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쌥띠마을*>

백로가 떼 지어 사는 쌥띠마을은

암컷의 긴 목이 더 길어질 때를

수컷이 아는 마을이다

소나무 죽어서도 제 몸을 내어 주고

죽은 소나무를 백로가 품는 마을

아등바등 세월을 건너온 사람들이

이제 조금은 한가해져서

소문 따라 백로 사진 찍으러 오는 마을

죽음은 무언의 질서 같아서

이웃한 둥지와의 경계에서

간간 일어나는 공방전을

사람들이 사랑이라 읽는다 한들

수피 안쪽 흰 뼈는 여전히 말라간다

말없이 솔잎을 내려놓은 자리

한꺼번에 백로가 날아오르면

외계에서 날아온 흰 우주선을 찍었다고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가겠지

내가 찍은 사진기 속 백로는 어디가고

한 여자와 자식들 돌보다가

흰 뼈만 남은 아버지

삐죽 삐죽 솟은 삭정이에

가뭄의 하늘이 걸려있다

 

* 경북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에 있는 마을

[문효진/언어치료학과]

 

<어느 대학생의 새벽>

새벽 3시만 되면 눈이 뜨여 지드라

시원한 공기 맡고 달과 별이 수놓은 하늘을 보려고 눈이 저절로 뜨여 지드라

 

사실 그게 아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야.

내일 다가올 타인이 시선이 두려워서 그래

 

공무원 시험, 금융권 취업, 공기업 입사

해외 어학연수, 토익시험, 봉사활동, 대외활동

학벌, 학점관리, 자격증 취득

이젠 여자 친구마저 스펙이다!

 

대학생이 살아가기엔 참으로 어려운 시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다음세대에는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을...

 

물론 나는 이미 대부분을 갖추었다

그래도 싫다

 

왜 이런 것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요소가 되어야 하는가?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묻더라.

 

어느 대학 다니세요?

토익 몇 점이세요?

외국 어디 다녀오셨나요?

학점은 잘 관리하셨나요?

자격증은 무엇을 취득 하셨나요?

어느 쪽으로 취업을 준비하시나요?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더라.

 

넌 어느 대학을 다니니

토익 공부는 왜 하니

외국 나갈 돈은 있니

너 학점은 몇 점이니

너 자격증은 몇 개나 있니

취업이 너 인생의 목표니...?

[김민/행정학과]

 

<땅으로 가련다>

농번기를 거친, 외할머니의 발이 거칠다.

군데군데 벗겨지고, 진물이 흐른 자리에

파리가 앉았다.

쫓아도, 쫓아도 끈질기게 다시 앉았다.

그까짓 게 뭐 대수냐는 외할머니의 눈은

한 여름 소진된 기력으로

감겼다, 떠졌다 했다.

외할머니의 감긴 눈 저편이

잠의 저편인지, 죽음의 저편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깨우자. 깨워야 한다.

외할머니는 어디서 났어요?

땅에서 났지.

내 엄마는요?

네 어미도 땅에서 났다.

나는요?

너도 땅에서 났다.

나는 엄마한테서 났어요.

아니다. 땅에서 났다.

외할머니는 어디로 가나요?

나는 땅으로 가련다.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너를 그리워하마.

상처 자욱, 진물이 흐른 자리에 엉겨 붙은 흙 알갱이가

눈앞에 어룽거렸다.

[이예린/언어치료학과]

 

<유리창>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서있는

이십여 년 된 유리창이 있다

 

너무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탓일까

유리창 밑은 깨지고

온통 얼룩져있다

 

혹여나 뒷모습은 괜찮을까

뒤돌아 가봤지만

밤마다 바람이 긁어 놓았는지

상처투성이다

 

그 상처를 안은 채

홀로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쓰인다

 

자리를 바꿔 주었다면 달라졌을까

밤마다 바람을 막아 주었다면 괜찮았을까

 

조금은 단단해진

지금 모습이 익숙해진 유리창이 말 한다

 

깨끗해져야겠지만

다시 반짝이고 싶진 않다고

[문도연/의생명과학과]

 

<콩벌레>

-박성우, <두꺼비> 패러디시

 

문 틈새로 엿본 방 한쪽 귀퉁이에는 콩벌레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비에 눅눅해진 벽, 그 벽 옆에 달라붙은 콩벌레는 내가 지켜보는지도 모르고 그저 웅크리고 있었다. 흙 묻은 양 발을 껴안고 잠든 모습이 신기해 하루는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았다. 그런데 이 콩벌레가 굽은 등을 꿈틀대는 통에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잠에서 깬 콩벌레는 흙 묻은 양 발을 숨기며 뭐라뭐라 말을 했다.

 

비가 그친 다음날, 날이 새기도 전에 콩벌레는 자신의 굽은 등에 큼지막한 배낭 하나를 싣고 사막의 나라로 길을 떠나버렸다.

 

그 날 밤 살짝 열어본 방에는 콩벌레도, 등이 굽어 웅크리고 자는 아버지도 아무도 없었다.

[최선희/국어교육과]

 

<새벽풍경>

만월인 밤,

시침과 분침마저 고요한 시간

가로수의 잎만이

새 옷을 갈아입기에

분주한,

이 동트기 전 새벽녘.

 

택시의 불빛과

타들어 가는

입에 문 담배꽁초.

그윽한 연기가 끊길 때 쯤

입에 말은 말들도 끊어질 때 즈음

드디어 하늘의 색이 바랜다.

이제, 떠나가야 할 때.

 

파아란,

혹은

누군가에게는 검은

만월의 밤이 바래져 가면

고양이,

일찍 일어난 고양이가

밥 먹기에 바쁘다.

사람,

일찍 일어난 사람도

밥 먹기에 바쁘다.

 

아파트 단지 내,

밥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

가스에 따닥, 불붙이는 소리

저마다,

떠나가야 할 때.

이, 아침

[김근태/임베디드공학과]

 

<새벽4시>

잠은 오지 않았다.

파도 소리가 내 귓가에 머물고 있어

혹시 당신도 여기 머물고 있을까 싶어

 

혼자 바라본 창가에는

등대 하나 외로이 서서

아무도 없는 바다를 비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식탁엔

하이얀 고양이 한 마리가 내이야기를 들어 줄 뿐

 

당신이 누워있었던 옆자리에는

바람이 머물고 간 듯이

차갑기만 하다

 

식어가는 우유잔에 떨어지는 한방울이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올려다본 밤하늘은

달빛 비추는 새벽4시

 

언젠가 당신에게 달이 예쁘다 한 그 말에

달 볼 때마다 내 생각 한번쯤 하겠지,

내가 지금 당신생각 하듯이

 

동트는 새벽녘

당신 오실까 싶어 바라 본 하늘에

달빛은 그렇게 흩어져만 갔다.

[박소연/국어국문학과]

 

<빛의 다리>

 

구름이 많은 어느 날 오후

나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구름 사이로 잠시 나타난 태양은

내 발치에서 강 저편까지

빛의 다리를 놓았다

 

나는 데카르트가 아니었기에

그 다리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또한 뉴턴도 아니었기에

그 다리가 빛나는 이유를 탐구하지 않았고

 

나는 정녕 봉이 김 선달이 아니었기에

그 다리를 팔려고 하지 않은데다가

 

나는 게다가 갑도 을도 아니었기에

그 신기한 다리를 떠벌리지 않았으며

 

나는 박태환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그 긴 다리를 멋지게 헤엄치지도.......

 

다리가 사라졌다.

구름이 어느새 다시 태양을 감쌌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기에,

그 다리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탁한 청록색의 강물만 실컷 바라봤다

[김송현/초등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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