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우리는 매우 놀라운 뉴스에 접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비선 실세가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은 언뜻 언뜻 박근혜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입문했을 때 간혹 나왔던 이름이지만 이 사람이 재임 중 4년간 국정에 일상적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극히 최근에 알려졌다. 임기가 중반을 넘어서고,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한 후 대통령의 정치 실정이 점차 부각되고 있을 때, 정윤회의 국정 개입 논란, 이어서 그 부인인 최순실의 국정 개입 논란이 대통령을 만든 보수언론과의 충돌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사건들이 별개의 사건으로 보였다.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을 둘러싼 논란, 이화여대 특기생인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부정학사관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부실한 승인과 이에 대한 재벌들의 기금 헌납 등등에서 사건들이 시작하더니 급기야 최순실의 호스트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대통령 연설문 고치기가 취미’라는 폭로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그동안 할 수 없다던 개헌카드로 정국을 돌파하려 했으나, 그날 밤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 피시 사건이 터지면서 보수, 진보 언론할 것 없이 최순실 게이트의 폭로에 열을 올리게 된다.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새로이 밝혀지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에 국민들은 경악을 참지 못하였다. 그 동안 이상했던 대통령의 주술적 용어를 패러디하는 비난과 비판이 쇄도하였다. 주술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였던가라고 허탈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세월호, 국정교과서, 사드까지 최순실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의 지지율 조차 급락하였다. 지금 시점에 이 사태는 국정공백이라는 권력 부재의 상황까지 도달하였다. 모든 의혹을 부정하던 최순실을 포함하여 국정을 보좌하는 안종범 수석 등은 구속될 것 같고, 그동안 친박인사로 분류되어 권력을 향유하였던 자들은 예수를 부정하는 베드로와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급기야 안종범 수석은 ‘최순실과 대통령의 직거래가 있었던 걸로 안다’는 발언도 했다. 김영란 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측근 비리에 대해서 측근을 활용한 리더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책임론이다.
청와대는 현재 측근 배제의 인적 쇄신과 새로운 총리를 앞세워 난국을 돌파하려고 한다. 야당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책임총리를 통해 새로운 내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거리에 모여 대통령 하야, 퇴진을 주장한다. 앞으로 공백의 국정 위기를 둘러싼 각 세력의 주장과 대안이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될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 역사를 보면 이러한 권력 공백기에 쿠데타도 있었고, 시민혁명도 있었다. 역사가 아무리 되돌아가더라도 쿠데타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정국이라 의회주의적 형태의 국민적 해법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역사의식을 갖추고 참여하는 시민의 힘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도 달성한 세계사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과거의 성공 공식에 너무 얽매여 새로운 혁신과 개혁을 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사회 발전이 정체된 상태로 있다. 그 동안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시민의 공화주의 의식도 높아졌지만 과거의 성공은 현재 질곡이 되었고, 이 질곡은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이럴 때 일수록 시민들이 정신을 차려 새로운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새로움은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 큰 고름을 베어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먼 훗 날 이 어처구니 없는 최순실 사태를 회고하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좋은 예방주사였다라고 웃으며 회고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