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다. 올해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벌써 몸도 마음도 떨린다.

겨울만 되면 옛날 중국 춘추시대의 이야기 한토막이 떠오른다. 어느 군주가 따뜻한 방 안에서 털옷을 입고 바깥 눈 구경을 하며 옆에 있던 재상에게 말을 건넨다. “설경(雪景)이 참으로 아름답도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춥지도 않구나.” 그러자 재상이 정색을 하며 직언을 한다. “옛날 현명한 군주는 자기 배가 불러도 누군가 굶주리지 않을까, 자기가 따뜻해도 누군가 헐벗고 추위에 떨지 않을까, 자기 몸이 편해도 누군가 피로에 지쳐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는데, 어찌 군주께선 큰 눈과 추위에 지친 백성의 처지를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옛말에 ‘내 배가 부르면 종의 밥도 짓지 말라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처지나 마음만을 기준으로 삼고 남의 처지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정치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날치기 통과된 한미FTA의 온갖 장밋빛 효과가 언론을 장식한다. 자동차가 몇 대 더 팔리고, 고용효과가 어떻고 하며 언론은 한국경제의 낙관적 미래를 홍보하기 바쁘다. 과연 그럴까? 자기 처지나 마음만을 기준으로 삼고 남의 처지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장밋빛 착시가 아닐까?

전쟁통에도 돈 버는 사람이 있듯 나라가 거덜나도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소수 대기업과 상류층,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에겐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대다수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어떨까? 해고 가능성이 낮아질까.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까. 내 집 마련이 쉬워질까. 취업문이 넓어질까. 사업 매출이 늘어날까. 월세 부담이 덜어질까. 등록금 부담이 낮아질까. 병원비 걱정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까. 기름, 가스, 전기가 덜 오를까. 서민들의 바람은 이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서민의 소박한 바람, 서민들의 삶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답도 내 놓지 않은 채 한미FTA는 강행 처리되고 말았다.

고단하고 옹색한 처지를 말하는 사자성어에 학철부어(涸轍鮒魚)라는 말이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 속 붕어’라는 뜻이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붕어가 지나가는 이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지나던 이가 큰 강의 물길을 터서 살려주겠노라고 말한다. 이에 붕어는 화를 내며 “지금 나는 한말, 한 되의 물로 살아날 수 있는데, 당신이 그렇게 얘기하니, 다음에 나를 찾으려면 건어물가게에 가야 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떤 거창한 정책도 어려운 수치로 포장된 나라경제의 거시적 방향도 이와 같은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이다.

이 연 재 진보신당 전 대구시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