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새해를 맞은 것 같은 데 벌써 2015년이 저물고 있다. 매년 올해는 더 좋아지겠지라는 희망을 품지만 역시나를 못 벗어난다. 하루 세끼 밥 먹고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것이야 큰 변화가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주변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했다.

못났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올 한 해 주변 풍경은 더 황량해졌다. 졸업을 앞 둔 제자들은 꽁꽁 얼어붙은 취업 시장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얼굴은 갈수록 보기 어렵다.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집값은 철마다 꼬박꼬박 오른다. 홧김에 높은 분들 욕이라도 좀 하고 싶지만 도처에 깔린 감시의 눈초리가 무섭다. 대학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친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 다시 이 시를 되뇐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도대체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할까? 무엇으로 이 험난한 시간을 헤쳐갈 수 있을까?

젊을 때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좇았다. 세상을 더 많이 살면 지혜와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으로 믿었다. 공부를 시작한 후에는 많이 배우신 교수님들이 모범 답안이었다. 막상 박사를 마친 후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을 따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마흔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은 달라졌다. 만병통치약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최소한 돈, 명예, 권력과 지식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물론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힘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다. 알지 못하면 남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권력은 십년 이상 유지할 수 없고 돈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진정성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국민은 국민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각자 자신이 맡은 자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진정성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진정성 있는 임금은 백성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진정성이 있는 국민은 공동체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2015년 한국은 이와 사뭇 다르다. 절대 다수의 역사학자와 국민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정부에게서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모두 종북이라고 몰아부치는 언론과 정치인의 행태도 다르지 않다. 진정성은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은 눈빛이 다르다. 꽃은 말하지 않아도 벌과 나비가 찾아온다고 했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고 덕이 있으면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했다. 진정성으로 타인을 대하고 또 평가할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올 한 해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결국 답은 진정성이라는 것을 실험해 볼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