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나무 할머니

이소현(제주 함덕고 3)

할머니는 고목나무 나이테를 몸속에 심어요

 

십칠 년을 쪽방촌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열여섯 번의 여름동안 그리운 것은 빨간 소방차라며

오래된 선풍기가 기침을 토해낼 때마다

어린 아버지를 삼킨 불꽃이 자신의

굳어가는 몸도 삼킬 것만 같다고 했어요

 

척추에 새겨진 세월과 잃어버린 꿈의

개수를 세는 동안 시간을

찢어 봉분처럼 쌓는 할머니는

삼십 만원 수급비로 이십칠 만원 월세를 내고 나면

칠 만원으로 한 달을 끌고다녀야 해서

칠십 둘 흔적의 몸으로

녹슨 리어카를 끌고 다녀요

 

아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누런 콧물이 묻은 천 원 한 장이 아까워

손녀의 새우과자라도 사 주는 날이면 하루의

창자를 꼬박 묵히는 할머니는

물먹은 종이처럼 늘어지는 피부의 결마다

세월의 홈을 심어요

 

타들어가는 걱정의 할머니의 심장은 오후 두 시의

온도를 닮은 삼십칠 점 칠 도입니다

 

오늘은 영등포에서 리어카를 끌다 쓰러진 허

영감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에요 차마

부조금은 낼 수 없으니

자꾸만 가벼워지던 통장을 비추는

간드레 불빛은 허망한 누런색이고

뜨거운 여름에 몸을 지지는 동안 할머니의

등에는 붉은 연꽃이 피어나고

열꽃은 새로운 나이테를 새겨요

오늘 밤에도

수상 소감

쪽방 촌에는 유난히 가을이 빨리 쏟아져 내리고는 해요. 겨울을 몰고 오던 가을. 가을의 바람은

조금 서럽고 기침을 토해내는 선풍기는 더디게 창고로 밀려나는 중입니다. 하늘은 이제 노을을 닮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요. 할머니의 척추는 아직도 그 자리고 할머니를 따라 늙는 법을 배우는 나의 척추는 이제 조금씩 생채기가 나고 있어요. 언젠가는 고목나무처럼 늘어진 주름을 안고 살아가겠죠.

한없이 우울하고 관념적인 것들이 좋은 나는 미친 망아지 같아서 목줄이 풀리면 도망 다니고 있어요. 나를 팔아버리고서는 타인은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하고 해석할 수 없는 시들을 끼적여 놓고는 다음날이면 명확한 낱말들만 주워 담아요. 벌써 지친 나이에는 아물지 못한 상처가 부유하는데 아직 어린 나이라서 반짝이는 스티커를 모아 노트에 천천히 붙이고는 합니다. 묶은 낱말들은 바꾸고 싶지 않아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숨을 고명으로 얹은 타박을 삶아 내어놓아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은 건 어리다는 증거라던 할머니의 말을 기억해요. 하지만 지나온 시간이 무서워 색안경을 끼고 춤을 추고 있어요. 힙합 노래를 틀어놓고 밟는 재즈 스텝. 섬나라에 갇혀 있기 때문일까, 비행기나 배를 타는 설렘으로 흰 종이에 이야기들을 풀어놓아요. 언젠가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열망은 커져 가는데 시는 쉽게 커지지 않아 걱정스럽기도 하면서도 다시 걱정을 손에서 탁, 풀어놓는 것입니다.

수상소감을 적는 장이 많으니 오랜만에 나를 탐독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수상소감, 나에게 그것은 나를 돌아보고 실컷 풀어내는 장소입니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 사진 찍는 것과 영상을 만들어 저장해 놓는 일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놀이동산을 좋아하면서 동물원에 대해선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귀신은 무서워하면서 잔인한 영화는 잘 보아요. 나를 감추고 싶어 단어들로 가장 여린 부위에 타투를 하고 화장을 하고는 해요. 먹는 걸 좋아해서 요리와 맛집 탐방을 취미로 합니다. 책읽기보다 리뷰 쓰는 걸,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는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외로움을 잘 타서 봉사활동을 하고는 했고, 꿈은 국어 교사이면서 대학은 이과에 지원해놓고는 땅만 발로 짓이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연예인이랑 결혼하는 것이 꿈이라 좋아하는 연예인을 화면으로 쫒으면서도 또 그들의 밝고 활기찬 노래보단 어쿠스틱한 노래들을 좋아하는 원초적이고, 단세포적인 아이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과 슬픈 동물들, 세계의 인권을 위해 커다란 봉사단체를 만드는 것과 뷰티 크리에이터 및 패션디자이너, 여행 사진작가이자 동시, 청소년 시, 웹소설을 창작하는 유명작가, 맛집 및 요리전문 파워블로거, 그리고 연예인과 결혼하는 걸 꿈꾸고 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눅눅한데 이런 긴 수상소감과 나의 단상들을 적어내릴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대구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님이신 강민건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머니의 등에 피어난 붉은 연꽃은 지게 자국이고, 아픔이고, 슬픔이지만 지금까지 세월을 버티게 해 준 삶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잉여의 생산’작업이 무엇보다 즐거운 이유는 아직도 토해낼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저를 앞에서 응원해주시면서도 제 시를 쓰레기라고 말해주시는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묵묵히 노려봐주시는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려요. 그런 말들과 차가운 눈빛이 제 암울한 시의 원동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No more dream, 저는 더 이상 바랄 꿈이 없음에도 Run, 쉬지 않고 달려 나가고 있어요. 앞으로 더 정진하고 슬픈 시들을 꽃잎 피우듯이 피워내렵니다. 나의 피땀눈물을 담아, 내 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I Need U, 나는 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루만, 돌아보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Mic drop, 이제 마이크를 떨어뜨리고 나는 제 이야기를 내뱉습니다. 3년간 지원한 대구대학교 전국 고교생 문예작품 공모전이 이제야 결실을 맺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고민보다 고, 고민하지 않고 성장하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나의 40명의 천사들과 하나의 선녀에게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구대학교 청년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