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소의 날씨

아버지는 구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복사기 앞에서 빛을 머금으며 아주 오랫동안
눈앞이 캄캄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번개가 내리치는 와중에도 건조한 인쇄소 안
빗물을 자신의 몸에 흡수하는 구름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지만 등줄기엔 결정이 맺힌다
바쁜 몸짓으로 번개에 빗방울이 섞이면
천둥소리에서는 어느새 짠 맛이 스며든다

인쇄소의 일기예보도 예상치 못한 날은
갑자기 물량이 밀려오는 날
밀린 주문량을 받아낼수록 거세지는 번개에
빛을 내뿜는 인쇄기들은 속을 뒤집느라 덜컹이고
구름들은 인쇄기의 걸린 속을 쓰다듬느라
빗줄기로 온몸을 적시고 있는 중이지만
인쇄소를 북상하는 속력은 줄지 않는다

수북이 종이들이 쌓이고 난 후에야
인쇄소를 떠도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구름
하루를 마감하는 일기예보 대신 하품으로
인쇄소의 내일을 예측하는 밤이 유난히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