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비추어지는 대한민국 도시의 풍경은 잔인하다. 알바로 살림을 보태겠다고 애를 쓰는 청소년들도 그렇고 길거리 컵밥으로 하루를 견디어내는 취직준비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설사 취업을 하였다 하더라고 상사 눈치와 언제 자기 자리가 비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늘 긴장감 속에 살아가는 직장인들도 매한가지이다. 시대의 이런 불안감이 싫어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하더라도 매달 지급되는 월급봉투와 가족의 생계가 별개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유행어처럼 번지는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이 티브이에 비추어지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못하다. 서구의 일상적인 혼밥의 문화가 이 곳 대한민국에서는 낯설기조차 하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은”이들에게 인스턴트로 점거되어 있는 편의점에서의 사발면 한 그릇이 허기를 달래줄 지는 모르지만, 한 끼의 밥조차 가족들과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마음 한 에서 울컥하는 비루함을 달래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즘 티브이를 켜면 온통 먹는 프로그램 일색이다. 연예인과 일반인들까지 총 동원 되어 요리를 하거나, 맛 집을 찾아다니거나, 혹은 맛 품평을 하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하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음식에 대한 평은 대부분 옛날 할머니 혹은 어머니를 기억하며 그들이 해주신 밥상위의 음식들과의 일치도에 대한 것들이다. 고기를 대신해 돼지비계로 만든 찌개나 남은 밥을 숭늉으로 대신했던 누룽지들과 같은 가난을 상징하는 음식들이 요즘의 맛있다고 하는 음식들과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어떤 속내인지는 모르겠지만 티브이에 비추어진 요리사들은 대게 남성들이다. 요즘 남자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요리사라고 말하는 것들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어려운 시절 부엌을 책임지던 우리들의 어머니 혹은 여성들의 그 고단한 노동이 요즘의 맛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가족을 위해 오롯이 삼시세끼를 책임졌던 그 시대의 여성들의 노동이 지금의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맛있는 맛’으로 대변될 수는 없다.

아이들은 학원을 전전하면 값싼 김밥과 라면으로 한 끼를 대신하고 있고, 누군가는 저녁을 위해 눈치를 봐 가며 혼자 식당안의 자릿수를 세는 동안, 티브이속의 풍경들은 한적하게 하루를 모두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어쩌면 평생 맛보지 못할 화면 속 음식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손쉬운 한 끼의 식사로 변하기도 한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익명의 가정집 문을 두드리고 ‘한 끼 줍쇼’를 외치면서 한끼를 대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티브이를 통해 듣는다고 하지만, ‘한 끼 줍쇼’라는 말의 의미가 무색하다. 장타령(場打令)꾼을 얕잡아 부르던 ‘각설이’들의 노랫가락 속에 스며 있는 한 끼 구걸의 의미와 요즘의 티브이 안에 비춰진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일자나 한 장 들고 봐, 정월이라 대보름 온갖 세상 만나보고, 이자 한 장 들고 봐, 이월이라 매화꽃 각시타령 하기 좋다...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판서 자제로 팔도감사 마다고…돈 한 푼에 팔려서 각설이로만...” 의 내용들이 절박한 비애감과 더불어 잘 사는 이들에 대한 조롱이 섞여 있다.

각설이패는 일단 소외자들의 집단이고 방랑자들이다. 그것은 단순한 걸인 세력의 규합을 넘어서서, 신분 제도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하향한 자들,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의 저항적 집단일 수 있다. 그러나 “한 끼 줍쇼”로 대변되는 이른 바 식사와 소통의 방식은 어쩌면 어느 특정계층에게만 어울리는 왜곡된 방식의 소통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평상문화’로 일컬어지는 가진자들과 못가진자들의 평상에 앉아 음식을 통해 서로 나누어 먹으며 수평적 관계를 유지했다면, 지금의 사회는 각자의 검열 속에서 가장 원초적인 욕구마저도 고립된 공간에 갇혀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 “한 끼 줍쇼”의 의미가 무색해 지는 요즘이다.

자본주의에서의 노동과 식사가 대치되는 사이,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중에서)던 어느 시인의 시구가 소소하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