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김상희(고양예술고 1)

 

어머니는 파인애플의 머리카락을 잡고

그을린 피부에 칼을 꽂았다 불경기에

파인애플이라니 너희 아버지도 참, 나는 자투리를

입에 넣고 한참을 빨았다 용돈이 부족하다는 말

대신 피 빨아 먹는 거머리처럼 파인애플

자투리에 달라붙어 한참을 먹었다

 

무겁게 빌라 계단을 오른 것이 무색하게

손질 한 파인애플은 중년의 아버지를 닮아있었다

알맹이는 별게 없네 그러게요 너무 작아요

아버지는 떠오르는 달처럼 어두운 집안에서만

빛이 나고 있었다 낮이 오면 현관문 밖으로

사라질 이름이었다

 

돌연 파인애플을 잘라 혀 위에

올려놓은 어머니, 왜 그러세요?

혓바늘이 생겨서 그래 아버지가 또

힘들게 해요? 어머니는 그 작은 혓바늘 속에

굴절하는 햇빛처럼 목적 잃은 서러움을 얼마나

넣어 놓았을까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버지의 그을린

등이 혀 위에 올려둔 파인애플처럼

집안 곳곳에 혓바늘을 만든다

수많은 아버지의 이름이 혓바늘 속에

숨어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버지가 물에 밥을 말아먹기

시작했다 집 안에 숨어있는 아버지가

시려워서 겨울이 온다

수상 소감

 

이번에 당선된 작품 [파인애플]은 올여름, 기숙사 침대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벽면에 비추는 친구의 그림자를 감상하며 썼던 작품입니다. 사회에서 도태되어 점차 집안에서도 설자리를 잃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싶었던 와중에 파인애플이라는 소재를 떠올리게 되었고 짧은 시간에 써 내려갔지만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게 아버지가 꼭 그런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밉고 이별하고 싶지만 애정하고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에 잡아먹히는 것 같아.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파인애플을 쓴 다음 날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욕실 앞에서 어머니에게 한 말이라고요. 저 말을 뱉기까지 얼마나 고민하셨을까요. 말을 뱉고 들어가 씻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래서 저에게 이 시는 불효이기도 합니다.

지독한 가부장제의 집안에서 아버지는 굳건하시고 저는 평생 그것을 못마땅해 하며 컸지만 가부장제에 가장 이용당하고 결국에 버려지는 것은 아버지들이 아닐까요. 제 마음 한편엔 늘 사회에서의 지위를 잃고 가정에서도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꼭 바람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마음도 가부장제를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저의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이겠지요.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그것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를 한 번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웠던 마음과 때때로 떠올렸던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이 시에 담아 다시는 꺼내지 않으려 합니다.

 

제 시를 읽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 그리고 대구대학교 청년문화진흥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겸손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시를 쓰겠습니다. 고통이 기대가 되어 돌아오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기대가 고통이 되어 돌아오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대학교 청년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