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사회) 교수

며칠 전 10월 26일은 안중근의 하얼빈의거 100년째 되는 날이었다. 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짓고 사형시켰다. '테러'란 숨어서 저질러 대중적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모종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무차별적 폭력행위를 말한다. 침략괴수 제거 목적의 특공작전이었던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거사 행동에 그런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며칠 후 11월 10일은 만주땅 길림에서 의열단이 창립된 지 90년째 되는 날이다. 18~26세의 청년 13명이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수행"코자 "죽음을 피하지 않을" 결의로 성립시킨 비밀결사였다. 그 후 7년 동안 의열단은 '5가살'과 '5당파(當破)'로 특정된 표적들에 대한 수많은 의열거사들을 기획, 실행하였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고, 수반되는 희생도 컸다. 하지만 역사적 정의 회복을 위한 의열단 용사들의 투지는 꺾일 줄을 몰랐다. 
1919년 9월 2일에는 65세의 크리스찬 노인지사 강우규의 의거가 있었다. 부임차 서울역에 막 도착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것이다. 법정에서 그는 "일본이 불의로 우리나라를 병탄"하여 "하늘의 뜻을 거역"하였기에 "세계의 인도"를 대신하여 응징코자 한 것이라 했다.
1929년 11월 3일에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국적인 반일학생운동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한 데 대한 집단적 의분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50년 뒤인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시민·학생들의 반독재 시위항쟁이 연일 전개되었다. "탱크로 밀어버릴 것"을 건의받고 있던 대통령 박정희는 그 달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신' 독재체제는 무너졌다.
1949년, 알베르 까뮈의 희곡 <의인들>(Les Justes)이 파리에서 초연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짜르체제 하의 러시아에서 1905년에 있었던 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창작희곡이었다. 혁명운동 비밀결사 요원인 칼리아예프는 세르게이대공 암살 임무를 실행하기 직전, 투탄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공의 두 조카딸이 마차에 동승하고 있음을 목격하고는, 무고한 어린 생명의 희생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엄습한 때문이었다. 그 후 자진하여 재거사에 나선 그는 마침내 대공 폭살을 성공시키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투옥 중 대공비와 경시총감의 온갖 회유도 마다하고 그는 굽힘 없이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비록 적일지라도 남의 목숨을 뺏으려 하거나 뺏었다면 자기의 생명도 내놓아 같이 바쳐야 한다는 윤리에 투철한 선택이었다. 안중근, 강우규, 의열단 단원들, 모두가 그런 각오 아래 행동하였다. 그런 자기희생의 윤리가 '의로움'의 핵심인 것이다. 그들을 '의사'라 부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의로움이 하냥 기피되고, 우습게 여겨지고, 매도되기까지 한다. 그 빈자리에 몰염치와 부도덕과 비윤리의 사고 및 행태가 판을 친다. 대학생들도 양양한 의기로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소심한 눈치보기의 삶에 안주하려든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라는 식의, 주류사회의 이런저런 겁박에 그만 포박되어버린 탓이다. 그들의 사표가 되어주어야 할 교수집단마저 탐욕스런 자기 이익 챙기기와 보신주의에 여념이 없다. 최소한의 '똘레랑스'조차도 없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기만 하면 무조건 적대시하여 몰아붙인다. 지극히 소아적(小我的) 사고와 소아적(小兒的) 행태들이다. 그것이 2009년 이 가을, 우리를 몹시도 슬프게 한다. 근래 있었던 학내 분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