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가 되어라!

정철균(문산제일고 3)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허리가 쑤신다. 커다란 구렁이가 내 다리를 세게 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0초만 더. 이를 악물고 15초만 더 그래야 몸에서 썩은 내가 나지 않는다. 그래야 엄마가 욕을 먹지 않는다. 더 달려라 더!

‘야 좆 돼지새끼야. 좀 씻어. 쉰내난다.’ ‘어휴 네 어미는 살아있냐. 애새끼 몸에서 썩은 내 나는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는 나와 우리가족에게만 맡을 수 없는 냄새가 존재한다. 앞으로 2주 동안은 저 녀석들 코에 내 몸에서 나는 악취는 맡지 못할 예정이다.

늘 방학이 되면 다짐을 한다. 기필코 살을 빼겠노라고. 3일도 가지 않고 눈앞에 먹을 것에 영혼을 팔아버린다. 맛있는 음식들이 춤을 춘다. 한편의 뮤지컬이 끝날 쯤 마지막 남은 소시지는 내 입안에서 씹혀지고 있다. 만두, 피자, 닭 강정. 이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두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얼굴은 어찌나 두껍던지 내가 도무지 악을 써도 이길 수가 없다. 음식 앞에 나는 늘 머리를 조아리는 노예다. 방학한지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3일이나 된 것이다. 내가 한 가지 운동에 빠진지 3일이 넘어가는 날이다. 모든 일에는 계기가 존재한다.

“승근아. 성근이형 왔다.”

“형… 왔어. 오랜만이네.”

“그러게 오랜만이다.”

설날이 지난후로 반년 만에 본 사촌형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복장이 자전거선수가 입는 옷차림이다. 쫙 달라붙는 바지와 옷, 내 얼굴도 비춰 보이는 선글라스, 세련되어 보이는 헬멧, 생김새가 이상한 신발 현관 앞에 세워둔 자전거도 경주용자전거인가보다. 엄청 날쌔고 비싸 보인다. 그 옆에 녹슨 자전거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그 주인이 나라는 건 더 비참했다.

“큰엄마, 저 승근이랑 자전거 좀 타러갔다 올게요.”

“그래, 승근이 저 녀석 운동 좀 시키고 와주렴.”

솔직히 말하면 운동이라고는 담을 쌓아놓고 살아서 그냥 형이랑 피시방이나 가고 싶다. ‘형 여기 무슨 일로 온 거야?’ ‘어 내일 너희동네 자전거도로에서 대회열리잖아. 자전거대회. 그래서 신청했지.’ 자전거를 탄지 어언 7년이 넘어간다. 이사 온 뒤로 자전거를 세워두기만 하고 단 한 번도 탄 적이 없다. 자전거가 오래된 모양인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승근아 자전거 바꿔야겠다. 오래 되서 이곳저곳이 많이 망가졌네. 변속도 안 되고 브레이크 잘 잡혀?’ ‘몰라. 그냥 탈게. 어차피 오늘 한 번 타고 버릴 거야.’ ‘안돼. 위험해 형이랑 바꿔 타자.’

사실 아까부터 타고 싶었다. 내 녹슬고 무겁고 바구니까지 달린 촌스러운 자전거 보다 형의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어보였다. 사슴뿔같이 생긴 핸들에 금방이라도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할 것 같은 얇은 바퀴 ‘발 몇이야.’ ‘270’ ‘아마 맞을 거야. 신발 바꿔 신고 페달에 신발 어떻게 장착하는지 알려줄 테니까 한 번 타봐.’ 신발도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신발처럼 점프를 하면 높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웃지도 좋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속으로, 속으로 혼자 좋아서 방방 뛰었다. 늘 그래 와서 표정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남들은 감정숨기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감정 숨기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에 쉽다. 형이 시킨 대로 자전거를 탔다. 일반페달과 달랐고 클릿슈즈라는 신발은 특수한 페달에 장착되어지도록 되어있었다. 페달을 밟다가 발이 빠지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 같았다. 바퀴도 얇다보니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다. 중심도 제대로 잡히지도 않고 두어 번 정도 넘어졌다. 아프긴 했지만 넘어졌을 때 내 표정은 전혀 아픈 표정이 아니었다. 자전거에서 넘어져도 아픈 표정조차 지을 수 없는 내가 비참했다. 형은 안 아프냐고 물었지만 혼자 마조이스트라도 된 것처럼 아픈 걸 즐겼다. 어차피 워낙 맞으면서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름의 내성이 생긴 것 일수도 있다. 어쩌면… 아픈 걸 즐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버텨야 한다고 자기합리화 한 것 일수도 있다. 넘어지다 보니 스스로 타는 법을 익혔다. 형은 하룻밤자고 내일 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고작 동네를 몇 바퀴 돈 것으로 형자전거의 체험이 끝이 났다. 재미있긴 하였으나 천성이 운동과 맞지 않아서 두 번은 타고 싶지 않았다. 힘들고 여러 번 넘어지다 보니 팔에도 멍이 여러 군데 생겼다. 제 작년 이맘때쯤 울면서 집 앞을 서성인 적이 있었다. 뚱뚱한 고등학교1학년짜리가 길가에서 혼자 울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무도 왜 우는지 왜 얼굴에 멍이 들었는지 물어 보지 않았다. 그때 난 거울을 보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원래 작은 눈은 우느라 더 작아보였다. 앞이 보이는지 싶을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흉해보이는 턱살, 뚱뚱해서 몸 이곳저곳에 땀이 차서 생긴 땀띠, 비록 내 자신이지만 흉측해보였다. 판타지영화에 나오는 고블린처럼 정말 못생기고 설사 이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아이가 달팽이보다도 그 어느 것보다도 느린 녀석이란 걸 진즉에 눈치를 챘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얼굴에 멍이든 이유는 같은 반 광호와 싸우다 생겼다. 몇 년 전부터 광호는 민수와 함께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광호의 입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의 말이 오갈 때 나는 느린 주먹으로 광호의 얼굴을 쳤다, 있는 힘껏 쳤지만 광호는 그것을 피하고 온갖 욕을 퍼부으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내 얼굴에 멍이 드는 것뿐만 아니라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며 엄마에게는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멍이 사그라질 때까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때 스스로 다짐을 했다. 다이어트를 해서 빨라져야겠다고 돼지가 아닌 치타로 누구보다 빠르고 날쌘 동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부터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하지만…왜 늘 작심 1일인지 모르겠다. 다음날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갔다. 일부러 저녁을 평소보다 적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집 앞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 번 뛰지도 않았는데 금새 숨이 차올랐다. 그렇게 20분가량 줄넘기를 했다. 땀이 물 흐르듯 났고 콜라가 먹고 싶어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제로콜라는 괜찮겠지 싶으면서 콜라를 골랐고 참새가 방앗간 들리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햄버거와 삼각 김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운동을 했으니 이 정도는 평소에도 먹는 거니까 당연하게 먹었다. 그때 밖에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전자레인지에 햄버거와 삼각김밥을 돌렸고 콜라 캔을 땄다. 빗줄기는 더더욱 거세졌다. 편의점창문에 비친 멍이든 얼굴을 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영락없이 돼지의 모습이었다. 스스로 인정이라도 한 듯 허겁지겁 먹었다. 입에 들어가는 대로 닥치는 대로 비참해서 꾸역꾸역 넣었다. 나를 때린 광호의 주먹까지도 꿀꺽꿀꺽 삼켰다. 치타가 되겠다는 나의 희망까지도 삼켰는지 모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형은 내방에서 자기로 했다. 형이 바닥에서 난 침대에서.

“아…아냐 그냥 옛날생각이 나서.”

“방학 언제까지야?”

“얼마 안돼. 2주?”

“내일 대회 끝나고 형이 자전거 놓고 갈게. 2주 동안 재밌게 타봐. 아까 보니까 잘 타던데.”

“형은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또 집에 가면 창고신세가 될게 뻔 한데 뭘. 네가 잘 사용해줘라. 나 먼저 잔다. 잘 자라.”

그렇게 형의 자전거는 2주 동안 나의 차지가 되었다. 2주 동안 할 일도 없는데 자전거나 타볼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평소에는 느린 나의 발걸음을 저 날쌘 자전거는 날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해주니까 운동도 되고 어쩌면 살을 빼고 갈 수 있겠구나. 어쩌면 나는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 다음날 형이 놓고 간 자전거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렸다. 마치 아프리카에 사는 치타처럼 빠르게 달렸다. 그래야 바람을 타고 내 냄새가 사라질 것 같았다. 너무 힘든 나머지 침이 입안을 계속 맴돌았다. 누군가 허리를 바늘로 콕콕 찌르고 팔다리가 몽둥이에 맞은 것처럼 후들거렸다. 그래도 페달을 밟았다. 침을 흘리며 목이 메어오면서 까지도 페달을 밟았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어지러울 즈음에 페달을 멈추었다. 온 세상의 욕을 속으로 악을 쓰며 외칠 쯤 진정이 되었다. 근처 벤치에서 쉬었다. 밥을 잘못 먹은 건지 배가 아파왔다. 자전거를 아기 다루듯이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비싸고 세련되고 멋있어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고작 자전거 따위에도 비교당하는 뚱뚱한 빵셔틀이다. 자전거 안장 쪽에 뭐라고 쓰여 있었다.

“치타…”

그때였다.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가던 자전거한대가 무슨 이유에선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자전거는 한 바퀴 굴려져 풀숲으로 빠졌고 타고 있던 아저씨는 맨바닥에 얼굴을 박고 그대로 고꾸라지셨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헬멧도 쓰고 계시지 않아서 쓰러져계시는 아저씨가 불안했다. 아저씨는 신음소리를 내며 온몸을 찡그리셨다. 이마에서는 피가 흘렀고 윗입술이 찢어졌다. 나는 얼른 119에 신고를 했다.

“여보세요…”

어?…나 왜 이러지? 얼른 다친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걸까 나의 뚱뚱한 몸이, 나의 냄새나는 목소리가 다친 사람의 상태를 전달하지 못했다. 늘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고 갈망하며 살았는데 약한 사람들을 돕고 악한사람들을 벌하는 영웅들을 보며 나는 대리만족을 느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 일뿐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영웅은 누구의 기준이며 선과악은 모조리 힘이 센 사람들의 기준이었다.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안에는 온갖 더러움이 들끓었다. 결국 약한 사람은 악한사람이 된다. 이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악한 사람이다.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다. 뚱뚱하기 때문이다.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저…”

“무슨 일이십니까? 위급한상황이십니까? 통화가 힘드신가요?”

“여기 어떤 분이 자전거 타다가 넘어지셨어요. 자전거도로 새꽃마을7단지 앞입니다.”

“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환자분 상태가 어떠신가요?”

“이…이마에 피가 나셔요.”

“출혈이 어느 정도인가요.”

“이마가 살짝 까지셨어요.”

“넵 신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방 출동하겠습니다.”

내 얼굴은 저 먼 하늘에 떠있는 석양처럼 새빨개졌다. 그리고 자동차엔진처럼 심장이 빨라졌다. 허허벌판인 도로를 홀로 거침없이 질주할 즈음 아저씨는 주머니에 뭔가를 꺼내셨다. 담배랑 라이터였다. 다리가 부러지신 건지 어디가 아프신 건지 인상만 쓰시고 담배에 불을 붙이셨다. 한 모금 한 모금 빠실 때마다 인상이 점차 편해지셨다. 마치 담배가 치료제라도 되는 것처럼 어머니가 따뜻하게 차려주신 아침밥처럼 편안해지셨다. 그리고는 입을 여셨다.

“고맙습니다.”

“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다 어쩌면 이 사람을 도와주는 건 인간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일이다. 피를 흘렸고 심하게 넘어 졌… 넘어졌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대원들이 다친 아저씨의 상태를 살피셨다. 어디 아프신 곳 없으시냐고 이곳저곳을 살피시더니 들것에 태워 가셨다. 아저씨는 끝까지 나에게 고맙다 고, 고맙다고 연거푸 말씀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연한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몸에 물은 끼얹었지만 아직도 온몸에 때가 벗겨지지 않았고 지워지지 않았다. 그냥 아저씨의 이마에서 찢어진 입술에서 나는 피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정확히는 타고 싶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나는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질 못했다. 아무래도 안하던 운동을 하니까 부작용이 온 모양이다. 어찌나 아프던지 힘은 안 들어가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 거렸다. 그러다 아침을 먹고 방에서 다시 잠을 자는데 콜라가 먹고 싶어졌다. 이제 막 덥기 시작하는 오전에 머리도 감지 않고 모자를 쓴 다음에 밖을 나섰다. 사실 모자가 뚱뚱해서 어울리는 편은 아니지만 머리 감기는 더 귀찮았다. 나를 좋아하는 아이는 없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아이도 없다. 뚱뚱한 왕따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으니 말이다. 모자를 괜히 썻나 엄청 더웠다. 편의점에 가려했지만 종업원이 여자였다. 나는 대부분 남자종업원인 편의점만 간다. 냄새 나는 내 육체를 여자한테 보여주긴 싫었다. 설사 계산을 안 해주거나 냄새난다고 내쫒으면 그때의 상황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이시간대에 편의점에는 여자알바가 있다. 나는 그냥 마트로 가서 콜라를 샀다. 자전거를 타는 한 무리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내 또래 애들이었다. 여자 2명끼리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그중 한 여자아이가 날 쳐다보았다. 어찌나 예쁘던지 자전거도 역시 그 여자처럼 세련되고 멋있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행여나 늦지 않을까 서둘러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방향은 자전거도로 쪽이었으니 어제처럼 빠르게 달리면 쫒아갈 수 있겠지.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도로로 나왔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날씨도 더운데 뭐 이리 많이 나와 있어.’ 서둘러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도로로 나섰다. 그때 더운 바람이 나를 스쳤고 씻지 않은 역한 땀 냄새가 풍겼다. 내 냄새였다.

“ 하긴 내가 그 사람 만나서 어쩔 거야. ”

그렇게 다시 뒤로 돌아 갔다. 자전거를 끌고 냄새나는 몸을 이끌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냄새를 맡을까봐 일부러 피했다. 그때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야 돼지. 뭐냐? 자전거 네 거냐?”

“와 시벌 나와 봐. 우리 좀 타자.”

나는 자연스럽게 자전거와 멀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녀석들에게 당황한 게 아니라 몸에 나는 냄새 때문에 그 녀석들이랑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건 내자전거가 아닌데 저번에 내 휴대폰으로 게임한다고 가져가놓고 액정을 깨뜨린 적도 내 샤프를 가져가놓고 돌려 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쩌면 저자전거도 나를 빠르게 달리게 해줄 수 있는 저자전거도 저 녀석들이 가져가거나 망가뜨릴 수 있겠구나. 자신들의 자전거보다도 더 멋져 보이는 것을 내가 갖고 있으니 눈이 안 돌아가는 게 이상할 것이다.

“그 자전거 내거 아니야.”

“무슨 개소리야 이거 페달 왜 이따구야. 야 광호야 이거 페달 바꿔서 탈수 있지 않냐?”

“어 그냥 바꾸면 돼.”

결국 저자전거의 주인은 바뀌겠구나.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이거 내자전거 아니야. 우리 형 거야.”

“너 형 있었냐? 근데 어쩌냐 나는 이놈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한 일주일만 내가 타고 돌려줄게. 어때?”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푸른색과 새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저자전거가 저 녀석이 밟는 페달에 움직일 거라 생각하니 동정심인지 분노인지 저자전거를 반드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후 야 이 돼지새끼 안 씻었나봐 쉰내나.”

광호가 자전거 위에 올라타자. 나는 달려가 광호의 옷덜미를 잡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었다. 맞으면 엄청 아프겠지.

“이 시발새끼가 뒤지려고.”

광호는 나를 잡고 때렸다. 주변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달려들었다. ‘학생! 지금 뭐하는 거야.’ ‘아씨발 넌 다음에 뒤졌다.’

“학생 괜찮아?”

머리를 크게 내려친 것 말고는 맞은 곳이 없었다. 평소보다도 덜 맞았다. 또다시 몸에서 땀 냄새가 주변사람들과 함께 풍겨왔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나는 서둘러 자전거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역한 냄새가 또다시 풍겨왔다.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온몸에서 나는 악취를 맡으면 변할까봐.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순간의 감정과 행동으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나를 도와주려했지만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도리어 나를 피하거나 때리지 않을까. 반 아이들처럼 냄새난다고 피하고 같은 짝이 되는 것조차 혐오스러워 하는 표정을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다. 모든지 처음이 힘들다고 했다. 여러 번하면 익숙해진다고 혐오스러워하는 표정은 수백 번 , 수천 번 보았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숨고 싶어진다. 같은 연도에 태어나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데 왜 나에게만 다른 숨을 쉬게 하고 다른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 속에 자전거가 비춰졌다. 나와는 다른 냄새가 나는 녀석 제아무리 기계라고 하지만 아마 사람들은 나보다 이 녀석을 더 아끼고 소중하게 다룰 것이다. 나는 이자전거가 미웠다. 하지만 나를 위로라도 하듯 한번 미친 듯이 달려보자는 말이 들렸다.

“다… 달리자고?”

나는 페달에 발을 올리고 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더운 바람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냥 미친 듯이 달렸다. 이 녀석만 믿고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줄 것을 굳게 믿었다. 미친 듯이 밟았다. 그러자 광호와 민수가 보였다. 멀리서 더운데도 페달을 밟고 있었다. 지친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냥 페달을 세게 밟았다. 더운 바람이 스칠 때 마다 나의 냄새는 바람을 타고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민수와 광호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광호와 민수를 앞질렀다는 기쁨과 동시에 무엇을 밟은 건지 그 아저씨와 같은 곳에서 나는 넘어졌다. 아픈 건 잘 모르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듯했다. 나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게 해준 치타. 내이마를 쓸어내리는 듯했다. 그때 어렴풋 보였다. 내게서 나는 악취는 내 몸에서만 나는 악취가 아이었다. 내가 맞을 때 같이 찢어진 윗도리를 들춰보니 검고 썩은 무언가가 보였다.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곪을 때로 곪아서 구더기가 득실댔다. 손을 대니 엄청쓰라렸다. 마치 수명이 주는것같은 느낌이었다. 치타는 내 몸 안에 박혀있는 구더기 가득한 물체에 혀로 구더기를 하나씩 떼어주었다. 구더기가 모두 떨어지고 나는 눈이 또다시 감겼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인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내 온몸에서 악취가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악취는 도리어 내 몸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웠다. 분명 치타를 타고 달리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리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러면 치타는 어떻게 된 거지? 치타는 나와 같이 넘어졌다면 분명 나의 악취에 휩 쌓여 괴로워했을 것이다.

“승근군 이거 보여요?”

내 눈앞에 빛나는 무언가가 왔다 갔다 했다. 분명 눈은 떴는데 온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아파오기보다는 저려왔다.

“ 깨어났네요. 다행입니다. 위기는 넘겼어요. ”

“감사합니다.”

아마 엄마의 목소리였던 것 같다. 산소호흡기. 생각보다 불편하다. 내 몸에 두꺼워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 아니 엄마의 목소리는 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있었다. 별나라에서는 신비 향기가 났다. 이 기차가 왜 우주를 누비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역에 내리니 개찰구를 넘어서자마자 자전거가 서있었다. 벽이든 사람이든 어느 곳에 기대있어야 하는 자전거가 허공에 똑바로 서있었다. 마치 나에게 타라고 하라는 듯이 서있었다. 치타처럼 빠르게 그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지가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빠르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어 보였다. 나는 페달위에 발을 올렸다.

“승근아 정신이 들어? 야 의사 불러와봐.”

어? 분명 페달위에 발을 올렸는데. 왜… 그리고 지금 입원실인 것 같은데 왜 이 녀석들이 내 앞에 있는 거지? 말도 안돼. 나는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갔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날까봐. 최대한 옷을 이불속으로 숨겼다.

“ 정신이 들어? ”

머리에는 깁스가 되어있고 몸에도 몸 구석구석이 온통 붕대로 감싸져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아니 잘못을 했다. 냄새가 났기 때문에 그로인해 이 녀석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나는 미안해 라는 말을 하루에도 50번 이상씩 했다. 미안하다고도 안하면 더 맞으니까. 그런 나였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이 녀석들을 용서해 주고 싶었다. 눈물이 난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 왜 울어. 아파? 어디 아픈데.”

이해가 안갔다. 내게 왜 이렇게 살갑게 구는지. 의사가 와서는 간단한 테스트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 녀석들은 내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 의미를 나 스스로 해석하고 넘겼다. 내게는 지금 치타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치… 아니 자전거… 어디 있어? ”

“그거 앞바퀴 망가져서 우리 돈으로 바꾸고 여기 1층에 세워놨어.”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른쪽다리도 맛이 간 건지. 붕대로 아주 두껍게 해놓았다. 그렇게 나는 휠체어에 타서 1층으로 갔다. 이 녀석들의 조금은 반가운 걸음으로 단숨에 1층으로 갔다. 치타가 있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내 마음을 내 냄새를 알아준 치타를 보고 꼭 껴안았다. 절대 안 놓을 거다. 절대로 안 놓을 거다. 내 모든 물건을 팔아서 사촌형한테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