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터넷에서 ‘서울시가 청소녀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한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찾아보니 그 기사가 작성된 지 막 6개월이 지났는데(초고가 작성된 시점은 2017년 2월 초로,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처음 글을 읽으며 ‘청소녀가 뭔가?’하는 의문이 들어 알아보았더니 그 말인즉슨 소년은 남자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니 청소년도 남성을 일컫는 말이요, 따라서, 여자아이를 가리키는 ‘소녀’를 사용하여 ‘청소녀’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관이다. 그럼 지금까지 그분들께서는 20대 여성은 청녀라고 불렀단 말인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국립국어원에서 권하지는 아니했지만 이전부터 ‘청소녀’라는 말이 쓰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실 ‘소년’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남자라는 뜻이 없다. 한자로 쓰면 젊을 소(少) 자에 해 년(年)자를 써서 그저 어린아이를 의미하고 있을 뿐이며, 충년(沖年), 장년(壯年) 등과 유래를 같이 한다. 그러니까 ‘소녀’라는 단어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던 ‘남자아이’에 대응하여 나온 말로, 널리 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준어로 인정되었고, 동시에 애꿎은 ‘소년’은 남자아이를 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좁혀졌다. 그러다 보니 ‘소년소녀가장: 어린아이 어린 여자아이 가장’과 같이 괴기한 신조어도 생겨나기 일쑤였다. 이에 대해 2006년 9월 12일, 국립국어원의 김봉규 선생은 “‘소년’은 ‘남자’가 아닌 ‘젊은 나이, 어린 나이’를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이를 모르다 보니 ‘소년’이 남자만 가리키는 줄 알고 상대어로 ‘소녀’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소녀는 없었다.

 근래에 반려동물이 많이 늘었다. 특히 번식력이 어마어마한 고양이는 집에서 키우기를 포기하여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를 길고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존에 도둑고양이라는 엄연한 명칭이 있음에도 말이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도둑고양이가 등재되었지, 길고양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언론 등 여러 매체에서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요즘 들어 도심의 야생에서 군림하는 고양이가 늘어나고 그들에게 먹이를 주며 보람을 느끼는 이들이 생겼다. 내가 듣기로는 그들이 어감이 좋고 박애적인 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스스로 ‘길고양이’, ‘캣맘(cat mom)’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 권장한다고 한다. 그들이 모여 사회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신문과 TV 방송 등 언론 또한 그들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2012년 8월 29일, 이 모 씨의 표준국어대사전의 ‘도둑고양이’ 항목을 ‘길고양이’로 수정해 달라는 요청에 국립국어원은 “‘도둑고양이’는 ‘주인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몰래 음식을 훔쳐 먹는 고양이’이므로, ‘주인 없이 길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라는 뜻의 ‘길고양이’와 구별된다.”고 답했다. 명판결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도둑고양이’는 ‘사람이 기르거나 돌보지 않는 고양이’다. 다시 말해, 길에 떨어져 있는 음식을 훔쳐 먹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 길에 떨어져 있는 음식을 주워 먹는 고양이는 길고양이니 혼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또, ‘노숙자’와 ‘무료급식’이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이제부터 각각 ‘길사람’과 ‘맨맘(man mom)’이라고 불러주자(노숙자와 무료급식 봉사자들을 비하하거나 특별히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길고양이는 없었다. 아니, 있었나보다.

 2008년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에는 “‘우리’와 ‘우리말’을 차별하는 표준어”라는 제목으로 “지나친 표준어 강요는 언어의 발전에 부정적이다.”는 내용의 칼럼이 게재된 바 있다. 언어는 시대와 함께 늘 변화한다지만, 요즘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러다 보니 어느 것이 표준어였고 어느 것이 은어였는지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KBS와 MBC 등의 공영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비표준어 자막이 당당히 등장해도 아무도 그를 지적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는 비표준어를 넘어 속어와 은어 등 격 낮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종종 기사의 제목에 올라오기도 한다.

 나도 20년을 지방에서만 살아왔고, 올바른 표준어를 구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남에게 ‘그건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라고 지적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적어도 공인과 단체들의 공적인 발언에서만큼은 자신의 단어 선택이 적절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박준모(생명과학·15)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