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현철 교수의 분향소에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교수가 투신했다. 지난 8월 17일 오후 3시, 국립대학에서 총장 직선제를 유지한 마지막 대학, 부산대학교 본관에서 故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외치고 나서 투신해 숨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언론보도와 부산대 총학생회 관계자에 따르면 17일 오후 3시 10분께 교수는 본관 4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교수님이 유언이 적힌 A4용지를 뿌린 직후에 뛰어내리셨다고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고 교수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0분 만에 숨졌다. 교수는 유서를 통해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 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간선제에 들어갔다.”면서 “부산대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고 교수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그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고자 우리 대학 학우들에게 이번 사건의 의미와 총장 직선제와 간선제의 뜻, 그리고 대학 민주주의의 가치를 안내하고자 한다.

총장 직선제와 간선제

총장 직선제. 자유와 책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 잊고 있는 말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국공립 대학의 교수들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라는 정부와 교육부의 강압에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까지 거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학의 총장 선출 방식은 직선제와 간선제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 총장 직선제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의 총장을 교수들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이다. 반면 정부가 강요하는 총장 간선제는 정부와 교육부에서 인정하는 사람을 대학의 총장으로 ‘임명’하는 제도이다. 이전에는 정부 측에서 보낸 낙하산 인사가 총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 사립대학에선 재단이 총장 후보와 결탁하는 비리가 일어났었다는 점에서 총장 직선제는 대학 사회의 민주화 바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 점에서 분명히 총장 직선제는 간선제보다 민주적인 제도이며, 교수들의 손에 의해 선출된 총장은 보다 책임감 있는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인하대 모세종 교수는 “교수가 총장을 직접 뽑으면 총장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할 수 있다.”며 총장 직선제의 장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정부의 학사 간섭

총장선출방식은 설령 간선제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간섭 없이 대학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방대 특성화 사업에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은 대학에 감점’ 등 재정지원에 불이익을 줌으로 국립대학들을 압박해왔고 이에 지난 9월 18일, 전국 교수 대회는 결의문을 통해 “이명박 정권 이후 정부는 대학의 효율성 강화라는 미명 하에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을 체제와 권력에 순응하도록 강제했다.”, “학문과 진리의 전당을 이윤 추구의 전당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실을 막아내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는 호소, 반성과 함께 ‘대학 자치와 민주주의 및 공공성 확보를 위한 9·18 전국 교수 선언’을 발표했다.

실제로 직선제 폐지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적용한 내용은 2012년 총장 직선제 유지한 부산대학교 연간 60억 교육역량강화 사업지원비 배제(국립대 13개 대학 중 탈락한 4개 대학 중 3개 대학인 경북대, 전남대, 부산대가 직선제 유지대학), 2014년 지방대특성화사업에는 ‘대학 거버넌스 혁신’이라는 2.5점 가량의 평가항목으로 간선제 변경 유도, 2015년 ‘학부교육선도대학(ACE) 육성사업’에도 국립대 총장 직선제 개선 완료 등을 평가 지표로 추가.(지원액 환수 및 50% 삭감) 결론적으로 각종 재정 지원 사업에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를 평가 항목 반영한다는 것이다. 대학을 운영하는데 교육부에서 받는 재정 지원금(2014년 기준 약 8조원)은 큰 비중을 차지고 있고, 이러한 지원금까지 포기하면서 총장 직선제를 지키기에 치르는 대가로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대학 총장은 대학 전체를 대표하고 총괄하는 직위의 사람이다. 그런 총장을 해당 대학 구성원이 아닌 타인이 임명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얻어낸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 직선제임을,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활성화한 것이 지방자치위원장 선거임을 기억한다면 대학 총장 간선제의 시행은 ‘대학의 효율성 강화와 선진화’가 아닌 ‘대학 민주주의의 퇴보’를 초래한다는 예상 정도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중앙일보 양영규 논설위원이 “교육부가 총장 선출 방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국제적 망신감이다.”라고 하는 등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학의 선진화를 위한다는 것은 명목상 핑계에 불과하며, 비교적 고학력의 지식인, 민주시민의 집단인 대학을 정부의 손안에 두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총장 직선제가 전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직선제는 선거 유세 비용이 많이 들고, 교수 사이의 경쟁이 생길 수 있으며, 선거 분위기 과열로 파벌이 형성돼 대학의 학문적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교수들의 참여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교직원, 동문, 학생 등 여타 구성원의 의견이 무시된다. 선출 후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대표적으로 일단 선출된 총장이 자신을 지지했던 교수들을 요직에 앉히면 그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다. 2011년 창원대 총장 후보 출마 교수가 동료 교수 고가 선물 전달로 선거관리위원회 적발, 2011년 부산대 선거 비리로 총장 사퇴, 2012년 전남대 1,2위 후보가 불법 선거운동으로 검찰에 기소 등 실제로 매년 총장 선거 시기마다 교수 대비 교직원의 투표권 지분 문제로 각종 분쟁이 발생해 이 같은 폐단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그동안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들은 스스로의 선거 공약을 통해 대학의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대학 구성원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리고 총장은 대학교수들의 지지를 받은 구성원으로써, 아무래도 독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 보다 절제하고 견제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실시되어온 총장 직선제가 각 대학에 기여한 정도는 대학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총장 직선제는 전체적으로 실보다는 득이 많은 제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와 자율의 대학

故 고 교수의 숭고한 희생과 대학 구성원들의 노고로 부산대학교는 결국 총장 직선제를 지켜냈고 이에 영향을 받은 강원대학교, 경상대학교, 충남대학교 등 여타 대학에서도 총장 직선제와 대학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이 한 분의 지식인이 죽음을 통해 알리려고 한 ‘대학 자율화’, ‘학내 민주주의’에 대한 외침이 직선제를 포기한 다른 국립대학에 어떤 영향 미칠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와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워 총장 직선제가 마치 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인 양 더 이상 호도하지 말고 총장 선출 문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지금처럼 ‘재정 지원’이란 명목아래 대학 장악 음모를 계속하면서 대학을 길들이려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총장 직선제가 제도나 운영상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시에는 이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보완하면 될 일이다. 다시 말해서 총장 직선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각 대학의 형편에 부합되는 절충안 마련으로 대학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대학의 미래 발전을 위한 좀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