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피리 부는 사나이는 하멜른을 떠났다. 흑갈색 털이 무성한 들쥐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들쥐들의 눈동자는 귀신이라도 쓰인 듯 멍하거나, 초점이 불분명했다. 사나이의 머릿속에는 불안정한 화성의 악보가 떠있었다. 음표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허공을 부유했다. 한참을 춤추던 음표들은 우아한 동작으로 팔을 내리고 다리를 오므렸다. 피리는 서서히 낮은 소리를 냈다. 음표들이 아래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남은 것은 잠식뿐이었고 희미한 피리 소리만이 공기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켰다. 사나이의 걸음이 느릿해졌다. 그는 쇠창살이 세워진 거대한 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뒤를 따르던 들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피리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나는 숨을 죽였다. 그들 앞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회전목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목마에서는 둔탁한 빛이 난다. 사나이가 목마 위에 올라타자, 들쥐들도 뒤를 따른다. 그들은 낄낄거리며 목마의 허리에 매달렸다. 모두 음표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사나이는 입에서 피리를 떼고 주변을 살폈다. 소리는 갑작스레 사라졌다. 놀이공원을 비추던 네온사인이 꺼졌다. 들쥐들의 꼬리가 흔들거렸다. 그들은 걸음을 휘청거리며 회전목마에서 내렸다. 팔을 휘젓기도 했다. 어둠을 헤치며 시작 된 방황이다. 그리고 제각기 어둠들 틈으로 흩어졌다.
 
 스물 둘, 삶은 단조로웠다. 악보로 치자면 음표에 높낮이가 없이 일정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정에게는 음표가 없었다. 삶에 즐거움이 없듯, 연정에게는 웃음 또한 없었다. 악보는 텅 비어있었다. 새겨지는 음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악보가 있다는 것, 밋밋한 다섯 개의 선과 낮은음자리표 하나가 새겨져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공허함이 오선지사이사이를 메우고, 자신이 얼마나 쓸쓸한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다른 어떤 것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 금세 튕겨져 나온다는 것. 시간은 흐를수록 이 높낮이 없는 음계들을 텅 빈 상태로 두는 것이 아니라 꽉 채워버린다.
 연정은 TV를 보다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장실 변기통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고난 뒤 화장실 타일 바닥에 부서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곤 곧 감길 것 같은 피로한 눈을 비볐다. 금이 간 화장실 벽에 기대어서, 숨을 골랐다. 기대어있는 벽도 연정을 감당하기에는 빈약했다.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 에게 기대기에는 감정의 무게가 컸다. 그래서 연정이 있는 공간은 늘 위태로워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금방이라도 터질듯 한 눈물을 억지로 참아냈다. 숨을 고르다 말고 피식, 하고 웃었다. 이제는 TV도 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우습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눈을 비볐다. TV속에는 가식적인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웃음 짓고 있었다. 홈쇼핑에서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주방 용품을 홍보하느라 바빴다. 여자는 의미 없는 감탄사를 연발 했다. 드라마 채널에서는 얽히고설킨 관계의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서로의 뺨을 치며 소리를 지른다. 영화채널에서는 오래 전 흥행했던 스릴러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연정이 구역질을 한 것은 TV 프로 중간에 끼워져 나오는 광고였다. 새로 출시된 기능성 화장품 광고였다. 광고 속 인기스타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저런 걸 물광 피부라고 했던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것이었다. TV 화면을 꽉 메운 남자는 샐쭉 웃었다. 그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옴과 동시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연예인의 얼굴과 4년 전  남자의 얼굴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연정이 겪고 있는 대인 기피증이란 이런 것이었다. 뜬금없이 타인의 얼굴에 증오하는 얼굴이 투영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내면화 되는 것.
 
 연정은 주방의 간이 식탁 위에 놓인 구식 컴퓨터를 켰다. 켜지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부팅이 되고 한참 후에야 인터넷 아이콘을 누를 수가 있었다. 검색 창이 뜨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짜증을 내다가 컴퓨터를 한 대 칠 법도 한데 연정은 가만히 화면을 응시했다. 손을 마우스 위에 올린 체 한참을 기다렸다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검색 창을 한 번 클릭 한 후, 자판을 두드렸다.

[얼굴 안 보는 알바],[사람 안 보는 직업]

 인터넷에서는 특별히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고, 지식인에서 추천한 몇몇 재택업무는 연정이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끄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잠시 후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어 둔 짙은 고동색 카디건을 챙겼다. 좁은 집 현관 앞에는 거울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금이 가 깨진 거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집을 나서서일까. 봄기운이 가득한데도 추위를 느꼈다. 몸을 떨며 카디건을 고쳐 입었다. 거리에는 역시 사람들이 있다. 더욱 몸을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고개를 푹 숙인 체 자신의 낡은 운동화만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연정이 향한 곳은 교차로신문이 있는 신문거치대였다. 재빨리 교차로신문을 집어 들고 집으로 향했다. 거리에서 사람을 한 명, 두 명 지나쳐 갈수록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눈에 힘을 주고 부지런히 걸었다. 연정이 사는 동네에는 오래 된 슈퍼가 있었다. 슈퍼가 보이자 걸음에 조금씩 여유를 찾았고 바짝 힘을 준 어깨와 두 눈에 힘을 풀기 시작했다. 연정은 슈퍼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슈퍼 앞에 있는 작은 평상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너는 맨 방에 들어앉아 뭐하냐? 젊은 것이.”
 연정은 화들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원앙 슈퍼의 주인 할머니였다. 얼굴에 핀 검버섯이 거뭇거뭇하게 살 위에 박혀 있었다. 늙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원앙 할머니의 얼굴에 쪼글쪼글 하게 새겨진 주름살이 그건 딱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정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입가의 근육이 빳빳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둥이가 살아는 있는가 모르것네.”
 원앙 슈퍼 할머니의 얼굴을 힐끔대던 연정은 성급히 고개를 아래로 파묻었다.
 “나 원, 답답해서. 물건 안 살라믄 여 뭐 하러 앉았어? 어여 일어나 집에나 들어가!”
 성급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가슴팍에 박은 채로 일어나 원앙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원앙 할머니가 혀를 차는 소리가 연정에게로 와 닿았다. 정말 주둥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연정이 입가를 만지작대며 낮게 읊조렸다. 원앙 할머니는 마귀할멈처럼 비죽 솟은 코에 몸은 비쩍 말랐으며, 언제나 신경질적이고, 사나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연정이 가장 자주 얼굴을 마주 하는 사람이었다. 집 안에 틀어 박혀 지내며 필요한 것들은 거의 원앙 슈퍼에서만 구매했기 때문이다. 원앙 할머니는 그런 연정에게 단 한 번도 말을 붙이거나, 살가운 인사를 건낸 적이 없었다. 그저 위로 뾰족하게 찢어진 눈을 치켜뜨며 이리저리 연정을 살필 뿐이었다. 불안하게 오고 가는 할머니의 눈을 제대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 눈 뒤에는 오랜 세월이 숨어 있다. 그것들을 숨기기 위해, 연정의 몸을 살살 훑어보는 것만 같았다.
 집에 들어선 연정은 현관문을 열었다. 깨진 거울을 지나쳐 집에 불을 켰고, 창문을 열었다. 냉장고에서 조금 남은 우유를 꺼내 냄비에 부었다. 집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었으므로, 그녀는 우유를 이렇게 데워 마시곤 했다. 따끈따끈한 우유를 따른 컵을 두 손에 쥐었다. 뜨거운 김이 공기 중에 섞여 이내 사라지는 모습을 빤히 보았다. 김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쯤, 우유를 마셨다. 연정은 무엇이든지 천천히 했고, 신중히 했다. 뜨거운 우유를 마실 때처럼. 그녀는 기억과는 더 이상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라는 이름의 거대한 암막 속에 덮어두기를 바랐고, 더 이상 들추거나 꺼내려하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땅 밑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살고 싶었다. 소리 없이 나뭇잎에 머무는 민달팽이처럼 살고 싶었다. 그게 연정이 원하는 삶의 전부였다.
 컵을 내려놓고 신문을 펼쳤다. 구인, 구직 광고를 보려고 가져온 신문이었다. 정부에서 지급되는 실업자 보조금으로는 생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된 후부터 지금까지 미뤄 온 일이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던 그녀는 한 숨을 내쉬었다.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에 실패하고 혼자 고민을 했었다. 어떤 일을 해야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한 뜻에 얻은 답은 신문배달, 우유 배달, 그리고 식당 주방 알바가 전부였다. 그러나 자전거가 없는 그녀가 신문이나 우유 배달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지는 않지만 배달하는 동안에 마주치는 타인들조차 그녀에게는 불편한 고민거리였다.
 연정은 이불을 펴고 얌전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집에는 천장에도 길쭉하게 금이 가있었다. 그녀는 안쓰러운 눈초리로 그 금 자국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었다. 천장은 그녀의 손끝과 너무도 멀리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손을 자꾸 위로 뻗었다. 틈새는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안겨주었다. 구토가 일 때마다 화장실 벽에 간 금에 가만히 등을 기대었다. 그러나 천장 위의 금은 늘 쉽게 지나치게 되었다. 졸음이 밀려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만 천장을 바라보아서였던지, 쉽게 잊혀졌다. 어둠이 주는 쌀쌀한 냉기가 속에 스밀 때 쯤, 천장에 홀로 그어진 저 틈새는 얼마나 메말라 있었던 것인지. 불현듯 원앙 슈퍼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사나운 얼굴 주름 사이사이에 있던 작은 틈새 또한 저토록 건조했던가. 나이가 들면 쓸쓸해지는 것은 주름사이의 틈에 시린 바람이 들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갑자기 몸에 한기가 느껴져서 TV를 틀었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몇 개 돌리니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생방송 되고 있었다. TV 스피커에서 새나오는 플루트 소리가 고막에 손톱자국을 내듯 달려들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들쥐들과 함께 연정을 꾀어냈다. 사악하고, 더러운 들쥐들의 틈에 서서 연정도 부지런히 걸었다. 끔찍한 기억. 피리리릴리. 피리 소리에 맞춰서, 연정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몸을 들썩거리며 사나이의 뒤를 따라갔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지.
 그는 입에 비닐봉투를 대고 후후 불어댔다. 그의 동공이 초점 없이 풀리는 동안에 입가에는 미소가 돌았다. 그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이거야, 바로 이거지. 교실이 무너진다. 마릴린 먼로가 내 앞에 있잖아?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라구, 이거.
 그가 휘파람을 불어댔다.
 이리 와. 너도 한번 해봐. 죽이잖아? 니가 원하는 걸 볼 수 있고, 할 수도 있다고. 놀랍지 않아?
 그는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 연정은 그에게서 비닐 봉투를 받아들고 입으로 가져다 댔다. 정신이 몽롱했다. 세상이 핑핑 돌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가 웃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이거야, 그의 목소리가 툭툭 끊기며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알맞은 주파수를 찾지 못하고 지직 대는 라디오가 머릿속에 들어섰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라디오는 치지직 거리면서도 안테나를 곧추 세웠다. 내가 원하는 것. 라디오의 소리가 점점 분명하게 들려왔다. 좋아, 아주 좋아. 연정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내뱉는 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 온통 그가 보였다. 그. 내가 원하는 것은 그야. 그의 사랑을 원했잖아. 날렵한 턱 선과 붉은 입술을 가진 그를, 오랫동안 짝사랑 해왔잖아. 몸매 좋고 예쁜 여학생들에게 언제나 인기가 많은 그를 보며 우울해지곤 했었잖아. 그 여학생들을 시기하고 질투해왔잖아. 밤마다 여자애들 생각을 하며 욕을 했었잖아. 그가 네 것이 될 수 있어. 라디오의 음성이 분명해지는 순간, 그의 뜨거운 손가락이 연정의 목에 닿았다. 
 연정은 두 눈을 번쩍 뜨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부여잡고 한참을 토악질을 해대니 속이 가라앉았다. 벽의 틈새 위로 등을 기댔다.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열두시마다 알람처럼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여전히 몸을 흠칫 떨리게 했다. 누구야, 누가 자꾸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거야. 목구멍 아래에 갇힌 말들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목 위로 물이 차오르듯 숨이 가빴다.
 상대는 늘 이런 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사이코나 변태일지 모른다. 하지만 수화기를 놓을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침묵을 침묵으로 받아 내는 것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는 십 분정도 침묵을 지키다가, 무언가를 수화기에 대고 두세 번 두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때때로 그녀는 상대가 전화를 끊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스름한 빈 교실에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목격한 연정은 그의 피리 부는 소리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가 부는 비닐 봉투를 자신의 입에 갖다 대고서 마릴린 먼로가 됐다. 피리 부는 사나이와 함께라면, 차가운 강물 속이라도 좋다고 여겼다. 다만 그와 단 둘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와 함께 헤엄칠 들쥐들이 많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홀린 들쥐는 연정만이 아니었다. 피리 소리를 따라 차가운 물가에 닿았을 때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물속에서는 더 이상 피리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제 서야 연정은 허둥지둥 물가에서 뛰쳐나와 하멜른으로 되돌아갔다. 하멜른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찾아 헤맸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사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정신병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자각하려는 몸부림이 처절해질수록 그의 피리 소리는 귀를 파고들었다.
 사나이는 몇몇의 여학생들과 함께 하멜른을 떠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연정의 귀에는 잔인한 피리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고막에 피딱지가 얹힐 때까지 피리소리는 고막에 스크래치를 냈다. 부서지는 교실 속에 제대로 앉아있거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동급생들은 연정을 미친년이라고 불렀다. 사나이와의 관한 소문들도 차츰 차츰 걷잡을 수 없이 무성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연정은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어졌다. 귀를 통과하는 가시 돋친 말들을 술술 내뱉는 입을 향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고개를 숙이고 지나쳤다. 그토록 극악무도하고 가벼운 입을 마주할 용기 따위는 없었다. 
 머릿속을 장악한 피리 소리는 사나이를 뒤 따라가는 몽롱한 눈알이 박힌 들쥐 떼를 생각나게 했다. 그 무리 중에는 간혹 새끼를 벤 들쥐들도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른 새벽. 태양은 차츰차츰 세상의 붉은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코끝에 신선한 공기가 얽혔다. 맑게 갠 공기가 어색하게 뺨에 닿았다. 동네 공터로 가 벤치에 앉았다. 공터에는 운동을 하는 아줌마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알은 체를 하는 사람은 단 명도 없었다. 자신이 투명인간 같다고 느꼈다. 타인의 얼굴을 보지 않다보면 어느새 타인도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된다. 벤치에 앉아 아줌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오늘 아침에 할 국거리를 얘기했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겪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동네 이장이 진 빚 얘기를 했고, 세탁소 아저씨 부부의 불화를 얘기 했고, 원앙 슈퍼 할머니 얘기를 했다. 귀의 세포가 원앙 할머니에 대한 수다 속으로 집중되는 듯 했다.
 “못된 할멈. 동네 앞에 마트 생기면 내가 거길 다시 가나 봐라. 사람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늙은이가 아직도 굽힐 때 굽힐 줄을 몰라. 나이 많으면 다냐구. 그래도 우리가 손님 아니야? 인정도 없어서 덤을 줄 줄 아나, 깎아 줄 줄을 아나. 우리가 맨날 이 동네 가게만 가니까 그러나 봐. 그러니까 그 나이가 되도록 서방 하나 없이 혼자 늙었지.”
 원앙 슈퍼 할머니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동네로 이사 온지가 2년이 다 되가는데 그것도 몰랐다니. 연정이 고개를 수그렸다. 투명인간도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여자들의 입이 창녀의 짧은 치맛자락처럼 펄럭거렸다. 원앙 할머니의 사연이란 그 얼굴에 간 균열만큼이나 복잡하고 괴기스러웠다. 나이 칠순이 넘도록 혼자 살고 있는 이 늙은 여자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교통사고로 아이를 둘이나 잃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매춘을 전전하다가 악착같이 모든 돈으로 결국 이런 구멍가게를 차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이 아닌 듯 사실 같은 소문들이 입과 입을 타고 세상 밖으로 터져 나왔다. 무게 없는 소문은 이렇게 사람의 입을 건너고 건너며 불어났다.
 등줄기에 땀이 솟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무늬처럼 새겨져 있고 검버섯이 핀 할머니의 얼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피부에 아로새겨진 균열들. 그 사이에 접혀진 틈새들. 입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벤치에서 일어나 동네를 벗어났다. 그녀는 그 균열에 대해 안다. 연정은 자신의 얼굴에 주름살이 박히고, 검버섯이라도 핀 양 얼굴을 더듬거렸다.
 원앙 슈퍼에 들러 흰 우유를 샀다. 할머니는 카운터 뒤에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 얼굴을 힐끔 쳐다보니, 생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흐릿한 눈빛으로 연정을 바라본다. 얼굴에 핀 검버섯과 주름들이 오래되어 쪼그라든 사과의 그것 같다. 연정은 희미하게 자신에게로 박히는 시선을 외면했다. 서둘러 이천원을 내밀고 미닫이문을 닫았다. 기름칠을 해 두었는지 문은 이전보다 덜 요상한 소리를 냈고, 더 잘 닫혔다.
 
 냄비에 우유를 따르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12시가 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TV를 켰다.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재방송 되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감미로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귓속에 내려앉았다.
 그의 소리도, 그도 단지 어른거리기만 할 뿐이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연정의 것이라 믿었지만, 연정의 것이 아니었던 그. 너의 것이라 속삭였지만, 그건 달콤한 속임수일 뿐이었다. 본드를 권하며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했지만, 결국 쥐덫일 뿐이었다. 그는 학교를 싫어했다. 허락된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라고 믿었다. 규제와 규제. 잇따른 규제들로 운영되는 학교의 체제를 불신했다. 그가 학교에 요구했던 배상금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학교에서 들쥐로 규정한 날라리 여자애들을 모두 데리고 떠났으니, 학교는 어떤 보상을 해주었을까. 아마 보상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번에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떠날 것이다. 그제 서야 어른들은 떠난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할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변심해 돌아오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떠날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본드가 들어있는 봉투를 불며 그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보며 자꾸만 휘파람을 불었던 것인가. 그가, 어른들이, 그리고 그를 따라갔던 들쥐들과 자신의 생각에 연정은 기분이 아찔해진다.
 어김없이 12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앞에 서서 숨죽여 벨소리를 기다리던 연정이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말이 없었다. 어쩌면 수화기 너머의 세계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가 암흑인 세계. 온통 암흑뿐인 세계. 막막한 목소리마저 삼킨 세계. 다만 내게 들리지 않을 뿐인지도 몰라. 송신자는 누구일까. 연정은 처음으로 말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벌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혀 맨 끝에서부터 물이 올라오는 듯 했다. 혹시, 송신자도, 이런 사람인 게 아닐까. 수화기를 무언가로 두드리는 소리가 귀로 스며들었다. 연정은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화는 같은 시각에 딱 한번만 울렸다.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면 어쩌지. 말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쩌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연정은 수화기를 들었다. 조용하다. 오늘은 왜 두 번인 걸까. 숨을 죽이고 감각을 집중시켰다. 물소리가 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얕은 물소리는 곧 희미한 피리소리가 됐다. 심장이 세차게 방망이질 쳤다. 그럴 리가 없어. 연정이 TV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TV는 꺼져있었다. 귀에 바짝 수화기를 갖다 붙였다. 피리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뒷목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회전목마 위에서 몸이 붕 뜨던 감각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갈라진 비명을 내질렀다. 지하에서 길어 올린 듯한 목소리가 연정의 입을 지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너는. 설마.
 귀가 먹먹했다. 춤을 추던 음표들이 일순간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피리소리가 멈추었다. 연정이 귀를 막았다. 툭툭툭, 수화기를 세 번 치는 소리가 들렸다. 연정이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 전화가 끊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왜 전화를 한 걸까.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지. 땅 밑에 붙어있던 궁금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덮어두었던 시간이 그녀의 곁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피리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끊이지 않고 곁을 맴도는 피리 소리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가스레인지에 우유를 데워 마셨다.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천장 위에 그어진 금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원앙 할머니의 주름살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눈을 끔뻑거리다가 몸을 뒤척였다. 이내는 가만히 몸을 일으키고 몸을 웅크린다.
 따르르르르르릉. 연정은 몸에 돋은 소름을 닦아내며 전화를 받았다.
 하연정씨?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발음했다. 낯선 목소리는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했고, 열두시 경에 전화한 남성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의 성대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춥다고 느꼈다.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연정과의 전화가 사나이의 마지막 전화기록이었다고. 남자는 자꾸만 문장의 끝을 올렸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의 피리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자극했다. 폐장된 낚시터에서 사체로 발견됐는데요! 그녀는 낯선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그의 손에 뭔가 없었나요?
 경찰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비닐 봉투였으며, 봉투 안에서 소량의 본드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말했다. 피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경찰은 그런 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물길이 끊겼다. 연정은 의자 위에 올라가 싱크대 선반을 뒤적거렸다. 비닐 봉투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켰다. 그가 보였다. 그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아아, 내가 원하는 것. 그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