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학교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폐과와 학과통합 등으로 어수선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미래 산업수요에 맞춰 교과과정을 편성하라는 요구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대학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취업학원과 다를 바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연구에서는 기초학문을 보호하고 교육에서는 문제해결력을 갖춘 지성인, 자유로운 삶을 개척할 자유교양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성찰도 거세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대학은 취업에 유리한 실용적 학업을 가르칠 것과 기초학문기반을 보호하고 삶의 지혜와 창의적 문제해결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어떤 경우든 이제 대학이 변화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은 구성원의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각론으로 가면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합의가 없다. 구조조정은 좋지만 하필 왜 우리 학과인가? 또는 구조조정은 좋지만 폐과는 안 된다는 등 다양한 논란이 있다. 이것이 논쟁일 때는 단순한 쟁점일 뿐이지만 실제로 실행되면 전쟁이 된다. 지지난 주에 우리 대학에서 벌어진 일은 그 실제 예라 할 것이다.
나는 이 문제의 본질이 우리나라 대학에 강고하게 뿌리내린 학과주의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학과주의가 강고하다 보니 변화하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조직의 유연화가 잘 진행 되지 않고 있다. 한편 대학이 아니라면 제공할 수 없는 기초학문의 연구와 교육은 해당 학과의 숙제가 되어 해당 학과가 학생들로부터 외면되면 기초학문 자체가 고사되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과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학문의 단위로 구성된 학과가 개별 교수의 이해관계를 보호해주는 장치로 변질된 점에 있다고 본다. 물론 학과는 학생에게도 중요하다. 대학에서 매우 중요한 대학생활이 학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과가 없어지면 활동공간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또 제도 또한 학과주의를 강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우선 교육법 자체에 교수의 소속이 학과로 되어 있다. 학교의 예산은 단대를 경유하여 학과로 배분된다. 물론 한때 모집단위를 학부로 허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실험들은 결국 실패했다. 우리나라 대학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 ‘학부제’란 저주적 용어, 잘해봐야 경멸적 용어에 불과하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 학과주의의 틀을 벗어난 운영을 해야 할 시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학과주의 틀을 벗어나면 우리나라 대학이 변화에 대한 대내외적 요구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 4년을 졸업하면 취업경쟁력이 있는 교육을 받고 싶어 한다. 대학은 모름지기 학문 내용에 충실한 교육과정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이중적 요구는 학과주의를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학과를 벗어나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교육조직을 갖출 수 있을까?
지난 4월 23일 한국형 리버럴아츠칼리지를 최초로 선포한 대전대학교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창립심포지엄을 열었다. 여기서 대교협 산하 한국기초교양교육원의 손동현 원장은 첫째, 교수소속과 교수활동 단위인 학과, 둘째, 학생들의 전공, 부전공, 트랙을 포함한 교육과정,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모집단위를 각기 다르게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되면 학생이 없는 학과도 존재할 수 있고, 단일 학과에 여러 교육과정이 설치될 수도 있게 된다. 모집단위의 광역화는 이미 수도권의 여러 대학들, 특히 성균관대학교에서 오래 전에 시행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대계열 기반으로 학부대학에 입학하여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집단위 문제가 큰 논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과=모집단위’인 체제에서는 이 논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학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인 교수들에 의해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학과라는 제도는 대학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경영 실패의 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는 편리한 제도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학과주의 하에서는 그 교육과정은 사회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고, 그 대학의 입장에서 필요할 수도 있는데 경쟁력 없다는 이유로 폐과의 대상이 됨으로써 교육과정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이제 구조개혁 문제가 나올 때마다 보호학문 소멸을 우려하며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자정하지 못하면 결국 외적 힘에 의해 구조개혁될 것이고, 이 때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구대학교는 아직도 관선이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대학이다. 이는 재단이 인위적이고 강압적으로 구조개혁을 하는 대학이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민주적 구조개혁이 가능한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에 대해 학내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 이런 논쟁에서 학과, 교육과정, 모집단위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고민을 해 본다면 대구대학교의 미래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