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과 책도 인간관계처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쉽게 가까워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쉽게 친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슈만 음악은 나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슈만 교향곡 4번이 내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슈만 교향곡 4번의 선율이 마음, 머리, 입 속에서 맴돌았다. 이후 집중적으로 슈만 교향곡 4번을 감상하기 시작하는데, 운이 좋게도 대가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베를린 필하모니)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템포 감각이 독특하고 신중하면서도 강렬하고 선명한 푸르트벵글러, 지나치게 낭만적이어서 때론 절제를 잃어버리는 듯한, 행복하고 밝은 느낌의 연주를 하는, 심각하고 신중한 독일 음악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번슈타인(뉴욕 필하모니), 총보가 실린 지인이 추천한 볼프강 자발리쉬(드레스덴 카펠레) 연주를 번갈아가며 수십 번을 감상하였다.
 
슈만 음악은 베토벤과 브람스 사이에 비어있는 커다란 공백이자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내 이해의 한계였다. 그런 미지의 공간에 머리로만 이해했던 낭만주의 음악의 세계가 음악을 통해 느껴지기 시작하니 다소 흥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슈만 교향곡 4번은 작곡 순서로는 2번째이나 슈만이 악보 교정을 통해 완성한 것이 마지막이라 4번 교향곡이 되었다. 교정 이전의 최초 버전을 브람스는 더 높게 평가하였다고 한다. 같은 교향곡의 다양한 버전은 브루크너의 경우에도 있는데, 곡의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교향곡 4번 낭만적(Romantische)이 대표적 예이다. 브루크너의 경우 부정적 비평에 민감하여서 악보를 교정하였다고 하는데 슈만의 경우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번 교향곡은 4악장으로 되어있지만 각 악장을 쉼 없이 연주하도록 되어있다. 각 악장에는 앞 악장의 음악적 모티브가 되살아나면서 악장이 서로 오버랩 된다. 슈만은 악장 간 쉼이 있고 모티브가 구별되던 고전적 교향곡을 뛰어넘어 교향환상곡(sinfonische Fantasie)을 쓰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고전적 이상과 절제를 넘어서는 환상이라는 단어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말이다. 슈만은 절제된 형식미를 중시하는 고전주의를 극복하고 개성과 넘치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각 악장에서 더블베이스-> 첼로->비올라-> 제1, 2 바이올린으로 거대한 파도가 휩쓸듯이 이동하며 연주하는 음악적 모티브는 감정의 절제라기보다 폭발로서, 질풍노도로 대표되는 낭만주의적 정열과 환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본격적 근대 예술은 형식미와 절제보다 개성과 감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와 더불어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와 더불어 주요 관객은 귀족에서 부르주아적 시민으로, 공연 공간은 궁정과 저택에서 극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와 바로크 악기를 중심으로 하던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시대는 막이 내리고 4관 편성과 금속성의 성량이 풍부한 현대적 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극장형 오케스트라와 음악이 등장하는 것은 낭만주의로부터 시작된다. 시장과 시민을 주축으로 하는 낭만주의 음악과 슈베르트와 슈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슈만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내 클라라와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남겨두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던 슈만. 독일에 다시 가게 된다면 뒤셀도르프와 슈만이 투신하였던 라인강 강가를 산책하며 그의 음악을 감상해보고 싶다. 기차역과 공항만 달랑 지나쳤던 뒤셀도르프는 하이네의 고향이기도 하다. 슈만 교향곡 4번을 기점으로 3, 2, 1번 교향곡, 미완성을 제외한 슈베르트의 교향곡, 멘델스존의 교향곡의 세계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