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안현효 교수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회는 재미있는 지옥이다.” 한국 사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눈만 뜨면 새로운 사건 사고가 터진다. 하도 사건이 많고, 그 강도가 세다 보니 이제 엔간한 뉴스에는 성이 차지 않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나?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이 특이하고, 급속한 데 있는 것 같다. 특이한 근대화라 함은 일본 제국주의 침입에 나라를 잃고 식민지를 겪으면서 일본을 통해서 근대화를 강제 당했다는 점이다. 급속한 근대화라 함은 해방 이후 군사 쿠데타를 겪고 이후  세력이 주도한 급속한 산업화를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전근대적 요소, 근대적 요소, 탈근대적 요소가 모두 어우러져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 중 세대 갈등은 매우 심한데, 여기에도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모두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근대 시기에 자유의 문제를 다룬 밀의 <자유론(On Liberty)>(1859)은 한국 사회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영국의 경제학자, 철학자이자 <논리학 체계>(1843), <경제학 원리>(1848), <대의국가론>(1861), <공리주의>(1863), <여성의 복종>(1869), <자서전>(1873), <사회주의>(1891) 등 방대한 저서를 남긴 대 사상가이다. 이 중에서도 <자유론>이 가장 뛰어난 글로서 인정받고, 제일 많이 읽히고 있다. 밀이 <자유론>을 저술한 때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발발하고, 산업화가 노동자에게 미친 비참한 영향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다. 고전적인 자유방임주의적 자유주의가 쇠퇴하고, 사회의 개입이 논의되었다. 노동운동은 사회주의로 발전하고 있었고,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이에 대응하여 사회의 개입을 용인하는 사회적 자유주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바로 이 때 집필한 <자유론>은 밀의 다른 저서들과는 달리 당시 사회상에 대한 논의는 없이 “자유” 그 자체의 핵심적 의의를 설파한다.

<자유론>의 주제는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이 맥락에서 개인이 어느 정도의 시민적 사회적 자유(Civil or Social Liberty)를 향유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밀이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개인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 주권자라는 것이다. 즉 자유란 어떤 복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인류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본질적 가치다. 따라서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밀은 자유의 수준을 세 영역으로 나눈다. 첫째, 의식의 내면적 영역인 양심의 자유, 사상과 감정의 자유, 과학, 도덕, 종교의 자유, 둘째, 태도의 영역인 취향과 이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 셋째 행동의 영역인 집회 결사의 자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밀은 개인의 무조건적 자유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로서 제기하는 ‘자기보호(self-protection)’는 개인의 자유가 타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이를 규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밀의 논의가 현대에 주는 시사점은 단순히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고 자유가 절대 가치라는 주장에 있지 않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소수 의견조차도 보호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유론> 제2장 “사상과 언론(토론)의 자유”에 관한 논의에서 밀은 설령 단 한 사람만을 빼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견해라도 다수 견해에 찬동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의 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언뜻 다수결의 원리인 민주주의에 반하는 주장처럼 보인다. 더욱이 밀은 자신의 이 주장은 ‘권력을 쥔 한 사람이 가진 유일한 의견이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그 외의 모든 다수를 억압할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까지 말한다.

밀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①소수자의 의견이 진리인 경우, ②소수자의 의견이 오류인 경우, ③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모두 맞는 경우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논의한다. 첫 번째 경우는 지금 소수 의견이고 오류인 듯 보이는 것도 나중에 진리로 밝혀질 수 있기 때문에 소수 의견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 예수 등 역사상 수많은 진리의 탄압사례를 통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현재의 다수 견해가 무오류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점이다. 현재는 진리로 보이는 것이 향후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가능성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다수 의견은 좀 더 겸손해져야 하고 소수 의견에 관용적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소수자의 의견이 오류인 경우에도 소수의견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주류 의견이 진리라고 해도 반대이론이 이를 충분히 토론하지 않으면 주류이론은 독단이 되고 만다. 비록 소수의견이 틀렸다고 해서 소수의견은 다수 의견의 진리성을 더 활력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해 준다. 만약 이러한 토론 과정이 없다면 다수의견이 맞는 이유도 잊게 되어 그 진리가 생동감을 잃는다. 밀은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을 그러한 좋은 사례로 들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진리를 의심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그 의심의 단계를 모두 극복할 때 더 좋은 진리로 재탄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의 이치는 진리성이 불명확하여, 주류의견과 이에 반대되는 소수의견이 모두 맞을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인생의 중대한 실제 문제에서는 대체로 서로 대립하는 의견의 조정과 결합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도 토론을 통해 차이로부터 이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 여기에 밀은 독일의 사상가이자 훔볼트 대학의 설립자인 빌헬름 폰 훔볼트의 말을 다시 음미한다. 훔볼트는 ‘인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발달시키는 것이 절대적이고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개인의 절대적 자유, 차이에 대한 용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회에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면 밀은 ‘기독교 윤리와 이교적 윤리가 병존하지 않으면 인류의 도덕적 부활은 어렵다’고 하여 종교에서의 다양성과 관용을 강조한다. 인간의 목적은 능력을 최고도로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것인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유와 다양성이 필요하며 이것이 결합되어 독창성을 낳는다. 그리하여 관습에 빠져서, 관습을 진리인양 믿는다면 그 사회는 정체되어 진보할 수 없다. 사회가 계속 진보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지고의 가치다. 밀 역시 민주주의 유일하게 옳은 정치형태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는 억압적 정치형태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견해를 억누르고 편협한 진리를 개인들에게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은 각성한 개인이 주어진 관습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회의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질문하지 않고 주어진 관습이라 하여 맞는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사회의 진보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일한 방법은 교육을 통해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각성된 개인을 육성해야 한다.

밀은 인생의 후반기에 사회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밀의 사회주의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모두 변화하여 각자의 계급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 사회적 목적을 중시한다. 물론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은 교육이다. 밀이 <자유론>을 쓸 당시 이미 사회주의를 수용한 상태였으므로 밀의 사회주의는 결코 개인적 자유의 신장, 다양성의 보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은 <자유론>에서 관료적 국가의 폐해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국가가 교육의 주체로 등장하여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문제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의견을 편파적으로 기울게 하는 시도를 한다면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밀의 <자유론>은 여러 가지 쟁점을 야기한다. 개인의 개성에 대한 강조, 개인적 자유에 대한 강조는 구체적 여러 사례에 적용할 경우 많은 논점을 낳을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오늘날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밀이 말한 자유의 정신, 관용 및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우리 사회에 큰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교육에 대한 국가 관료제 비판으로부터 불과 몇 개월 전까지 큰 사회 문제였던 국정교과서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보수단체들의 탄핵반대 시위에서 관용의 정신을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러한 쟁점들을 우리 스스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밀의 <자유론>을 읽고 한국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사색해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갈등하는 노년 세대와 청년 세대들이 모두 모여서 <자유론>을 같이 읽고 서로 토론해보면 어떨까? 점점 격화하는 세대 갈등은 서로 박멸해야 할 주장이 아니라, 서로 토론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여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단초로 작용하지 않을까? 고전 읽기를 이와 같이 충실히 한다면 고전은 단지 과거에 대한 지식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재 좌표를 반성하게 하고, 이 반성에서 미래로 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데 꼭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