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사회교육과 안현효 교수

필자는 작년 여름 북 유럽의 여러 대학을 방문하였다. 우리나라 대학의 기원은 일본제국대학이다. 그런데 일본제국대학은 유럽 대륙의 대학, 특히 모두가 국립인 독일 대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미군정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식 학제가 도입되었다. 그리하여 학점제는 미국대학과 같지만, 대학의 운영은 상당히 대륙적 내용이 은연중에 들어 있어 우리나라 대학의 학사구조는 하이브리드 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대학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학이 절대 비중(현재 약 4년제 대학의 80%가 사립대학이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높은 비율이다)을 차지하게 된 우리 고유의 역사적 특성과 더불어, 대륙-일본을 통한 기원과 미국을 통한 기원을 모두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중 필자가 항상 궁금해 했던 것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보이는 전공에 대한 집착이다. 유럽 대학의 학부과정은 전공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미국대학은 (상대적으로) 교양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우리나라 대학의 전공중심주의는 유럽 대륙적 영향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유럽에서 전공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라는 점이 궁금해졌다. 필자가 방문한 대학 중 노르웨이 국립대학인 오슬로 대학교 (Universitetet i Oslo)인데, 학부 재학생이 2만8천명, 대학원생이 2천7백명 정도의 학부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연구중심대학이다. 유럽 대학에서 학부교육과정은 어떨까? 오슬로 대학이 학부교육과정에 제공하는 코스는 약 360개이다.(코스는 규모가 큰 교과목 또는 2~3개 교과목이 묶인 교육과정으로 보면 된다) 여러 개의 코스가 연결되어 study program (전공)이 된다. 전공은 약 60개 있으며, 3년에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덧붙여 학·석사 연계는 5년이다. 볼로냐 프로세스의 영향으로 유럽대륙에서 대학교육과정의 표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주된 특징의 하나가 학사를 분리하여 미국의 학사와 맞추는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으나 일단 볼로냐 프로세스의 효과 하나는 유럽 대학의 학부교육과정의 표준화라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그리하여 EU 학생들은 어느대학이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해 둔 것이다.
 다음으로 유럽대학에서 보이는 교과목의 특이성이다. 이 대학에서 교과목은 코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개념은 좀 복잡한데, 하나의 교육과정 코스는 5~20 학점(credits)로 구성된다. 대체로 10학점 규모 코스가 많아, 한 학기 30 학점을 이수해야 하므로 한 학기에 3개의 코스를 이수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식 학점제도와 비교하면 우리는 18학점이 한 학기 기준 이수 요건이므로 유럽의 1학점은 한국에서는 0.6학점으로 등치될 수 있겠다.
오슬로대학교의 코스명은 미국 대학교의 교과목 명처럼 번호로 난이도를 표시해준다. 그러나코스명은 숫자와 문자로 구성되어 숫자는 난이도를 문자는 해당 코스의 약자로 구성되어 있다. 코스명만 보아도 누가 들어야 하는지를 쉽게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ARA는 "Arabic", BIO는 “biology”이런 식이다. 또 숫자는 일반적으로 네 자리로 구성되는데 첫째 자리는 난이도를 지시한다.

0 = instrument courses for other courses (교양 또는 입문)
1 = basic courses at bachelor's degree level (학부과정의 기초)
2/3 = secondary courses at bachelor's degree level (학부과정의 심화)
4/5 = courses at master's degree level (석사과정)
9 = courses at PhD level (박사과정)

이런 이수번호 체계를 갖추면 학생들이 코스(교과목)명만 보아도 내 수준에서 어떤 것을 들어야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게된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대학이 전공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이런 식의 생각은 상당히 피상적인 판단이다. 물론 학부 교육과정에서 모집단위가 학과(전공)인 것은 우리나라 대학과 유사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일단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는 대학이 제공하는 수많은 과목, 코스, 전공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통해 들어온 전공에서 다른 전공으로 쉽게 이동하며 다른 전공 내의 과목들도 다양하게 듣고 본인의 진정한 관심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유연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