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교수

나는 몇 년째 교양과목으로 "영화로 보는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수강신청 때가 되면 학생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 많은 학생들이 모두 공부를 하려고 오는 것 같지는 않고 강의 대신에 영화나 몇 편 보자 하는 기대감으로 모였을 것이다. 학생들의 기대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실망스럽게도 수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영화도 보긴 보지만 그보다는 끝없이 이어지는 발표와 레포트로 한 학기 내내 쫓긴다. 그래서 요즘은 수업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수강생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말도 들린다.
애초에 이 수업을 기획한 의도가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좀 쉽게 이해하자는 것이었다. '피카소', '칸딘스키', '달리', '백 남준' 등 이름만 들으면 마치 어디선가 들어 본 유명한 영화배우의 이름처럼 귀에 익지만 막상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아비뇽의 처녀'만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고등학교시기에 이르기 까지 10년여에 걸쳐 미술교과서에 끝없이 실리는 덕분에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 작품의 맥락과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작품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것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있는 형편이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이란 눈에 즐거운 그 어떤 것을 보기 좋게 손으로 재현(再顯)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현대미술을 보는 경우 요령부득을 넘어 분노조차 느끼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현대미술은 어떤 면에서 '보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읽는 그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난해하다. 현대미술은 영어 원문이 "MODERN ART"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현대미술'로 번역되어 쓰이면서 근대와 대비되는 시대사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에 더 가깝다. 현대미술은 19세기,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당대 최첨단의 현대적 도시, 파리에서 요즘 말로 혁신적인 사고(思考)를 하는 신진화가들에 의해 구태의연한 전통의 구각(舊脚)을 벗어 던지면서 시작되었다. 뜬금없이 그리스여신을 환기시키는 나체 주위에 천사가 날아다니는 고상하지만 위선적인 누드화 대신에 그 당시 유행하던 파리 환락가의 창녀 '올랭피아'를 그림으로써 파리 문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마네'처럼 현대미술은 작가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시대정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시대정신에 의해 현대미술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이 시대와 궤를 같이 하면서 역동적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인류사의 전환점인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실망과 재정의는 '다다'와 '초현실주의' 미술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전례 없는 새로운 조형세계를 열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당대의 역사와 시대정신과 조응하면서 변증법적으로 맞물리는 조형적 전개를 따라 갈 때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현대미술을 영화나 몇 편 보자는 속셈으로 온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강의를 하다 보면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필자가 지칠 때쯤이면 이 까다로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몇몇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 덕분에 다시 힘을 얻는다. 많은 수강생들로 어수선한 가운데도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과 눈을 맞추면서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 혹은 맨 뒤에 앉아서도 자지 않고 선생님을 주시하고 있는 고마운 학생들 덕분에 간신히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 아마 학생들은 그들의 수업태도로 인하여 선생님이 절망하기도 하지만 또 역시 그들 덕분에 위로 받고 힘을 낸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학생들이여! 수업시간에는 부디, 선생님 보기를 돌처럼 하지 말고 황금처럼    보아 주기를...

김인숙(미술디자인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