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호

나예빈(안양예고 2학년)

 

사람들은 정말이지 읽은 책을 아무데나 놓고 가버리곤 했다. 간혹 제대로 책꽂이에 꽂아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두고 갔다. 보던 책상에라도 놔뒀으면 정리하기가 훨씬 수월한데 문제는 엉뚱한 책장에 쑤셔 박아두는 축들이었다. 분명 대여해 간 책은 아닌데 제자리에는 없으니 그야말로 난감할 지경이었다. 사서와 책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근로장학생들은 도서관 얌체족들을 제일 경멸했다. 차라리 카트에 놓고 가는 편이 나았다. 수안은 카트에 책을 놓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늘 그렇게 생각했다.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누르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았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트에 끊임없이 쌓이는 책도 책이지만 대청소를 하는 날은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수안이 시계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있을 유나의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유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면 쳐다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수안은 그런 유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부터 겉모습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그랬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다가도 유나를 떠올리면 현기증을 느꼈다. 유나가 머릿속을 방방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집안은 뒤죽박죽이었다. 유나는 수안의 귀가시간을 잊은 채 에어로빅 영상을 따라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수안은 유나에게 통보를 했다. 자신이 돌아왔을 때 집이 여전히 더럽다면 룸메이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둘이 한 집에 살게 된지 일 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생겼다. 둘은 너무나 달랐고, 집은 비좁아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기 어려웠다. 급하게 청소를 하다 유나가 바닥에 누웠다. 나름 수안에게 맞춰가려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N극과 S극은 아무리 강한 힘으로 붙여도 튕겨나갔다. 수안과 유나가 그랬다. 둘은 가까워질 수 없었다.

집 앞에 도착한 수안은 문고리를 잡을 뿐 돌리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문을 열면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랬다. 아침식사를 하며 유나에게 한 통보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수안은 유나에게 늘 화를 냈지만 그때뿐이었다. 당시에는 유나가 굽히는 듯 보였지만 조금만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왔다. 티셔츠마저 구기면 자국이 남았지만 유나는 아니었다. 혼이 나거나 싸워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소리를 치고, 화를 내면 지치는 것은 수안뿐이었다.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던 수안은 문고리를 돌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좋을 수 있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빌었다.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그제야 엉망인 집안 꼴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와 수습을 해봤자 수안을 속일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수안은 평소보다 많이 지쳐있었다. 도서관은 열시에 문을 닫았다. 뒷정리까지 끝내면 열한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유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수안과 동갑이었지만 휴학을 하는 바람에 졸업이 늦어졌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안은 신발을 벗느라 애를 썼다. 발이 부어 신발이 잘 벗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서 있으면 발이 퉁퉁 부었다. 겨우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서자 짜증이 치밀었다. 집안이 엉망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조차 모르겠어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침대는 인형이 정자세로 누워있어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유나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한 것이었다. 그 점이 수안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라면 열심히 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한 결과가 이렇다면 무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방바닥은 유나의 잠옷에서 떨어진 스팽글로 정신이 없었다. 동대문 상가에서 어렵게 구했다는 잠옷은 분홍 스팽글이 빼곡하게 달려있었다. 수안은 그 잠옷을 가져다 버릴 기회를 엿보았다. 번쩍거려 정신없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팽글이 떨어져 집안을 더럽게 만들었다. 테이프로 떨어진 스팽글을 줍다 주저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곳들도 정리가 안 되어 있었지만 스팽글이 가장 신경 쓰였다. 유나는 수안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옷 방으로 데려갔다. 장롱을 열었다. 둘은 옷을 수납할 공간이 모자라 티셔츠들을 코트 밑에 접어놓았다. 유나는 수안과 다르게 종이접기 하듯 여러 모양으로 티셔츠를 접어놓았다. 수안이 접는 방식은 지루하다며 유나 나름 열심히 접은 것이었다. 수안은 열이 올랐다. 더 이상 말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는 듯 외투만 손에 든 채 집을 나섰다. 형광등 불빛을 받은 유나의 스팽글 잠옷은 끊임없이 번쩍거렸다.

수안은 출근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때 유나는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수안은 만사태평해 보이는 유나의 얼굴을 보고 더 화가 치밀어 올라 오늘은 꼭 결판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이 작은 공간에서 둘이 지내는 것은 무리였다. 애초 이 집을 구한 것은 수안이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수안은 이 자취방을 구했다. 무리인 감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도움을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방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룸메이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수안이 유나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좋은 룸메이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와 다르게 방긋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수영복 같은 옷을 입고 에어로빅 영상을 따라 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유나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기상을 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침대에 앉아 한참동안 시간을 보냈다. 유나는 수안이 왜 저를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둘이 잘 맞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나와 수안은 다른 사람이었다. 퍼즐을 맞출 때 제 자리가 아닌 곳에 끼우면 맞지 않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둘은 사물이 아닌 사람이니 서로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었다.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나도 수안처럼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틀리다고 말하며 화를 내는 것이 특히 그랬다. 그럼에도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간 것은 수안을 이해하려했기 때문이었다.

점심 식사를 끝낸 유나는 자신을 여배우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촬영장이고 수안을 연기하는 중이라고 받아들였다. 만약 수안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떠올렸다. 수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유나는 지금 상태의 모든 것을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안과 갈라서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 살 곳을 구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었다. 간단하고 재미있는 것이 좋았다. 집을 청소한다기보다는 물건과 숨바꼭질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질러진 것들을 안 보이는 곳에다 구겨 넣었다. 유나가 청소를 하는 것은 수안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였다. 집안 정돈을 끝내고는 마트에 갔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수안을 위해 요리를 하여 기분을 풀어 줄 생각이었다. 요리가 끝나갈 즈음에 수안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유나는 아무 말 없이 접시를 내밀었다. 수안 역시 아무 말 없이 접시를 비웠다. 그렇게 하루가 넘어갔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수안이 눈을 떴다. 유나는 주말 아침부터 외출 준비에 바빴다. 수안은 주말만이라도 늦게까지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예민한 상태였다. 한마디 하려다 멈춘 것은 유나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유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한쪽 다리만 보라색 스타킹을 신었다. 다른 한쪽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상태였다. 양쪽으로 틀어 올린 머리는 유치원 다닐 때 이후로 시도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수안이 던지다시피 말을 꺼냈다.

그러고 나갈 거야?

응. 이러고 나가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너무 튀잖아. 사람들이 다 쳐다볼걸.

튀면 안 되는 거야?

수안은 더 이상 답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이런 식의 대화라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입을 열었지만 곧 후회를 했다. 유나는 수안을 바라보며 답을 기다렸지만 자신을 쳐다보지 않자 답 얻는 것을 포기했다. 수안은 아침잠도 잊고 유나가 외출 준비를 마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유나가 집을 나서자 수안은 장롱을 열어보았다. 자신에게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옷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평소에 입고 다니지는 않지만 한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둘은 큰 행거를 반반 씩 나눠 사용했다. 수안의 옷걸이는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수안은 유나의 옷 중 몇 가지를 꺼내어 자신에게 대어 보았다 다시 걸기를 반복했다. 유나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못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수안에게는 모두 이상한 행동이었다.

 

수안은 주말 내내 집 안을 벗어나지 않았다. 유나는 외출을 나갔다. 혼자 집에 남은 수안은 퇴근하면서 대출해 온 책을 읽었다. 휴대폰은 전원을 꺼둔 상태였다. 인터넷을 보는 것조차 지겨웠다. 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갈망했다. 책을 정리하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혼자 있는 곳이 아니었다. 책 정리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책의 위치를 묻거나 대출에 대해 물었다. 내키지 않아도 친절해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은 감정을 잃는 것과 다름없었다. 수안은 한 번 고객의 소리 종이에 이름이 적힌 적이 있었다. ‘책등이 보이지 않게 꽂는 이상한 사서’ 누군가 수안을 그렇게 칭했다. 수안은 직급 높은 사서가 그것을 보지 않도록 구겨버렸지만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문장들이었다. 그때마다 머릿속이 구겨지는 것만 같았다.

같이 일하는 선배가 수안을 불러냈다.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선배는 수안의 이름이 고객의 소리 종이에 적혔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혹 고객의 소리 종이에 장난을 하는 사람이 많아 선배는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수안은 가끔씩 책등이 안 보이게 꽂은 적이 있었다. 선배는 도서관 이용자 중에 수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수안은 웃을 수 없었다. 선배는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차가운 음료수가 담긴 컵의 겉면에 물방울이 맺혀 흘렀다. 수안은 그 컵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얼굴을 씻어 내리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왜 그것을 자신이 먼저 발견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곱씹었다.

유나는 친구의 작업실을 찾았다. 친구는 비트를 찍어 가수에게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러 명과 한 작업실을 썼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이름 없는 작곡가가 어느 환경에서 작업을 하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일을 한지 몇 년이 지나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개인 작업실을 구했다. 그 탓인지 전보다 얼굴이 좋아 보였다. 유나는 노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작업물도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고 느꼈다. 친구를 보고 있으면 수안과 갈라서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혼자 작업하는 것이 외롭지 않다고 했다. 유나는 혼자 지내는 것이 싫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미국에서 지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영어로 말하며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혼자 지내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 집에 돌아와 인사를 할 때 돌아오는 대답이 침묵인 것이 특히 그랬다. 차라리 엄마가 잔소리하며 등짝을 때려주는 편이 나았다.

집에 혼자 남은 수안은 유나의 옷을 뒤적였다. 그곳에서 가장 튀는 색상 원피스를 꺼냈다. 사이즈를 가늠해보니 자신에게도 맞을 것 같았다. 곰돌이 귀 모양으로 머리를 묶었다. 유나가 자주 묶는 방식이었다. 서랍을 열어 화장품을 꺼내 유나처럼 화장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꺼내놓은 원피스를 입었다. 수안은 한참 동안 거울 앞에 서서 유나를 흉내 낸 자신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유나의 말투도 따라 했다.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유나가 된 수안은 집을 나가려 했다. 문고리를 잡았다 떼기를 반복하더니 다시 신발을 벗었다.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유나가 집에 왔을 때 수안은 자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유나는 수안의 손에 들려있던 책을 빼내었다. 낯이 익은 책이었다. 양갈래 머리라는 책인데 전에 유나가 읽던 것이었다. 수안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처음 룸메이트가 되었을 때 규칙을 만들며 서로 간에 거리를 두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물건은 건들지 않기, 휴지처럼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은 격주로 번갈아가며 구매하기 같은 것들이 내용이었다. 그런 수안이 자신이 무슨 책을 읽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우연히 같은 책을 구입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유나는 수안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책 표지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일러스트였다. 밝은 표지와 다르게 내용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글 배경은 어느 중학교의 한 반이었다. 화자는 그 반에 속한 한 학생이었다. 표지의 주인공은 그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화자는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을 무채색으로 칭했지만 주인공은 무지개라고 말하며 상반된 이미지를 드러냈다. 유나는 그 내용을 알고 책을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독서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표지가 눈길을 끌어 구입했다. 내용은 중학생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치기에는 충격적이라 여러 번 나눠 본 끝에야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유나는 왕따를 당하던 표지의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가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쓰고 싶었다. 다 쓰고 난 뒤 봉투에 테이핑까지 해서 책 사이에 꽂아 두었다. 유나는 한동안 그 책에 대해 잊고 살았다. 요새 들어 그 책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수안이 읽고 있는 것이 제 것이 아닌가 했지만 수안이 정한 규칙을 보면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의 방으로 가 책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유나는 수안이 읽고 있던 것을 아무렇게나 넘겼다. 책 사이로 편지가 떨어졌다. 편지 봉투는 누군가 뜯어 너덜너덜했다.

수안이 유나를 깨웠다. 수안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렸다. 유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수안이 차린 것들을 먹었다. 양갈래 머리와 편지에 대해 물으려고 수안을 불렀다. 입안 가득 밥을 넣은 채로 휴대폰을 하던 수안이 고개를 들었다. 유나는 우물쭈물하다 말을 꺼내지 못 했다. 쥐와 고양이가 있다면 자신은 항상 쥐 쪽이었고 수안은 고양이 쪽이었다. 누군가를 구석으로 모는 것이 자연스럽던 수안이 추궁을 당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수안은 다시 시선을 휴대폰으로 옮겼다.

 

수안이 일하는 도서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었다. 1층은 소설 같은 문학 책이 주를 이루었고 2층은 잡지와 같은 실용서적이 주를 이루었다. 수안은 1층 담당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2층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당분간 실용서적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수안은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자기 계발서들은 하나같이 지루해 현기증이 돌았다. 계발서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을 획일화시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는 책을 정리하면서 제목을 보며 재미를 느꼈다. 이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강의 프로그램에서 본 듯한 사람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은 표지는 수안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책들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빌려 본 탓이었다. 수안은 책을 등이 보이지 않게 꽂았다. 전에는 무작위로 꽂았다면 이번에는 규칙이 있었다. ‘면접에서 잘 보이는 법, 처음 직장인이 된 당신을 위한 의상 코치’ 수안이 뒤집어 꽂은 책들의 제목이었다.

 

수안과 유나는 함께 외출했다. 둘이 같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주신 뮤지컬 티켓 때문이었다. 아주머니의 딸이 곧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 준비 때문에 선물 받은 티켓을 사용 할 수가 없어 아깝다고 혀를 차며 수안과 유나에게 건넸다. 그 뮤지컬은 인기가 많은 것이었다. 수안이 몇 주 전부터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구하지 못했다. 유나는 한국에서 하는 뮤지컬이 보고 싶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수안은 곤란했다. 유나와 외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다닌다면 자신마저도 타인들의 시선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단조로운 자신이 항상 튀는 유나와 비교당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어쩔 수 없이 유나와 외출을 하기로 결심했다.

유나는 머리를 묶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올려 묶고 싶었지만 뒷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안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알록달록한 옷 색깔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거기다 머리까지 독특하게 묶고 나온 유나를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유나를 찍어 SNS에 올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뮤지컬이 끝나고 나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장 볼 시기를 놓쳐 집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같이 뮤지컬까지 보고 따로 먹자하는 것도 우스워 내린 결정이었다. 다행인 것은 둘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했다. 만난 이후로 가장 평화로운 저녁식사였다.

수안의 도서관은 강남에 있었다. 모난 건물과 검은색계열 정장을 입은 회사원이 대부분이었다. 수안은 도서관에서 나와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유나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수안은 어제 작성한 새로 구입할 책 목록을 챙기지 않은 채 출근을 하고 말았다. 늦잠을 자 정신없이 집을 나온 탓이었다. 수안은 유나에게 무엇이든 부탁하고 싶지 않아 했다. 밑 보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재난 상황 비슷한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수안은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유나는 외출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수안이 책 목록을 가져다 달라고 하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서 유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유아용 숨은그림찾기 같았다. 유나를 찾기란 그 무엇보다 쉬웠다. 유나가 새롭게 염색한 머리는 사탕 같았다. 식당 계산대에 놓인 혼합 사탕처럼 여러 색이 섞여 있었다. 원피스는 밑자락이 너덜 했다. 육식동물들이 이빨로 물어뜯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며칠 전 쪽가위를 들고 잘라대는 통에 바닥이 지저분해져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때 저 원피스를 리폼한 모양이었다. 새 옷을 왜 저렇게 만드는 것인지 수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나가 마실 것을 주문하기 위함이었다. 선뜻 주문하지 못하고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수안은 유나의 취향을 잘 몰랐다. 같은 집에서 지내도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카페에서는 여름 프로모션으로 무지갯빛의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여러 색의 과일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그 음료가 유나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레인보우 셔벗 한 잔……. 아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수안이 유나에게 건넨 음료는 어두운 빛이 도는 아메리카노였다. 유나는 쓴 것인지 시럽을 여러 번 넣었다. 여전히 입에 안 맞는 모양이었다. 몇 번 더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이후에는 빨대만 저었다. 쓴 것을 못 마시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유나가 알록달록한 음료를 들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 꼴이 보기 싫어 주문한 것이었다. 자신이 일부러 유나를 괴롭히려는 못된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세상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모든 곳이 동시에 정전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가 암흑에 가려진다면 아무도 구별할 수 없을 것이었다. 누가 어떤지 구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편안한 일이었다. 저 자신도 구분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유나의 행동을 말없이 바라보던 수안이 손을 내밀었다. 유나는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수안의 행동을 따라 했다. 수안은 공기가 사라진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산소마스크가 있어 자신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기를 바랐다. 유나는 한참 지나서야 수안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가방에서 목록을 꺼내주었고 수안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유나는 함께 점심을 먹고 싶어 했지만 수안은 속이 안 좋다며 유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둘은 며칠간 평화롭게 지냈다. 뮤지컬을 보고 저녁식사때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을 시작으로 빠르게 친해졌다. 그 후로 유나가 수안의 심부름을 해준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수안은 도서관 새 단장으로 정신이 없었고 유나는 시험기간이라 서로 바쁘게 지냈다. 덕분에 집은 계속 텅 비어 있었다. 더러워질 일도, 서로가 싸울 일도 없었다. 둘이 부딪히게 된 것은 도서관 새 단장이 끝나고 유나 친구의 쇼케이스를 앞두고서였다.

유나의 친구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게 되어 크게 쇼케이스를 열게 되었다. 거기에 입고 갈 옷을 정하느라 이것저것 다 꺼내놓아 침대가 엉망진창이었다. 수안의 도서관도 엉망진창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 구입한 책들이 도착했다. 그 책을 등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수안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눕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평소에는 잘 타지 않던 택시를 타고 집 앞으로 돌아왔다. 닫힌 창문으로 비치는 그림자가 분주했다. 오늘은 조용히 잠에 들고 싶었던 터라 벌써부터 심기가 거슬렸다. 집 문을 여니 신발장부터 정신이 없었다. 신발이 짝을 잃은 채 이곳저곳 흩트려져있었다. 수안은 간신히 빈 곳을 찾아 신발을 벗었다. 집 안 꼴은 더 엉망이었다. 겨울 털 옷까지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수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멀미를 느껴 올라오는 토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눈앞에 놓인 옷들의 패턴은 기하학적이었다. 영상을 보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 같아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반면 유나는 겨우 옷을 골라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너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여기 너만 사는 거 아니잖아.

어지럽게 해서 미안해. 근데 오늘 친구 쇼케이스거든. 거기 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넌 어떻게 애가 하나 하면 다른 건 신경을 못 써? 이런 행동들이 민폐라고 생각 못해?

이번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싸움을 하기는 했어도 크게 싸운 것은 처음이었다. 수안은 유나에게 왜 엇나가는 것이냐 소리쳤다. 자신과 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그런다고 했다. 유나는 자신의 행동이 엇나가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수안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나는 수안이 자신에게 뱉은 말이 계속 맴돌았다. 눈빛이 너무 차갑고 따가워서 그 공간에 머무를 수 없었다. 더 이상같이 지내는 것은 무리였다. 억지로 붙잡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유나는 수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측은함이 담겨 있었다.

 

수안은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다. 어제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큰 싸움이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문제로 서로 부딪히는 일은 자주 겪었던 것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유나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유나가 여전히 기분이 안 좋다면 야식을 먹으며 풀면 되는 것이었다.

유나는 집에 없었다. 유나의 물건들도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 살던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수안은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헛것이 유나인지, 유나가 사라진 집인지 알 수 없었다. 침대에 기댄 채로 아침을 맞았다. 잠을 자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다. 시선 끝에 유나가 있는 것처럼 한 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결국 다음날 도서관에 가지 못 했다. 아프다고 둘러대며 하루를 빠졌다. 다들 수안의 건강에 안부를 물었다. 정작 수안이 묻고 싶은 안부는 유나의 것이었다. 더 이상 홀로 방에 남겨진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식당에서 자신은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여기서 찾으려 한다 해도 눈에 띄지 않아 어려울 것이었다. 수안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고 알리는 진동벨 소리를 듣지 못 했다. 창문 밖 풍경에 집중한 탓이었다. 스팽글이 온 도로에 내려앉았다. 식당 종업원은 알람이 울려도 찾아가지 않자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수안은 사과를 하며 진동벨을 내밀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았을 때는 스팽글이 사라진 후였다.

수안은 다음 날 바로 도서관에 출근했다. 더 쉬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 전 날 편하게 자지 못하고 뒤척이는 바람에 피곤했다. 자신이 원하던 대로 다른 이의 시선을 느끼지 않고 쉴 공간이 생겼음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생각들이 가득 차서 유나와 둘이 살 때 보다 공간이 비좁게 느껴졌다. 수안은 여전히 실용서적들을 정리했다. 새로운 동료들은 수안을 마음에 들어 했다.

수안씨는 항상 누구랑도 문제없이 무난하게 지내서 참 좋아.

수안은 말없이 아메리카노에 꽂힌 빨 때를 저었다. 얼음은 녹은지 오래였고 미지근해서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 수안은 아메리카노를 변기에 부었다. 물이 갈색 빛으로 물들었다. 버튼을 누르니 큰 소리를 내며 다시 맑아졌다. 수안은 한참 동안 변기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수안은 유나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서로 아는 지인도 없어 둘 사이를 이어 줄 사람도 없었다. 유나가 없는 방은 따분했다. 수안은 유나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말을? 문제는 끝이 없었지만 답은 시작이 없었다.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간이 흘렀다. 남아있던 유나의 체취가 사라졌다. 비슷한 방향제를 찾으러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 향은 그 누구도 만들 수 없었다. 오직 유나만의 것이었다.

수안은 도서관에서도 유나를 생각했다. 언제든 꽂을 수 있는 책처럼 유나도 제자리로 데려다 놓고 싶었다. 유나의 청구 기호는 함께 살던 방배동이라고 중얼거렸다. 책등이 잘 보이도록 가지런히 정리했다. 어느 책꽂이부터는 책등이 보이지 않게 꽂았다. 들킬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계속해서 꽂았다. 이런 방법으로 꽂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책등이 보이게 꽂는 것이 바르다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속으로 유나를 되새기며 책을 꽂았다. 책등은 보이지 않았다. 수안의 등만 보일 뿐이었다.

수안이 점심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자 책등이 보이지 않게 꽂혀 있던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책이 등이 보이게 꽂혀 있었다. 누군가 바꿔 꽂은 모양이었다. 수안은 자신이 등이 보이지 않게 꽂았던 곳을 찾으려고 몇 바퀴를 돌았다. 여러 번 돌아도 찾을 수 없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책꽂이 사이를 돌고 또 돌았다. 동료가 잃어버린 것을 찾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는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안은 대답하려 했지만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료는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며 수안을 집으로 보냈다. 점심시간이라 길거리에는 회사원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흰색 와이셔츠의 무채색 하의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사원증이 걸려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배와 부딪혀 튀어 올랐다. 유리 건물에 사람들과 수안의 모습이 비쳤다. 수안은 그곳에서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유리에 비친 사람들 중 누가 자신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모두 같은 청구기호가 붙은 책들처럼 흩어져 있었다. 수안은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니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사선으로 교차되는 신호등 한가운데서 수안은 자신을 찾았다. 차들이 클랙슨을 울리며 수안을 몰아세웠다. 사방을 둘러보던 수안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어디에서도 수안을 찾을 수 없었다.

 

<수상 소감>

 

일단 저에게 이런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타인의 기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 안에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다니고, 일상을 보내다 보면 개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우리는 무채색 속에 뒤섞여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찾게 된다면 세상은 무채색이 아니라 무지개색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모두가 제대로 보이면서도 조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기호’를 읽고 수안처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구대학교 언론출판문화원  shjh00@dae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