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난주 교수(사회복지학과)

지난 7월 덴마크 정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브리핑을 마친 덴마크 사회보장부 공무원은 활짝 웃으며 우리 팀과의 만남이 휴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업무라고 했다. 다음날부터 3-4주간 장관부터 직원들 모두 휴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같이 간 한 공무원이 그럼 차관이 대행하느냐고 물었더니 씽긋 웃으며 차관도 휴가라고 그랬다. 놀란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그럼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외국에서 누가 방문하면? 이러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전화 받을 사람은 있지만 모든 공식 일정은 중단되고 외국에서 누가 와도 휴가니까 못만나는 거라고 그랬다. 실제로 다음주에 방문하고 싶다는 중국 정부의 요청을 수락할 수 없었다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으로 시끄럽다. 우리나라가 멕시코 다음으로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가진 나라라는 것은 유명하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이 연 1766시간인데 우리나라는 2113시간. 멕시코가 2228시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조사에서 취업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285시간으로 멕시코보다 더 길다. 사실상 세계 최장시간인 것이다. OECD 통계를 기준으로 해도 하루 8시간 노동으로 계산하면 한국의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43일, 두 달 정도 더 일하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 사회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빼앗는다. 장시간 일을 해야 필요한 임금을 만들 수밖에 없는 저임금 구조도 문제지만 꼭 그렇지 않는 조건에서도 오래 일하고, 일에만 매진하는 데 가치를 부여하고 칭송하는 사회문화도 문제다. 또 돈으로 보상되는 시간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문화가 자라난 뿌리 어딘가에는 취약한 사회보장체계가 있다. 사회적 보장이 취약하니 제각기 자신의 노동을 통한 소득보장에 필사적으로 되는 것이다. 오래 일하는 것이 한 때는 성장의 동력이었을 수 있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저성장시대에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은 20대 후반부터 65세 이전까지 노동을 통해 소득을 획득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루며 살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이는 중요하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일하는 것 외에도 이 시기에 성인이 된 자녀로서 부모와의 관계를 다르게 맺고, 자신의 가족을 구성하며, 자녀를 양육하여 독립시키는 인생 경험을 겪는다. 이 과정을 어떻게 거쳤느냐에 따라 노후에 자신의 삶과 가족관계, 사회적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한동안 성인기의 인생경험은 성별에 따라 나누어져있었다. 남성은 일 중심으로 여성은 가족 중심으로.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이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직업을 갖도록 교육하고 있다. 남녀 모두 일을 하고, 일하면서 인생을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만이 아니라 개인의 시간과 삶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 남녀 모두가 적정 시간을 일하고 같이 충분히 쉬며, 아이를 키우고, 부모와 이웃, 친구들과의 관계를 가꿀 수 있는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무엇을 버려야할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회모델에 정답은 없다. 어느 사회건 사회구성원 다수가 꿈꾸고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