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의 질주’로 알려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running on empty’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이라는 의미이다.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제목의 이 영화는 아더와 애니, 대니와 해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군사실험실을 폭파하다가 실수로 경비의 눈을 실명하게 한 아더와 애니 부부가 두 아들 대니와 해리를 데리고 FBI에 15년간 쫓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FBI에 잡히면 모든 게 끝이고 아니면 여전히 쫓기며 살아가야 하는 삶,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삶이다. 그런데도 6개월마다 사는 곳 바꾸고, 이름 바꾸고, 직업 바꿔가며 열심히 산다. 이미 반전운동에 대한 기운이 사그라진 미국에서 자기들끼리 보고도 하고, 비판도 하며 오로지 열심히 살기만 할 뿐이다.

부모들에 의해 주어진 삶을 다 이해하는 듯, ‘우리는 조직이야’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묵묵히 따르는 대니, 더 나아질 것도 없지만 아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아버지. 대니의 모습에서는 답답함이,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보였다. 결국 아더는 ‘세상에 좋은 일 한번 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대니를 놓아주게 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세상에 좋은 일하며 열심히 사는 그들의 모습은 늘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그들 가족 아니, 조직의 우정과 사랑은 늘 부럽다. 나에게 그들의 삶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을 만큼 가진 것이 없는 삶이 아니라 더 이상 얻을 게 없어도 될 만큼 많은 것을 가진 삶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이제 필자는 대니에서 아더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더를 따르면서도 나의 삶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던 대니에서 이제 ‘청년 대부분이 졸업 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청년실신의 시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하려는 삼포세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니들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아더처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으로서 ‘우리는 조직이야’라고 말하며 수많은 대니들을 붙잡을 자신도, 세상에 좋은 일 하라며 권할 자신도 없다. 나 스스로 좀 더 심히 살자고 다짐할 뿐이다. 청년실신과 삼포세대의 시대로부터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생각하다 독일의 이론가 아도르노를 떠올려 본다.

그의 말처럼, 탐욕에 눈멀어 자연과 사람을 그저 부를 쌓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자연을 파괴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구조조정을 일삼는 “도구적 이성”, 나의 생각대로 규격화, 동일화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배제시키려 드는 “동일성 사유”를 비판하면서 사는 것, 더 나아가 나 자신이 그런 폭력적 이성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사는 것이 세상에 좋은 일 하며 사는 중요한 길 중의 하나일 것이리라.

하영진 대구대 비정규 교수