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즈음, 우리대학 언론사 기자들은 학술탐사 계획을 세우고 부푼 기대를 안고 한반도 서쪽 끝으로 떠났다. 뜨거운 여름 땡볕만큼의 열기로 가득했던 2박 3일간의 언론 3사 공동학술탐사. ‘대학언론사 기자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금강을 따라 흐르는 옛 숨결, 강경

강경은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금강을 따라 발달한 수운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대구, 평양과 더불어 3대 시장의 명성과 영화를 누렸었다. 이번 학술탐사의 주제가 ‘근대시대’ 인만큼 강경은 첫 번째 취재 장소로서 적합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처음으로 찾은 곳은 강경의 ‘죽림서원’이었다. 죽림서원은 이이·성혼· 김장생·조광조·이황·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더운 날씨임에도 죽림서원을 둘러싼 대나무는 보는 이가 청량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젓갈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육상교통의 발달로 예전의 빛을 잃은 강경이 최근 젓갈 시장을 발판으로 다시 발전하고 있다. 큰 규모의 젓갈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젓갈 축제도 매년 열리고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친숙한 오징어 젓갈부터 좀처럼 보기 드문 특이한 젓갈들까지 다양한 젓갈 정식을 맛볼 수 있었다.

든든한 점심을 먹은 뒤 ‘돌산전망대’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대까지 오르는 계단이 높고 가팔랐다. 게다가 덥고 습한 날씨에 모두 금세 지치고 말았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올라 강경 전체의 경치를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힘차게 흐르는 금강과 평화로운 강경의 모습이 잘 어우러졌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오르막길을 올랐다. 바로 ‘옥녀봉’이었다. 선녀가 내려와 반해버린 절경이라 하여 붙은 이름인 옥녀봉은 입구부터 아름다운 벽화들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옥녀봉 정상은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금강이 훤하게 보이는 절경이었다. 내려가기가 싫어 한동안 옥녀봉에 앉아 선녀가 된 듯 경치에 취해 있었다.

더위가 덜해질 때쯤, 본격적으로 근대시대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먼저 ‘강경역사관(구. 한일은행)’에 들어가 강경의 역사는 물론, 근대시대의 실생활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역사관을 둘러보고 나니 근대시대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었고, 앞으로 남은 일정들이 더욱 기대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강경은 강경 포구로 인해 유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노동조합 또한 탄탄했다. ‘구. 강경노동조합’을 방문하였는데, 그 당시 2층 건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부터 그 세력과 규모가 대단하였음을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은 1층만 남아 강경연락소로 운영되고 있어 강경 여행의 정보를 얻고 전시된 사진들에서 강경의 역사도 배울 수 있었다.

강경을 탐사하러 다니는 동안에도 곳곳에서 근대의 흔적이 보였다. 근대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운영되고 있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골목들이 많았다. 특히 한국식 가옥과 일본식 가옥이 접목되어 지어진 건물들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강경이라는 이름조차 처음 접해본 기자도 있을 만큼, 다소 생소한 지역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선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강경의 풍경과 근대시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며 학술탐사의 첫날이 저물었다.

과거와 현재를 담은 군산, 1930년 그때로

학술탐사 2일차의 여정은 군산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한 후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군산은 ‘근대 역사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개항기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되어 호남평야의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엔, 일제의 조선 쌀 수탈을 위한 거점 지역이 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일본인들의 이주로 일본식 건축물이 많이 지어지게 되었는데 그때의 일제에 의한 수탈의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군산은 그 역사의 흔적들을 보존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문화적 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근대역사박물관’에 입장했고 들어간 후 바로 보인 것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채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었다. 흔하게 느껴지던 문구가 이 날만은 특별했다.
 

다음으로 우리가 이동한 곳은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이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경제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내부 1층엔 바닥에 표시지점을 밟게 되면 관련기사가 뜨는 군산지도가 있었다. 2층에는 일제수탈의 현장을 재현해두었고 또한 일제의 수탈과 탄압에 대한 역사를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근대미술관(구. 장기18은행)’이었는데 이곳은 일본 지방은행 중 18번째 생긴 은행으로 일제강점기 일본 사업가들의 한국 진출과 쌀 수탈, 미곡 반출, 토지 강매 등 일제시대의 만행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이후 우리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지나서 실제 일본인이 건립한 ‘신흥 동일본식가옥’이 있는 곳을 찾았다. 이 가옥의 구조는 1층에는 온돌방, 2층에는 일본 다다미방의 형태로 되어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들의 농촌수탈 만행을 엿볼 수 있다. 이어서 이동한 곳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국내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의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당시 갔을 때, 건물 공사로 인해 대웅전 외부만을 관람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렇게 오전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우리는 ‘새만금 방조제’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새만금이란 바다가 국토로 바뀌고 군산과 부안을 잇는 방조제를 따라 만경평야를 일컫던 금만평야를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 사업은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 단체와 사회의 반대여론으로 수없이 중단과 진행을 반복했다. 주요 곡물의 대부분이 수입으로 유지되는 지금, 쌀 생산량을 늘린다는 간조 사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계속 생각해보며 많은 것을 느끼려 노력했다.

우리는 정읍이 위치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향했다. 동학농민혁명이란 1894년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조선사회는 조세수취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농민들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이에 대항하여 농민들은 민란을 일으켰다. 동학농민혁명은 당시에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사회를 여는 계기가 되었고 현대 민주시민사회 건설의 원동력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먹거리 여행지, 전주의 재발견
 

‘전주한옥마을’은 다양한 먹거리는 물론, 한복체험, 엽전체험 등 이색적인 볼거리들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숨은 보석 같은 역사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옥마을에도 중요한 역사들이 깃들어져 있다.

먼저 한옥마을에 입구의 언덕을 오르면 ‘오목대’와 ‘이목대’를 볼 수 있다. 목조가 어릴 때 살았던 곳으로, 야경이 훌륭한 곳이니 한옥마을에 들어가기 전 구경해보기를 추천한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전동성당’.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정조 15년에 최초의 순교자들이 박해를 받고 처형당한 곳으로 아픔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를 알고 본다면 더욱 웅장한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당의 맞은편에서는 ‘경기전’과 ‘어전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라는 뜻으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에 창건되었다. 경기전 안의 다양한 나무와 궁궐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이 전시되어 있는 ‘전주사고’와 조선 왕들의 어진이 전시되어 있는 어진박물관은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선사해준다. 특히 어진박물관에서는 조상들이 어진을 왕과 같이 여겨 소중히 다루었음을 느낄 수 있다. 맛있는 먹거리로만 유명한 줄 알았던 전주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웠던 2박 3일의 여정이 끝났다. 낯설었던 강경에서부터, 근대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군산, 반봉건 반외세 민중의 투쟁혼이 살아 있는 정읍, 그리고 익숙했던 전주의 재발견까지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탐사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자로서, 언론사로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와 열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던 학술탐사. 이것을 계기로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