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판다도 괜찮습니다

중국 서부 깊은 산, 대나무 숲에만 살고 있다
“M 동물원을 탈출했던 판다가 동물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시간 만에 붙잡혔습니다. M 동물원에서는 판다 사육사에게 징계를…….”
판다가 운다. 새보다 더 가냘픈 울음이다. 우리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건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가야할 길은 멀고, 주어진 길은 엇갈려서 저도 모르게 멈춰선 것이다. 우리는 비눗방울처럼 크게 부풀러 오른 그 길이 금방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저게 왜 사육사한테 징계를 먹일 일이니. 그러니 중국 판다를 왜 여기에 가둬서 저런데? 륭아, 들어가서 단무지 좀 담아라.”
낡은 라디오 주파수를 따라 그 소리가 가게로 흘러들어온다. 변하는 건 없는데도 엄마는 세었던 돈을 다시 센다. 주방의 간단한 일은 내 담당이다. 24시간 혼자 운영하는 엄마를 위해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돕는 편이다. 나는 노란 단무지를 스티로폼 용기에 옮겨 담아 랩으로 감싼다. 이제는 손으로 어림잡아 올려도 딱딱 맞아 떨어진다. 촘촘하게 붙어있는 터라 집게로 집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홀에 비치해 놓는 셀프 단무지 위에만 집게를 올려놓는다. 위치 상 가게로 직접 오는 손님은 드물다. 엄마는 형편이 나아지는 데로 학교 앞 상가로 위치를 옮기겠다고 하지만 오 년째 제자리다. 나는 이곳에 위치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으로 나가거나, 가까운 곳으로 배달을 가진 않는다. 나에겐 나름의 비밀인 셈이다.
딱 한번 친구들과 자장면을 먹으러 가게에 온 적이 있다. 나는 차마 엄마에게 아는 척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아줌마’그 소리 먼저 턱 뱉어내버렸다. 엄마는 외지에 홀로 남겨진 노인처럼 갈피를 못 잡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내 바람대로 나를 ‘손님’ 취급해주었다. 그 이후로 친구들과 엄마 가게를 찾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아저씨 전화 왔었어.”
나는 언젠가부터 배급 회사 아저씨를 ‘엄마아저씨’라고 불렀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식재료 아저씨를 만나고 온다고.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는 엄마에게 원망을 가진 적은 없다. 차라리 재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아버지와의 의리를 지키기에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그 아저씨와 만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프랜차이즈 값을 주고 소스들을 들여오게 된다면 내 계획은 무산될지도 모른다.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꿈을 꾼다. 그렇게라도 엄마를, 금룡을 안 보고 살 수 있다면. 그래서 나는,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는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봉지를 꺼낸다. 곱게 접힌 빈 봉지다. 봉지에는 ‘국산 : 고춧가루’라고 크게 적혀있다. 가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봉지다. 그 봉지는 얇고 투명하지만 한편으로 겹겹이 겹치면 불투명해져 많을수록 봉지 자체의 존재가 더 잘 보인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지만, 따로 알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별생각 해본 적이 없을 뿐이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그곳이 고향이었다. 그건 아마 우리 가게가 중국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고춧가루를 들여올 때 따로 파프리카 색소를 구매한다. 그것이 옅은 고춧가루 색을 진하게 해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디가?”
엄마가 묻는다. 엄마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늘 나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애쓴다. 나는 엄마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싫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연주회를 볼까, 어떤 집이 맛있을까. 그런 종류의 생각들을 하겠지. 엄마의 중국집에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나는 대답 대신 주방과 계산대 사이에 있는 축구공을 꺼내 엄마에게 보인다. 축구공을 홀에 두진 않는다. 엄마는 흙이 묻은 축구공을 주방에 두어도 딱히 뭐라 하지 않는다. 혹여 주방이 더러워질까 축구공을 내놓으라 하기는커녕, 내 축구공이 더러워질까 그곳에 두진 않는다.

단체 생활하는 것을 싫어해 주로 단독 생활을 한다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5시가 되면 운동장에서 축구가 시작된다. 우리에게 축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기다. 이 아이가 안 오면 저 아이가 들어오고, 저 아이도 안 오면 그 아이가 들어와도 굴러가는 경기다. 그래도 이 가운데 내가 존재감이 있는 건 축구공을 가져오는 담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금륭 왔냐? 공 던져!”
정현이다. 아이들은 나를 금륭이라 부른다. 단순히 이름으로 장난치는 것이다. 내 이름이 ‘김 륭’이라는 이유로 우리 가게인(물론 우리 가게라는 걸 알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금룡’과 섞어 ‘금 륭’이라고 놀리는 것이다. 공은 굴러 정확히 정현 앞에 멈춘다. 정현은 몇 시에 들어가야 하냐고 묻는다. 혼자서 날 기다릴 엄마가 걸리긴 하지만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끝나고 금룡가자. 중요한 일이 있어.”
정현은 단호하게, 그리고 확실한 어조로 금룡에 가자고 얘기한다. 서툴지만 비장한 표정으로 하늘쯤 되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거 봐.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식당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대. 대박이지?”
경찰서 앞에서 보았던 포스터다. 정의로운 사회, 바른 먹거리.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뭐랄까. 오줌이 마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처음이었다. 톡, 음표는 오선을 이탈하고, 판다는 울타리를 탈출하고, 나는 이곳에서 탈출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하기 전에 해야 해. 이 일만 잘 끝나면 돈 버는 거라니까. 일단 금룡을 신고한 돈으로 더 큰 식당에 들어가고, 그 식당을 신고한 돈으로 나중엔 한우로 속여 파는 육심대가까지 넓혀가는 거지.”
정현은 며칠 전부터 돈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 생신 선물을 근사하게 사드리고 기숙사 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숙사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학원을 왕창 다녀야 할지도 모른단다. 기숙사 학교를 가기 위해, 엄마가 엄마아저씨와 결혼하길 바라는 내가 생각났다. 조금 창피했지만 그건 다른 것이라고 위로했다.
“정의를 실현하는 거야.”
정현은 마치 오래전부터 꾸며오던 모략인 것처럼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그건 신의 모략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하게 미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은 지금도 모략을 꾸미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재개발만 믿고 아끼고, 아껴 모든 걸 투자한 우리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었을까. 아버지가 꿈꾸는 미래는 어디쯤에 있나. 아버지가 죽은 건 누구의 죄에 대한 책임일까.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죽을지, 누가 상상이나 하고 있었나.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않아?”
성제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웠지만,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다.
“그게 왜? 나쁜 사람들은 죗값 치르게 하고, 우리는 돈 벌고.”
“그렇긴 하지만, 그 아줌마 불쌍한 사람이잖아. 너한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거 벌금 장난 아니야. 그 아줌마도 겨우겨우 생계 이어나가는 건데 그걸 꼭 해야겠어?”
성제네 엄마는 과일트럭을 한다. 트럭을 팔고 가게를 사면 안 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성제는 트럭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가게는 없다며 지금 생활이 계속 될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성제네 엄마가 왜 이윤도 별로 남지 않는 한 철 장사인 과일을 파는지 이해가 안됐다. 후에 듣기로는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없어서 야채나, 과일밖에 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쌍하다고, 나쁜 짓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난 좀 그래,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불쌍한 사람들 괴롭혀서 돈 벌고 싶지 않아.”
나는 누구 편에도 설 수 없다. 누구나 이 상황에선 그럴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나쁘다고 하는 아이들과, 불쌍하다고 하는 아이들 사이에선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나쁜 게 더 낫지 않을까. 세상은 나쁜 사람을 동정하지 않지만, 불쌍한 사람은 동정한다. 나는 그 동정의 눈빛이 싫다.

새끼는 한 명만 낳는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가장 많이들은 소리는 그래도 애가 하나인 게 얼마나 다행이니 였다. 엄마는 아버지와 엄마 모두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을 낳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도 우린 넉넉하지 못했으니까, 키울 능력이 되지 않으니까 동생을 낳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재개발을 위해 사놓은 집을 팔고, 보험금, 퇴직금까지 다 쓰고도 생계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군식구인 삼촌까지 더해지니 정말 한 마디로, 개막장이었다. 삼촌이 하는 일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전부였고, 지금은 금룡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 나는 다니던 축구교실을 그만둬야했다. 월 8만원인 축구교실을 그만두고 나서야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하다는 걸 깨닫고 보니 그제야 주위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 동정이었다.
내 생각과 별개로 아이들은 두 편으로 갈라섰다. 남은 건 나의 선택이었다. 당연히 신고하지 않는 쪽이었지만, 선택을 주저했던 건 내 기준엔 이미 신고하는 것과 신고하지 않는 것이 아닌 나쁜 것과 불쌍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금륭, 빨리 선택해. 너 니 이름이 금륭이라고, 금룡 아줌마 편들지 마라. 금륭, 금륭거렸더니 니가 진짜 그 집 아들이라도 된 것처럼 정든 건 아니지?”
그 말이 화근이었다.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을 했다.
“병신, 그게 무슨 헛소리야. 콜, 가자.”

겁이 아주 많다
이미 선택을 하고도 충분히 바꿀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엄마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게 자존심이다. 내가 비겁하다 욕할지 모르지만 누구나 내 상황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더불어 이 일이 정의로운 일이지, 정말 비겁한 일인지 알지 못한다. 드라마에 보면 회장 아들인 검사가 자신의 아버지를 구속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혈연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그에 비해 가난한 부모의 딸이, 부모가 폐지를 훔쳐 파는 것을 신고해 정의를 얻는다면 그런 쌍년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럼 역시 이 일이 비겁하다고 느껴지는 건, 우리 집이 가난해서일까.
“금륭, 잘 생각했어. 우린 아주 훌륭하고, 멋진 시민이 될 거다. 불의를 보고도 참는 건 비겁한 짓이야.”
정현은 그 말과 동시에 축구공을 발로 뻥 찬다. 그와 함께 자동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누가 정하진 않았지만, 경기는 신고팀과 신고하지 않겠다는 팀으로 나뉜다. 나는 낮에 먹은 점심이 소화되지 않아 속이 부대낀다는 핑계로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도저히 경기를 뛸 기분은 아니다. 대신 엄마에게 전화할 것이다. 오늘 내가 친구들과 간다는 얘기와 더불어 정현의 계획에 대해 말할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한결 마음이 나아진다. 정현의 계획에 동참함으로써 금룡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의 계획을 파악만 잘하면 피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어쩐지 모든 걸 털어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메뉴판을 바꾸라는 말만 한다. 엄마는 어쩔 땐 벙어리처럼, 어쩔 땐 귀머거리처럼 살았다. 올해는 학부모 회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교문 앞까지 들어온 엄마를 발견하고 나서야 엄마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엄마는 메뉴판을 바꾸라는 말보다, 친구들과 같이 간다는 말에 더 집중한 것처럼 보인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미리 준비해놓을까? 몇 명이나 와?”
우물쭈물되며 그냥, 손님으로… 라는 말까지 나오고 나서야 엄마는 알겠다는 듯 전화를 끊는다. 엄마는 내 말의 요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난 분명 전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 명이 빠져서일까, 승리는 상대 팀이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정현은 달려와 내 등짝을 후려친다. 나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이내 풀어져 어깨동무한다. 승제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승제의 손에 힘을 실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중요한 건 경기가 아니야. 우리에겐 중요한 일이 남아 있잖아!”
정현이 크게 소리쳤다. 곧 회의할 모양이다.
“앞서 말할 것은 배신은 없다야.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미리 정보를 빼돌릴 생각이면 그만둬. 배신자는 철저히 응징할 테니까.”
난 분명 전했어. 나는 그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정현과 아이들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진 않는다. 다만 들키면 어쩌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 생각이 배신자라는 걸 들키면 어쩌나에 대한 두려움인지, 금룡 집 아들이라는 걸 들키면 어쩌나에 대한 두려움인지 감은 안 잡히지만 이왕이면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느 쪽이든 좋을 건 없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오랜 회의 끝에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맡았다. 메뉴판에 적힌 ‘국산’이라는 거짓 정보를 찍어 증거물로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정현은 내가 맡은 임무가 중요한 것이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부지런한 나를 믿고 맡기는 것이란다. 나에겐 반가운 일이다. 나는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물론 모두 실패하는 것이 목적이다. 첫 번째는 사진을 찍는 내가 속이 안 좋다고 금룡에 가지 않는 경우, 그건 안 된다. 내가 없으면 그 역할은 자연스레 다른 아이가 맡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엄마가 내 말을 듣고 메뉴판을 바꿔놨을 경우, 가장 좋은 경우다. 그러나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다. 엄마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 와 메뉴판을 바꾸기엔 시간이 없다. 그럼 남은 경우는 그냥 내가 사진을 안 찍는 것이다. 실수를 빙자한 고의.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이러나저러나 무언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정현의 모략이 시작되면서부터. 배신하지 않고 엄마를 신고하는 것은 또 그리 잘한 일이겠는가.
“금륭, 네가 가장 중요해. 사진 꼭 찍어야 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금룡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안 그래도 허름하던 가게인데 오늘따라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초라해 보인다. 차라리 무너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어서오세요.”
엄마가 나와 아이들을 보며 처음 한 말이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단무지를 내온다. 정현은 제일 먼저 배달용 메뉴판을 찾는다. 그곳에도 원산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란다. 그러나 배달용 메뉴판에는 따로 원산지 표시를 해놓지 않는다. 메뉴판을 건네받은 정현은 아쉬운 눈치다. 식당에 있는 메뉴판은 역시나 그대로다. 정현은 사진을 찍으라는 눈치를 준다. 키가 큰 원석은 주방을 힐끔 쳐다본다. 계산대가 꽤 높아서 웬만하면 안이 보이지 않는다. 원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주방이 꽤 깊이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안 모양이다.
“자장면 3개랑 짬뽕 3개 주세요. 아, 륭. 넌 배 아프다고 했지? 하나는 포장해주세요.”
정현은 꽤 치밀하게 밀고 나가려는 듯했다. 포장을 해서 들고 나간다고 해서 감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계획까지 다 짜놓았다. 엄마는 놀란 표정이다.
“륭아, 배 아파? 아까는……. 아, 아, 아니다. 뭐라고 했지?”
오줌이 마렵다. 아마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줌마,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화장실은 가게를 나가 상가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아이들은 설사하러 가는 것이 분명하다고 낄낄거렸지만 별로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괜히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냥, 오줌이 마렵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소변기 앞에 언제부터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나. 교회 홍보 판이다. 나는 죄인인가, 아버지는 어디에. 나는 죄인이다. 죄를 사하려면 아버지가 필요하다. 나는 아버지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용서받을 수 없다. 나는 죄가 없다. 그러면 아버지가 필요 없다. 순 엉터리 소리다. 죄는 원래부터 짓도록 정해져 있었는데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용서받을 수 없다니. 애초부터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면 엄마는 중국집을 운영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중국산으로 속여 파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부모에게 등을 돌린 죄도, 친구들을 배신한 죄도 짓지 않았을 것인데.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죄인이라니. 나는 쓸데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화장실에서 나온다.
가게로 돌아가 보니 엄마는 쟁반에 음식을 올리고 있다. 아이들은 또 무슨 계획이 있는지 수군거린다.
“아주머니 제가 들어드릴게요.”
저런 식으로 주방에 들어가 보려는 심상인 것 같다. 엄마는 괜찮다고 하지만 원석은 큰 키로 성큼성큼 주방 쪽으로 다가간다. 엄마에게 눈치를 주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오랜 시간 잠을 못 자 넋이 빠져 있는 엄마가 그걸 눈치 챌 리는 없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주방의 커튼을 치고 나온다. 아이들은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눈치다. 이젠 내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차례다.
“분명 뭔가 숨기는 것 같아. 륭, 빨리 사진 찍을 준비해.”
정현이 속닥거린다. 평소 같으면 꾸벅꾸벅 졸고 있을 엄마도 그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나 돈을 셀 때 빼고 대부분 졸고 있다. 24시간 영업으로 월요일 새벽 빼고는 늘 불이 켜져 있다. 삼촌과 번갈아가면서 가게를 보긴 하지만 대부분 엄마의 몫이다. 아무래도 잘 시간이 없다보니 평소에 졸기 일쑤다. 자면 안 돼. 자긴 왜 자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부지런해야해.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내가 새벽까지 가게를 보게 하지는 않았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오는 손님은 많지 않다. 차라리 성제 엄마처럼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성제는 모르는 소리하지 말라고 나를 질책했다.
나는 아이들이 돌아가기 전까지 엄마가 홀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내가 좀 더 자연스럽게 사진을 못 찍을 수 있으니까. 오늘만 잘 넘기면 메뉴판은 바꾸면 그만이다. 정현은 재촉하고, 나는 아직 아니라는 핑계로 그냥 앉아있다.
“저 아줌마는 왜 계속 저기 앉아있는 거야. 륭, 그냥 음식 사진 찍는 척하면서 찍어.”
“남자애들이 음식 사진 찍는 건 좀 이상하지 않냐?”
꽤 조용히 있던 영호가 거든다. 영호 말대로 우리가 여자였다면 사진 찍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여자애들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찍는 것에 더 열중하기 마련이다. 과학 시간에 선생님도 우스갯소리로 그런 것도 종족특성이라고 얘기했다. 그건 편견의 차이일 것이다. 여자애들은 SNS에 음식 사진을 올려도 된다는 그런. 죄를 한 번 지은 사람들은 또 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용의자로 지목되면 전과기록을 제일 먼저 확인하고, 확신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 인식을 굳히기라도 하는 듯 나는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다. 물론 그 죄라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이리도 불편한 것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아이들의 재촉으로 나는 무음카메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다행히 제대로 나온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그렇게 첫 번째 작전은 무산이 됐다.
“금륭.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정현은 그게 다 나 때문이라고 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실망한 눈치다. 혁명이라도 실패한 군사들마냥 나를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나의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내 행동이 그들에게 피해를 준 건 맞다.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암컷이 수컷보다 강하다
“너 무슨 일 있니?”
금룡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가장 먼저 그 말을 했다. 우리끼리의 속닥거림, 계속 이어지는 수상한 행동들이 아무래도 엄마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하지만 차마 엄마에게 우리의 계획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완벽한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를 신고하는 쪽에 섰다는 걸 얘기하기는 좀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주방을 통해 방으로 들어간다.
“아까 메뉴판 바꾸라는 얘기도 그렇고, 갑자기 가게로 찾아온 것도 그렇고. 수상해.”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엄마가 나쁜 짓하는 게 싫어서.”
엄마는 잠시 주춤한다. 엄마는 마음까지도 약한 사람이다.
“먹고 사려고 하는 게 나쁜 짓이야? 엄마한테는 자식 교육 못 시키는 게 더 나쁜 짓이야.”
결국 내 입으로 엄마를 “나쁜”이라고 표현해 버린다. 엄마는 늘 자신이 강하다고 얘기했다. 그것은 아마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고, 네 아버지 몫까지 다 해줄 거야. 그 말이 엄마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 시켜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죽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도, 그 남자에게 받은 싼 식자재와 소스들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것도 나를 위해서라면 상관없다고 했다. 엄마 말대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 나에게 이 정도의 생활도 지급해주지 못한다면 나에게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닌 어떤 사람일까.
“륭아, 지금 하려는 행동 그만 둬.”
엄마는 이미 다 눈치 챈 모양이다.
“그만 못 둬. 그만 두려면 금룡이 우리 가게라고 애들한테 말해야 한단 말이야.”
“말 해. 내가 니 엄마니까 그만 하라고 말해.”
엄마는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얘기하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조금만 있으면 모든 게 끝날 수 있다. 이제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일만 남았는데 이제와 그런 얘기를 할 순 없다. 엄마는 예전엔 아버지 없이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얘기한다.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왜 숨기고 싶어 하는지, 부끄러워하는 지에 대해서 무지하다.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소리치는 나를 향해 더 크게 소리 지른다. 엄마가 돈을 적게 벌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한, 지금까지 번 돈을 벌금으로 낼 경우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엄마는 기숙사학교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턱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소리 지른다. 엄마와 나 모두 알던 내용이지만 발설하지는 않았던 사실이다. 그 말에 울컥해 차라리 신고한 포상금을 받아 학교에 가겠다고 얘기해버린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 신고하면 그 정도 학비는 나오지 않겠냐는 말에 엄마는 잠시 조용해진다.
“불쌍한 사람들 괴롭혀서 돈 벌라는 얘기는 누구한테 배웠어.”
엄마는 쭉 흥분해있던 언성을 낮추고 차분히 ‘불쌍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원산지 표기법을 준수합시다.’정현이 들고 있던 포스터에 적힌 문구다. 정현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만, 그래도 정의로운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훌륭한 시민일까.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는 건데,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 했으니까. 이런 생각들을 다 삼켜버리고 허물어지고 싶다. 나의 죄를 사하여준다는 아버지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이 상황이 해결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너의 죄는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죽음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누구의 죄를 대신해서 이런 상황을 겪고 있을까. 그들 말처럼 신이 있다면, 나에게 아버지가 하나 더 있다면 나를 왜 이런 고통에 집어넣은 것일까. 지금도 그들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라고 한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나는 감사함을 느끼고, 어떤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라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엄마와의 실랑이가 조금 가라앉고 나서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성제다. 이 일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집으로 돌아간 성제가 왜 여기. 밤이라고 생각 없이 홀에서 엄마와 다툰 것이 잘못이다. 성제는 내가 이 집 아들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한참을 그곳에 서있다. 나와 성제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있다. 우리의 계획을 엄마에게 말 해주러 온 듯하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성제에겐 엄마는 같은 불쌍한 사람이고,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당 쯤 될 테니까. 계속해서 내 존재를 알리라고 했던 엄마도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그리고 나는 어쩐지 모르게 이 모든 걸 삼켜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너무 한꺼번에 삼켜버려서 소화가 안 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아까 위기를 빠져나가려고 했던 거짓말이 실행되는 것처럼 뒤늦게 속이 좋지 않다.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오지랖을 부리냐고 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같은 처지의 우리 엄마를 구해주고 싶었던 것이겠지. 성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성제의 두 볼이 뻐끔뻐끔, 그도 나처럼 나를 질책하는 말을 삼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울음소리가 새처럼 가냘프다
그의 입이 조금 벌려질 때 쯤 나는 다시 오줌이 마렵다. 당장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처럼. 몸 안에 든 것들이 나를 압박한다. 너무 급작스런 몸의 변화에 나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달려 나가버린다. 화장실은 오른쪽으로 꺾어야 있지만 나는 그냥 달린다. 나는 달린다. 나는 달린다. 오랫동안 참아 오던 오줌을 뿜어내는 것처럼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쾌감이 느껴진다. 살았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우리에 어디에서 온 것일까, 끝이 정해져 있다면 그런 것들은 상관없지 않을까.
오늘 밤 판다가 동물원을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