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갑을관계’. 백화점 모녀 사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등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계층이 자신보다 약자의 입장에 있는 이해당사자에게 당연하다는 듯 횡포를 부리는 실태들이 낱낱이 보도되고 있다. 두 사건을 포함하여 일명 ‘갑질’의 행태들은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갑과 을, 두 관계는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사회적으로 공분의 이슈가 되었는가. 먼저 갑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들을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상하관계나 주종관계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 겨우 사회에 나온 사회 초년생이나 알바생 대다수는 이러한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고 그런 취약한 대상들에 대한 갑의 횡포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이 상대적 우위인 기성 사회인들에게 받는 횡포는 아르바이트 혹은 인턴제도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실제로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지난해 6월 전국 남녀 대학생 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8%가 ‘알바 고용주로부터 횡포나 착취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경험했던 부당한 횡포·착취 중 성희롱이 3%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전의 갑의 횡포는 점주나 과외 고용인으로부터 받아왔다면 요즘은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이 손님으로부터도 온갖 인격모독을 당하곤 한다.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되는 영화관에서 외부에서 사갖고 들어온 음식을 먹거나 금연석에서 버젓이 담배를 핀다거나 해서 제재를 가할 때 ‘내가 손님인데 고작 아르바이트생이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며 무시하는 상식 밖의 손님들이 부지기수이다.
본지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을 응대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인터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우리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이 학생은 “원래 약속한 근무시간 외에도 일을 시키거나 정산 금액이 다르다며 일방적으로 월급차감을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했다. 최근에 이슈가 된 ‘열정 페이’를 듣고 이제야 논란이 된 것이 더 놀라웠다. 비교적 힘든 일이 적다는 이유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손님들을 상대할 때도 모욕적인 경험들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고, 어린 대학생으로 보며 무시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을의 고충을 토로했다. 고용인이든 서비스를 받는 손님이든, ‘갑’들이 을에게 상식적으로 대해 주기만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비단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들만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아르바이트가 아닌 기업에서 운영하는 인턴 제도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턴 제도는 기업에서 운영하기에 공정하고 투명성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급 인턴, 대학생 인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에 따른 적절한 보수가 제공 되지 않는다. 인턴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금턴’이라 불릴 만큼 합격하기 어렵다. 각고의 노력 끝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인턴을 차지한 학생들이지만,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을의 입장에서 기업의 갑질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것이 요즘 인턴들의 냉혹한 현실이다.
인턴과 관련하여 우리 대학의 한 학생은 “갑과 을의 문제점은 갑과 을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턴의 경우, 야근을 시키는 등 정규직 못지않은 양의 일을 시키면서 보험도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을이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갑을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전체적으로 사회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요즘 회사들이 정규직 전환을 무기로 인턴들에게 무리한 영업을 강요한다. 대학생들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여러 부당한 처우를 이겨내려 한다. 하지만 기업의 달콤한 정규직 전환을 믿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토사구팽 당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자신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당연한 듯이 기업들이 자행하고 있는 갑의 횡포,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하다가도 가진 것 없는 을의 설움이라 여기며 인턴을 그만두거나 불이익을 걱정하여 대응에 소극적인 을. 가장 중요한 것은 비뚤어진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입장에 놓인 것이 아니라 공생의 관계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절실하다. 갑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을들이 스스로 권리의식을 가지고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권리를 온당하게 만든 것은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시민의식이었던 역사적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갑을이 행복한 상생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문명인의 세상이다.

황보연수 기자  crusader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