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호관 교수(특수교육과)

《내 안의 유인원》의 저자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1948~ )은 1967년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 1971년 제인 구달의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와 함께 영장류 동물행동학의 최고 권위자이다. 프란스 드 발의 《내 안의 유인원》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 유인원인 침팬지와 보노보의 집단생활을 중심으로 ‘먹이’와 ‘성’을 두고 경쟁하는 이들의 행동양상을 거울삼아 인간의 야누스적 본성을 탐구한 책이다. 따라서 약육강식의 일등만을 요구하는 현대 한국사회의 ‘권력비리(정치), 섹스(미투), 폭력(갑질)’의 침팬지적 행동과 ‘공감(나눔과 봉사)과 연대(협력과 평화)’의 보노보적 행동 양상에 대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 책에서는 데즈먼드 모리스와 제인 구달의 ‘침팬지’ 행동 연구를 뛰어넘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보노보’의 행동양상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유인원은 꼬리가 없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몸집이 큰 영장류의 동물이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집단(사회) 생활을 하면서 먹이(자원)와 성(섹스)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족 관계인 유인원은 침팬지(pan troglodytes)와 보노보(pan paniscus)이다. 침팬지는 수컷 중심의 엄격한 위계질서와 잔인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공격적 성향으로 싸움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며, 성적 문제를 해결한다. 그래서 침팬지를 ‘도살자 유인원(killer ape,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보노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성욕이 왕성한 낙천성(카마수트라 영장류),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돕는 동료의식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감(empathey) 능력도 지니고 있다. 보노보는 암컷 중심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섹스(짝짓기, G-G러빙, 호카호카 등)를 통해 서로 연대하고 수컷을 견제한다. 그래서 보노보를 ‘호색가’라고도 한다.

인간 사회 역시 이들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먹이’와 ‘성’을 두고 경쟁한다고 볼 수 있다. 제한된 자원과 성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과 학살, 정치적 탄압과 노사 갈등, 차별과 강간 등의 폭력성은 침팬지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며, 식량원조나 불우이웃 돕기, 각종 기부활동, 지진이나 화재 시 낯선 사람을 구하는 행위 등은 ‘측은지심’의 인도주의적 동정심을 발휘하여 평화를 지키려는 보노보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성향을 모두 지닌 야누스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침팬지적 행동은 극단적이고 잔혹하여 카인의 후예(로렌츠)라 일컬어진다. 또한 “이타주의자의 살갗을 할퀴어 위선자의 피가 흐르는 것을 보라!”는 마이클 기셀린의 말처럼 인간은 원래 이기적 동물이라고도 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는 “탐욕은 사회와 경제를 위해, 그리고 탐욕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이처럼 침팬지와 같은 인간의 ‘악마의 얼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보노보와 같은 인간의 인도적 행동도 악마의 얼굴 못지않게 많이 나타난다. 떨어지는 다친 찌르레기 새를 보호하고 날개를 잡아 날려 보내는 쿠니(보노보)나 도랑에 빠진 어린 아이를 보살피는 빈티 주아(암컷 고릴라)의 행동처럼 인간도 이러한 동료의식과 공감(empathey), 나눔과 협력,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따스한 ‘천사의 얼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곤 한다. 이러한 실천은 사회 유지를 위한 규칙이 아닌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개인만의 이기주의가 아닌 사회 구성원이라는 전체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은 개인에게는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때가 많다. 베토벤의 곡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의 삶이 행복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생존경쟁의 결과로 잔인하고 무자비한 생물이 탄생할 것이라 믿는 것 또한 오류이다. 우리는 이러한 ‘베토벤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침팬지처럼 허세부리기와 핏속에 흐르는 마키아벨리적 욕망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생존하기 위하여, 또는 일등하기 위하여 서로 동맹을 맺기도 하고, 갖은 권모술수를 부리기도 하며, 서열이 높은 우두머리에게 굽실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소극적 평화(사자와 양이 잠자는 평화)가 아니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의식하면서 적극적으로 권력 욕구를 견제하고 억제하는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들의 역사에서 볼 때 오히려 “강한 것이 약점이고, 약한 것이 강점”일 때가 많다. 유인원 세계의 마그나 카르타!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의지와 그것을 견제하려는 것이며, 지배 성향이 강하고 더 공격적인 종을 기반으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다수의 노력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으려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싸워서 얻고자 하는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는 결코 우리 손에 거저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 쟁취한 것이다.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중재자는 사적 감정이 아니라 ‘공정성’에 따라 화해와 평화를 복원해야 한다.

보노보의 섹스는 ‘문화’라는 가식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삶과 완전히 뒤섞여 있으며 섹슈얼리티를 풍부하게 표출한다. 하지만 인간의 섹스는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영역’이 분리되어 있다. 인간이 섹스에 탐닉하는 이유는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단순한 생식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섹스와 성욕은 하루의 일이 시작되면서 잠복해야 한다. 인간의 성적 취향은 그 민족의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식을 위협하지 않는 협력적 남성을 인정하고 일부일처제의 핵가족을 선호하며, 그 대가로 ‘정조대(성적 자유의 축소)’를 선택한다. 그리고 섹스에 대한 수컷의 집착인 남성의 강간과 폭력적 권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투(Me Too) 운동”처럼 여성 동맹을 결성하기도 한다.

인간은 먼 옛날부터 서로를 끊임없이 죽여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들은 ‘먹이(자원, 돈)’와 ‘섹스(성과 배우자)’를 두고 서로 대립하면서 경쟁하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갈등’이 생긴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편’과 ‘상대편’으로 나뉘고, 우리편은 상대편인 적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한다. 이러한 적개심은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능력과 결합하여 폭력성을 증폭시킨다. 이것이 곧 ‘전쟁’이다. 인간의 전쟁은 우리편은 우월하고 상대편은 우리편보다 못하다는 이기적 우월감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우리편의 단결과 자부심을 높여주기 위하여 일어나기도 한다. 다른 국가(집단)를 패배시켜 대가를 얻는 일은 이익이 되지만, 그에 따른 희생을 지불해야한다. 인간들은 전쟁의 ‘이익’과 ‘희생’에 대한 ‘손익계산서’에 따라 국가 간에 서로 교류하거나 전쟁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건 공격은 피하기도 한다. 20C 이후의 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는 인구증가에 따른 제한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국가와 기업들을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정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각 국가와 기업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하여 갈등하거나 전쟁을 하기도 하고,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미국이나 일본, 한국과 같은 신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이나 국가들은 자본(부)의 소유나 권력에 대한 갈등이 북유럽 국가나 기업들보다 훨씬 심하다. 그러나 국력과 자본이 비슷한 각 국가와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중재자’를 선택하기도 하고, 긴장을 해소할 제3의 대상인 ‘희생양’을 찾기도 한다. 특히 ‘희생양 찾기’는 비난의 대상을 다른 데로 돌리고 서로 간의 불만을 가라앉혀 정상적인 심리상태를 회복하려는 이기주의의 전형이다. 부당한 비난과 책임 전가, 그리고 탄압의 사기극인 희생양 찾기는 서로 간의 갈등을 눌러 감추려는 추악한 해결 방법이다. ‘공정’과는 거리가 먼 ‘가짜뉴스와 인신공격, 기업담합과 노동착취,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인종과 성의 차별’ 등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다. 동정심을 배제한 맬서스의 사회 다원주의는 약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강자의 발전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잡한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세계 인구 증가의 문제보다 자원을 어떻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길들여진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본성은 사회 공동체적 삶에서 먹이와 성을 두고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며 ‘감사’하거나 ‘보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이’는 괜찮은 음식이지만 옆에서 ‘포도’를 먹는 원숭이가 있으면, 오이를 먹던 원숭이가 오이를 던져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경쟁’이라는 신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사회가 공정분배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을 대접하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 인간들의 거울 속에는 각각 침팬지의 ‘전쟁(폭력)’과 보노보의 ‘평화(공감)’가 함께 공존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양면적 본성을 각자의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균형잡아 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