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캠퍼스 풍경과 밝고 가벼운 학생들의 모습을 한껏 흐뭇하게만 지켜보기엔 대학 사회가 처한 오늘의 현실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많은 대학들이 생존을 명분으로 학사 개편과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고, 학생들은 수업과 생활의 대부분을 지상과제인 취업과 연결시키는 데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 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고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수들은 학문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와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학생들은 지역 대학의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역량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부지런하다 못해 시간을 쪼개 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게으름은 곧 죄악인 듯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구성원 개인의 발전과 대학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데 현실의 모습은 이와 조금 다른 듯하다. 이들의 표정에서 피곤함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먼저 읽히기 때문이다. 결국 부지런하고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 시간들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며 자발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어서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식하기 위해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온전히 행복감과 즐거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1975년 학위논문 준비차 들렀던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에서 10여 년을 살게 되면서 개발이 지역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기록이다. 자연친화적 삶 속에서 자신들만의 속도로 시간을 전유했던 라다크 사람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서구 문명의 세례 속에서 터득한 생활의 편안함 속에서 그들은 전에 없던 욕망을 쫓게 되었고, 자기만의 속도와 시간을 잃으면서 공동체의 유대감 또한 조금씩 잃어간다. 불편하고 가난했던 삶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관용을 잃고 조급해져 가는 모습 속에서 저자는 미래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대안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모두가 가난하고 부족할 때는 사적 이익의 추구보다는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도덕주의적 태도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었다. 느리고 긴 호흡의 시간 속에서 단련된 감각과 정서는 미세하게 변화하는 자연 속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가난은 공동체의 유대를, 게으름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게으름이나 빈둥거림이 그 자체로 미화될 삶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불편을 안겨 주거나 할 일을 외면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빈둥거리는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과제 수행이나 목표 달성의 부담에서 벗어나 충분하게 잠도 자보고, 여유롭게 산책도 하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신문이나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는 경험들은 각박한 인성을 좀 더 따듯하게 만들 수 있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엄중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의 시간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면 결과에서 얻는 성취감 또한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구대학교 구성원들만이라도 세상의 속도와 호흡에 쫓기듯 얹혀가기보다 자신만의 속도와 호흡으로 삶의 시간을 여유 있게 활용해보면 어떨까? 서로를 좀 더 존중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자연스레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