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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에 시달리는 세상에도 가을은 온다
대구대신문 | 승인2017.09.26 16:30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다시 꺼내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이 시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국 사회는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근본토대가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메갈 논쟁처럼 상호간의 불신 정도를 넘어서서 혐오, 그것도 극단적인 혐오의 씨앗이 만연해 있고 사이코패스를 넘어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극단적인 범죄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고 있다. 남녀 간의 혐오, 부모와 자식 간의 증오, 층간 소음을 둘러싼 이웃 간의 칼부림, 정치권의 싸움 등 사방팔방이 혐오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이 힐링을 찾고 템플스테이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이 지나고 가을 하늘이 더 청명하고 더 높아 보이는 이유는 푹푹 찌는 이 지상의 세계가 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마냥 악령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악령>의 제사에 나오는 성서 누가복음의 한 구절을 보자.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이 거사라인의 땅에 도착해서 귀신들린 자를 만나고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그 귀신이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마침 산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신다. 이후 돼지 떼는 거침없이 호수로 달려 몰살당하고 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을 쓰면서 귀신 혹은 악령에 쓰인 자들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러시아의 농노제를 비판하는 글을 읽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간 적이 있지만 나이가 들었는지 사회주의라는 악령에 시달리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이 나온 1871년 당시 러시아는 농노해방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는 가운데 정치적 테러가 일상화 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실제로 러시아의 네차예프라는 위험인물을 소재로 하여 지어진 것으로 소설 속에서는 네차예프를 가리키는 베르호벤스키라는 인물이 <5인회>를 조직하여 샤토프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살해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흔히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스타브로긴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하는 장면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비록 사회주의가 아니더라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뭔가에 홀려 살다가 결국은 비참하게도 죽음을 맞이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년 늦은 가을 한국 사회를 달구었던 촛불을 전후로 하여 우리는 헬조선이니 개돼지라는 말이 언론에서 서슴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한국 사회 전체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이러다가 소설의 제사마냥 모두가 몰살당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이 사회를 악령에 들려 미쳐 날뛰다가 호수에 풍덩풍덩 빠져 죽는 돼지 꼴로 만드는 것일까?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그 악령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실체는 극단적인 혐오일 수도 있고 국민을 개돼지로 만든 정치일 수도 있으며 하루에 아이폰을 1700개씩 만들다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해 공장에서 투신자살하게 만드는 폭스콘의 자본일 수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에서 다 죽자고 얘기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 우리는, 대학은, 이 사회는 무엇에 미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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