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규약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세계인권선언과 달리 구속력만 지닌 것이 아니라 법적인 구속력도 지니고 있다. 일종의 조약으로서 체약국에대해 국제인권규약 준수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년도는 1990년이다. 이 국제인권규약 중 사회권규약 제 13조 2항 b c가 흥미로운데, 바로 이 조항에 ‘고등교육의 점진적인 무상화’가 규정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유럽의 대부분의 대학은 무상 교육이다. 자국 경제가 어려워지자 등록금을 최근 받기는 했지만 영국도 1997년 전까지 무상 교육을 실시하였다. 물론 액수는 그렇게 크지 않다. 1년에 2백만 원 정도니 말이다. 대학마다, 정세의 흐름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고등교육의 무상화가 전반적인 추세다.

그런데 이 국제인권규약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고등교육의 무상화를 계속 유보하고 있고 한국은 국제인권규약 사회권 제 13조 2항 b c를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고등교육의 점진적인 무상화는 고사하고 등록금의 점진적 혹은 수직적인 인상만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대학은 사업체로서의 수익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대학 안으로 ‘홈플러스’가 입점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학진 프로젝트 돈 따내기에 바쁘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고 상아탑이라는 말은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해마다 봄철에 불어오는 황사를 보면, 땅이 사막으로 변해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학이 가파르게 사막화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등록금이 오를수록 지성의 사막화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대학이 학생들을 지성의 오아시스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점수 따기, 포트폴리오 면접 대비 등을 통해 학생들을 ‘취업상품’으로 마구 찍어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것이지만 오로지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지성의 사막화 운운하는 것도 참 사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학 졸업하면 88만원 세대에 편입된다고 하지만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44만원 세대로 살아가고 있다. 갈수록 천정부지로 솟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헐값의 ‘알바’를 통해 공부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돈을 번다. 이것은 학생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수업권의 박탈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 남미의 베네수엘라에 다녀온 지인이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학생들이 등록금을 견디지 못해 알바를 할까봐 학생들에게 임금을 준다는 얘기였다. 우리가 OECD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바이칼 근처 부랴트 국립대학교는 무상교육에 용돈까지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같은 지구에서 어쩌면 이렇게 극과극을 달리는 현상이 빚어질까. 어느 나라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철저하게 보장해 주고 또 어떤 나라는 국제인권규약 사회권 조항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양도 문제이겠지만 오늘날 우리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학금 제도는,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일지 모른다. 학생과 부모의 두 눈이 장학금에가 있는 동안 문제의 본질이 은폐되는것이다. 등록금은 인권의 문제고 그 인권은 학생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때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