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영어광풍을 만들어내었으면서 그것에 정복당해가는 듯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쩔 수없이 영어를 배워 익혀야하는 처지에 있다는 점, 외국어의 하나일 뿐인 영어가 실질적인 위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것의 소유가 이 사회에서의 자기실현에 필수적이라는 점 등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어교육에 사용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비용과 시간도 엄청나지만 영어광풍에 밀려나는 다른 소중한 가치들은 계산할 수 없는 사회적 손실이다.

영어 위주의 사교육과 입시제도가 우리사회의 계급적 모순을 심화시키는 현실의 기원은 짧지 않다. 학벌이 중시되면서 특권을 나누는 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낮은 우리 사회의 내부적 환경과 미국식 자본주의의 추종이라는 환경이 맞물려 빚어낸 사회현상일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식을 위해 영어는 우리 각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의 방향 전체를 추동하는 구조적인 힘으로 작용하면서 우리사회의 모순을 만들어내고 유지시켜나가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는 영어교육 시장자체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원어민교사가 전혀 없으면서도 학생들의 영어능력은 우수할 뿐 아니라 세계 교육 경쟁력 1위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교육의 더 큰 책임은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핀란드’라는 거대한 이름의 학교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고 있고, 그 교육을 통하여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철저히 모국어에 기반한 영어교육을 통해 모국어를 잘 지켜낼 뿐 아니라 자국민 영어교사만으로 질 높은 영어교육을 이루어내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만들지 말라’는 이들의 교육목표는 훌륭한 사회복지를 통하여서도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학력이 삶의 격차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에 갈 필요가 없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광풍이라는 비합리적 과열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지 않은 채, 영어교육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서 그치는 것은 병의 근원은 보지 않고 증상만 호전시키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영어광풍으로 내모는 여러 비합리적 힘들을 분석하여 영어가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하기위해 필요한 외국어들 중의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영어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바꾸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어져야할 뿐 아니라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노동정책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나가야 한다.
 

권현주 비정규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