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사는 집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주하는 봉분
해일에 가난한 몸을 실고 불어있는 집 한 채가 있다
얼큰한 취기를 군화에 실고 귀가하는 새벽녘
집으로 향하는 아비의 발길이 더뎌지고
엄지발가락 끝머리가 취기를 뚫고 아릿하기만 한데
커다랗게 부풀어 터져버리거나
이내 수그러져 사라져 버리던 세상 속
아비는 어떤 길을 택해야만 했던 걸까
등 위에 가족의 내일을 태우고
묵묵히 이 길을 행군해야만 했던 아비는
터지는 순간 모든 게 사라져 버리는
반지르르한 시한폭탄을 가지고 산다
터트릴 수도 안고갈 수도 없는 활시위 속에서
물 속에 단단히 불어있는 이 집
군화를 벗어 놓는 아비의 발은 오늘도
흥건한 땀 냄새로 시큼하기만 한데
둥글고 알찬 아비의 품 안에서
작은 손톱을 곤두 세워 연신 헤엄쳐 보던 나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비의 물집도 그 세력을 키우고
발 위에 다닥다닥 눌러 붙어
잠든 아비의 모습을 노려보던 습진들
물 위의 전력은 통하지 않던 시간
오늘의 전력을 다한 아비는 잠에 빠지고
태초의 모습으로 귀환하려
모든 발가락을 오므리는 아비 곁으로
한 줌의 파도가 철썩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