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학원의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다.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교정의 텅 빈 모습에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도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코로나 사태야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되겠지만,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나날이 악화되어가고 있어서 지방 사립대학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학이 중첩적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엄혹한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허리띠를 어떻게 졸라맬 것인가에 있다. 혹여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제시하는 길을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크나큰 착각이다. 어려움을 뚫고 나갈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기에 그 목표는 합리적이어야 하고, 과정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고, 합의에 이르기까지 인내를 동반한 토론과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재단의 비리나 횡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다수 사립대학들과 달리 우리 대학은 민주적 대학운영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부심과 의지가 투철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자랑스러운 역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학개혁을 위한 에너지의 결집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최근 대학의 최고 경영진 간의 갈등이 불거져 언론에까지 노출되는 사태가 벌어져서 구성원들에게 적잖은 우려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대학을 이끌어갈 책임자들간의 불협화음은 대학의 위기 극복과 미래 준비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점에서 갈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치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당사자들이 성찰을 통해 자기 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5년만에 재단이 정상화되어 모든 구성원들은 장기적 안목에서의 학교발전을 위한 비전과 노력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사회가 그에 대한 가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오히려 우리 대학의 민주적 전통을 무시하고 군림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성급히 대학 거버넌스를 손대려 하는 것은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총장은 대학의 리더로서 신중하고 합리적인 정책수립,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행정집행, 구성원과의 소통 및 사기 진작 등을 통하여 대학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즉흥적 구상의 남발과 잦은 정책변경으로 구성원의 신뢰를 잃고 있지 않은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꾸준한 소통과 설득을 통해 동의를 얻어내려는 노력이 충분했는지 살펴볼 일이다.

대학은 자유와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이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유보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일 뿐 아니라 위기 극복의 방안이 되어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연주할 곡을 해석하고 다양한 악기의 연주자들이 그에 따라 연주하도록 이끌어 간다. 특정 악기만을 잔뜩 모아놓거나,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해석을 강요한다 해서 좋은 화음이 나올 수 없다. 대학의 리더십도 이와 같다. 자신의 생각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충실히 지키지 않으면 화음은 얻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