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건 교수(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연구실 문 앞에 짧은 편지와 함께 졸업한다며 당차게 학교 밖을 나섰던 제자가 소식을 전한다. 유학을 준비하며, 치열하게 자신을 고민하고 채찍질하던 그가 국내의 직장을 택했다. 강의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던 소소한 기억과 강의실에서 자기 발언에 인색했던 이 친구는 취직하고서야 자기 생각과 표현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편지로 전해주고 있었다. 평소 야근을 거부하다가 직장 상사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며 어쩔 수 없이 눈치받으며 야근을 하고 있다며, 그 시간을 쪼개 소식을 전해 준 그가 듬쑥하고 고맙기도 하고, 공정하지 않은 시대, 인간이 보이지 않는 시대, 부조리한 시대에 그의 앞으로의 사회생활이 염려되기도 한다.

미국의 시인 오든(W. H. Auden)은 그의 시 『이름 없는 시민』(The Unknown Citizen)에서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가 자유로웠는가? 그가 행복했는가? 이런 질문들은 어리석다. 만약 잘못된 무언가가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었어야 한다.“

이른바 MZ 세대라고 일컫는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오든이 이야기하는 ‘이름 없는 시민’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지난 총선 이후, 사회로부터 혹은 정치참여로부터 외면당했던 이 세대들이 자신의 목소리와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난 총선 이후 이들의 정치 참여율이 매우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꼰대’라고 지칭되는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은 이 청년 세대의 목소리에 여전히 귀를 닫고 있다. 대한민국은 치솟는 청년실업률, 찔끔찔끔 오르는 최저임금, 비싼 등록금과 주거비 등이 청년의 삶을 옥죄고 있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흙수저’ 등과 같은 요즘의 유행어에는 청년 세대의 절망과 좌절이 배어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청년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매번 선거철이 되면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반값 등록금 실현, 최저임금 만원 보장, 일자리 창출과 같은 공약을 남발하며 이들을 잠깐 정치쇼에 등장시킬 뿐이다.

당략과 정쟁을 떠나서 이른바 ‘조국 사건’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대한민국의 공정을 의심하게 되었고, 청년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이들은 기성세대가 침묵하거나 외면했던, 불공정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불공정사회가 관습화된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이 부조리한 사회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갤럽조사에 의하면 2020년 통계청이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청년 세대는 60% 이상이 ’전혀 공정하지 않다‘라는 답변이 이를 반증하는 셈이다.

최근 청년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기 위해 대선과 총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이들의 투표율과 정치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다. 한 갤럽 조사에 의하면 다가올 대선에서 90% 이상 투료를 하겠다는 이들의 답변이 나왔다. 이제 정치참여는 이른바 ’꼰대“라고 불리는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다. 청년 세대가 적극 정치참여를 하는 것이 이 뿌리 깊은 불공정한 사회를 뒤바꿀 수 있는 중요 의사 표현이 된다.

다가올 미래는 청년이 국가 최고의 자산이자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미래는 물론 안정된 노후도, 우리가 얻고자 하는 혜택들도 모두 이들에게 달려있다. 요즘 기성세대를 희화하는 ”라떼는 말이야“같은 유행어로 자신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은 이 청년 세대의 절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양분화된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화합의 또 다른 길이기도 한다. 이를 위해, 부디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청년 세대가 ‘정치혁명’, ‘선거혁명’를 통해서 진정한 공정사회로 가기 위한 초석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면에서 영국의 작가 찰스 티킨슨(Charles Dickens)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의 마지막 구절은 그 의미가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이 깊은 구렁텅이에서 솟아난 아름다운 도시와 현명한 사람들이, 시간이 걸릴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겪음으로써, 현재의 악행과 그것을 잉태한 예전의 악행이 스스로 속죄하고 사라지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