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4년 10월 31일~11월 1일

장소 : 공주

 

첫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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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까지 출발!

원래 모임은 오전 11시반까지 공주신터미널에서 모이는 것이었는데, 대구대학교에서 공주신터미널까지 가는 길이 혼자 찾아가기엔 상대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대구대학교에서 경산역까지 간 뒤, 경산역에서 조치원역까지 가서 다시 조치원역에서 일반버스를 타고 공주신터미널까지 가야 했다. 모두 각각 1시간정도씩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버스의 경우 일반시내버스이기 때문에 내가 혼자서 가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모임 며칠전부터 김순호 사모님과 이야기하다보니 대전역에서 모여서 공주로 가는 팀이 있다고 했기에 공주가 아닌 대전역으로 가서 그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대구대학교에서 바로 대전역까지만 가면 되었다.

동대구역에서 대전역까지 가는 KTX는 9시23분 대전 도착이 가장 적당하고 그 이후는 모두 10시반 뒤의 도착이었다. 그래서 이 9시23분 도착편을 타야했다.

하양역에서 동대구역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간뒤,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역으로 가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동대구역까지는 혁준이가 같이 가주기로 해서 아침 7시10분에 서문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하양역으로 갔다. 하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한 뒤, 바로 표를 끊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KTX를 타고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기 전에, 안내해준 직원에게 열차에서 내릴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고 출발했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준비해서 그런지 열차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동대구역에서 대전역까지는 한시간거리였는데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잠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KTX를 타면서 항상 도움을 요청했었고 그래서 안전하게 잘 도착했었는데, 무사히 내릴 수 있도록 늘 승무원이 와서 자리에 잘 앉아있는지 확인하고, 복지카드 검사도 했었다. 그래서 이번 역시 승무원이 날 확인하러 올거라고 생각했기에 승무원을 본 뒤에 한숨잘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어버린 것 같았는데,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아뿔싸! 9시25분이었다. 9시23분이 대전 도착인데...... 어떻게 된거지?

열차는 멈춰있지않고 달리는 중이었기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턱대고 승무원을 찾아 나섰는데 열차의 다음칸, 다음칸을 넘어가보아도 승무원은 없고, 세 번째 칸에서야 열차 내에서 음식을 파는 분을 만났다.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그분도 지금 열차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셨고 곧 승무원이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고 하면서 내 좌석번호를 적어두셨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있는데 불안한 마음에 자리가 전혀 편하지가 않았고 내가 속한 열차 칸의 문이 열릴 때마다 승무원이 들어오는지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때 김순호 사모님한테서 카톡이 왔다. ‘거의 도착했겠네요’라고.... 지금 조영찬 전도사님과 김순호 사모님도 천안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황을 다 설명해드렸는데 김순호 사모님도 현재 타고계신 열차의 승무원분꼐 이야기해본다고 하셨다.

곧 승무원이 들어와 내 자리로 왔다. 와서 하는 말이, 10시16분 서울역 도착 후 10시반 대전역 출발 열차를 타라고 한다. 내가 동대구역에서 탈 때 도움을 요청했고, 동대구역 직원에게 내릴 때도 도움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물어보고 대답도 받았기에 분명히 지금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승무원도 전달받았을텐데 내가 왜 대전역이 다와갈 때까지, 아니, 대전역을 지나가는데도 왜 확인조차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몰랐다고 한다.

동대구역에서 깜빡하고 전달을 해주지 않은건지, 열차 측에서 깜빡하고 확인을 안한건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정말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10시반까지 대전역에 도착해야 되는데 10시반에 서울을 출발해 11시반에 대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야 되었다. 그 승무원이 전혀 미안해하거나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 화만 많이 나고 나 떄문에 모두 기다리게 되어 너무 미안했다. 분명히 깜빡 잠들어버린 나의 과실도 있지만, 승무원의 무책임한 모습에 너무 화가 났다.

김순호사모님꼐 상황을 설명해드렸는데 괜찮다고 하시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1시간 늦게 오도록 조치했다고 했다.

그렇게 진짜 목적지도 아니었던 서울역에 도착해 서울역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전으로 가는 열차의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역시 자리에 앉으면서 그 직원에게 내릴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고 확실하게 대답도 받았지만 이미 한 번 잘못 되었기에 안심할 수가 없었다.

열차가 출발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곧 승무원이 왔다. 내가 지금까지 KTX 타면서 본 승무원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 승무원은 드물게도 남성이었다. 정말 키도 덩치도 큰 승무원이었는데 옆집 아저씨처럼 인상좋은 웃음을 지으시면서 인사하셨다. 내가 청각장애가 있다고 하고 손에 써주면 된다고 하니까 바로 시원시원하게 그렇게 해주셨다. 그리고 내 손에 대전역에 도착하면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적어주셨다. 이제야 제대로 도움받는 것 같아 그 승무원이 가고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제야 마음의 진정이 되어 의자에 기댈 수 있었다.

그렇게 대전역 도착시간이 다가올 때쯤, 다시 그 남자 승무원이 나에게 와서 포스트잇을 주었다. 거기에는

“대전역 도착하면 다른 승무원이 와서 안전하게 내리도록 도와줄 겁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알겠다고 하니까 다시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주셨는데 정말 좋은 승무원인 것 같았다. 결국 대전역에 도착하니 정말 다른 승무원이 다가와서 무사히 하차하도록 도와줬다. 기다리고 있던 대전역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전역 표파는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조영찬 전도사님과 김순호 사모님, 그리고 기다리던 다른 일행분들을 만났다. 고생해서 가서 그런지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공주도착 후 치즈스쿨 방문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대전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 내렸다. 대전역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꼐 대기중인 차를 타고 공주로 출발핶다. 차에서 조영찬 전도사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조영찬 전도사님도 시청각장애인인데 나보다 장애의 상태가 더 심한 전맹에 고도난청이었다. 어떻게 대화가 가능할지 궁금했는데 조 전도사님도 수화를 조금 할 줄 아셨다. 그래서 조 전도사님의 손을 잡고 수화를 하면 다 이해하셨고,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인 손바닥에 글을 쓰는 방법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내가 사용하는 소통방법을 다른 장애인에게도 사용하니까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무언가 반가운 느낌이 밀려오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렇게 대화하면서 어느새 공주에 도착했다. 점심을 먼저 먹었는데 소고기국밥이었던걸로 생각한다. 고생해서 갔기에 배가 고팠던 것도 있지만 그 국밥집이 진짜 맛있었다.

밥 먹고 있을 때 김순호 사모님의 여동생 되시는 분의 가족이 와서 우리 일행에 합류했다. 김 사모님의 여동생은 명희누나로 그분의 남편과 그 부부의 두 딸 하늘,하은이와 함께 합류했다. 그리고 저녁에 합류할 내 통역인 김영주 씨가 오기 전까지 내 도우미를 할 정성모 씨도 거기서 합류했다.

점심을 다 먹은 뒤 공주 치즈스쿨로 이동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내가 이 모임에 처음 참석했기에 내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는 소개를 할 때 비장애인들이 소개를 할 때와 다른 규칙이 있다고 한다. 시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안보이고 목소리도 안들리기 떄문에 상대방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청각장애인 모임에서 소개를 할 때는 이름과 성별, 나이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나이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청년인지 장년인지 등으로 이야기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규칙대로 내 소개를 하고 나 때문에 모임의 일정이 한 시간 늦춰지게 되어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내 소개가 끝난 뒤 치즈스쿨의 강사가 와서 피자만들기 체험을 시작했다. 시청각장애인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 모임에서는 촉감을 이용한 체험 위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피자 만드는 과정을 난생 처음 보고 직접 해보게 되었다. 도우를 피자크기만큼 크게 만들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재료들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치즈를 올리는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만든 피자는 구울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강사에게 맡기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는 치즈만들기 체험을 했다. 먼저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다시 비닐장갑을 껴서 고무줄로 고정한 뒤, 치즈덩어리를 받았다. 그 덩어리를 모두 작은 알갱이가 되도록 뗴어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알갱이로만 되자, 거기에 80도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고 물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반죽을 하듯이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덩어리로 뭉쳐진 치즈를 물 밖으로 꺼낸 뒤, 덩어리의 한 부분씩을 사람들이 잡고 당기니까 진짜 치즈가 되어 사람들이 당기는 방향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그렇게 완성된 치즈를 각자 작은 통에 담았다. 라면이나 떡뽂이 등을 먹을 때 넣어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건물 밖으로 나와 송아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송아지가 총 4마리였는데 각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

이는 체험을 했다. 우유병을 가져가면 송아지가 입을 가져와서 마시기 시작하는데 정말 맛있게 잘 받아 마셨다. 생후 2개월된 송아지들인데 다른 세 마리는 흑백의 무늬인데 내가 우유를 먹인 송아지는 검은 송아지였다. 우유를 마시는데 침인지 우유인지 송아지의 입가로 흰 거품이 조금씩 떨어졌다.

송아지에게 우유먹이기 체험을 다 한 뒤, 뻥튀기기 체험을 하러 갔다. 뻥튀기기는 쌀로 과자를 만드는 건데, 사실 이 뻥튀기는 것을 이날 난생 처음 알았다. 어떤건지 전혀 몰랐었는데 이날 체험을 통해서야 처음 알았다.

쌀을 넣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면서 감아준 뒤, 마지막에 진짜 ‘뻥!’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그리고 수북히 쌓인 과자 완성!

그렇게 치즈스쿨에서의 체험을 다 끝낸 뒤 1층에 처음 피자 만들기 체험을 했던 곳으로 모였다.

거기엔 조금전에 만들었던 피자가 구워져서 스파게티, 음료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피자가 저녁으로 되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피자 다 먹고 단체사진 찍고 치즈스쿨에서의 체험을 마치고 숙소인 공주관광호텔로 이동했다.

 

 

-공주관광호텔

공주관광호텔에서부터는 든든한 내 통역 겸 활동보조를 해줄 영주가 합류했다. 늘 학교에서 보던 영주인데 이렇게 먼 곳에서 보니까 조금 색다른(?) 느낌이었다.

영주는 특수교육학과로 정말 특수교사가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씩 나에게 수화도 가르쳐주고, 전맹인 시각장애학생의 보행훈련도 도와주고, 지체장애학생의 활동보조도 하는 등 정말 여러 장애인들을 돕고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그리고 보람을 느끼며 하는 모습이 미래의 특수교사 다웠다. 그래서 이번 공주에 시청각장애인 모임을 하러 가는 것도 정말 같이 가고싶어했고, 나도 누구보다도 영주가 같이 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정말 감사했다.

각자 방을 배정받아서 짐을 풀고 방에서 조금 쉬다가 영주랑 둘이 호텔 밖 편의점으로 갔다. 조 전도사님의 통역을 해줄 다른 분이 곧 도착할텐데 그분이 영주의 룸메이트로 되어있어서 그분을 영주와 내가 마중나가 호텔까지 안내해주기로 했다. 마중나가기전까지 잠시 시간이 남아서 영주랑 편의점에 앉아서 대구에서 출발부터 호텔에 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공주신터미널로 다른 통역인을 마중나갔다. 윤석영이라는 분으로 영주랑 동갑이고 조 전도사님께 점화로 통역해주시는 분이다.

호텔로 안내하고 짐을 푼 뒤, 7시에 호텔 세미나실에 모두 모였다. 강사로 예정된 분이 오시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인원들이 돌아가면서 소개를 했다. 대화할 때는, 나와 영주, 석영이가 나란히 앞 테이블에 앉았고 뒤의 큰 테이블에 나머지 분들이 앉았다.

조 전도사님의 한소네 점자단말기와 내 자리 바로 앞의 큰 모니터의 컴퓨터에 키보드를 연결해두고 영주랑 석영이가 번갈아가면서 타이핑을 쳤는데, 타이핑을 치는 내용이 내가 보는 모니터엔 큰 글씨로 나오고 전도사님의 단말기엔 점자로 바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마다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데, 다른 시청각장애인이신 흥신 형님이 사용하시는 이어폰으로 마이크를 쥔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전달되었다. 그렇게 모든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생생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대화가 가능하도록 조치된 환경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마지막 소개였는데 내 소개가 끝날때쯤 강사분이 오셔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강사분은 샬롬교회의 담임목사 심석규라는 분으로 병원의 의사도 하고 고려대학교의 외래강사도 하는 등 타이틀이 정말 많은 분이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모임에서 소개하는 방식대로 소개를 하셨고 본인의 별명에 대한 소개를 하셨다. 목사님의 별명은 심봉사라고 한다. 심청전에 나오는 심봉사의 원래 이름은 심학규로, 이름이 비슷한데 여기서 ‘봉사’의 의미는 시각장애가 아닌 여러 의료시설과 복지시설을 설립하여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어진 별명이라고 한다. 의사이기에 강연은 주로 건강과 관련된 주제로 하였는데 목사님이기도 해서 중간중간에 찬송가도 부르고 하면서 신앙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그런데 목사님의 누나 되시는 분도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셨는데 목사님의 강연내용을 보면, 장애인을 지칭할 때 ‘장애인’ 이라고 하거나 ‘장애우’라고 했다.

‘장애우’라는 표현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장애인을 좀 더 높여부르는 의미로 이해했었지만, 지금은 올바른 표현이 아닌 것으로 되어있다. 내가 레알장애체험스쿨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을 설명할 때 항상 강조하던 부분이라서 워낙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강연이 끝나고 질문하는 시간에 목사님께 한 번 이야기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결과적으로 질문하는 시간에 질문을 하지 못했다. 전도사님과 흥신형님이 건강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는지 계속 두분이 번갈아가면서 질문하셨고 질문 하나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도 워낙 긴 편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내가 질문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10시까지 예정되었던 강연은 강연이 끝난 뒤 먹으려고 시켜뒀던 치킨이 도착한 뒤에도 질문과 답변이 계속되는 바람에 10시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끝나고 모두 둘러앉아 치킨을 먹었다. 양념과 후라이드를 두 마리씩 시켰는데 ‘공주산’ 치킨도 맛있었다.

먹으면서 여러 대화를 나누다보니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들어가서 자고싶은 사람은 자고 더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대화하기로 해서 내 룸메이트로 지정된 정성모 씨를 제외하고 모두 전도사님의 방으로 이동했다.

전도사님의 방에서 모두 둘러앉은 뒤, 귤, 찰떡 등 다과류를 하나씩 집고 대화를 시작했다. 강연에서처험 나는 노트북화면을 보고 전도사님은 한소네 점자단말기를 잡으시고 영주와 석영이가 번갈아가면서 타이핑을 쳤다. 흥신형님은 그냥 이어폰을 이용해서 대화내용을 들으셨는데, 주로 대화가 나와 전도사님 간에 이루어졌기에 흥신 형님이 심심해하셨다. 둘이서만 이야기한다고 좀 끼워달라고 하시면서....^^

전도사님과 나눈 대화는 정말 좋았다.

대구대학교와 나사렛대학교의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의 시각장애학생에 대한 지원을 비교해봤는데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시각장애학생에게 필요한 대체도서의 경우, 우리 대구대학교는 신청을 받아서 책을 구매해야할 경우, 학교부담으로 책을 구매하고 책을 자른 뒤 스캔하고 그걸 pdf로 돌린다. 그리고 만들어진 pdf파일을 도우미학생들이 책 원본과 비교하면서 대체도서로 제작하는 과정으로 빠르면 1주일 늦어도 한달 안에는 완성할 수 있다.

그런데 나사렛대학교는 아직 스캔하고 pdf파일로 돌리는 과정을 도입하지 않은 것 같다. 시각장애학생이 대체도서를 신청한 책이 도서관에 없으면 시각장애학생 본인이 책을 사야하고, 책이 준비되면 도우미학생들이 직접 타이핑을 쳐서 제작한다고 한다. 스캔하고 pdf 파일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직 직접 타자를 치면서 제작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는 단점이 있다. 전도사님 말씀으로는 책을 신청한 후 받아보기까지 몇 달이 걸리고 어떤 경우에는 신청한 책이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럴 경우네는 시각장애학생이 중간,기말 등 시험준비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게 된다. 그래서 그럴 경우를 막기 위해 책 한권을 여러 도우미학생들이 나눠서 제작한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냉정하게 보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이용하는 부분에 대해 추천해드렸는데 국립장애인도서관도 알고 있지만 접근성과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하셨다. 한글파일이 가장 필요한 부분인데 국립장애인도서관에는 그 한글파일로 된 자료도 없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우리 대구대학교 시각장애학생들도 대체도서 신청시에 한글파일을 가장 선호하는데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아직 한글파일로 제작된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 않기에 시각장애학생이 신청한 도서가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소장 중이더라도 우리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제작해주게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한국장애인재단의 지원을 받아 올해부터 매월 한번씩 시청각장애인 모임을 해왔는데 지금까지 시청각장애인의 참석률이 너무 저조하기 떄문에 내년에도 계속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시청각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전도사님처럼 전맹에 고도난청인 분들은 이런 모임에 와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하지만 거리가 멀고 장애로 인해 이동 등에 어려움이 많기 떄문에 현실적으로 많이 참석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나처럼 전도사님의 장애정도에 비하면 가벼운 편인 시청각장애인은 모임에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모임에 온 분들이 더욱 나의 참석을 반겨하시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법학을 전공한 부분 떄문에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지원이나 협조 등의 요청에 대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 것 같다. 솔직히 모임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의 부실함과 열악함을 뼈저리게 느낀만큼 무언가 작게라도 이런 모임이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게 생겨났다.

흥신형님은 내가 온 걸 좋아하시면서 내가 40대가 되면 분명히 대법원에서 판사를 하고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시청각장애인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하셨다. 다소 장난스러웠지만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서 경청해 들어둘 생각이다.

그 외에도 앞으로도 모임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두분의 시청각장애인의 취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두 분에 비하면 나의 장애정도는 가벼운 편에 속해서 근로지원인이나 지역활동보조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일을 할 수 있지만, 전맹에 고도난청이면 일을 하더라도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도우미에게 의지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시청각장애인이 아닌 도우미가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전맹에 고도난청이지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우미의 도움을 덜 받으면서 일할 수 있을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두분이 현재 40대가 넘으셨는데 장애를 가지게된 뒤 아직 제대로 일을 해보지 못하신 걸로 안다. 조금이라도 늦기전에 두 분이 일을 하게되어 그에 대한 보수를 받을 수 있게되면 좋겠다.

그런 부분에서 현재 내가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법을 전공한 것도 있고 해서 두분의 시청각장애인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대화는, 흥신형님의 마이크 배터리가 나간데 이어 전도사님의 한소네도 배터리가 다됨에 따라 모두들 각자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새벽2시가 가까워오고 있는 시간이었다. 내 룸메이트로 지정된 정성모 씨가 호텔 키를 갖고 가서 안에서 주무시고 있어서 그분을 깨워야 했다. 그런데 전화도 해보고 초인종도 몇 번이나 눌러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1층 카운터로 내려가 마스터 키를 받아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샤워하고 싶었는데 성모 씨가 주무시고 있고 나도 너무 피곤해서 손과 발만 씻고 바로 침대에 올랐다.

 

 

둘째날

 

-자전거 타기

평소에 6~7시에 일어나던 습관 때문인지 전날 늦게 잠들었음에도 6시반에 눈이 떠졌다. 그래도 쏟아지는 잠 세례에 다시 잠들었고 정성모 씨가 꺠워줘서 일어나보니 8시반이었다. 밥 먹으러 가야된다고 해서 씻지도 못하고 모자만 쓰고 어제 강연을 했던 호텔 세미나실로 갔다. 가보니 모두들 와있었는데 다 식사를 끝낸 뒤였다. 그래서 정성모 씨와 나만 간단한 호텔 조식을 먹었다. 다 먹고 올라가서 샤워했다. 공주관광호텔은 밤에 오면 각 층마다 복도가 진짜 노래방 분위기 같았다. 노래방에 가면 으레 풍기는 냄새도 맡아졌고 조명도 어두웠다. 그렇지만 방은 진짜 좋았다.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춰져있었고 화장실에도 따로 샤워를 위한 부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정말 좋았다. 다 정리하고 모두 로비에 모여서 자전거타기 체험을 하러 갔다.

차로 이동하는 중에 내 옆에 앉은 전도사님이 사람들이 내 얼굴이 잘생겼다고 말해줬다면서 내 얼굴을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전도사님의 두 손을 잡고 내 얼굴로 가져갔는데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만져보셨다. 그리고 내 손에 ‘사나이 대장부’라고 적어주셨다. 순간 좀 부끄러웠다

자전거는 가족용인 4인용과 2인용 그리고 1인용이 있었는데, 난 1인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영주랑 각각 1인용을 탔다. 자전거를 진짜 오랜만에 타봐서 그런지 처음에는 좀 서툴렀지만 이내 감이 확 잡혀왔다. 영주와 함께 자전거 코스로 나아갔는데 그곳 자전거코스와 산책로가 정말 잘 만들어져있었다. 어느정도 달리다가 멈춰서 영주가 준비해온 폰 셀카 받침대(?)로 같이 사진 찍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코스를 가다보니 위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다리를 지나갔는데 그 다리 밑으로 공룡처럼 진짜 멋진 조각이 만들어져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정말 공룡처럼 보였다. 그리고 코스를 반 정도 돌아갈 때는 축구장도 지나쳤다. 축구골대가 있어서 축구장으로 보였는데 하나가 아니고 지나치니 축구장이 또 나오는 등 운동장도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운동장은 자전거 코스랑 사이에 어떤 장애물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축구공이 날아오면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지 염려스러웠다. 반면 다른 축구장은 자전거코스와의 사이에 철조망이 높게 쳐져 있었다. 코스완주에 한 20~30분 걸린 것 같았는데 다리 운동도 되고 좋았다.

처음 탄 곳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른 일행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먼저 와계셨던 조 전도사님과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이 내가 자전거를 잘 탄다고 해서 감탄하셨다고.... 그리고 전도사님이 대화 중에 우연히 내 팔뚝을 잡아보시고 나와있는 근육에 놀라워하셨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사모님을 비롯한 일행들이 다가와서 내 팔뚝을 만지는 상황이 되어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일행이 다 도착하자 다시 타를 타고 출발했다.

 

-도예가와 함께하는 도자기 체험

다음으로 간 곳은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그곳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아무래도 도자기를 만들고 하기엔 조용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장소가 좋은만큼 우리나라 전통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 같다.

도예가의 설명을 듣고 각자 찰흙덩어리를 받아서 컵이나 화분을 만들기 위해 단단히 층을 쌓아올려 만들기 시작했다. 예전 어린시절 초등학생 때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여러 가지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는 처음이기에 정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게 층으로 쌓아올린 찰흙을 컵을 하고싶은 사람은 컵으로, 화분을 하고싶은 사람은 화분으로 결정한 뒤, 모두 돌아가면서 도예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만든 찰흙을 기계를 이용해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체험을 했다. 영주가 내 차례 때 사진을 찍어줬는데 너무 마음에 들게 잘 나와서 카톡 프로필사진으로 설정했다.

영주는 화분으로, 나는 컵으로 결정한 뒤 거기에 원하는 그림이나 문구를 새겼다. 나는 ‘I LOVE YOU from k c Park’라고 새겼다.

그리고 남은 찰흙으로 본인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아령을 만들었는데, 도예가 선생님이 보시고 내가 만드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일 정도로 너무 단순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령을 만들고 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계시던 흥신형님이 오셨다. 내가 흥신형님의 손을 잡고 내가 만든 아령의 손잡이로 가져가 드리니까 좋아하시면서 내 어깨를 탁 치셨다. 성격이 정말 호탕하신 분이다.

그렇게 컵,화분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든 작품들은 나중에 다 구워진 뒤에 연말에 준다고 했다.

 

-수통골 산책

도자기 체험장에서의 체험이 12시반이 넘어서야 끝났는데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그래서 끝나고 오리고기 먹으러 간다는 말에 완전 신이 났다.

수통골 근처에 있는 ‘도덕봉가든’이라는 식당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오리고기를 먹었다. 이곳이 유명한 맛집이라고 하는데 진짜 맛있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 맛을 잊을 수 없다.

고기를 먹는데 내 건너편에 앉아계셨던 흥신형님이 나에게도, 영주씨에게도 한번씩 쌈을 사주셨는데 진짜 맛있었다. 나도 답례로 흥신형님에게 쌈을 싸드리고 영주씨도 흥신형님에게 쌈을 싸드렸다. 영주가 흥신형님께 쌈싸드리는 걸 보고 나도 하나 싸줄거라고 기대했는데 안싸줬다. 그래서 나도 하나 싸달라고 하니까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섭섭했다.

오리고기를 다 먹은 뒤에 수제비가 나왔다. 원래 나는 수제비나 떡국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곳 수제비는 진짜 맛있었다. 수제비가 나왔을 때 내가 흥신형님-시원형님-영주 순서대로 국자로 퍼서 놓아드렸다. 수제비를 먹으시던 흥신형님이 젓가락으로 무언가를 찾으실 때 그게 김치란 걸 금방 눈치채고 흥신형님의 젓가락을 쥔 손을 김치가 있는 접시로 가져다드렸다.

오리고기랑 수제비 둘 다 정말 너무 맛있었고 다음에 또 오고 싶어질 것 같다.

다 먹은 뒤 수통골이라는 곳의 산책을 시작했다. 청계천처럼 흐르는 물이 정말 맑아 보였고 공기도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영주랑 전도사님, 사모님, 석영이 등과 한 팀을 이뤄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약시이지만 전도사님은 전맹이라서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고도난청이기에 폭포수의 폭포소리와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석영이와 사모님이 옆에서 코스별로 점화로 설명해주긴 했지만 답답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폭포소리나 물 흐르는 소리를 못 들어도 눈으로 자연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전도사님이나 흥신형님 같은 경우는 오직 체감으로만 자연을 느끼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수통골 산책은 이번 프로그램 일정 중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즐거웠지만 모임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헤어질 시간

수통골 산책을 마지막으로 모임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다른 분들은 모두 대전과 천안 근처에 사시는데 나와 영주는 대구로 가야하기에 일단 대전역에서 가까운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 도착해서 테이블을 이어서 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도예가로부터 선물받은 내 컵을 내가 깨트렸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흥신형님에게는 이어폰, 전도사님은 한소네, 나는 노트북으로 모두 연결한 뒤 전도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모임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이 세고 강력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낼 수 있는 박관찬 님이 와서 너무 좋았다고 하셨다(부끄). 통역지원으로 와준 영주씨에게도 정말 고마워하셨다.

이런 모임에 시청각장애인들이 많이 참석하면 좋을텐데 전도사님과 비슷한 유형의 시청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지방에 있으면 대전까지 이동하기가 어렵기에 참석이 힘들고, 나와 비슷한 유형의 시청각장애인은 이런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참석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만큼 이번 모임에 내가 참석한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나도 소감으로 온라인으로만 알았던 전도사님을 실제로 뵙게된 것이 정말 좋았고, 모임도 기대와 예상보다 훨씬 좋았기에 이런 모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흥신형님을 처음에 계속 ‘흥신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본인이 선생님이 아니라고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하셔서 ‘흥신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더니 정말 좋아하셨다. 흥신형님이 문자하겠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고 하셨다.

나와 영주의 열차시간이 가까워와서 곧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전도사님의 인사로 마무리하고 일행들과 아쉬움의 인사를 나눴다. 모두 돌아가며 악수를 했고, 두 분의 시청각장애인분들은 꼭 안아드렸다. 왠지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든다.

 

-대구로~

김순호 사모님이 카페에서부터 대전역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바로 표를 끊고 열차에 올랐다. 올 때는 혼자 왔는데 갈때는 영주가 같이 있어서 든든했다. 열차에서 서로 느꼈던 점을 이야기하고 한숨자고 나니 금방 동대구에 도착했다.

영주랑 같이 저녁먹게 되었는데 내가 만두를 먹고 싶다고 해서 만두하는 곳을 찾다가 결국 못찾았다. 그래서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맛있게 먹으며 또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밥을 다 먹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야 만두를 파는 집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이미 배가 불러있어서 그냥 지나쳐야 했다.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중국집에서 중국요리와 탕수육 세트로 나온 만두를 먹어본게 마지막으로 ‘진짜’ 맛있는 만두는 먹어본 지 정말 오래된 것 같다.

그렇게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영주가 타야되는 버스가 두 번이나 지나쳤는데도 내가 가는 걸 보고 가겠다고 한사코 버티는 바람에 내가 먼저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모임기간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는데,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고 벌써 일행들이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았던만큼 여운이 며칠동안 길게 남을 것 같다.

 

공주를 다녀와서

솔직히 이 시청각장애인 모임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안은 내가 지금 다른 세계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조교를 하면서 많은 장애학생들을 만나봤지만, 나와 같이 시각과 청각에 중복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번 공주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공주에서 만났던 시청각장애인은 모두 나보다 장애정도가 더욱 심한 분들이었다. 약시약청인 나와 달리 두분은 모두 전맹에 고도난청이었다.

나도 시청각장애인으로서 그 모임에 참석했지만, 다른 두분의 시청각장애인과 같이 이동할 때는 내가 도움을 주는 입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보았지만, 이번 공주 여행이 지금까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생각된다. 시청각 중복장애인을 위한 모임인만큼 그들에게 달팽이처럼 느리더라도 통역을 해주고 대화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우미들이 도와주기 떄문에 그만큼 편안하고 여유있게 모임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전도사님의 말씀처럼 이런 모임은 멀리 지방에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참석하기가 어려운만큼 ‘찾아가는’ 모임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예산 등의 부족으로 어려운 환경이 너무 안타깝다.

나도 이번 모임에 참석을 통해서 이러한 모임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부족하지만 돕고 싶다.

그리고 시청각장애를 가진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분들에 비하면 나의 장애상태가 가볍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장애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분명히 장애를 가지게되어서 갖게된 장점도 많은게 사실이다.

모임에 다녀오고나니, 지금 현재의 모습에 얼마나 많이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말 매사에 열심히 임해야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번 모임을 통해서 점자를 배워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사람들과 원활하게 대화가 가능하도록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면서 내 손바닥에 글을 써주듯이, 나도 다른 시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 그 시청각장애인이 편하게 생각하는 방법 중 하나인 점화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전도사님이나 흥신형님도 손바닥에 쓰거나 수화로 대화가 가능하긴 하지만 나 역시 그분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의사소통 중의 한 방법인 점화가 가능하도록 점자를 배워둬야 할 것 같다.

조교를 하면서도 시각장애학생지원담당이기에 점자를 배워야 된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배워나가도록 해야겠다.

2014년 10월31일과 11월1일이야말로 올해 가장 의미있고 보람있는 날들이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조교 박관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