사의 틈새를 기억하는 문학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대구대신문 | 승인2017.09.26 16:29

1. “소설로 그린 자화상”

 

전용숙 교수(기초교육대학)

한국문학사에서 박완서의 위상은 타계 후 그를 애도하는 이들의 추모로 재확인되고 있다. 그는 강경애, 박화성, 백신애 등에 이어 박경리와 함께 정이현, 심윤경 등의 현대여류작가들을 이어주는 가교이자 교두보 역할을 하는 든든한 대모로 평가받는다. 이상경은 박완서가 《여성동아》로 등단해서 대중작가로 생각되다가 󰡔휘청거리는 오후󰡕를 통해 산업화 시대 소시민의 일상을 성찰한 작가, <엄마의 말뚝>으로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 <살아 있는 날의 시작>으로 여성문학을 선도한 작가로 다각도의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출간함으로써 한국전쟁을 그리는 작가로서의 성망을 얻는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처럼 어느 한 시대의 작가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폭넓은 아우라를 가졌다는 점에서 박완서의 글은 세대를 막론하고 읽어야 할 필독서로 손꼽힌다.

박완서의 소설을 읽기 전에 우리는 그의 얼굴, 체구, 말투 등에서 그의 소설이 매우 따뜻하기만 한 소설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기도 한다. 그의 외모나 말투가 얼마나 수수했으면 박완서를 취재하러 왔던 기자들이 문을 열어주는 박완서에게 “박완서 작가는 어디 있습니까?” 라고 그가 그 집에 일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대뜸 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보기에는 그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완서의 글을 읽고 나면 독자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자전적 소설이므로 저자와 화자와 주인공이 일치한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박완서가 살아낸 삶을 알게 되고, 박완서의 삶을 알면 또한 자연스럽게 글의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박완서는 개성에서 남서쪽으로 20리가량 떨어진 경기도 박적골에서 1931년에 태어났다. 1933년에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길러지는데, 엄마가 오빠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유난히 아이들 공부에 신경 썼던 데에는 아버지의 죽음도 관련이 있다. 아버지는 맹장염이었는데, 초기에 한약과 굿 등으로 다스리려다가 복막염으로 번져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엄마는 남편의 죽음을 시골의 무지몽매함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고 자녀들의 학업에 열을 올리게 되었고, 1938년에는 박완서마저도 서울로 데리고 가서 세 식구가 함께 현저동 삶을 시작한다.

매동 초등학교를 거쳐서 1944년 숙명여고에 입학한 박완서는 여기에서 박노갑 선생님을 만난다. 이 때 한말숙, 김양식 등의 문학인들이 같은 반이었던 것은 무척 흥미롭다. 좋은 스승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따라서 당시에 읽던 책들도 꽤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광수의 <사랑󰡕, <단종애사>, 박화성의 <백화>, 최서해의 <탈출기>, 그리고 각종 전집들을 읽었고 특히 톨스토이 전집 중에는 <안나 카레리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톨스토이 작품에 대해 그 “성격 묘사의 묘미”에 매료당해서 거듭거듭 읽었다고 회자하고 있다. 박노갑의 경우 농촌의 궁핍한 실상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톨스토이의 경우도 자신과 남을 속이는 가식적인 인간의 허위성을 포착하고 인간의 내면심리 서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모두 박완서 문학의 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완서 작품의 인물들이 담담한 문체로 묘사됨에도 불구하고 그 특성이 날카롭게 드러나고 애잔함까지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기반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1950년 5월, 박완서는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6월에 전쟁이 났으므로 그의 대학생활은 한 달도 채 못 되어 끝이 난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에 좌익과 우익의 대립 속에서 오빠는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1・4후퇴 때 박완서의 가족은 망가진 오빠를 데리고 멀리 피난을 가지도 못하고 다시 현저동을 찾게 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고 이후 오빠의 죽음부터는 후편이라 할 수 있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계속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오빠와 나 그리고 엄마의 모습이 나타난 장면을 중심으로 소소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역사의 균열과 틈새를 살펴볼 수 있다. 사실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어떻게 인간의 허를 이렇게 콕 찌를 수 있을까 싶어 정말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혼자 실실 웃음을 흘리게도 된다. 엄마에 대해 서술한 부분들도 그러한데 가령 예를 들자면 딸을 물 좋은(소위 요즘 말로 한다면 학군이 좋은 곳) 매동국민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주소를 두 개 외우게 한다. 하나는 실제 집주소인 현저동이고 또 하나는 매동국민학교 근처의 잘사는 친척집 주소다. 그런 후 시험에 대비한 공부를 시키면서 아이를 꽤 닦달하고 다그친다. 그러던 엄마가 막상 딸이 합격하고 나서 친척집에 입학통지서를 받으러 갔을 때 보여 준 태도는 피식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팔에 소름을 돋게 한다. 친척집 여자가 학교에 붙어서 얼마나 좋으냐고 축하한다며 꽤나 호들갑스럽게 얘기하자 엄마는 아주 별일도 아니란 듯이 정말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대답한다.

“떨어지길 바랐는데 붙었지 뭔가.”

햐! 어떻게 이렇게 인간의 이중성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현실감 있게 표현해 내는지 독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이는 박완서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매력이다. 그는 작은 체구와 선량한 얼굴, 다정한 말투를 가지고선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으로 그야말로 이채롭게,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인간의 허를 찌르는 작가로서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2. 대의적 사유와 생존적 사유 사이

 

그러나 아는 얼굴이 약간 머쓱해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의기가 충천했고 신들린 것 같았다. 튼튼한 대문짝까지 우지끈 깨부수고 난 청년 중의 하나가 문패를 떼서 패대기를 쳤다. 내가 어려서부터 익히 봐 온 할아버지의 문패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문패는 여전히 붙어 있었고, 숙부도 오빠도 그 옆이나 밑에 다른 문패를 추가하지 않았다. 나는 뭐라고 목청껏 악을 쓰며 그 청년을 향해 돌진했다. (중략)

오빠는 노한 청년들이 제풀에 물러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우리 집이 망가지는 걸 바라보면서 한편 내 어깨를 다독거리며 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듣게 하려고 애썼다. 내가 막무가내로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빠가 하도 여러 말을 해서 자세한 것은 생각나지 않지만, 도코야마, 아라이들이 당한 건 박해요 수난이요 치욕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편안히 특혜를 누려 왔다는 요지였다. 오빠는 그게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했다. 저렇게라도 분풀이를 당했으니까 마을 청년 보기가 좀 덜 부끄러울 것 같다고도 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2-205.)

 

일제 식민지로 35년간 핍박받았던 민족이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가 바쁘게 친일 여부에 따른 보복행위들이 행해진다. ‘나’는 이 보복행위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창씨개명에 응한 자들인 ‘도코야마, 아라이’들이 창씨개명에 응하지 않고 꿋꿋하게 절개를 지킨 ‘나’의 집을 친일주의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보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빠’는 도코야마, 아라이 들이 당한 건 박해요 수난이요 치욕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편안히 특혜를 누려 왔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오빠가 매우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이때의 상황을 보면 이후의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할 질곡들,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해준다.

박완서는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수치심의 상실’과 ‘치욕’을 이야기한다. 익히 스피노자는 “치욕(pudor)이란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슬픔이다. 반면 수치심(verecundia)이란 치욕에 대한 공포나 소심함이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인간을 억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치욕을 받지 않기 위해 미리 조심하게 하는 이 수치심은 박완서 작품에서 예의주시해야 하는 키워드다. 수치심은 인간의 이중성을 파헤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이데올로기 사이에 있는 섬세한 인간의 내면에 천착함으로써 이쪽은 옳고 저쪽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서 벗어나게 하기도 한다. 즉 이분법적 경계를 흐트러뜨림으로써 이데올로기의 도식적이고 편협한 사고틀을 벗어나서 당대 현실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역사 인식을 갖춘 대표적 인물이 오빠로 형상화되고 있고, 박완서의 서사 역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해방 이후의 혼란한 시기에는 각종 조직 구성이 난무했는데 청년조직 활동은 공장, 농촌, 학교에 민청을 조직하여 각계각층의 청년들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 때 ‘나’는 오빠의 영향으로 당연한 듯 좌익 민청조직 활동을 하게 된다. ‘나’에게 ‘오빠’는 ‘거물급’의 존재인데, 우연히 맡게 된 민청조직 활동은 나도 오빠와 같아졌다는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는 한 민족임을 강조했던 우리가 어떻게 좌익과 우익을 선택하게 되는지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전개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문안의 삶을 보장받는 모던보이 아들과 신여성 딸을 키워내려 한 엄마에게 오빠와 나의 민청조직 활동은 충격을 안겨준다. 딸, 아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엄마의 소신은 점점 좌절되고 오빠와 엄마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나’는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수치심이라는 강력한 내면적 장치는 매우 흥미롭다. 치욕을 받지 않기 위해 미리 조심하게 하는 이 수치심은 양심으로부터 유발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양심이란 것이 외부의 이데올로기와 내가 비동일화될 때, 그러니까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지향하는 것과 내가 지향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 때, 그것이 마치 수치스러운 일인 것처럼 느끼도록 마음속에 존재하여 스스로 무언가를 내려놓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개인들은 대의명분과 생존본능, 곧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영역 사이에서 분열을 경험한다. 박완서는 이런 미묘한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서술해내고 그럼으로써 중요한 당대 현실을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 이념이 개인을 이렇게 수치스럽게 한다면 그 이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개인에게 자존감을 주고 세상을 밝고 아름답고 올바르게 보는 안목을 주는 것이 이데올로기여야 하는데 사람에게 이렇게 수치스럽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가진 말하자면 이데올로기 경쟁과 대립이 가진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인적 물적 손실이 심하다느니 민족 분단을 낳았다느니 이런 점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펴본 바와 같이 한 인간이 자기 내면에 자기 삶에서 평생 잊지 못하는 수치심을 남기게 된 사건,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 이 또한 절절하지 않은가. 박완서 문학의 소중함이 여기에 있다. 인간이 얼마나 허접하고 비굴할 수 있는지를 까발리는 것, 그리하여 역사적 기술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더 섬세하게 인간 내면의 아픔을 켜켜히 살피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어두운 사회에 맞서는 하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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