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김기범(경일고 3)

교실 뒤편에

언제 씨를 뿌린지도 모르는 것이

좁은 땅에서 싹을 틔웠다

참고서를 찢어

비료 대신 뿌려 주고

목이 마른 싹들은

물기 묻은 밀대 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마른 뿌리들로

세상을 휘둘러보지만

아득한 것은 담이었다

꽃말 하나 가지지 못한 잡초가 돼

커다란 발길들에 짓밟히는 수모를

견뎌내면서도

저버릴 수 없는 것은

그리운 담 너머의 세상이었다

수많은 발길질 받아가며

오랜 기다림 끝에

담에 이르러

능소화 한 송이로 피어나

비로소 꽃말을 되찾게 되고

교실로 들어간 능소화는

학생들의 책갈피 속에 향기를 꽂아 넣는다

수상 소감

이런 과분한 상을 받게 돼, 아직 얼떨떨합니다. 그냥 아주 조금 다른 참가자보다 운이 좋아서 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시를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소감문을 써본 적이 없기에 글이 매우 서툴 것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기도 씹어본 놈이 먹는다고 소감문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모양입니다. 운을 떼자면, 예고 학생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많은 백일장을 다녔습니다.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지역의 풍경이나 색채 같은 고유의 느낌을 접해보고, 어쩌면 백일장을 핑계 대고 여행을 다닌 게 아닐까 저 자신도 의아했습니다. 이때껏 저는 높은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주변에서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보다는 시간 낭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상을 받는 날이 오다니, 이때까지의 맘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네요. 사실 대구대 공모전에서 수상자 발표가 나는 날, 우연히 동국대 실기 조기 발표 날이었습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었고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너무 아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경기대 면접이 그 주 토요일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한 주에 겹쳤습니다. 슬퍼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적은 처음이었을 겁니다. 소감문을 작성하는 지금도 경기대 면접이 끝나고 쓰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3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차례대로 저는 동국대, 장흥, 경기대를 갔다 온 것이죠. 아마 이 분야에 발 담아본 학생이라면 3학년이 백일장이나 공모전에 참가한다는 게 의아할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누군가가 받아야 할 상장 중 하나를 가로챘다고 미워할지도 모르죠. 8월 31일, 아마 제가 알기론 명지대 백일장을 끝으로 특기자 전형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1, 2학년 동안 받지 못한 상에 대한 욕망이 아마 남아있는 것일 겁니다. 저는 장흥 백일장을 마지막 백일장으로 끝을 냈고 마지막 상장이 될지도 모르는 대구대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1, 2학년 학생들은 백일장에 계속 참여할 겁니다. 예고 학생뿐 아닌 인문계, 그리고 문예창작학과를 지원하는 많은 학생이 다들 바쁘게 살아갈 겁니다. 학기 중에 공부와 함께 시 혹은 산문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저도 그것을 겪어봤고 또 수없이 백일장(혹 공모전)에 떨어지기도 하며 절망하기도 했죠.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아직 공부하지 못한 교과가 남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백일장(혹 공모전)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죠. 기말고사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죠. 그렇게 바쁘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어느새 수시 원서를 냈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고교 3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고교 3년의 목표 중 하나가 대학이었습니다. 자소서를 쓰느라 몇 주, 몇 달을 밤새고, 모자란 성적 때문에 한탄도 많이 했습니다. 조금만 더 공부했더라면, 이 대학, 저 대학, 수포 하지 말걸, 수행평가 던지지 말걸,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죠. 또 아무도 모르는 운명이기에 정시를 준비할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현재진행형이죠.

잡소리가 길어졌네요. 소감을 한마디로 하라고 한다면, 이때까지 한 맘고생의 보상입니다. 이런 애늙은이 소리를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수험생, 입시생, 고등학생 그냥 지금이 힘들 때예요. 대학 가면 또 대학 가서 힘들다고 하는데, 안 힘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자기 혼자 힘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저 같은 경우는 학교 선배의 말씀이 위로되었습니다. 선배분은 교대를 가셨는데, 제 나이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경험했고 자소서로 열불 내기도 했고 불합격 통지를 받기도 했다면서요. 전 그렇게 공부 잘하는 분은 편하게 대학 간 줄 알았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실기를 준비하든 어떻든, 누구나 다 힘들더라고요. 저희 형들도 예외는 아니었죠. 각자 자기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거였더라고요 숨긴 채. 행복이란 자기만족에서 비롯된다고 누가 말해주더라고요. 어느 대학을 가든 자기만 만족하면 되는 것인데,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입시 경쟁에 말라가고 있죠. 물론 저도 그중 하나였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는 선배 중에는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문대를 간 분도 있고 다양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등단에 성공하셨습니다. 대학과 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직접 보여주었죠. 어디를 가든, 무슨 과를 가든 저희 선생님께서는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수상을 받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될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수상소감문을 적으라고 했는데 일기를 적은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한 책의 구절을 인용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프로즌 파이어>로 유명한 팀 보울러 작가의 <리버보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있니? 결말을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여러분들도 늘 아름다운 결말을 기억하길 바라며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의 영예를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