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AlphaGo)의 대결은 세기적인 주목을 받았다. 바둑판 위에서 최고의 인간과 최고의 인공지능이 대결했다. 결과는 4승 1패, 알파고의 압도적 승리였다. 이들의 경기를 보면서 세계 1위인 중국의 바둑 고수 커제는 자신이 알파고를 이길 확률이 60%라고 장담했다. 커제는 이세돌의 실수를 지적하며 명쾌하게 훈수를 두었다. 하지만 올해 커제와 알파고의 대결에서 그는 3전 전패를 기록했다. 커제가 그랬듯이 이들의 대결을 보면서 그 보다 하수인 해설가들은 커제가 보지 못한 묘수들을 소개했다.

바둑격언에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는 용어가 있다.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 여덟 집 더 유리한 수를 본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이 바둑을 제일 잘 안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은 불안, 초조, 욕심 때문에 이길 수 있는 변화의 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승부를 끝내고 난 뒤 평온한 마음으로 복기할 때 쉽게 묘수가 보이는 이유다.

내년부터 시작될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평가는 대학입학자원 학생 수 감소에 따라 2023년까지 대학 입학 정원을 16만 명가량 줄이는 조치다. 1주기에 이미 4만 명을 줄였다. 2주기 5만 명, 3주기 7만 명을 추가적으로 줄이게 된다.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전국의 대학을 상위 50%의 자율개선대학과 하위 50%의 구조개혁대학으로 구분한다. 학생충원과 운영상황이 모두 좋은 자율개선대학은 등급을 매기지 않고 학생 감축도 권고하지 않는다. 이런 대학이 전국적으로 50%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구조개혁대학에 속하는 대학은 노력하는 X, 안주하는 Y, 외면하는 Z 등 3개 등급으로 구분된다. 이들 대학들을 대상으로 정원을 집중적으로 감축하고 최하위 대학의 경우 퇴출을 추진한다.

이미 마무리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이후 서울의 대학 14개 곳 중 9곳은 입학 인원이 증가했고 5곳은 소폭 감소에 그쳤다. 반면 지방의 27개 대학은 입학 인원이 모두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2주기 평가를 앞 둔 우리대학에게 암울한 소식이다. 교육부의 평가는 대학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대학을 지금 이대로 내버려 두면 산술적으로 전국 100개 대학이 신입생 1명도 못 받는 상황이 온다. 대학의 구조개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당장에는 지방 사립대학에 불리했던 평가항목의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포함되는 대학특성화계획이나 지역사회 협력과 대학운영 건전성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바둑과 달리 대학평가와의 씨름에는 훈수가 가능하다. 지역 대학 간 협업이나 연합을 통한 새로운 지혜의 수혈을 도모해야 한다.

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하지만 대학공동체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도리어 반외팔목의 지혜를 얻기 위해 더욱 많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미처 상상하지 못한 묘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