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박예리(고양예술고 1)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요. 아직까지도 유리와 플라스틱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물이 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요. 그것도 제게 깨나 충격이었는데. 설마 제가 일부러 지유를 밀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제 손이 아직 젖어 있겠죠. 지서는 무얼 하고 있나요. 화를 내고 있나요? 그렇다면 정말 염치가 없는 건데…. (물론 제 실수는 맞아요, 악법도 법이지요. 그럼요.) 객관적으로 말하라니요, 제가 지서 일에 어떻게 객관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어요. 지서가 제게 어떤 의미인데. 아시잖아요, 선생님들도 대충 누가 누구랑 친한지 간단하게나마 파악하고 있지 않나요?

저랑 지서는 오랜 친구예요, 아시잖아요. 학기 초에 학생을 알아가겠다며 온갖 개인 정보와 부모님의 직업이라든지 친한 친구 이름들 다 물어보시니까. 물론 그거 다 얘가 왕따를 당하진 않나, 밥을 굶고 다니는 건 아닌가. 그런 간단한 형편만 파악하기 위한 용도인 건 알아요. 거기 아이들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쓰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도 형식적인 가정란이라도 보면 저를 다른 애들보다 유난히 꼼꼼하게 살펴보셨겠죠. 보통 그렇잖아요, 돈 없으면 무시하고, 아주 나쁜 케이스로 잘못된 길에 들어서거나 되려 괴롭힘을 당한다고들 생각하니까. 그것도 편견이지만 걱정하는 게 당연해요. 물론 저는 보시다시피 멀쩡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네? 하긴, 정말 멀쩡하다면 이렇게 선생님이랑 마주 앉아서 상담할 일도 없겠죠.) 또 하나 넘겨짚자면 그런 설문지에 저처럼 성심성의껏 대답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거기에 구구절절 어울리지도 않는 부잣집 자식 지서랑 어쩌다 친구가 됐고 어떻게 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는지 써둔 걸 다 기억하실 거라 믿어요. 모르시겠다고요? 담임 선생님께서 그래도 되나? 아뇨,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꽤 잘 했거든요. 딱히 열심히 하지 않아도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컴퓨터 게임은 어릴 때 이미 질리도록 해서 다른 애들처럼 엄한 데 빠질 정신도 없어서인지, 쉽게 좋은 점수를 받았어요. 물론 초등학교 공부는 다른 공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지만요. 재수 없이 들리나? 덕분에 거기서 제가 공부하겠다는 동기를 얻었죠. 아마 그 때가 아니었다면 공부하라 시키는 사람 없는 제가 어떻게 공부를 계속 해왔겠어요.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저는 다들 돈 벌러 나가서 맞아주는 사람도 저녁밥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 집에 가는 대신 돌봄 교실, 그런 걸 신청했어요. 사실 제 의지로 신청한 건 아니고 어린 애 혼자 집에 남겨두는 게 영 양심에 찔렸던 부모님이 옳지 싶어서 학교에 떠맡겨버린 거지만요. 어떻게 돼도 저는 별 상관없었어요. 집에서는 제가 뭘 해도 상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좋고, 학교에서는 제가 뭘 해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좋았으니까요. 약간의 의무감과 기대를 한껏 품고 돌봄 교실에 처음 찾아간 날에요. 저는 거기에서 저랑 비슷하게 애정과 관심 주는 사람은 없는데, 저랑 다르게 대신 공부하라고 시키는 사람은 있던 지서를 만났죠. 돌봄 교실에서 동갑인 친구는 지서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는 해요. 하지만 다른 애가 돌봄 교실을 다녔더라도 저는 지서를 선택했을 거예요. 알잖아요, 그렇게 잘 먹고 잘 입고 다니는 애들에게서 풍기는 귀티라든지, 본능적인 고상함. 고작 아홉 살이 무슨 고상함을 가졌냐고 묻지 마세요. 애들은 애들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사실 그때 지서가 저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부끄럽기는 했어요. 그 어릴 때부터 지서는 수발 들어주는 사람이 다 있었고 저는 꾀죄죄한 운동화에 머리는 까치집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지서가 초등학교 때부터 명문을 다닐 수도 있었지만 ‘서민’으로 사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집안의 누군가가 주장했대요. 덕분에 대놓고 더럽다든지 상처 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숨길 수 없는 꺼림칙함만은 제 눈에는 다 보였어요. 그때부터 혹시 지서 눈에 벗어나지는 않을까 머리 단정하게 빗고 운동화는 새로 사달라고 졸라서 혹시 먼지가 묻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걷는 생활을 시작했죠. …너무 드라마에 나오는 저소득층, 기초수급자 집안 아이 같나요?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그때보다 사정은 나아졌고 배려도 많이 받으면서 자랐으니까요. 지서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뭐, 이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초중학교에서 항상 전교 1등과 2등을 나란히 차지하며 좋은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지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당연하게 서로만이 자신에게 걸맞은 라이벌이라 엎치락뒤치락하며 같이 올라가는…. 말하자면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 같은 사이요. 어른들이 좋아하는 친구관계죠. 게다가 저는 나쁜 데 눈도 안 돌리고, 그러면서도 돈은 없어서 괜한 사교육 받아가며 자기 자식보다 잘 할 일은 없는 애잖아요. 지서도 마찬가지예요. 가끔 학원도 안 다니는데 어떻게 점수가 그렇게 나오냐며 미묘하게…부러운 듯 보였으니까 말이에요. 그래도 지서는 자기 안 푸는 문제집이나 다 푼 문제집은 항상 제게 줬어요. 그거라도 없으면 학원 다니는 자기와 혼자 공부하는 제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날 거라 생각했대요. 그 말 때문에 제가 더 만년 2등 타이틀에 집중하기도 했죠. 항상 자기보다는 더 못했으니까 지서도 열등감을 가질 시간은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아쉽지는 않냐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데 걔는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역사 뺑뺑이 안 도는 학원이 없잖아요. 그런데 2등이라도 해봐,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어요. 지서는 자기가 딱 그 자리, 1등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애니까요. 사실 제가 마음만 먹었으면 지서 이기는 건 껌도 아니에요. 일부러 한두 개 틀리는 게 더 어려웠는데, 지서 문제 틀리는 유형이 항상 비슷비슷해서 다행이었죠. 한 번은 3등으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어요. 그때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요. 지서를 이긴다…. 저는 지서랑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지서 옆에 있으면 떨어지는 콩고물도 있고.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빛나거든요, 지서는. 언젠가 크게 될 사람이에요. 전 그런 지서를 믿어요.

서론이 길었네요. 아무튼 문제는 생물 시간이었어요. 왜, 그 유난히 애들 좋아하는 선생님이요. 맨날 힘들지는 않냐 물어보고, 공부하느라 힘든 너희들을 위해 이번 수행평가는 즐거운 걸로 준비했다! 입시에 찌들어 사는 고등학생에게 자기가 구원의 손길 내지는 삶의 숨통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 선생님이요. 오히려 그런 면이 더 짜증스럽긴 한데 제 점수 쥐고 흔드는 사람에게 별 수 있나요? 비위나 맞춰야지. 어쨌든 그 선생님이 각자 물고기 하나씩을 사오라고 했어요. 크기를 재서 가장 잘 기른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겠다. 공부에만 빠져 사는 너희들이 이 작은 생물과 교감하면서 느끼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명분은 그런 식이었죠. 반발이 꽤 컸어요. 뭔가 오해들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우리에게는 시험지 하나 던져주고 외운 거 다 써라, 하는 편이 더 쉽거든요. 물고기가 어떻게 자랄지, 운 나쁘게 제 손에 길러진 금붕어가 하필 허약한 놈은 아닌지 미리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뭐, 선생님 말씀을 거스를 수 있나요. 선생님은 학교의 절대자잖아요.

그래서 어찌어찌 수행평가가 진행되었어요. 아, 물론 찢어지게 가난한 저는 오지랖 넓은 선생님께 미리 귀띔을 해서 공짜로 플라스틱 어항과 새끼 구피 한 마리를 받았답니다. 찾아보니 구피 한 마리 제대로 키우려면 온도계니 뭐니 필요한 게 많던데 거기까지 생각할 정신이 있었겠어요. 오늘도 한 명의 학생을 구원했구나, 착각하시지만 않았으면 좋을 텐데요. 혹여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어항을 넘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어항들은 모두 과학실에 안전하게 놓아졌고요. 보셨으면 감탄하셨을 텐데. 형광등 불을 끈 과학실의 유일한 빛은 두꺼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었어요. 그 햇빛은 마흔 개 어항의 굽은 표면을 따라서 굴절되고 일부는 반사돼 바닥에 기묘하게 일그러진 문양을 그려냈지요. 물고기들은 간간이 볕이 드는 중심을 향해 몰려들고, 그러다 보면 그 색색의 비늘들이 제각각 하늘거리면서도 일정한 박자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어요. 감상에 젖은 누구는 아름답다고도 하고, 누구는 섬뜩하다고도 하고. 저는 그런데 그 모습에 눈이 잘 가지 않았어요, 아니, 돌릴 틈도 없었죠,

지서의 물고기가 아름다웠거든요. 다른 애들이 사온 건 구피나 금붕어로 대형 마트에서 싸게 주고 산 거기서 거기에 지나지 않는 물고기였어요. 아마 관심 없는 애들은 그 많은 어항 틈에서 어떤 게 자기 물고기인지 알아채지도 못할걸요. 그 와중에 어디 고급 매장에서 사들인 지서 물고기가 눈에 띄지 않을 턱이 있나요. 유난히 도드라지는 지서 물고기는 종이 베타라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색이 꽤 다양하더라고요. 그 베타는 파란색이었는데, 영원히 그 색만은 못 잊을 거예요. 베타라는 물고기 종을 들으면 당연히 지서의 베타가 기억날 정도로 여운이 짙은 색이었거든요. 그 색에 얼룩이 하나 졌다, 그러면 조금 과장해서 그 사람은 사형감이에요. 누구도 침범하면 안 되는 깊은 파랑… 귀족적인 색이었어요. 지느러미는 또 어때요. 골지인데 비단으로 만든 골지가 있다면 그런 느낌일 거예요. 물고기 몸집은 작은데 지느러미는 커다란 부채꼴 모양이었어요. 하나하나 섬세하게 주름이 잡혀서 물살을 가를 때마다 빛을 반짝이면서 넓게 펴지고, 방향을 바꾸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침하게 접히는 지느러미였죠. 미술 시간에 색의 삼원색이 빨강 파랑 노랑이라고 하잖아요. 빛을 받으면 베타는 그 파랑, 눈이 부시도록 완벽한 원색으로 빛났어요.

반 애들이 다 베타를 구경했어요. 감히 누가 지서의 베타 앞에서 눈길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모두가 예쁘다, 그렇게 감탄하면서 베타가 든 둥근 어항을 둘러쌌고 지서는 몇 걸음 물러서 있었어요. 아마도 기뻐했던 것 같아요. 제 또래 애들이 다 그렇잖아요, 관심 받으면 좋아하고, 칭찬 받으면 더 좋아하고. 지서도 공부 잘하고 어른스럽다고 말들 많지만 어쩔 수 없는 고등학생인가 봐요. 그래도 집에서 오냐오냐하면서 자란 탓인지 걔랑 있으면 가끔 저보다 어린 애를 본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니까요. 은근슬쩍 자기 비싼 물건 과시하기도 하고 못 사는 거 뻔히 알면서 외식한 지 오래됐다, 그런 말 하면 대놓고 놀란 표정이나 짓고. 그런 게 꽤 짜증나기는 해도 참아야지요, 지서에게 그만한 가치는 있으니까요. …어쩐지 저한테 더 그러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러면 지서네 집에는 이런 물고기들 많겠네? 부럽다.

아마도 베타를 구경하고 있는 무리 중 하나가 한 말이었을 거예요. 그 말에 지서는 조금 들뜬 모양인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동의를 구하듯 제 쪽을 돌아보더라고요. 사실 몇 번 가 본 지서네 집은 물고기는커녕 사람 인기척도 없어서 쓸쓸했거든요. 웃기는 일이지만 그 정도 못 맞춰주겠어요. 저는 따라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어요. 지서가 마음만 먹으면 물고기 몇 마리 사는 건 쉬운 일이니까… 아예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에 커다란 어항도 있는데. 거기 베타랑, 물고기 많으니까 나중에 놀러와.

웃기지 마. 베타는 한 어항에 두 마리 이상 못 키워.

지유였나. 평소에도 물고기를 좋아하는 애였어요. 수행평가에 가장 반대하기도 했죠. 다른 애들이 점수를 걱정했다면 지유는 거기 쓰였다가 버려지는 물고기들을 걱정했어요. 윤리적으로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수 없잖아요, 혼자서 착한 척하는 게. 어쨌든 지유의 그 말은 빈정거리는 투여서 아이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지유가 도를 넘지 않았나 싶어요. 상냥하게 말해줘도 지서는 다 이해해줬을 텐데. 지서가 관심 받는 게 부러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스트레스 받는 거 몰라? 베타는 혼자서밖에 못 살아. 아무리 일회용이라고 생각해도 그 정도는 검색해봐야지. 키울 수나 있어? 플레어링은 어떻게 할 거고, 너 같은 애가 일일이 똥 치우고, 온도 맞추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차려, 너한테는 그냥 수행평가 잘 보겠답시고 예쁜 애 데려온 걸지도 모르는데 생명이야.

다 알아, 하면 될 거 아냐!

그럼 플레어링이 뭔지 설명 해봐.

지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유를 노려만 보고 지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둥 혼잣말만 하다가 과학실을 나가버렸죠. 괜히 싸해진 분위기에 무리지어 있던 아이들도 하나하나 교실로 되돌아갔어요. 저는 거기 남아 잘 키울 거라고, 너는 다 잘하니까. 그렇게 지서를 응원해주고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다른 아이들을 따라 나갔죠. 그때 지서는 어땠을까요, 과학실이 어두운 탓에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화를 내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침착하게 어떤 방식으로 지유를 엿 먹일지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지서는 뭐든 확실히 되갚아주고 싶어 하니까요. 깔끔해서 좋죠. 저는 괜히 착한 척 한다고 더 내주겠다는 사람들이 싫어요.

그리고 별 다른 일은 없었어요. 으레 그렇듯 아이들은 처음 며칠만 꾸준히 밥을 챙겨주었죠. 어항에 코를 박고 물고기가 자기 눈을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걸 구경하면서요.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쏟아두고는 나중에는 물고기가 알아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기라도 한 줄 아는지 먹이를 잔뜩 뿌려두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릴 정도였지요. 몇 아이들의 물고기가 역시 밥이 문제였는지 아님 애초부터 허약했는지 허옇게 눈을 뜨고는 수면 위로 둥둥 떠다녔어요. 하나하나 부패해가는 물고기 몸을 보는 게 꽤 고역이어서, 수행평가에 신경 좀 쓴다 하는 애들은 일부러 그 어항들만 햇빛도 들지 않는 구석으로 밀어두었어요. 며칠도 살지 못하고 죽은 그네들의 물고기에게 애도를. 다른 것들은 충실하게 자랐어요. 제 물고기는 조금 비실비실했고 지서와 지유의 것은 제법 몸집을 불려갔지요.

이 주가 되어가는 토요일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좁은 어항을 더욱이 느리게 헤엄치던 제 구피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물이라도 갈아줄 겸 학교를 찾았어요. 이게, 과학실에 위험한 약품도 있고 하니까 과학실 열쇠를 찾아갈 때 자기 이름이랑 시간을 적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근데 마침 제 이름 위에, 오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전에 지서가 자기 이름을 써뒀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길이라도 엇갈리면 다시 헛걸음해야 하니까, 또 반가운 마음에서 헐레벌떡 과학실로 찾아갔죠.

문을 확 밀어 열자 지서는 꽤 놀라더라고요. 평소보다 더 화들짝 놀라 말까지 더듬길래 저는 베타에게 집중하고 있었는데 방해한 건 아닌지 미안했어요. 금방 물을 갈아준 걸까 손이 물에 젖어 있었는데, 하마터면 제게 그 물이라도 뿌릴 뻔 했다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금방 베타와 정이 든 모양이구나 싶었죠. 저와 지서는 딱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물을 갈고 바로 돌아갔고, 지서는 플레어링인가 뭔가를 한다며 더 남겠다고 했고요. 아마 지유가 한 말이 신경 쓰인 모양이에요. 굳이 지유가 아니더라도 지서라면 빈틈없이 했을 테지만요.

다음은 뭐, 선생님도 그 자리에 계셨잖아요. 지유가 월요일에 학교에 오자마자 지서에게 달려들었어요. 자기 물고기가 죽었다면서. 화상을 입어 죽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 만진 게 분명하다고요. 분명하다라, 꼭 자기가 부검 전문가라도 된 것 같죠. 지유가 그렇게 주장하니 저는 지서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으니까 지서 편을 들었고요. 그리고는 흥분해서 말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지유는 네가 지서와 친한 걸 다 안다며 저를 밀치고 과학실로 뛰어 내려갔어요. 친하다, 그 말이 꽤 듣기 좋아 뒤따라가길 망설였던 걸 후회해요. (어쩔 수 없어요. 남들 눈에 그렇게 친해 보였다면 지서가 저를 내치기가 더 힘들어질 거니까요.) 그랬다면 걔가 베타를 어항에서 꺼내 움켜쥐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 마침 하얗게 비치던 아침 햇빛 아래서 새파란 비늘과 하얗게 질린 지유 손의 대비가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어요. 그날따라 더 커 보인 베타가 지유의 손 안에서 꿈틀거렸어요. 그렇다 쳐도, 베타를 삼켜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에요. 그것도 한 입에. 그런데 이상하죠, 빛을 받으면 더 새파랗게 보이던 지서의 베타가, 어쩐지 그때만큼은 초록색으로 빛났던 것 같아서요. 제 눈이 이상한 걸까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기억이 왜곡된 걸지도 몰라요.

어쨌든, 지유는 아마 길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회까지 날려버리고 싶던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제 생각에 지유는 지서의 수행평가를 망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어요. 전에는 물고기도 생명이니 뭐니 설교를 늘어놓았으면서, 결국 걔도 점수를 얻을 생각만 했나 보죠. 그 치졸함이나 이기심, 그것만은 참을 수가 없어서요. 저는 곧장 지유에게 달려가서 어깨를 밀쳤고, 불행히도 거기 어항이 있었을 뿐이에요. 이건 단지 사고였어요. 지유를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어요. 지유의 비명과 함께 균형을 잃자 하나의 어항이 밀쳐 넘어지고, 그를 따라 다른 어항이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깨지고, 물이 쏟아지고, 금붕어 지느러미가 어항 파편에 베이고, 지유의 손에서는 피가 나고… 물고기가 소리를 지를 수 없는 게 다행이지 뭐예요. 아마 물고기들에게 성대가 있었다면 그들이 내는 비명이 불협화음이 되어 과학실이 꽤 소란스러웠을 거예요. 바닥에 쏟아진 그 온갖 금붕어들과 구피들의 지느러미가 질서 없이 퍼덕거렸어요. 물속에서 일정하게 하늘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죠. 베타를 잃은 게 슬픈가. 우습게도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런 생각이 났어요. 베타가 마치 대장 같아서. 그 베타는 주인을 쏙 빼닮아 처음 크기의 두 배가 될 정도로 빠르게 자랐거든요. 사실 물고기가 그렇게 빨리 자랄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마 지서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겠죠. 지서는 이런 부분에서도 언제나 놀라움만 주네요.

 

지유는 많이 다쳤나요? 제 책임도 있어서 괜히 미안하네요. 하필이면 다친 게 오른손이라서…. 선생님, 저는 물론 지유를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어요. 모두 사고였어요. 제가 지유의 병원비라도 물어주어야겠죠? 어쩌면 좋나. 지서가 도와줄 수 있을까요? 도와줄 거라 믿어요, 제가 다 지서를 위해서 한 일이니까. 아무튼, 그래도 베타를 잡아먹은 건 너무했어요. 지유의 물고기가 죽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수행평가는 지서 점수가 높았을 텐데 말이에요. 제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서가 수행평가 1등을 받지 못하면 …글쎄요, 이미 그 평가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가 조금 이상한 걸 봤거든요. 이건 다른 아이들에게 비밀로 해주실 수 있나요? 지서를 만난 그 토요일에 물을 갈고, 다시 배수대에 물을 부었는데 잘 내려가지 않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서 수챗구멍을 살피는데, 거기 파란 지느러미 조각이 걸려 있었어요. 파란색 물고기는 하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지서의 베타는 건강하게 헤엄치던 걸요. 베타라는 확신도 없고. 그래도 여타의 물고기 시체와 다르게 허옇게 변하지도 않았고, 어쩌다 물고기가 거기 뛰어들어 지느러미만 남긴 채 쓸려 내려간 것처럼 빛이 선명했어요.

아냐, 그냥 무시하세요. 제가 헛것을 봤을지도 모르잖아요. 물질적인 증거도 없고, 맞아요. 제가 지서를 질투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저 같은 애가 어떻게 지서를 질투하지 않고 배겨요. 다 가졌잖아요, 지서는. 사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이고 다른 사람들이 지서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런 애들일수록 구린 게 많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는 몰래 지참금을 드리기도 했고, 아. 제 말을 혹시 다 믿으시는 건 아니죠? 그래도 이런 말 했다고 지서에게 이르지는 마세요. 선생님도 지서가 준 돈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제가 뭐라 하든지 지서는 언제나처럼 아무 벌도 받지 않을 걸 알아요. 그러니까 그냥 흘려들으세요, 그냥 다 애들 장난이에요. 애들은 다 싸우면서 크니까…. 수행평가도 조만간 새로 보겠죠. 원성이 자자하겠지만 물고기 사느라 쓴 돈은 아마도 지서 쪽에서 대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걸요. 다 그런 거예요. 받아들이세요. 지서는 절대로 지지 않거든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지서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죠. 그게 제가 지서와 잘 지내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점점 지서가 베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찬란한 파란색을 띠고,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그런 독보적인 존재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유가 베타를 삼키던 모습만 자꾸 생각나지만 그건 모두 사고였으니까요. 베타는 아름다워요. 그리고 그 모든 베타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존재… 독보적인 베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지서일 거예요.

 

수상 소감

기대도 못한 수상이라 더 벅차고 기쁜 마음입니다. 소식을 전해 듣고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얼떨떨하고 정말? 하는 의문이 듭니다. 사실 공모전이나 백일장 결과에 백 퍼센트 실력만이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글을 쓸 때의 컨디션이나 주제의 선정, 함께 공모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변수가 됩니다. 아주 작은 요철이라도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믿어요. 물론 우연히 상을 탄 건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운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심사평은 달고도 썼습니다. 하지만 쓴 말이야말로 성장의 밑거름이겠지요. 특히나 생각이 모여 소설이 된다는 심사위원님의 말씀은 앞으로도 글을 써나가며 계속하여 곱씹게 될 것 같습니다. 머무르지 않고 계속하여 나아지고 깊어지고 싶어요. 상상력도 ‘동’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이런 큰 상을 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수상자분들도 축하드립니다. 아쉽게 수상하지 못하신 분들도, 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서로 좋은 글로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구대학교 청년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