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재수>

스무 살의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대학을 가거나 일을 시작할 때 불가항력적으로 재수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재수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재수를 하려고 준비할 때 남들과 똑같이 학원을 다닐까 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가 겪은 학원의 모습은 나에게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요일 딱 하루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계획 없이 무작정 쉬는 것은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무엇이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찾아보고 있을 때 친구가 장애아동 봉사활동을 소개시켜줬다. 그리고 찾아간 봉사활동에서 나는 장래희망이 바뀌게 되었다.

처음 봉사활동을 갔을 때가 잊혀 지지 않는다. 아주 추운 1월의 겨울이었다. 쭈뼛쭈뼛 센터로 들어가자마자 저기 멀리서 덩치가 산만한 아이가 나에게 뛰어와 부딪혔다. 나와 아동은 그대로 넘어졌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아픈 것도 모른 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아동을 바라보니 그 아동도 내가 넘어진 것이 당황스러운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일으켜 세워주니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다시금 뛰어갔다. 그렇게 강렬한 첫 인상을 가지고 센터선생님과 인사할 시간을 가졌다.

봉사활동도 처음이고 나이도 20살이라는 것을 듣자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봉사활동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커서 꼭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친구가 나에게 소개시켜준 봉사활동을 고민도 안하고 곧바로 하겠다고 한 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고 처음의 몇 주 동안은 아동을 관찰하고 친해지는 시기를 가지기로 했다.

몇 주 동안의 관찰과 아동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통해 장애아동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장애아동에게서 매력을 느꼈다. 내 눈에 보이는 장애아동들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색깔들이 너무나 빛나보였고 저 빛나는 색깔들을 도화지에 옮길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선생님들이 너무나 멋져보였다. 그리고 내가 처음 담당하게 된 아동은 자폐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고 수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중학생이었다.

수현이는 글자에 심하게 집착을 하는 아동이었다. 나를 만나면 인사도하기 전에 글자를 적어달라고 펜과 연습장을 건네었다. 수현이는 버스, 청소기, 친구이름, 목욕탕 이름 등의 많은 단어들을 적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다 적어주면 반복해서 적어주기를 원했다. 연습장이 빽빽해지도록 적고 이제 다른 활동을 하고자 하면 소스라치게 싫어하며 끝까지 글자만을 고집했다. 그러다 나도 끝까지 글자를 적어주지 않고 다른 활동을 끝내면 적어주겠다고 이야기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선생님에게 가서 글자를 적어달라고 말하곤 했다. 결국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컨설팅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내가 수현이에게 선생님이 아니라 그저 형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당연한 것이 실제로 나와 나이차이도 4살밖에 나지 않고 수현이는 나를 만나기 이전에 많은 특수교육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초보인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내가 형에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현실적으로 짧은 기간에 전문성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어떻게 해야 할지 선생님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집중한 것은 수현이의 사회성이었다. 자폐아동은 사회성 부분에 있어서 심각한 결함을 보인다. 때문에 의사소통이나 감정표현 등에서도 무척 어려움이 많다. 어떻게 보면 글자를 쓰는 것은 의사소통을 하려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수현이가 말하는 단어들을 적으면서 수현이에게 다시 되풀이해 이야기해주었다. “오늘은 버스타고 왔어?” “옥수탕에서 아버지랑 목욕했어?”이와 같이 수현이가 말하는 단어들을 내가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자 수현이는 이따금씩 내 얼굴을 보며 조금씩 다른 단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대화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확인이 필요할 때면 부모님과 연락을 해서 확인도 해보곤 했다.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현이와 조금이나마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석 달 정도 흐르자 정체기가 찾아왔다. 수현이와 나는 충분히 친해져서 만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렇지만 수현이도 나도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친해진 것 그 이상으로 얻어가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두 번째 컨설팅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프로그램을 구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장애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는 스무 살의 처음 봉사활동을 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 그렇지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나마 자신이 있는 체육 쪽을 선택했다.

일주일 내내 고민해서 프로그램을 가져갔다. 선생님의 피드백도 받고 드디어 수현이와의 첫 수업이었다. 수현이는 내가 고무공을 가지고 오자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수업은 시작도 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수현이가 공을 있는 힘껏 차서 형광등을 깨트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첫 프로그램은 산으로 떠났다.

이후로 나는 몇 가지의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수현이와 함께해 보았다.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간 것들이 많다. 나는 장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수현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수능을 치고 원서를 넣으려고 이 곳 저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원하는 꿈이 있었기에 재수를 했다. 하지만 재수를 하다가 알게 된 특수교사라는 직업에 나는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재수를 하게 된 것이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수현이와의 1년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정말 전문성을 가지고 장애아동에게 다가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던 것도 큰 이유였다. 나는 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에 지원했고 어느덧 3학년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 봉사활동센터에서 병웅이라는 다운증후군 학생을 만나고 있다. 스무 살의 나와 스물다섯 살의 나를 비교해보면 전문성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날까. 여유는 확실히 생긴 것 같지만 아직까지 전문성에 있어서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배워서 정말 훌륭한 특수교사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에 작은 다리가 되어주고 싶다. [김송현/초등특수교육과]

 

<벚꽃 엔딩, 스물 엔딩>

23살이 된, 그것도 몇 달 뒤면 24살이 될 지금에서야 20살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제법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20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청춘’의 상징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글에 오르내리며 그 정의가 다소 정형화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20살의 기억을 회상하며 글을 엮어나가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나’라는 사람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시기가 바로 20살 그 언저리에 있기 때문이다.

20살,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성숙은 결코 나이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을 따라갈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초등학교 6학년 다음이 중학교 1학년이지만 7학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20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은 오히려 19살의 그것보다 가볍기만 했다. 마치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그런 기분을 더 부추겼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유만이 전부였지 그 뒤에 따르는 책임을 떠올리기에는 여전히 어렸던 것이다.

20살이 되면 참으로 많은 ‘처음’을 경험한다. 우선, 암기해서 5지선다형의 보기 중에 하나를 찍기라도 하면 되었던 시험은 갑자기 창의성을 요구하는 논술형의 시험으로 변한다. 세상살이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니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답을 만들라는 교훈의 의미부여를 해본다. 고등학교 때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오늘 뭐 먹지?’, ‘오늘 뭐 입지?’ 따위의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뭔가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는데 기억이 나지를 않고, 그나마 20살 만큼의 성숙도를 갖추기 위해 고상한 척 자기계발서를 몇 장 보다가 덮어버리는 자신이 문득 한심하게 느껴진다.

19살까지의 삶에 비해 선택지가 늘었고, 그 선택은 나의 자유로움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분명 어떻게든 견뎌내야만 했던 지난 몇 년간의 삶과 비교했을 때 혁명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움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나는 그것을 제대로 다룰 방법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나는 의도치 않게 스스로를 잃어가고만 있었다. 모두들 쉽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는데 나는 타인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느라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어도 마음이 아플 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가 되는 것은 어두운 밤거리보다 더 짙은 색으로 내 마음을 물들였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나의 행복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생각의 흐름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것은 아주 어렵고 천천히 진행되었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 작업은 진행 중이며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이라는 스스로의 기준도 성실히 지켜나가고 있다. 나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자유롭게’ 다룸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

이렇듯 청춘의 막연한 불안 심리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동시에 개인적이다.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강력한 구심력을 자랑하지만, 태풍의 가운데인 ‘눈’은 오히려 평화롭고 고요하다고 하던가. 20살의 나이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철없이 누군가에게 구원받기를 기다리기에는 어쩐지 그러면 안될 것 같다. 모두가 경험하지만 결국 해답은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인생의 한 과정에서 ‘청춘’이 지니는 본질이자 진정한 어른이 되는 방법이 아닐까.

어느 순간 마냥 달콤한 것보다 달콤함 뒤에 남는 쌉싸래함을 즐기게 되었다. 벌써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소 유치한 감이 있다. 하지만 20살에게 어울리는,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의 23살에게 어울리는 만큼의 채도(彩度)를 나는 분명 갖추어 나가고 있다. 내 이름을 내가 지은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나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듯, 세상에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지고 그를 둘러싼 숱한 이해와 오해들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내 진심이 결코 모두에게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지난 몇 년 간은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과정에서 나를 둘러싼 세계의 어두운 부분을 조금씩 학습해갔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비관적이거나 염세주의적인 태도는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저지르면서 살거나 그저 낭만적인 것만을 좇아가기에는 현실이 그럴 수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요컨대, 낭만과 현실의 함량을 배분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 곁에는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늘 모자란 것만 같은 나를 대신하여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내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며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누군가가 존재한다. 생(生)의 한 순간에서 전부 같았던 날들을 지나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누군가가 분명 존재한다. 잠시 떨어져 있었지만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이 행복하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좋은 내가 되어있음에 감사했던 순간이 존재한다. 처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날, 아버지를 따라 국밥 한 그릇에 소주를 삼키며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아들로서 조금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가족의 소중함은 군대를 가면서 더 실감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20살의 나에게는 늘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 때는 오로지 학교생활에 내 모든 것을 집중했었다. 이렇듯 나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숲에서 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푸른빛을 따라 닮아가며 나의 나무를 영롱하게 키워가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때로는 친구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다. 혹은 관계를 쉽게 규정하기 힘든 누군가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나는 스스로를 향한 고민으로 성장했지만 그 주변에는 나를 끝없이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도 나의 부모님처럼 살아갈 자신은 없다. ‘더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마음은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것이겠지만 나의 부모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오직 하나이기에.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20살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반짝반짝, 흔들리는 불빛과도 같은 20살이다. 새로이 시작하는 설렘과 더불어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마음을 콕콕 찌르는 불안함의 공존. 안정적인 것은 겉보기에 는 예쁘지만 살아있음을 증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얌전한 구석이 있다. 20살 언저리의 막연한 불안감은 비록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으로 허물을 벗어 나가게 해준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나비와도 같다. 불안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것이 20살의 가장 큰 미덕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가 후회하는 건 대부분 ‘무모하게 저질렀던 것’보다는 ‘안전을 위해 저지르지 않았던 것’들이다.

내가 스무 살 때 나온 노래 중에 ‘버스커버스커’의「벚꽃엔딩」이라는 노래가 있다. 통기타를 기반으로 한 어쿠스틱, 포크 장르의 이 노래는 아날로그적 정서를 환기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20살의 청춘을 촉촉이 적시던 이 노래도 어느새 봄의 클래식이 되었다. 누구나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젠가의 봄이 떠오를 것이다. 노래의 제목은 ‘엔딩’, 즉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시절의 추억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영원하다. 나의 20살도 그렇다. 계절이 돌아와 다시 봄이 오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 날의 봄을 기억하겠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주 갔던 편의점을 창밖으로 내다본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조금은 감탄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그리고 다음 해의 봄이 오기 전, 20살의 봄을 생각하며 다시 그 노래를 들어본다. [신준환/국어교육과]

 

<외할머니의 포도밭>

아주 어릴 적,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외갓집은 과수원 운영과 농사를 짓고 계셨다. 외할머니께서는 밭을 하루도 빠짐없이 들락날락 거리면서 애지중지 하셨는데, 그 중 외할머니께서 가장 아끼시는 밭이 있었다. 초록색, 연두색, 보라색 등 알록달록한 색들로 이루어진 알들로 이뤄진 포도밭이다. 포도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지극정성이 필요한데, 잠시라도 가꾸지 않으면 떨어져버리거나 시들기도 한다. 또한 포도밭은 단내로 인해 벌레가 자주 몰려들기 때문에 매일 포도밭에 가서 관리가 필요하다. 포도는 1년 12개월 중 8월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이때 날씨의 변화와 어떻게 포도를 숙성시키는가에 따라서 포도의 맛과 질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재배한 포도는 외할머니께서 한 송이씩 종이에 감싸서 포장하여 상자에 넣어 시장에 팔러 나가신다. 외할머니께서는 포도장사뿐만 아니라 여러 장사를 하고 계시기에 포도장사를 할 때 일손이 부족하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를 도와드리러 장날마다 시장에 간다.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 수많은 장사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외할머니와 옹기종기 앉아서 장사를 한다. 장사를 도와드렸는지 몇 년이 되었기에 능숙하게 포도장사를 도와드리며 외할머니의 뒤를 봐드린다. 외할머니의 장사를 도와드리다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안부를 묻는다. 어디 아프시지는 않는지, 배는 안고프신지 등 하지만 자연스럽게 내 걱정만 하시는 우리 외할머니. 대학생이라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도와주러 나오고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신다. 외할머니께서는 어릴 때 나를 키워주신 적이 있어 다른 손자, 손녀들 보다 나를 아끼신다. 외손녀이지만 친손녀처럼 챙겨주시고 나를 반기시는 외할머니 그리고 나 또한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친근하고 편하다.

올해도 변함없이 여름방학에 외할머니 포도장사를 도와드리러 가기 위해 외할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외할머니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 올해가 마지막 포도장사가 될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포도장사가 마지막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있게 말씀을 안 해주셨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올해 초 겨울부터 외할머니께서는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는데 또 쉬지 않고 일을 하신 탓에 몸에 큰 무리가 오신 것 같았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캐기로 결심하신 모양이었다. 내색은 안하셨지만 많이 속이 상하신 것 같았다. 늘 포도를 팔면서 포도밭 이야기를 해주시던 외할머니, 포도밭 캐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질 외할머니를 생각 하니 나도 모르게 울컥거렸다. 외할머니만큼 포도밭에 대한 각별한 정은 없으나 포도장사를 하면서 포도에 대해서 알고 외할머니께서 먼저 따주신 포도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도밭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포도장사를 도와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괜스레 포도를 파는데 조금만 싸게 해달라는 손님을 보니 화가 나기도 했다. 외할머니께서 힘들게 가꾸어 파시는 포도인데 어떻게 싸게 해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외할머니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지만 외할머니도 마음이 좋지 않아보였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답답했다. 그리고 실감이 나질 않았다. 외할머니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일거라는 생각에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지만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떠한 말도 외할머니 마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속이 상했다는 말을 하자 기특한 듯 나를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엄마가 외할머니 포도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엄마가 내 나이만할 때 일들을 말이다. 포도밭에 나가서 외할머니 일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벌레가 입으로 들어갔던 이야기, 포도밭 일을 안 도와드리고 친구랑 놀러갔다가 집에 돌아와 엄청 혼났었던 이야기, 포도밭에서 씻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몇 송이 먹었다가 외할머니께 맞았던 이야기, 포도를 딸 때 너무 더워서 더위 먹었던 이야기 등 엄마도 외할머니처럼 포도밭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을 묻어두고 계셨었다. 엄마는 그때를 생각하면 포도밭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다 좋은 추억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세월이었다고 말해주셨다. 엄마는 나만의 포도장사에 대한 추억을 잊지 말고 잘 기억해두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장에 가서도 외할머니 잘 도와드리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끝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포도제철 기간이 막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포도밭을 걸어갔다. 포도밭에는 아직까지 포도 고유의 짙은 향과 단내가 풍겨져왔고 포도밭에는 아직 따지 못한 포도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비가 온 후라 포도밭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련해보였다. 외할머니는 한동안 멍하니 포도밭을 바라보다 이내 남은 포도를 따셨다. 외할머니를 도와드리며 포도 상자에 한 송이, 두 송이씩 채워나가니 포도상자가 금세 꽉 차버렸다. 머릿속의 추억이 가득 차 버린 것과 같이 포도상자는 끊임없이 계속 차버렸다. 외할머니께서는 포도 한 송이를 나에게 건네며 먹으라고 하셨다. 포도를 먹는데 제철이 끝났음에도 아직 많이 달고 새콤하니 맛있었다. 외할머니께도 포도를 입에 넣어드리니 좋아하셨다. 외할머니께서는 한동안 포도를 입안에 넣은 채 음미하셨다.

외할머니와 함께 포도가 한 가득 찬 포도상자를 들고 외할머니 집으로 걸어갔다. 포도밭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외할머니께서 정성스럽게 가꾼 포도도 막바지에 딴 포도로 만든 포도즙도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린 사실에 대해서 씁쓸해졌다. 외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포도밭은 없어지지만 그 자리가 포도밭이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이처럼 외할머니의 포도밭은 단순한 포도밭의 의미가 아닌 외할머니께서 잊을 수 없는 평생을 바친 의미 있는 장소이다. 어쩌면 지금은 사라지지만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흐른 뒤에 그 포도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말이다. [서지현/국어국문학과]

 

<까만 강아지>

17살 때였는데, 그때의 기억이 잊어지지 않는다. 정말, 언제쯤이면 잊을 수 있을 까. 너무 괴로운데, 잊을 수가 없다.

토요일. 오전 자율학습을 끝내고 하교를 하는 길. 엄마와 마트를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기에 학교 맞은 편 카센터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와 카센터 사이에는 큰 도로가 있었는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카센터에는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목줄은 없었다. 어디에도 묶여 있지 않았다. 강아지는 깨끗해 보이진 않았지만, 워낙 동물을 좋아하기에 그리고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이기에 겉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손의 따뜻한 기운을 느꼈는지 강아지는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강아지는 다정한 온정이 필요한 강아지구나’ 물론,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엄마, 카센터 앞에 작고 까만 강아지가 있었어. 주인이 없는 걸까?”

엄마는 앞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인이 있으니까, 카센터에 있을 것 아닐까? 주인이 없으면 카센터에 가만히 앉아 있을 이유가 없잖아.”

엄마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강아지는 내가 움직여도, 내가 불러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계속 도로를 다니는 차들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까만 강아지와 마주하고 난 다음부터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우리 집에 있는 코비에게도 제대로 못해주는 나인데, 왜 이러는 걸까 싶다. 단순한 연민인지 정인지 모르겠다.

신경이 쓰여 등교할 때에도, 하교할 때에도 카센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 데려간 걸까? 그럼 다행인데.’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정거장 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보고, 급히 허겁지겁 뛰는 날이 꽤 많았다.

처음 만났던 토요일에서 18일이 지난, 수요일에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점심시간이었는데, 강아지가 학교 안에 들어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아지를 열 걸음 뒤에서 바라보았다. 나도 강아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처럼 부담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멀리서 바라만 보고 다가가지는 않았다.

‘근데, 왜 학교에 온 걸까?’

궁금했다. 왜, 학교에 온 걸까. 카센터에만 있던 강아지이고, 한 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곳이 학교라서 의아했지만 강아지의 행동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느껴 포기해 버렸다.

수요일에서 3일이 지나, 또 다시 토요일이 되었다.

그날도, 엄마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 마트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매주 함께 마트를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엄마가 시간이 날 때면 같이 가는 편이다. 버스를 타지 않고 엄마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것도 좋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기에 즐거웠다.

또 다시, 그 날처럼 카센터에서 기다렸다. 까만 강아지도 내 옆에 있었지만 기운이 없어 보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전히 눈망울이 맑고 예쁘다. 착한 눈망울을 가졌다.

“강아지야, 여기서 누굴 기다리는 거야? 넌, 하루 종일 여기 있니? 여기서 뭘 해?”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궁금했던 것들을 쏟아 붓듯 물어 보았다.

역시, 대답은 없다. 그저 날 바라보며 ‘헥헥’ 거릴 뿐이다.

“간식은 준비하지 못했어. 네가 또다시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거든. 미안해. 다음엔 준비하도록 할게.”

웃으며 강아지에게 말을 하니, 꼭 알겠다는 말을 하듯 내 손을 핥아 주었다. 귀여웠다.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역시 주인이 있는 강아지 같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가 좀체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언제쯤 올까, 언제쯤 올까. 엄마도 급하게 오고 있을 텐데 약간 화가 났다. 내가 언제 끝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늦는다는 사실에 조금 속상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잠깐 기다리는 것도 화가 나고, 속상한데 강아지는 매일 이렇게 차도를 바라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강아지에 대해 연민의 감정이 생기던 순간이었다. 주인을 기다리며 차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옆에서 함께 차도를 바라보던 나는 홀연히 떠나버리고. 쌩하니 가버리는 날 쳐다보곤 했었는데...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한 눈을 팔던 그 순간, 갑자기 강아지가 차도 쪽으로 뛰어 들었다. 난,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차는 쌩쌩 다니고 있었고 뛰어 들어 강아지를 붙잡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강아지는 학교 쪽으로 뛰다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피하려 방향을 꺾어 왼쪽으로 뛰었고 그만, 차에 치이고 말았다.

솔직히, 잘 보이진 않았다. 차들이 워낙 많아서 내 시야가 막혔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비명소리를 분명히 듣긴 했지만 까만 강아지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가 도착했고 난 후둘 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차에 탔다.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나에게 말했다.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죽을 리 없어. 분명, 분명...내일이 되면 카센터에 앉아 있을 거야.’

차에 탔는데 대답이 없자 엄마가 내게 질문을 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나. 너무 무서워.”

“뭐가?”

엄마는 다소 놀랐는지 살짝 고개를 뒤쪽으로 꺾어 물었다.

“엄마를 기다릴 때마다 카센터에서 만난 강아지가 있는데...”

“있는데?”

“차에 치인 것 같아. 내 옆에 있던 강아지가 갑자기 차도 쪽으로 뛰어 버렸어. 난, 붙잡지 못했어. 내가 붙잡았으면 차도로 뛰지 않았을 거야. 너무, 너무 미안해”

엄마는 잠시 숨을 고르시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주연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누구도 차도로 뛰어가 강아지를 붙잡진 못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차에 치였다면 엄마는 가슴이 너무 아플 거야. 날 기다리다가 그런 거니까.”

엄마는 차를 갓길에 잠시 세워 나를 가만히 바라 봐 주었다. 나도, 엄말 바라 봤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내게 너무 속상했다.

“그래도, 그래도 말야...난 사람이니까 차에 치여도 살 수 있지만, 강아지는 차에 치이면 죽잖아.”

말문이 막혀 말을 계속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난 왜 교통사고가 난 그 현장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었을 까. 무서웠던 걸까. 내 죄인 것 같아서 내 잘못 같아서 도망친 걸까.’

이틀 뒤, 월요일이 되어 등교를 하던 도중, 멍하니 카센터를 바라보았다.

까만 강아지는 없었다. 난 순간 움찔 했지만 저번에도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어딜 간 것이라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아침 조회 중에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까만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었다고 해. 알고 있었니?”

“아니요.”

친구들은 많이 당황스럽고 놀라워 보였다.

“그 강아지가 사고를 당했는데, 큰 사고라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 구나.”

친구들은 일제히 입을 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일부는 소름이 돋는다며 이야기 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친구들끼리 모여 까만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꺼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신발보다 싼 타이어 집 알지? 그, 버스 정류장 뒤에 있는 곳 말이야.”

“그런데?”

“그쪽 까지 강아지를 끌고 간 다음에 버렸대.”

“뭐?”

친구들과 난, 너무 놀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그 불쌍한 녀석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까. 너무 슬펐다.

“정말이야?”

“그렇다는 소문이 있어.”

‘소문, 소문...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그저, 떠도는 이야기. 소문. 난, 그럼 믿지 않을래. 누군가가 차에서 내려 강아지를 구해 줬을 거야. 분명, 병원에 데려다 줬을 거야. 그래, 그랬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할래.’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할 때까지 창문을 통해 카센터를 바라보았지만 작고 까만 강아지는 볼 수 없었다.

작고 까만 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어느 날부터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가 카센터 앞에 있었다. 크고, 사나워 보이는 개였다. [최주연/국제한국어교육과]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물질이 풍요로워지는 반면, 인간은 점차 자기중심적이고, 마음은 고갈되어간다. 이에 비해 동물의 세계는 항상 천성 그대로이며 순수하다. 사람은 이런 동물과 함께함으로써 탁해져 가는 세상에서 위안을 얻고 즐거움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즉 동물을 애완하는 일이며, 그 대상이 되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버려지는 애완동물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유기동물의 수는 8만1천 마리이다. 그중 유기견은 5만 9천 마리, 유기묘는 2만 1천 마리다. 신고되지 않고 길에서 떠돌다가 죽거나, 개인이나 구조 단체에 의해 구조되는 동물의 수를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유기동물들은 개인 분양(31.4%), 자연사(23%), 안락사(22.7%), 원래 소유주에게 반환(13%)의 순으로 절반 이상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더불어 유기동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갈 곳을 잃은 동물들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죽게 된다. 죽은 유기동물들은 사체로 부패하게 되며 부패한 사체를 치우지 않는다면 심한 문제점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유기동물의 배설 문제도 심각하다. 아무 데서나 배설하는 유기동물로 인해 심한 악취가 난다. 가령 유기동물이 구조가 되어 동물보호소에 입소한다 하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전염병이 돌기도 하고, 버려진 스트레스로 인해 열흘도 안 돼서 죽기도 한다.

그렇다면 유기동물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동물 번식업과 판매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열악한 시설에서 마치 공장처럼 기계로 찍어내듯 수백 마리의 새끼를 빼는 번식 업자의 존재로 생산되는 동물의 숫자는 더 늘게 된다. 그리고 판매자들은 각종 홍보로 충동구매를 부추긴다.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여 정부에서 허가를 받은 전문인만이 번식 업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동물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책임의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18%에 다다른다. 하지만 처음 찾은 가정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동물은 열 마리 중 한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입양했지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거나 키우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버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때에 맞춰 밥을 먹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때로는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따라서 동물을 입양하기 전에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동물이 생을 다 할 때까지 키우겠다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물을 애완동물 가게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서 유기동물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더불어 유기동물 관련 캠페인이나 홍보를 통해 유기동물 발생을 줄이고 입양을 권유해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에 유기동물과 관련된 뉴스 기사를 접하면 마음이 아프다. 유기동물이 되기 전에 그들은 한 가정의 가족이었다. 인간은 동물이 전부가 아니지만, 동물들에게는 인간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들에게 버림받은 채 길거리에 버려졌을 때 동물들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가끔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갈 때 작은 상자에 담겨 상품처럼 판매되는 동물을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자신이 상품처럼 팔리고 버려지게 될 것을 알고 있을까. 그들을 상품화하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결국은 그들을 살아있는 쓰레기로 만들었다. 앞으로 유기동물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인식을 개선하고 제도의 문제점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버려진 동물들에게도 새로운 가족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홍미정/직업재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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