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나무

 
 1

  현기증이 일어난다. 아랫배 아래에서 열대어가 헤엄치는 느낌이 든다. 정확히는 헤엄치기라보다, 허우적거림이다. 수천개의 비늘이 내벽을 긁는다. 지느러미, 아가미, 꼬리, 모든 것이 내장을 휘저어 놓는다. 나는 어릴 적 푸른 열대어를 키우던 어항을 생각해 낸다. 나는 정신없이 손으로 아랫배를 더듬는다. 부드러운 살결이 아닌,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파랗게 다가온다. 나는 아랫배를 확인한다. 동그란 어항이 자리잡고 있다. 투명한 물이 찰랑거린다. 열대어는 없다. 하지만 내장을 샅샅이 훑는 비늘의 감촉은 선명하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어항 표면을 더듬거린다. 허공을 딛고 있는 발바닥이 차갑다. 손가락이 어항에 달라붙고 나는 어항 속으로 꾸득꾸득 손을 집어 넣는다. 구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은 유리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두꺼운 비누방울처럼. 어항 속으로 손을 밀어넣을수록 손에 무수한 상처가 달라붙는다. 피가 흐른다. 붉은 실 같은 피가 수중에서 흔들리는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번져간다.

  어지럽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아랫배가 차갑다. 손을 더듬어 아랫배를 만져보니 젤의 감촉이 남아 있다. 중간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소독약 냄새가 메스껍다. 나는 고개를 든다. 간호사는 검사를 마친 기계를 정리하고 있다. 모니터가 어둠 속에서 까맣게 빛난다. 어제 자른 머리칼이 목덜미를 긁는다. 눈이 뻑뻑하다. 무늬없는 미색 도배지가 이지러진다. 간호사는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말한다. 나는 윤곽이 흘러내리는 사물들을 응시하다가, 일어선다. 교복은 차갑게 식어 있다. 나는 교복 치마를 꿰어 입는다. 어둠에 젖은 교복은 살에 달라붙는다.

  엄마는 검사실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넥타이를 정리하며 엄마, 하고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퍼뜩 일어난다. 간호사는 차트를 든 채로, 바로 진찰실로 오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엄마는 어색하게 서 있다. 나는 엄마의 옷깃을 잡고 진찰실로 향한다. 엄마는 스스럼없이 나에게 끌려온다. 병원 복도에는 분유냄새, 젖냄새가 가득하다. 검사실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머리에 스며든다. 여자의 품에 안겨 잼잼을 하는 아기가 보인다. 아기는 작은 손가락을 고물거리고 있다. 나는 힘없이 웃는다. 순간, 핸드폰이 교복 주머니에서 울린다. 꺼내 확인하니 [절친]이다. 나는 눈앞의 진찰실, 이라는 글자를 한 번 읽고, 울리는 핸드폰을 꺼 주머니에 넣는다.

  의사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무자궁증1), 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엄마는 작은 흐느낌을 토해냈다. 엄마는 생리가 늦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사 머리맡의 검사 사진이 보였다. 엑스레이, 초음파 사진 따위였다. 내 아랫배 밑은 모두 깜깜했다. 비어 있었다. 의사의 한숨이 기도를 긁어 놓았다. 나는 단단함 밑에 깔린 동정을 목격했다. 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엄마는 말없이 일어섰다. 의사가 불러 세웠지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 내가 앉아 있었던, 산부인과 의자의 온도와 바람의 온도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무가 흐드러진다. 낙엽이 시야를 가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엄마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느리다. 내 오른손을 잡은 엄마의 손에 더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다. 엄마의 손이 뜨겁다. 너무 세게 잡은 손이 저릿했다. 엄마와 내 앞은 어둠이 깔려 있다. 나는 정신없이, 빠르게 엄마를 따라 걷는다. 좁은 시야 안에서 무언가가 발에 툭툭 걸려온다. 나는 무언가를 밟고 넘어진다. 아파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다.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해는 너무 빨리 져버렸고, 온도는 더욱 내려간다. 나는 넘어진 채로 작게 몸을 떤다. 나는 까진 손으로 주위를 더듬거린다. 손바닥에 차갑게 맞닿는 까만 바닥이 아득하다. 나무의 가지가 잡힌다. 나는 가지를 꽉 움켜쥔다. 나무의 결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다른 나무와는 달리 화살의 촉, 같은 느낌이었다. 아팠다. 나는 가지를 떨어트린다. 나는 어둠과, 더 깊은 어둠을 구별하려고 애를 쓴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짚고 일어선다. 내가 나무를 붙잡자 붉은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무 이름을 매단 팻말이 작게 삐걱인다.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낙엽이 파고든다. 나는 어둠에 젖은 붉은 잎들을 바라본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일으킨다. 손은 너무 세게 잡아 피가 통하지 않는다. 엄마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느리게 쓰다듬는다. 따듯한 손이 볼에 맞닿는다. 엄마는 나를 꼭 안는다. 나는 엄마를 살짝 밀어내지만 엄마는 강하게 날 껴안는다. 손바닥에 엄마의 젖가슴이 맞닿는다. 나는 손을 살짝 떼어내고, 손을 움켜쥔다. 엄마는 내 얼굴을 더듬거리며 붙잡더니, 내 이마에 입맞춤을 한다. 이마 위로 뜨거운 엄마의 눈물이 느껴진다. 문득, 병원에서 보았던 아이가 생각난다. 연신 잼잼을 하던 아이의 손바닥.

  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문다. 엄마는 다시 내 손을 잡고 일어선다. 뒤를 돌아 나무의 이름을 확인한다. 글자는 어둠에 잠겨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글자를 확인한다. 화살나무다.

  엄마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날 방에 앉혀 놓고, 문을 닫고 나간다. 손바닥에 감기는 이불의 익숙한, 감촉에 소름이 돋는다. 아까 넘어진 무릎이 약간 쓰라리다. 그리고 또 한번의 문소리가 나고, 엄마의 오열이 들린다.

2

  -어제 왜 전화 안 받았어?
  나는 책상에서 고개를 든다. 은정이 울상을 짓고 있다. 또다시 열대어가 헤엄치는 꿈이었다. 기포들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눈을 세게 감았다 뜬다. 그리고 은정의 얼굴을 바라본다. 중학교 때부터 익숙히 봐온 얼굴. 하얗고 선이 곱다. 은정의 이마에는 중년의 사내처럼, 깊은 주름이 하나 새겨져 있다. 흉터라고 했다. 나는 은정의 단정한 얼굴과, 그 세월의 흔적같은 흉터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제 건강검진 때문에 병원 갔었어. 무슨 일 있었어?
  은정은 고개를 젓는다. 그냥. 숱이 많은 눈썹이 일그러진다. 은정의 버릇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은정은 금세 티가 난다. 나는 은정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고, 다시 엎드렸다. 은정의 흰 손이 허공에 어색하게 놓인다. 나는 배가 아프단 핑계로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었다.

  은정은 항상 관심을 갈구했다. 은정은 편모 가정의 아이였고, 그래서인지 더욱 나에게 매달렸다. 나는 그런 은정을 항상 받아 주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은정의 얼굴을 확인할까, 했지만 그냥 그대로 있었다.

  내가 일어난 시간은 4교시, 생물 시간이었다. 생물 선생은 인류학에 설명하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 인간의 유전자, 생식, 번식, 종의 보존. 활자들은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 채 눈 앞에서 떠다닌다. 칠판을 두드리는 분필 소리가 교실의 먼지와 뒤섞인다. 칠판 아래로 분필 가루들이 쌓여 있다. 생물 선생은 천 지우개로 가루들을 조금 털어낸다. 그리고 칠판에 RNA, DNA 모형을 그린다. 두 개의 나선형 선이 칠판 위에서 대립한다. 인간의 유전자와, 종족보존의 이유가 다시 흰 글자로 늘어진다. 나는 문득, 아랫배를 움켜쥔다. 통증이 잇달아 찾아온다. 통증이라기보다, 공허함에 가깝다. 물고기의 감촉이 느껴진다. 공허한 공간에 계속 지느러미가 맞닿는다. 나는 주먹을 힘껏 틀어쥔다. 살과 살이 뿌득거리는 소리를 낸다. 분명히 살로 가득 차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다. 발작적인 공허가 자꾸 온몸을 덮친다. 순간 은정의 깡마른 팔이 팔꿈치에 맞닿는다. 은정의 팔은 작게 경련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은정을 본다. 은정은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나는 은정의 팔을 잡는다. 팔의 온기가 손바닥 안에 꽉 들어찬다. 은정은 피곤한 듯한 얼굴이다. 은정의 표정은 알 수 없다. 은정의 기묘한 표정 위로 어제, 집에 오는 내내 말이 없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필통에서 펜을 꺼낸다. 검은 펜을 들고 은정의 교과서에 글자를 적는다. 은정의 교과서는  색색의 필기로 채워져 있다. 단정하고 깔끔한 필기 위로 엉망인 내 글씨가 이어진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덜덜 떨어? 은정은 손톱을 씹는 것을 멈추고 날 응시한다. 그리고 핏기없는 입술을 짓씹는다. 이에 씹힌 아랫입술에 혈색이 돈다. 은정은 붉은 펜을 들고 내 글자 위로 손을 옮긴다. 하지만 펜을 고쳐잡을 뿐 적지는 않는다. 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진다. 나는 은정의 손만 바라본다. 그리고 결심한 듯히 글자가 이어진다. 나는 이어지는 붉은 활자들을 속으로 소리내어 읽는다. 두 달째 생, 리, 를, 안해. 나는 고개를 들어 은정을 본다. 은정은 말이 없다. 그저 종이만 내려다볼 뿐이다. 검고 긴 속눈썹이 짧게 흔들린다. 은정의 남자친구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은정은 펜으로 톡톡 종이를 두들기고 있다. 붉은 잉크가 종이 위에 맺힌다. 은정은 계속 펜을 두들기고, 교과서 위로 붉은 잉크가 번져간다. 나는 검은 펜을 들고 적는다. 괜찮을거야. 걱정 마. 펜을 너무 힘을 주고 쓴 탓에 종이가 눌린다. 형광등 빛에 검은 잉크가 작게 반들거린다. 나는 작게 눈을 찡그린다. 나는 종이에서 손을 떼어낸다. 은정의 붉은 글씨는, 내 손 때문에 번져 있다. 나는 눈을 돌려 내 손을 확인한다. 붉은 잉크가 묻어 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생물 선생은 DNA가 그려진 칠판을 남겨둔 채 나가고, 반 친구들은 식당으로 달려 나간다. 우리는 여전히 펜을 쥔 채로 앉아 있다. 순식간에, 우리 위로 정적이 덮쳐온다.

3

  은정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은정의 아랫배를 응시한다. 은정은 살짝 배를 가린다. 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을 뿐 침묵했다.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경적을 울리고, 소란스러운 거리의 소리가 이어진다. 혼잡한 도시의 소리는 은정의 침묵에 균열을 일으킨다. 나는 은정의 손을 잡는다. 또다시 공허한 통증이 이어진다. 나는 약국 안을 들여다본다. 붉은 십자가 모양의 스티커가 유리문에 붙어 있다. 나는 은정과 함께 약국 안으로 들어간다. 은정은 내 손을 잡은 채 말이 없다. 나는 임신테스트기, 주세요. 하고 끊어 말한다. 약사는 중년의 여자다. 약사는 파란 눈썹을 작게 찡그리고는 임신테스트기를 건네준다. 삼천 원. 나는 충동적으로 약사 뒤의 생리대에 눈이 간다. 분홍빛 포장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말한다. 생리대도 같이 주세요. 동시에 은정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나는 생리대와 함께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중량감이 느껴지는 비닐의 감촉, 은정과 약사의 시선. 나는 곧장 뒤돌아 약국을 나왔다. 잘 닦인 유리벽 표면에 내 지문에 찍히는 게 보였다.

  -어떻게 하지.
  은정의 침묵이 깨졌다. 은정의 목소리는 어두워진 대기에 부딪혀 울린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은정을 바라보았다. 네온사인이 눈꺼풀 밑으로 파고든다. 내 손에 들린 봉지가 작게 흔들린다. 나는 은정의 까만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나는 언제나처럼, 은정에게 가장 이성적인 답을 제시한다.
  -네 미래를 생각하면, 지워야지. 무조건.
  은정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은정은 입술을 작게 깨문다. 나에게 여러 가지를 따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녀 자신의 상황이 꽤 심각하다. 은정은 입술을 여러번 짓씹기를 반복하다가,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잠자코 들었다. 변명같은 은정의 경험들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달 전 대학생 남차친구는 떠나갔고, 은정은 그 사실을 나에게 말했었다. 나는 진심으로 은정과 함께 울었다. 은정은 지금 지난 얘기를 되풀이 하며 필사적으로 울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은정은 한동안 말이 없다. 은정은 본래 말이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조금 더 후에, 은정은 의뭉스럽고, 걱정스러우며, 어둠에 잠식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처럼 되기 싫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밤바람이 차갑다.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다. 은정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 나 또한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 붉게 황혼이 내려앉은 교실 안에서, 은정은 울고 있었다. 학교에서 내내 은정을 따라다니던 수식어가 문득 생각이 났었다. 나는 나에게 항상 손을 잡고 조언해주던 엄마가 있었고, 은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충동적으로 울고 있는 은정의 손을 잡았다. 은정은 눈물 범벅이 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고, 그리고 꽉 껴안았다. 마치 엄마처럼. 석양에 물들었던 주황빛 와이셔츠가 마구 구겨졌었다.

  은정은 화장실 칸 안에서 울기 시작한다.
  아이같은 울음소리 중간에 무언가 짧은 둔탁음을 내며 떨어진다. 은정의 손에서 떨어진 임신 테스트기가 화장실 문 밖으로 굴러나온다. 테스트기는 더러운 타일 바닥에서 작게 구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테스트기를 줍는다. 화장실 칸 밑으로 덜덜 떨리는 은정의 맨다리가 잠깐 보였다 사라진다. 나는 손에 들린 테스트기를 확인한다. 희미한 오줌 냄새와 함께 선명한 두 줄이 보인다. 그 옆의 임신, 비 임신이라고 쓰인 그림도 보인다. 비임신은 한 줄이었고, 임신은 두 줄이었다. 나는 은정의 울음소리가 멎을 때까지, 본래의 줄을 제외한 새로운 줄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붉은 색 줄. 기묘했다. 나는 붉은 줄 위를 살짝 쓸어본다.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화장실 문 앞으로 다가간다. 문을 두드린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은정의 호흡이 타일 위로 가라앉는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문 사이로 은정의 얼굴이 드러난다. 이마의 흉터 위로 아주 얇은 그림자가 박혀 있다. 나는 은정을 끌어 안는다. 은정의 육체는 지나지게 연약하다. 가늘게 저민 표피같은 몸이 다시, 떨린다. 그리고 은정의 다리 밑, 화장실 어딘가에서 참을 수 없는 생리혈의 악취가 붉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은정을 안은 채, 하수구로 눈을 돌린다. 하수구 위에는 어릴 적 키우던, 그 어항 속의 물고기가 퍼득거리고 있다. 반질반질한 지느러미가 물처럼, 녹슨 하수구 구멍으로 흘러내린다. 물고기의 퍼득거림이 더 거세질수록, 나는 손에 쥔 은정의 테스크기를 더욱 강하게 움켜쥔다. 생리혈의 악취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4

  은정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학교에 나왔다. 눈가가 붉게 부푼 채였다.
  엄마한테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끼리 ‘처리’하는 방법은 없냐고, 은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끔찍한 생리혈의 냄새가, 은정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은정은 양호실에 가 있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방에서 생리대를 꺼낸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다시 떠나간다. 나는 화장실로 향한다. 손바닥을 생리대의 포장지가 손바닥을 간질인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암모니아의 향이 강하게 풍긴다. 마지막 칸에 들어간다. 더러운 변기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속옷을 내리고 앉는다. 휴지통을 바라본다. 더럽혀진 생리대와 휴지가 보인다. 군데군데 핏자국이 묻어 있다. 악취는 가라앉지 않고 계속 주위를 떠돈다. 나는 숨을 막는다. 그리고 내 속옷을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없다. 나는 생리대를 뜯는다.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생리대를 속옷에 꼼꼼하게 붙인다. 그리고 다시 속옷을 입는다. 면이 아닌 생리대의 감촉에 소름이 돋는다. 은정은 그 날 병결 조퇴를 했고, 나는 생리 조퇴를 했다.

  -화살나무? -응, 화살나무.
  은정은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동자 아래에 희망이 깃들어 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응, 원래 몸에 좋은데, 낙태에도 쓰인대. 우리가 직접 사는 건 비싸고, 관상용으로 많이 써서…학교에도 있었어, 응, 있었어…아마, 줄기랑 잎을, 달여서 먹으면…애가, 떨어진대.

  은정은 웃는다. 그거, 당장 꺾으러 가자. 응? 은정의 얼굴에는 불안한 웃음이 떠다닌다. 나는 함께 웃어준다. 결이 고운 은정의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린다. 은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나는 은정을 따라 간다. 은정의 얇은 다리는 연신 휘청거린다. 은정의 몸이 더 마른 것 같다. 살에 닿는 보송한 생리대의 감촉이 문득, 선뜩하게 다가온다.

  화살나무는 붉게 물든 채다. 잎이 온통 붉다. 나는 그 화살나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생리혈의 악취가 유난히 강하게 풍기는 까닭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은정은 벌써 가지를 꺾고 있다. 키가 닿지 않는지 은정은 힘껏 뛰어 오른다. 화살나무는 신기하게도, 가지와 줄기가 다른 재질이다. 마치 따로 붙여 놓은 것처럼. 줄기는 여느 나무 같은데 비해, 가지는 코르크 재질이다. 코르크는 마치, 화살의 날개처럼 가지에 붙어 있다. 다른 식물이 기생하는 것처럼, 이질적이다. 나무 화살에 붙어있는 새의 깃털 같다고, 생각한다. 끝에 동그랗고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다. 은정은 열매가 가장 많이 매달린 줄기를 꺾고 있다. 줄기가 질긴지 은정은 줄기를 떼어내려 용을 쓴다. 은정이 줄기를 꺾으려 이를 악물고 힘을 줄 때마다, 화살나무에서 붉게 물든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그 때, 경비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나는 불현듯 뛰기 시작한다. 은정도 뛰기 시작한다. 경비의 혀 차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은정과 나는 계속 달린다. 기도가 마르기 시작한다. 발바닥이 뜨겁다. 목덜미가 차갑다. 머리가 뜨겁다. 아랫배가, 공허할만큼 차갑다. 은정은 학교에서 한참 떨어져서야 달리기를 멈춘다. 은정은 온통 엉망이 되어 있다. 붉은 잎들이 은정의 교복,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있다. 은정은 숨을 몰아쉬며 가지를 들어올린다. 은정의 팔 만큼 길고 연약한, 가지였다. 잎과 함께 열매가 흔들린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은정의 얼굴 위에는 알 수 없는 붉은 감정이 쌓인다. 아니, 내 얼굴이다.

5

  은정은 붉은 화살나무 가지를 들고, 전철을 탄다. 나는 은정의 손목을 덥석 잡는다. 공허한 통증이 울렸지만, 은정을 응시한다. 연약한 가지가 은정의 머리 위에서 흔들린다. 나는 은정에게 가로로, 고개를 젓는다. 은정은 이상하다는 듯이 웃는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작은 숨처럼, 말을 뱉는다. 아니야, 아니야 은정아. 사람들이 흘금거리며 지나간다. 열차의 문이 소리를 내며 닫힌다. 은정은 간단히 한 발을 물러선다. 그리고 열차는 긴 숨소리를 시작으로 출발하기 시작한다. 작은 유리창 너머, 화살나무 가지를 든 붉은 은정의 모습이 기묘하다. 나는 계속 은정을 눈으로 쫒는다. 은정은 가지에서 열매를 하나 따더니, 그대로 입에 집어 넣는다. 나는 붉은 입술 사이로 열매가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본다. 그리고 열차의 속력이 빨라지고, 유리문 너머로 은정의 형체가 붉게 이지러진다. 뭉그러진 은정의 모습은 다른 이들로 변하다가, 허공을 긁는 소리를 내고 사라진다. 나는 계속 은정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것도 없다. 쇠냄새가 나는 바람이 뺨을 쓸고 지나간다. 나는 마른 뺨에 손바닥을 갖다 댄다. 뜨겁다. 나는 손바닥이 정말 뜨거워서, 계속 눈을 깜박거린다.

  전철 안은 연신 덜컹거린다. 다시 공허한 아픔이 찾아온다. 나는 아랫배에 손을 갖다 대 보지만 교복의 천의 감촉만 남아 있다. 볼 위로 물고기의, 진한 푸른 비늘이 돋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온몸에 소름이 내달린다. 나는 다급하게 손으로 뺨을 훔쳐낸다. 순간, 손끝에서 생리혈 냄새가 난다. 나는 손가락 끝을 바라본다. 손톱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손톱 밑에서 붉은 비늘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손끝에서 시작된 악취는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나는 비명을 삼킨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한테서 악취가 나는 것 같다. 나는 다음 역에서 곧장 내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발바닥 밑으로 밟히는 붉은 낙엽들의 감촉이, 끔찍하다.

  나무다. 화살나무. 은정이 가지를 꺾은 화살나무다. 나는 화살나무의 가지를 만져보려 손을 뻗지만 무언가가 가로막는다. 어항이다. 화살나무는 어항 안에 있다. 나는 예전의 꿈처럼 입구 없는 어항에 부득불 손을 밀어넣는다. 꾸득꾸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 위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치지 않고 어항 안으로 전신을 밀어 넣는다. 피가 더욱 더 많이 흐르기 시작한다. 피는 흰 운동화에 고인다. 나는 화살나무가 있는 어항 속으로 들어왔다. 발 밑에서 무언가 퍼덕거리기 시작한다. 열대어다. 푸른 지느러미의 열대어. 열대어들은 내 피로 차오르는 어항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화살나무는 잘린 가지의 절단면에서 피를 뿜어낸다. 나는 비명을 내지른다. 나는 비명을 내질렀지만, 들리는 건 아기 울음소리다. 나는 목을 부여잡고 웅크린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정적이 몸을 기어다닌다.

6

  침묵은 내 아랫배 안쪽에 고였다. 침묵은 썩어간다. 나는 동면에 들어가는 포유류처럼 몸을 옹송그린다. 핸드폰이 울린다. 은정의 전화다. 은정은 일주일 넘게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밤낮으로 설사를 한다고 했다. 담임은 은정이 아닌, 은정의 어머니와 통화했다고 했다. 수업시간 내내, 붉은 화살나무 가지를 들고 웃던 은정이 생각난다. 아니, 웃고 있었는지, 울고 있었는지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어둠 사이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는다. 그리고 은정의 전화를 받는다. 핸드폰의 차가운 감촉이 볼을 짓누른다. 핸드폰 너머로 흐느낌 소리가 이어진다. 은정의 미친듯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잠자코 그것을 듣고 있는다. 내 손에서는 여전히 생리혈의 냄새가 나고 있다. 나는 아랫배를 감싸쥔 채로 몸을 더 웅크린다. 긴 울음 끝에, 나는 은정에게 물었다.
  -아기, 어떻게 됐어?
  은정은 울기만 한다. 숨이 넘어갈듯한 울음소리가 이어진다. 눈 앞으로 부옇게 빛무리가 번진다. 방 안은 차갑게 식어 있다. 나는 되묻는다.
  -어떻게 됐냐니까?
  은정의 울음소리가 더욱 더 커진다. 나는 다시 되묻는다.
  -어떻게 됐냐고?
  기절할 듯이 울다가, 꺽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은정은 울음을 멎었다. 수화기에 귀를 갖다 대보니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집 안은 어둠에 잠겨 있다. 엄마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다. 텅 빈 집 안 위로 엄마의 울음소리의 이명이 굴러다닌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속옷을 내리고 변기 위에 앉는다. 생리대 위에 무언가가 묻어 있다. 나는 고개를 숙여 확인한다. 붉은 피다. 그 가운데에, 화살나무의 붉은, 어린 잎과 아주 조그만 물고기의 형체가 보인다. 모두 피와 범벅이 된 채로 생리대에 묻어 있다. 나는 새 생리대를 선반 위에서 꺼내고, 피가 묻은 생리대를 떼어낸다. 그리고 새 생리대를 뜯어 속옷에 꼼꼼히 붙인다.

  은정은 화살나무 밑에 있겠다고 했다.
  왜 그곳인지는 잘 몰랐다. 나는 깊은 밤에 몰래, 집에서 빠져 나왔다. 은정은 은정이 말한대로, 화살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은정에게 다가갔다. 어두운 탓에 은정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낙엽이 발 밑에서 바스라졌다. 밤의 냄새와, 생리혈 냄새, 그리고 나무의 냄새가 뒤섞여 났다. 은정은 아직도 울고 있었다. 은정의 숨죽인 울음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은정을 안아 주었다. 생리혈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은정을 더욱 세게 안았다. 은정은 배를 쥐고 웅크린다. 나는 그런 은정을 꼭 껴안은 손을 들어올려 손바닥을 확인했다. 보안등의 빛이 손바닥을 비추고 있다. 손바닥에는 붉은 얼룩이 묻어 있다. 나는 그 얼룩을 화살나무의 줄기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은정의 울음이 바스라진 낙엽 가루들과 범벅이 되고,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은정의 아이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차분하고 가라앉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는 은정의 머리를 잡고 은정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내린다. 입술 위로, 은정의 이마에 난 흉터가 느껴진다. 나는 아이를 보채듯, 쉬이, 하고 작게 소리를 낸다. 은정은 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나무가 작게 흔들린다. 낙엽이 다시 몇 개 떨어져 내린다. 눅눅한 달빛이 목덜미에 달라붙는다. 어둠이 은정과 나를 채우고 있다.

각주)-----------------
1) 무자궁증 : 선천적으로 자궁이 결여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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