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창조융합학부 조교수 양승권

동아시아의 유구한 역사에서 『논어(論語)』 만큼 많이 읽힌 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논어』에 제일 처음 나오는 문장을 보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와 주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이 문장들은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아주 익숙하게 다가온다. 
 『논어』는 동아시아에서 ‘철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을 수 있는 공자(孔子; BC 551 - 479)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정리해서 묶어낸 책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제자들이나 공자가 살았던 당시의 정치가들, 그리고 숨어있는 은자들과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 대화들이 하나의 일목요연한 카테고리로 엮여 있는 것은 아니며, 일종에 잠언집 형태로 되어 있다.
 만약 독자들이 『논어』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고전이란 의례히 그렇듯이 아주 고리타분하고 따분하며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논어』를 펼쳐보면 기이하게도 아주 평범하고 쉬운 대화체로 되어 있어 조금은 당황할 수도 있다. 우리가 철학하면 떠올리게 되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언급이 거의 없다. 『논어』는 윤리나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아주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말투로 풀어낸다. 문장도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간결함 속에는 인간됨이라는 문제와 구체적인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공자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고달팠다. 게다가 공자를 이끌어 준 스승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번뜩이는 통찰력은 누군가로부터의 영향이 아니라, 힘겨운 밑바닥 삶으로부터 길어 올린 생생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자는 엄청난 독서가였지만, 그의 통찰력은 책만을 통해서는 습득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서히 스며들어 오는 중상모략과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고자질이 전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면, 그는 총명한 사람이다.”라는 공자의 언급을 보자. 내가 볼 때 총명한 사람에 대한 설명 가운데 이 만큼 명쾌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공자가 생각하는 총명한 사람이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떳떳하다면 주변에서 아무리 사실이 아닌 일을 가지고 거짓으로 꾸미어 나를 고자질하더라도, 내가 만약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면 고자질한 상대방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공자의 인간관계에 관한 통찰은 『논어』의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논어』는 시대를 뛰어 넘어 우리에게 보편적인 진리를 속삭여주는 고전 중에 고전이다. 하지만 『논어』에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큰 도움을 주는 처세적인 성격의 언급들도 많이 나온다. 요컨대 ‘릴렉스’하게 『논어』를 접해 보자.
 『논어』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크게 구분된다. (1) 인격 수양의 방법 (2) 올바른 인간관계와 처세술 (3)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지도자가 지녀야 할 태도 (4) 옛사람이나 공자의 동시대인들에 대한 인물평 (4) 공자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 (5) 공자의 행적
 기본적으로 『논어』는 ‘수기치인(修己治人)’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수기(修己)’란 자기의 인격과 능력을 갈고 닦는다는 의미다.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바꾸면 ‘수신(修身)’이 된다. 그리고 ‘치인(治人)’은 “남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세상이나 사람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수기’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인격이 모자란 사람이 남을 감화시키려한다면 잘 될 턱이 없다. 자기의 훌륭한 인격을 바탕으로 남을 잘 추스르고 다스릴 때, 이를 ‘덕치주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도덕을 바탕으로 한 정치다. 이 도덕의 가치 기준 가운데 공자가 가장 중시한 기준은 바로 ‘인(仁)’이다.
 ‘인(仁)’은 공자의 철학에서 알파이자 오메가다. 인은 ‘사람됨의 근본’이다. 인은 품격을 지닌 인간이 발산하는 ‘인간적 매력’의 근원이다. 인(仁)’은 사람 ‘인(人)’과 숫자 두 ‘이(二)’가 합쳐진 한자어다. 즉, 사람이 둘이 있다는 의미다. 이 글자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을 잘 드러내준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양상에는 부부간의 관계·친구와의 관계·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 등 숱한 관계가 있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제외하고 가장 순수한 관계는 남녀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인(仁)은 마치 남녀 사이의 관계와도 같이 이해관계를 덜 따지는 관계를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로까지 확산시키자는 의미다.
 흥미롭게도 한의학에서는 기(氣)가 순환되지 못하고 막히는 증상을 불인(不仁; 인하지 못함)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인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갖추어야만 할 도덕적 의미를 넘어 천지 대자연의 자연스러운 흐름과도 관련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고 막히는 현상도 불인이고, 몸 안에서 기의 흐름이 순탄하지 못해 순환계 계통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불인이다. 전자의 불인은 남을 함부로 대할 때 나타나며, 후자의 불인은 내가 내 몸을 함부로 대할 때 나타난다.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은 영어로 ‘sensitivity(감각)’로 새길 수 있다. 인을 ‘감각’이라는 의미의 ‘sensitivity’로 본다면, 불인(不仁)은 무감각, 즉 마비상태다. 마비상태는 영어로 ‘anesthetic’이다. 여기서 an을 빼면 esthetics가 된다. 이 말은 ‘미학’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움은 곧 감각의 세계다. 이러한 관점을 쫒아가 보면 인이란 타자에 대한 ‘아름다운 감각’이라는 해석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은 모든 다른 도덕관념이 싹트게 해주는 ‘씨앗’이다. 한의학에서 살구씨는 행인(杏仁)이라고 한다. 여기서 행(杏)은 살구라는 의미이고 인(仁)은 ‘씨앗’이라는 뜻이다. 씨앗은 모든 식물의 원천이다.
 공자는 “사람이 인(仁)하지 못하다면 예(禮)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람이 인(仁)하지 못하다면 악(樂; 음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라고 말한다. 인이 모든 가치의 기본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예(禮)와 악(樂)이 중요하다 한들 감수성이라는 ‘씨앗’이 없는 예악은 인간을 무겁게 압박할 뿐이다. 이렇듯 공자의 인은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공자는 이 인의 감각을 바탕으로 해 ‘시’(詩)와 ‘예’(禮), 그리고 ‘악’(樂)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시’(詩)는 오경 가운데 하나인 『시경(詩經)』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시들을 말한다. 공자에게 『시경』에 나오는 시들은 ‘인’(仁)의 감각을 불러 일으켜주는 매개체다. 한편  ‘예’(禮)는 ‘고상하고 우아한 몸가짐에 대한 예술’이다. 마지막으로 악(樂;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도덕적으로 순화시켜준다. 고대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공자만큼 음악의 중요성을 역설한 철학자는 아주 드물다. 공자에게 음악은 영혼의 정화제다. 『논어』는 비록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자가 중시하는 시-예-악의 관계는 상당히 논리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시→예→악’이라는 순서는 곧, ‘예술적 감성[시]→올바른 규범[예]→새로운 창작[악]’이라는 교육의 단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를 오늘날의 교육제도로 비유해 보자. 시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으로써 초등학교에서 중시해야만 한다. 어렸을 때는 지식보다는 그림 그리기나 자연을 벗 삼아 뛰어 놀게 하는 등 자연스러운 감성을 일깨우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 예는 중·고등학교의 교육에 해당한다. 너무 감성에만 치우치면 방만해질 수 있다. 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예로써 질서 의식을 심어주어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악은 대학교에서 실행하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음악을 만드는 행위인 작곡은 곧 새로운 창작이다. 교육은 창작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공자는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현실적 삶에 집중했다. 자신의 제자가 귀신을 섬기는 방법에 대해 묻자 귀신 보다는 사람을 섬기는 것에 집중하라고 대답한다. 또 죽음에 대해서 제자가 묻자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데 죽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말한다. 물론 공자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대상에 집착하는 것 보다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공자는 중국의 지성사에서 진정한 인문주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공자는 정치 행위도 어떤 통치를 위한 전문화된 기술이 아니라 인(仁)과 같은 도덕률이 펼쳐지는 공적인 장이라고 말했다. 공자에게 도덕과 정치는 구분된 것이 아니었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윤리학자다. 흔히 윤리학은 어떤 절대적인 윤리 원칙을 미리 정해 놓고 사람들이 그것을 확신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자에게는 어떤 절대적 윤리 원칙을 확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리 상정된 윤리 원칙을 현실적인 맥락을 고려하면서 생생한 삶에 투영해 내는 것이었다. 공자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아주 상식적인 사람의 길을 추구했다.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조교수 양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