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길고양이는 이름이 없다. ‘나비’, ‘야옹이’ 등으로 불린다. 우리대학에 사는 고양이는 이름이 있다. 서문에 사는 고양이 ‘서문이’ 와 중앙도서관 편의점에서 주로 활동하는 ‘나비’, ‘깜냥이’, ‘삼색이’가 있다. 모네의 연못 근처에 사는 고양이도 있다. 그런데 다 비슷하게 생겨서 이 고양이가 삼색이인지, 이 고양이가 서문이인지 헷갈린다.

한 번은 학과 사무실에 갔는데 계단 복도에 의자가 있었다. 그 옆에는 물 양동이와 고양이 사료로 추정되는 사료가 담겨 있었다. 친구는 “여기 서문이 자리야. 가끔씩 여기 들어와서 의자에 앉아있더라. 잠도 잔다고” 라고 말했다. 그 검은 고양이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여웠다. 요즘은 새끼들과 함께 다닌다. 어떤 새끼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고 어떤 새끼 고양이는 잔뜩 경계 하며 담벼락 뒤에 숨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야옹’ 이라고 하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다. 우리가 고양이를 향해 ‘야옹’ 이라고 하면 고양이는 ‘왜 인간이 우리처럼 말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고양이가 고양이 얼굴을 하고 ‘조모임 짜증나네.’ 라고 우리(여기서 우리는 인간이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도 이따금씩 보인다. 직접 사료를 사서 주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먹고 있는 음식을 아주 조금 떼어서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저 고양이들은 2만 집사를 거느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부러 사람들 근처에 눌러 앉아서 음식 주기를 기다리는 고양이도 있다. 필자도 예전에 중앙도서관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발 근처에 조금 덩치가 있는 고양이가 쳐다보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먹었다.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고양이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이동해 다른 사람 발 근처에 앉았다. 괜히 걱정했나 싶다.

이렇게 고양이들이 많아지면서 골치 아픈 일이 심심찮게 생겼다. 단대 안으로 들어와 무법자처럼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변기물을 마시기도 한다. 화장실 문 앞에 ‘고양이가 변기물을 먹으니 변기 문을 꼭 닫아달라’는 당부의 글이 붙어져 있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불쌍하기도 한데 어쩔 수 없잖아.” 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길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공존을 해도 길고양이는 인간의 주요 영역에는 들어올 수 없다.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공존하긴 해도 고양이 또한 자기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등 어떤 관계에서든 표현하는 방식이나 행동은 달라도 그 속에서 서로를 대하는 행동이나 의사표현은 확실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선 털로 소복해야 할 얼굴이 주전자처럼 매끈거렸다. 그 후 많은 고양이를 만났지만 이렇게 이상한 녀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다. 얼굴 한가운데가 너무 툭 튀어나와 있고, 거기에 뚫려 있는 구멍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숨이 막혀서 연기는 딱 질색이다. 요즘에야 겨우 그것이 인간이 피우는 담배의 연기라는 것을 알았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고양이가 인간을 보고 그걸 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썼을 거 같다. 재밌는 발상이다. 우리는 ‘너무 귀여워’, ‘털 색깔이 검은색이야’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고양이는 도도하게 우리 얼굴을 한 번 쓱 보고 만다. 오늘도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양이 눈은 형광처럼 밝게 빛난다. 그리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도망간다. 고양이가 ‘나’라는 존재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다. 얼른 자리를 비켜준다. ‘내일이면 이 자리에 또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