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장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장)

인권이라고 하면 소중하고 존귀하지만 자기와는 거리가 먼 무거운 개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과연 인권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개념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했던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의 가정을 연상해보자. 직장에서 퇴근한 아빠가 엄마를 부른다. '어이 누구누구 엄마, 배고파 밥 줘',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녀를 통해, 밥상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와 아내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 그리고 세상의 절반인 여성으로서의 존엄성은 존중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술 취한 아빠가 집에 와서 딸아이의 방문을 갑자기 연다. 그리고 공부는 하지 않고 컴퓨터에 빠져 있다고 험악하게 소리 지른다. 아빠는 자신이 낳은 딸이기 때문에 멋대로 해도 괜찮다고 착각한다. 사생활과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딸아이를 대하지 않는다. 방문을 열기 전 노크를 하거나 야단치기 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적 판단에 의존해 딸아이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무시해버린다. 명백한 인권침해다.
눈을 학교로 돌려보자. 고등학교 시절, 지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교생이 보는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손을 들고 꿇어 앉아 벌을 받는다. 그리고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바리깡으로 뒷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린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학급번호만을 부른다. 공부를 못하면 같은 잘못을 해도 더 많이, 더 강하게 체벌을 당한다. 학생이 가진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의 침해요, 명백한 성적에 따른 차별이다. 아직까지도 이러한 인권침해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다.    
지하철로 가보자. 승차권을 구입하기 위해 승차권 자동판매기로 다가간다. 비장애인들이야 별 문제없이 승차권을 구입할 수 있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통전투입구에 돈을 넣을 수 없다.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승차권을 구입해서 지하철에 올랐다. 객차 한 구석에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노약자·장애인 보호석', '교통약자 배려석',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 문구를 본 장애인이 어떠한 수치심을 느낄지 사전에 고민되지 않는다. 그냥 '배려석'이라고 표현해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거늘 꼭 보호와 배려의 대상자를 명시한다. 이는 비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약자와 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의식적 관행일 뿐이다.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한 장애인 당사자가 수치심을 느낀다면 이 또한 차별이다.
이처럼 모든 일상이 인권의 현장이다. 인권, human rights는 '인간의 권리'이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갖는 권리를 일컫는다. 장애인, 학생, 자식으로서의 존재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이 우선한다는 의미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지원하여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권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등한시되기에 갈등과 다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 일상과 자신에게 주목하자. 우리 생활에서 어떠한 차별과 인권침해가 있는지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일상에서 행하는 나의 말과 행동이 혹시 인권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인권은 진보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